소설리스트

리멤버 더 네임-404화 (404/956)

꽃보다 아름다워(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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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원장의 등장과 함께 어머니들의 항의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교감을 향한 거센 비판과 항의가 같은 학부모에게로 옮겨졌고, 위원장을 맡은 어머니와 그녀를 뒤따른, 소위 교복선정위원회 소속 어머니들이 맞붙어 설전을 벌이기 시작했다.

“누구 마음대로 교복을 바꾸고 그래요?”

“절차에 맞춰서 진행했다니까, 왜 뒤늦게 오셔서 그러세요.”

“절차라니요? 이렇게 졸속으로 진행해 놓고 절차라니요?”

준영 어머니는 누구보다 큰 목소리로 목이 시뻘겋게 변할 정도로 항의했다.

둘째 아들이 내년에 이 학교로 올 가능성이 크다 보니, 자연스럽게 교복 변경에 대한 학교의 공지에 신경이 쓰였다. 더군다나 자신이 학부모위원회에 속한 위원임에도 불구하고 교복 변경을 위한 심사 위원회 소집에 관한 건에 관해 들은 바가 전혀 없었다.

“원칙을 위반한 거잖아요, 이건!”

준영 어머니가 분을 참지 못하고 책상을 내리치자, 주변 사람들의 안색이 급격히 변했다. 특히 마주 앉았던 교감은 얼굴이 하얗게 질렸고, 위원장은 붉게 변했다.

“이게 무슨 짓이에요? 교양 머리 없게.”

“뭐요? 교양이요?”

“책상을 그렇게 부술 듯이 두드리는 게 교양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해요? 지금 여기 어머니만 있어요? 다른 분 안 보여요?”

“보자 보자 하니까···. 이봐요, 위원장님. 도대체 뭘 얼마나 드셨길래 이러시는지 모르겠지만.”

“뭐요?”

위원장의 눈이 뒤집혔다.

“말이면 단 줄 아나, 어디서 막말이에요, 막말이! 누군 할 줄 몰라서 안 하는 줄 알아요? 어디서 배워먹은 버르장머리로 그래? 응? 내가 당신보다 나이가 많아도 한참이 많아! 여기 교감 선생님도 당신보다 어른이야, 어른! 어디 어른 앞에서 소리 꽥꽥 질러대면서 말이야.”

“허, 참.”

기도 안 찬다는 듯 헛바람을 내뱉던 준영 어머니가 위원장을 노려보자, 또 그 눈이 또 시빗거리가 되어 위원장의 목에 핏대를 세우게 만들었다.

“그래서?”

“그래서는 무슨 그래서야. 엄마들끼리 붙어 가지고 난리가 난 거지.”

지태는 발을 까닥거리며 운동장을 바라보았다.

“교복 바뀌는 거 때문에 엄마들이 싸우는 게 이해가 안 가네.”

채윤이 옆에서 캔음료를 마시며 중얼거리자, 지태가 손가락을 좌우로 흔들며 혀를 찼다.

“교복이 어디 한 두 푼으로 살 수 있는 거냐? 고작 3년 입을 교복인데 비싼 돈 들여서 산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 게다가 새로 바뀌는 거니까 물려받을 수도 없잖아? 돈 많은 집이야 상관은 없겠다만.”

“결국, 돈 때문이네?”

“내 생각은 그래.”

단유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둥 마는 둥 하면서 시선은 운동장에서 달리는 명수네 축구부를 향했다. 단유 본인은 교복이 변경된다는 사실을 어제 조회 때 처음 알았기에, 이 사태가 벌어진 상황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다. 그리고 그게 크게 문제가 된다고 여기지도 않았고.

“그런데 넌 어떻게 알았어?”

채윤의 물음에 지태가 ‘단톡’이라고 짤막하게 대답했다.

“너랑 나랑 다른 단톡이야?”

“아, 학생자치위원회 소속끼리 쓰는 단톡이 있어.”

채윤은 고개를 끄덕이다 다시 물었다.

“학생자치위원회, 거기는 다 찬성인 거야?”

지태가 물끄러미 운동장의 명수를 바라보다가 툭 내뱉었다.

“아니.”

“반대하는 사람도 있어?”

사람이 여럿이고 생각이 다 똑같을 수는 없으니까, 반대하는 사람도 없지는 않았다. 특히 어머니와 같은 의견을 내놓는 준영이 그랬다.

준영은 3학년인데 나름 전교 석차 10위권에 들 정도의 모범생이기도 했다. 그가 내세우는 주장은 합리적이기도 했다.

“교육청에서 학생 교복선정에 관한 지침이 마땅히 있는 상황에서 이를 지키지 않은 점과 독단적으로 디자인을 선정하고 교복 제작 업체를 선정한 문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가 주장하는 바의 가장 큰 포인트는 ‘원칙’이었다. 원칙을 지키지 않았기에 잘못이라고 외치는 준영의 주장에 동조하는 학생들이 많았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 문제가 학생들이 나서서 소리를 높일 문제가 아니라고 외치는 이도 있었다.

「기존 교복이 선정된 것도 벌써 10년이 넘어가고 있는 상황이니 바꿀 때도 되지 않았는가. 특히 현대적 디자인으로 변경되어 보기도 좋으니 향후에 이 교복을 이용할 학생들에게도 좋은 일이다. 더군다나 학교 측에서는 조준영 위원의 말과 달리, 지침에 따라 교복 선정 위원회를 소집하여 의견을 물었으며 교복업체 선정 역시 공정한 방법으로 입찰하여 선정하였다. 이에 대해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혹은 자신이 선정 과정에서 배제되었다는 이유로 반대한다는 것은 반대를 위한 반대 외의 이유를 찾을 수 없다. 그러니 이제 학생의 본분을 망각하고 반대만을 외칠 것이 아니라, 공정한 결과에 수긍하는 자세를 보여줄 것을 부탁한다. 또한 반대 여론을 일으켜 학생 사회의 분열을 조장하는 일체의 언동을 삼갈 것을 당부하는 바이다.」

채윤은 지태가 보여준 장문의 메시지를 읽다가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네.”

“나도 그래. 과연 이게 이렇게 시끄러워질 이유가 있는가 싶기도 하고. 뭣보다 나는 이게 다 돈 때문인 거 같아서 괜히 끼어들기도 싫고.”

“돈?”

“위원회니 뭐니 하면서 공정한 절차를 지키려 하는 이유가 다 돈 때문이거든. 누군가가 부정한 방법으로 이득을 취하려는 것을 막기 위한 거지.”

“어떤 부정한 방법이 있는데?”

지태는 입술을 삐죽이며 달싹이는가 싶더니 대답했다.

“그것까진 모르지.”

“그런데 어떻게 확신할 수 있어?”

“확신은 아니고, 그냥 그렇다는 거지. 너희 엄마 아빠한테 가서 물어봐.”

복잡한 건 나도 몰라, 라고 대답한 지태는 벌떡 일어나며 기지개를 켰다. 더 이상의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다는 무언의 제스처였다.

“넌 어떻게 생각해?”

“뭘?”

“방금 한 이야기.”

“교복?”

단유는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말을 고르기 시작했다.

“쉽게 찬반을 이야기하기는 어렵겠지만, 두 가지 정도는 고민해 볼 문제가 있다고 봐.”

채윤은 기대에 찬 눈으로 단유를 바라보았고, 몸을 일으켰던 지태도 슬그머니 앉아서 단유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첫 번째는 역시 ‘원칙’이라고 말했지만, 그게 과연 원칙인지 아니면 편의적으로 상정한 규칙인지를 구분해야 할 거 같아.”

원숭이 엉덩이가 붉은 것인지 빨간 것인지 구분해야 한다는 소리를 들은 것 같아 채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예를 들어, 건널목에서 신호등이 빨간 불이면 길을 건너지 말라는 뜻이잖아? 그건 지금의 이야기에 적용될 ‘원칙’이라고 할 수 있어. 사고를 예방하고 원활한 교통을 위해 만들어진 법이니까,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것이지. 반면에 신호등이 없는 건널목이라면, 보행자의 재량에 따라 건너야 해. 좌우를 살펴야 한다든가, 손을 들어서 사람이 지나가고 있음을 알려야 한다는 등의 룰이 있지만, 그게 법적으로 정해진 것은 아니지.”

“그러니까, 교복 변경에 관한 문제도 그 절차가 법으로 정해진 것인지, 아니면 편의상 정해진 룰이기 때문에 학교 재량에 따라 변동될 수 있는 것인지 알아봐야 한다는 말?”

단유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현재 상황에 대해 잘 모르니까 하는 이야기야. 단지 누군가의 말만 듣고 이게 원칙이다, 저게 원칙이다,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니까.”

그게 중요한 문제일까?

“중요한 문제라고 봐. 양쪽이 주장하는 바가 갈리는 지점이 절차의 공정성에 관한 문제이니까. 양쪽 모두 ‘원칙’의 준수에 대해서는 동의를 하고 있으니, 그 점을 집어서 사실을 확인한다면 적어도 어느 쪽이 옳은 주장을 하는 것인가에 대해 판단은 할 수 있으니까 말이야.”

“두 번째는?”

대충 이해했다는 눈치를 보이는 채윤의 뒤에서 지태가 채근했다.

“나나 대부분의 아이들이 교복 변경에 대해 무심한 이유지. 나랑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당장 교복을 사야 할 일도 없고, 우리는 졸업할 때까지 이 교복을 입고 다니면 되니까 부담도 없잖아. 당장 다음에 입학할 아이들에게나 문제가 되니까. 이를테면 자연보호 캠페인 같지.”

“응?”

“자연을 보호해야 할 이유는 여러 가지겠지. 하나, 자연과 더불어 살아야 할 인간으로서 주위 환경을 지켜야 한다는 당위론. 둘, 한 번 파괴되면 복구하기 힘든 게 자연이기에 지켜야 한다는 주장. 셋, 후대의 인간들에게 살기 행복한 환경을 물려줘야 한다는 의무론.”

단유는 운동장에서 날아오는 먼지구름을 향해 바람을 일으켰다. 먼지구름은 세지 않은 바람에 흩어지는가 싶더니 바닥에 나풀거리며 내려앉았다. 하지만 신경 쓰지 않으면 그저 자연히 발생한 바람처럼 여겨질 법해서 누구도 이를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이유에도 불구하고 일부 사람들을 제외하면 대부분 환경 보호 캠페인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경우가 드물지. 법과 제도로 정비되지 않는 한은 말이야. 왜냐하면, 환경 오염에 의해 자신이 피해를 받는다고 생각하기가 어려워서 그렇다고 봐.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자연보호보다 자연 ‘개발’이 더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잖아? 교복 문제도 마찬가지라고 봐. 우리에게 당장 어떤 문제나 영향을 미치지 않으니 관심이 덜 한 거지. 그렇다면 과연 교복 변경에 관해서 우리가 심각하게 고민하고 의견을 나눌 이유가 있는지를 먼저 알아봐야 한다고 생각해.”

단유가 말을 마치고 지태를 바라보았다. 마치 ‘넌 교복 변경 문제를 우리가 토론해야 할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라고 묻는 시선이었다. 지태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운동장을 바라보더니, 중얼거리듯 말했다.

“바람 때문에 먼지가 많네. 일어나야겠다.”

기름칠이 덜 된 로봇이 일어나는 마냥 부자연스럽게 일어난 지태는 채윤에게 말했다.

“가자, 너 인강 들어야 한다며?”

“어? 응. 그래. 일어나자.”

단유도 피식 웃으며 일어났다.

“난 감독님한테 가봐야 하니까, 너희들은 먼저 집에 가든지 그래.”

“알았어. 아, 그리고 내일 관중석에서 열심히 응원할게.”

“날 응원하지 말고, 명수랑 축구부를 응원해. 내가 나갈 일은 없을 거 같으니까.”

“오케이.”

화제가 바뀐 게 기뻤는지, 지태의 목소리에 힘이 돌아왔다.

봄 대회 때와 마찬가지로 전교생이 경기 관람을 위해, 혹은 응원을 위해 경기장을 찾았고, 이번에는 새 이사장도 자리했다. 괜히 학교에 남아 봉변당할 이유야 없겠지만, 찜찜한 마음도 있고 새로 선임된 이후 가장 큰 행사를 맞이한 마당에 얼굴을 안 보일 수 없었던 탓도 있었다.

“여기 앉으십시오, 이사장님.”

“고맙습니다.”

교감 선생님의 안내에 감사를 표하며 이사장은 자리에 앉았다.

“오늘날이 좋은데요?”

“그렇죠? 저도 아침에 나오는데 어찌나 하늘이 맑은지 운전하기가 힘들 정도더군요.”

교장이 너털웃음을 터뜨리자 이사장도 마주 웃었다.

“어떻습니까, 오늘 우리 아이들이 우승할 거 같습니까?”

이사장의 물음에 교장이 그렇지 않을까요? 라고 대답하며 교감을 바라보았다. 교감도 고개를 열심히 끄덕이며 교장의 의견에 동의한다는 뜻을 비쳤다.

“봄에 우승한 전력이 있는 데다가 이번 대회 예선 때 다른 학교를 압도적인 실력으로 누르고 올라왔다고 합니다. 그래서 다른 학교에서 모두 저희 학교를 우승팀으로 예상하더군요.”

딱히 축구에 관심이 없었고, 예체능 계열에 대한 특별한 지원도 없었지만, 그래도 전국대회 우승이란 타이틀은 싫지 않았는지 이사장은 무릎을 탁, 치며 웃음을 지었다.

“잘 됐습니다. 이런 대회에서 우승해서 그 트로피와 우승기 등을 학교 현관에 전시하는 것도 아주 보람 있겠어요.”

이참에 진열대를 좀 멋있게 꾸미는 것도 좋겠지요, 라는 덧붙임에 교감이 맞장구를 쳤다.

곧 시합이 시작되었고, 아이들의 응원 소리가 경기장을 크게 뒤흔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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