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모스의 순정(4)
-------------- 403/952 --------------
저녁을 먹던 중에 단유가 물었다.
“누나 그거 알아요?”
파채가 곁들여진 콩나물무침을 오물거리며 먹던 나윤이 대답 대신 눈을 동그랗게 뜨며 반응했다.
“우주의 중심이 어디일까요?”
“···지구?”
단유는 마치 2 곱하기 2를 구하기 위해 자를 들이대는 공학자를 바라본 것 마냥 웃음을 지었다.
“보통은 태양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요? 천동설을 주장하던 시기의 사람도 아니고.”
나윤은 볼을 불룩하게 만들며 대꾸했다.
“갑자기 왜 그런 질문을 던져서 맛있게 밥 먹는 사람 무안 주고 그래?”
“아, 그냥 오늘 시험시간에 할 일이 없어서 낙서를 끄적거리다가 생각나서요.”
“그래서 답이 뭔데?”
“모르죠.”
“뭐?”
“우주가 얼마나 큰지도 아직 가늠이 안 되는데 우주의 중심을 어떻게 찾을 수 있겠어요.”
“그게 뭐야.”
별 의미도 없는 이야기로 놀림 받았다는 생각에선지 짐짓 화난 척 단유를 흘겨보는 나윤이었다.
“그런데 수학이 참 재미있는 게요, 일부분의 표본을 통해 전체를 파악할 수 있기도 하거든요? 정확하지는 않아도 근삿값은 구할 수 있다는 거죠. 가장 쉬운 예를 들면, 1, 3, 5, 7, 9 라는 수열을 보면 그다음 수가 11이라는 것을 알 수 있잖아요? 그다음은 13, 15 이렇게 나가는 거죠. 즉, 수열의 가장 앞 5개의 숫자를 통해 무한히 확장하는 수열의 규칙을 짐작할 수 있는 거죠.”
“그래서?”
“그런데 그 수열을 표현하기 위해 그 숫자들을 일일이 표기하는 방식으로 했다가는 전 세계의 모든 종이들을 사용해도 끝이 없을 거예요. 그래서 이를 간단하게 표현하기 위해 만든 게 수식이라는 거죠. 앞선 수열의 경우는 n+(n-1), n은 1보다 크다는 조건을 달아서 표현하는 거죠. n은 순서에요. 그래서 5번째 숫자는 10-1이니까 9라는 숫자가 나오죠.”
“그래서?”
나윤은 형식적으로 반응을 보였고, 그 와중에 턱은 열심히 제 할일을 하느라 바빴다. 이미 수열 이야기가 나올 때부터 흥미가 떨어지고 있던 차였다.
“우주도 마찬가지라는 거죠. 갑자기 스케일이 커지긴 했지만, 적합한 공식만 찾아낸다면 우주의 크기를 알 수도 있고, 우주의 중심도 알 수 있죠.”
“우주의 중심을 찾는 게 중요해?”
우주의 중심이 밥 먹여줘? 라는 눈빛으로 진지하게 물어보는 나윤에게 단유가 웃음을 지었다.
“저한테는 중요해요.”
“너한테?”
단유는 대답 대신 싱긋 웃음을 지었다.
“왜?”
“조금 설명하기 어려운데, 나름 쉽게 설명을 해 볼게요. 만약 누나가 전쟁 중에 적진에 떨어졌어요. 적진에는 당연히 적이 많겠죠? 그래서 누나는 살아남기 위해 적진에서 벗어나야 해요. 그런데 그곳은 누나가 처음 가보는 곳이에요. 어떻게 해야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나윤은 생각보다 입이 더 빨랐다.
“몰라. 어떻게 해야 하는데?”
“일단 생각하는 척이라도 해보시지.”
“몰라. 그냥 말해. 머리 아퍼.”
단유는 식탁 위에 물을 조금 부었다. 평평한 식탁 위에 물이 퍼지면서 번져가더니 어느 정도 선에서 멈추었다. 마치 식탁이라는 망망대해에 떠 있는 섬처럼.
“이렇게 외형이 보인다면, 그리고 방위를 안다면, 적진의 중심에서 멀어지는 방향으로 걷던지, 뛰던지 아무튼 멀어지면 그만이에요. 하지만 보이지 않는다면?”
식탁의 휴지로 물을 닦아내니 다시 말끔해졌다.
“적진의 중심을 알 수 없지만, 적진의 중심에서 멀어져야 한다는 것만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죠. 그러니 최대한 빨리 적진의 중심을 알아내는 방법이 중요하죠.”
“우주가 적이야?”
“네?”
나윤은 곰곰이 생각하는 척을 하더니 젓가락을 입에 물었다.
“주변 사람들이 널 공격하는 것 같다는 환상을 가지니?”
“아니요.”
“혹시 누가 널 스토킹하는 것 같아?”
“아니요?”
뜬금없는 취조에 단유가 어리둥절했다.
“잘 때 막 불안하고,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지니?”
“아니요.”
나윤은 입에 문 젓가락을 소리 나게 내려놓았다.
“됐다, 그럼.”
“무슨 말이에요?”
“정신병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고. 다행이네.”
이번엔 단유가 삐진 척을 해야 했으나, 그런 시늉은 영 어색하다.
“그럼 왜 우주의 중심을 구하는 게 너에게 중요하다는 거야?”
“놀렸으니까 말 안 할래요.”
시늉만 안 했지, 삐졌다.
“하지 마.”
나윤도 굳이 들을 생각이 없다는 듯 행동했다. 들어봐야 단유의 학문적 세계와 마주하기엔 나윤의 지식이 너무 보잘것없었다.
비록 나윤이 이해하기 쉽게 표현하기 위해 설명을 했다지만, 실제로 단유에게 필요한 부분이기도 했다. 만약 우주의 중심을 안다면, 단유의 공간 이동 능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단유가 지금껏 ‘이동’을 함에 있어, 시각적인 제약을 받은 것은 이유가 있었다. 친구들이 하는 게임에서처럼, 혹은 고전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이동’하려는 곳의 ‘좌표’를 알 수 있다면 시각적인 제약을 받을 리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단유는 좌표를 구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단유가 개념화시킨 공간의 본질(Ratio)이 상대적 공간 개념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요컨대, 만약 단유의 공간에 대한 본질이 지구 한정의 공간 개념으로 인식(αναγν?ριση, 아나그노리시) 되었다면, 지구 안에서는 어디로든 이동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구글을 이용해 좌표를 보고, 그 좌표대로 이동하는 것도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단유의 공간은 ‘절대적’이었다. 그 어마무시한 크기와 압도적인 공간은 감히 인간으로서 담아내기 힘들 정도의 개념이나 마찬가지인데, 단유 역시 그 공간에 대해, 마치 선이 그어진 경기장을 보는 것처럼 정확하게 인식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그저 끝도 없이 이어지는 하늘의 어디쯤을 보는 것처럼 불투명할 뿐.
애초에 단유의 공간 능력은 다른 능력과 달리 본인의 자각으로 얻어낸 능력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깨달음(διαφ?τιση, 디아포)에 의해 얻었다고 착각하기도 했지만, 사용할수록 이 능력이 자신이 얻은 것이 아니라 주어진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자신의 공간 이동 능력을 이용해 이동할 수 있는 ‘좌표’가 오직 단 하나 존재하니, 그곳이 바로 ‘이세계’, 단유의 원래 고향이었던 마을의 어디쯤이었다.
이동에 필요한 연산이 숙달되면서도 그 한계만 분명해지는 상황에서 단유는 그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래서 무한히 확장하는, 그래서 끝이 없는 공간에 대한 개념을 고민하다 결국 우주에까지 생각이 닿게 되었다.
‘만약 우주의 중심을 알게 된다면.’
어쩐지 그때가 되어야만 자신에게 이 능력을 부여한, 혹은 깨달음을 준 미지의 존재와 마주하게 될 것이라고 단유는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갑자기 왜 그래? 알았어, 알았어. 말해. 들어줄게.”
말없이 생각에 잠긴 단유를 보고 착각한 나윤이 다 들어주겠다는 듯, 팔짱을 끼고 자세를 잡았다. 어디 얼마나 어려운 이야기로 ‘수포자’의 머리를 아프게 만들 것인가 시험해보자는 듯이.
단유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누나, 그거 알아요?”
“뭐, 말해 봐. 끝까지 들어줄 테니까.”
“누나 입에 밥풀 묻었어요.”
나윤은 다급히 입술 근처를 더듬어 가출한 밥풀 한 알을 떼어냈다.
욕심 같아서는 회전 역학에 관한 연구와 우주의 중심에 관한 연구를 다 함께하고 싶었지만, 그건 말 그대로 욕심이었고 무리수였다. 한 개의 연구 과제만으로도 벅찬 까닭이었고, 여러 가지 참고 서적들을 보는 데 필요한 시간적 제약도 만만치 않은 까닭이었다.
‘일단 하던 연구를 빨리 끝내는 수밖에 없어.’
하지만 회전 역할이라는 과제는 계속 머리를 간지럽히기만 할 뿐 쉽게 답을 내놓지 않았다. 그래도 답답해하지 않고 꾸준히, 끈기를 가지고 걸어가는 것이 단유의 장점이기도 했다.
“김단유, 위 학생은 서울시 주최 수학경시대회에서···.”
모처럼 전체 조회가 시행되었다. 예전과 달리 이번에는 방송실에서 하는 조회여서 대부분 학생들은 각 교실에서 모니터를 보며 편안하게 조회에 임했다. 오직 단유만이 방송실로 불려가 교장 선생님 앞에 어색한 표정으로 서서 상장을 수여 받는 이벤트에 동참해야 했다.
교실로 돌아온 단유는 학급 학생들의 환호 속에 정중하게 감사를 표했다. 선생님도 손뼉을 치며 단유의 수상을 축하해주었다.
“금상이라니, 정말 대단하지 않니? 다들 박수!”
또 한 번의 박수갈채에 단유는 고개를 꾸벅 숙여 보였다.
“다음 달에는 전국 수학경시대회가 있지? 그것도 잘해낼 수 있을 거다.”
전국 다음은 국제인가?
“국제 수학 올림피아드는 내년에 7월에 있다.”
아, 그렇군요. 단유는 내심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할 건 많은데 이리저리 바빠지는 일은 되도록 피하고 싶었다.
“자, 그리고 오늘 전달 사항은 ···내년부터 교복 바뀌는 거 알지?”
웅성대는 아이들을 향해 교탁을 두어 번 내리쳐 주목을 끈 선생님은 다시 말을 이었다.
“자, 자. 조용히 하고. 이번에 학교에서 현대적 감성에 맞게 새롭게 디자인한 교복으로 변경하기로 했다고 하니까, 앞으로는 교복 촌스럽다고 하지 말고 알았지?”
공동구입이나 판매처 등 이러저러한 이야기들에도 아이들의 수군거림은 가라앉지 않았다.
“저희들도 바꿔야 하나요?”
“바꾸고 싶은 사람은 바꿔도 되지만, 안 바꿔도 된다. 내년 신입생은 무조건 입어야 하지만 말이야.”
그 이야기를 끝으로 조회가 끝이 났다. 선생님이 나가신 후, 떠들썩해진 교실에서는 바뀌는 교복에 대한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
반면, 도하는 단유가 들고 온 상장을 펼쳐보며 감탄을 하는 중이었다.
“이야, 이런 상을 받는 애가 짝이라니. 나중에 내가 애를 낳으면 할 이야기 되게 많겠다.”
“무슨 그런 쓸데없는 이야기를. 그리고 그때 돼서 기억이나 하겠어?”
“아무리 내가 머리가 나쁘다 해도 이런 건 기억 못 할 리가 없어.”
정말 머릿속에 단단히 기억해두겠다는 듯, 도하의 눈은 상장에서 떠나질 않고 있었다. 어찌 보면 도하가 상을 받은 줄 착각할 정도였다.
“어이, 단유야!”
뒷문에서 단유를 부르는 소리에 돌아보니, 지태와 채윤, 명수가 손을 흔들고 있었다. 명수는 냉큼 교실에 들어와서 단유의 머리를 붙잡고 흔들었다.
“아이고, 내 친구 단유야, 이게 내 친구라니!”
“아, 그만해. 어지러워.”
단유보다 더 기뻐하는 명수 곁으로 지태와 채윤도 달려와서 단유를 잡고 흔들었다. 덕분에 멀미가 날 정도였지만, 그래도 친구들이 와서 축하해주니 기분은 좋았다.
“무슨 축하를 이렇게 격하게 하냐?”
단유가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다듬으며 묻자, 명수가 이 정도로는 약과라고 소리쳤다.
“오늘 수업 끝나고 축하 파티 겸해서···콜?”
마이크를 붙잡는 시늉을 하는 지태의 말에 채윤과 명수가 콜을 외쳤다.
“명수 너는 연습 있지 않아?”
“오늘은 쉬는 날이다. 내일 간단하게 모여서 몸 좀 풀고, 그다음 날이 결승! 아, 그때 단유 너도 올 거지?”
감독님이 꼭 너 오라더라, 는 명수의 덧붙임에 지태와 채윤이 다시 단유의 멱살(?)을 붙잡고 흔들어댔다.
“오, 축구부까지! 이런 엄친아 같으니라고!”
“우리 엄마가 너 때문에 잔소리가 늘었는데, 또 얼마나 많은 잔소리를 듣게 만들려고 그러냐!”
겨우 그들을 진정시킨 단유가 채윤을 바라보았다.
“너 점점 지태한테 물드는 거 같다? 예전에는 안 이랬잖아?”
채윤이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친구잖아?”
단유가 혀를 내둘렀다.
“나도 너희한테 물들까 봐 겁난다.”
“이 자식이!”
“물들어 버려라!”
좀처럼 옷을 정리할 틈을 주지 않는 친구들이었다.
“나도 같이 가도 되냐?”
도하가 대화에 끼어들며 물었다. 명수가 씨익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콜?”
도하는 그 손에 마주 하이파이브를 하며 대답했다.
“콜.”
단유나 도하나, 혹은 명수나 그의 친구들, 또 많은 아이들이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넘겨버렸지만, ‘교복 변경’이란 주제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반발을 불러 일으키며 다시 학교를 시끄럽게 만들었다.
“도대체 선정위원회가 어디의 누굽니까? 누가 교복 변경을 찬성했다는 말이에요?”
“저기 말이죠, 정당한 절차를 거쳐서 위원회를 선정, 소집 했고요. 협의 끝에 민주적으로 채택한 결과입니다.”
교감의 손에 쥐어진 손수건에 땀이 촉촉이 배어들고 있었다. 하지만 교감의 변명 따위에 납득할 사람들이 아니었다.
“아니 애초에, 교복 변경에 관해서 찬반을 묻지도 않고 이렇게 막 변경하는 경우가 어디 있어요? 네? 아무리 사립학교라도 그렇지, 이렇게 막 나가는 경우가 어디 있냐고요?”
드센 어머니들의 항의에 교감은 좌우로 눈을 굴리며 도움을 요청했지만, 이 상황에서 누가, 무슨 도움을 줄 수 있단 말인가.
“저기, 학부모위원회에서도 통과가 된 상황이고 말입니다···.”
교감이 공정성을 강조하려 했지만, 학부모들은 기도 안 찬다는 듯 콧방귀를 뀌며 눈을 부라렸다.
“학부모위원회요? 제가 학부모위원회 위원인데 저 없이 무슨 결정을 했다는 거예요? 네?”
“준영이 어머님, 좀 말씀이 지나치시네요?”
교감은 드센 어머니의 뒤에서 들려온 소리에 낯색이 환해졌다. ‘학부모위원회’에서 위원장을 맡은 어머니가 여유로운 표정으로, 또각거리는 구두 소리를 내며 교무실로 들어서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