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밍(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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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상대 공격수가 조금 더 침착했다면 안정적으로 슛을 쐈겠지만, 그 역시 긴장을 하긴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공을 제대로 차지 못하는 실수를 했고, 다급했던 골키퍼의 손에 걸리고 말았다. 손에 맞고 튀어나온 공은 중앙으로 쇄도하던 공격수에게 걸렸고, 이를 막기 위한 선수들의 적극적인 수비 속에서 혼전이 벌어졌다.
끝내 중앙 수비를 맡았던 3학년 선배에 의해 공은 멀리 옆줄을 벗어나며 드로우 인이 선언되었다.
그제야 가슴을 쓸어내리는 장계중학교 벤치 선수들이었다.
“위험했다.”
그러나 안심하기는 일렀다. 심판이 휘슬을 불며 골키퍼에게로 향했고, 그제야 골키퍼가 골문 앞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발견한 선수와 감독들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상황을 주시했다.
“김단유.”
당연히 감독은 단유를 불렀다.
“준비해야겠다.”
단유는 골키퍼가 있는 쪽을 바라보며 일단 대답했다.
“네.”
필드의 선수들과 의료진에 둘러싸여 정확한 사항은 알 수 없지만, 일단은 걸치고 있던 조끼를 벗어 던지고 다리를 천천히 풀기 시작했다. 하지만 곧 골키퍼가 일어나는 모습이 보였다. 벤치의 선수들이 환호와 박수를 보내는 사이, 필드에 있던 선수 한 명이 감독에게 다가왔다.
“넘어지면서 어깨를 바닥에 세게 부딪혔던 모양입니다.”
“어깨?”
어깨라면 심각하게 걱정해야 할 부위였다. 팔을 들어 올리지 못하는 골키퍼가 무슨 공을 막을까.
감독은 이렇게 이른 시간에 골키퍼를 교체할 거란 생각을 하지 못했다. 단유라는 든든한 후보를 둔 게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역시 게임보다 골키퍼를 맡은 선수의 건강이 더 염려되었다. 비록 게임에서 이겨야만 하는 상황이라도 중등부 감독으로서의 책임은 각 선수들의 안전이 우선되어야 함을 잊지 않은 감독이었다.
그러나 곧 의료진들 사이에서 인상을 구기며 일어나는 골키퍼를 볼 수 있었기에 다행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큰 사고가 아님을 다행스럽게 여기며 감독은 곧 교체를 지시하기 위해 본부석으로 이동하려 했다. 그때 골키퍼를 살피러 갔던 코치가 달려왔다.
“계속하겠다는데요?”
“뭐?”
“계속할 수 있다고 고집을 부리네요.”
감독은 인상을 쓰며 골키퍼를 바라보았다. 자신을 걱정해준 선수들에게 괜찮다고 어필하는 중인지, 뭔가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리고 선수들은 그런 골키퍼의 등과 머리를 툭툭 두드리며 격려를 하고 있었다.
“의료진은?”
“외견상으로는 타박상 정도지만, 좀 더 정확히 알려면 병원에 가보는 게 좋을 거 같답니다.”
경기 중에는 심각한 부상을 입어도 본인이 자각하지 못할 때가 있다는 것을 감독은 과거의 경험으로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골키퍼의 마음, 책임을 지고 싶어 하는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기에 머뭇거리며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무심코 고개를 돌렸던 감독과 단유의 눈이 마주쳤다.
“감독님.”
감독은 말해보란 듯 턱을 살짝 끄덕여 보였다.
“일단 지켜봐 주시죠.”
방학 때마다 학원에 가야 한다며 연습에 빠지곤 하던 아이였다. 하지만 방학만 끝나면 다시 축구부로 돌아와 열심히 활동하는 아이기도 했다. 정황만 보면 축구부에 별로 열정이 없는 선수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오히려 그 반대였다. 부모님의 반대 때문에 방학 때는 학교에 나오지 못하지만, 축구에 대한 열정과 애정이 강한 친구이기 때문에 더 열심히 골키퍼 연습을 받던 소년이었다.
사실 처음부터 골키퍼를 하고 싶어 했던 소년도 아니었다. 하지만 축구를 좋아하고 친구들과 어울려서 경기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컸기에 자진해서 골키퍼 포지션을 선택했고, 그에 어울리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던 소년임을 감독은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 많이 챙겨주었고 개인 연습 때도 신경을 많이 썼었다.
다만 열정과 달리 평범한 재능과, 애정에 비해 부족한 연습 시간이 그를 우수한 골키퍼로 만들어주진 못했기에 골문이 부실하다는 생각을 가졌을 뿐이었다.
단유 역시 명수를 통해 이야기를 들었고, 그래서 저 소년이 지금 얼마나 각오를 단단히 다지고 있는지를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어지간해선 그의 자리를 계속 지켜주고 싶었다.
“적어도 전반까지는 지켜봐 주세요. 정 안되면, 그때 들어가도 되잖아요, 저희.”
과연 단유의 말대로였다. 장계중학교는, 비록 조금 전의 위기가 있었지만, 그렇다고 여유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챔피언이니까.
“알았다.”
감독은 교체 지시를 보류했다. 단유는 다시 벤치로 돌아갔고, 단유 옆에 앉았던 소년, 동기가 그에게 조끼를 건넸다.
“고맙다.”
“뭐가?”
“저 선배 말이야.”
동기는 골키퍼를 바라보며 말을 꺼냈다.
“아마 고등학교 올라가면 축구 못 할 거야. 집에서는 공부에 전념하길 바라니까.”
착한 아들 노릇도 해야 하고, 모범생 역할도 해야 하니, 결국 축구는 취미 생활 정도로 남겨야 할 모양이었다.
“이번이 마지막 대회겠지.”
단유는 골키퍼를 바라보았다. 어쩌면 저 선배도 필드를 종횡무진 뛰어다니며, 멋진 슛을 넣는 모습을 그리며 축구장에 발을 디뎠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주변 사정에 맞춰 골키퍼를 선택했고, 3년 동안 그 자리에서 자신의 역할을 묵묵히 수행했다. 그리고 지금, 어느 정도의 부상일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통증은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끝까지 자신의 책임을 다하고 싶다는 의지와 각오가 벤치에까지 느껴졌다.
돕지는 못해도 응원은 해 주고 싶다, 는 게 단유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이후, 장계중학교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명수가 대활약을 했다. 상대의 수비진을 가볍게 뚫고 지나가더니 골키퍼마저 제치고 가볍게 한 골을 집어넣었다. 필드 위의 선수들이 모두 두 손을 들고 명수에게 다가가 골을 축하해주었다. 골키퍼 역시도 멀리서 손뼉을 치며 명수의 골을 축하했다.
그 뒤로도 명수의 어시스트로 한 골을 추가하면서 전반을 2:0으로 앞선 채 마무리했다.
“도윤아, 어깨 괜찮아?”
“괜찮습니다.”
감독은 도윤을 지긋이 바라보며 다시 질문을 던졌다.
“후반도 뛸 수 있겠어?”
“네.”
도윤이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외쳤다.
“도윤아. 무리할 필요는 없다. 축구 만화에나 나올 영웅 심리로 무리하다가 자칫 심각한 손상을 받으면 평생을 고생해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 특히 어깨 관절은 쉽게 다치는 부위라서 무리하면 안 돼.”
“괜찮습니다. 크게 안 다쳤어요. 정말이에요.”
도윤이 눈에 힘을 주고 감독의 시선을 마주했다. 그러자 다른 선수들이 일어나며 도윤에게 힘을 실어주었다.
“저희가 더 열심히 뛰어서 도윤이에게까지 공이 안 가도록 잘 막을게요.”
“선배랑 같이 뛰겠습니다.”
‘좋을 때다’ 라며 피식 웃어버리는 코치를 일별한 감독은 열혈 소년들의 열기를 인정해야 했다.
“그래, 알았다. 대신 시합 끝나고 도윤이 넌 이 코치랑 같이 병원 가서 진단서 끊어와야 한다. 그리고 만약 심각하다고 판단되면 다음 시합부터 출전 못 한다. 알았지?”
“네!”
일단 지금 이 시합을 뛰는 게 중요하지, 그다음은 나중에 생각해도 될 문제라 생각한 도윤의 목소리에 힘이 넘쳤다.
“넌 오늘 푹 쉬어도 되겠다.”
명수가 웃으면서 단유의 어깨에 팔을 걸쳤다.
“그러려고.”
단유도 덩달아 웃으면서 도윤을 바라보았다. 마침 주위를 둘러보며 자신을 응원하던 이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하던 도윤과 시선이 마주쳤다. 단유는 말없이 미소를 지어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때로는 말없이 응원해주는 게 더 좋을 때도 있다고, 나윤이 말했었다.
후반에는 상대 팀도 각오를 다졌는지 꽤 공격적으로 나왔다. 그래서 철저하게 막겠다던 수비진들이 혀를 내두를 정도로 힘들어했다. 하지만 미드필더 진까지 내려와 수비를 도우니 상대는 쉽게 골문을 두드리지 못했다. 더군다나 명수가 호시탐탐 역습을 노리며 센터 라인 부근을 얼쩡거리니 무조건 공격으로 나서지도 못했다.
후반 24분경, 공격이 실패하면서 역습 상황이 펼쳐졌고, 명수는 센터라인에서부터 공을 잡아 홀로 드리블을 하며 텅 빈 적진을 내달렸다. 상대 수비수들이 힘껏 달려가 명수를 막으려 했지만, 마치 메시에 빙의된 듯 현란한 드리블로 선수들을 제쳐 나가던 명수는 마침내 슛을 쏘았고, 골키퍼는 무기력하게 골을 허용했다.
명수가 양손을 치켜들고 벤치 쪽으로 세레머니를 위해 달려들 때였다. 명수가 갑자기 환한 웃음을 지으면서 손을 이리저리 흔들었다. 그 방향이 묘해서 단유가 고갤 돌렸더니 관중석 위에 상미가 펄쩍 뛰면서 명수의 골을 축하해주고 있었다. 그 모습이 어쩐지 희극처럼 느껴져 단유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이후 감독은 명수의 체력 보호를 위해 교체카드를 사용했다.
“좋냐?”
“좋지!”
키득거리는 명수에게 단유는 수건과 물을 건넸다.
후반 종료 5분 전쯤, 감독이 단유를 불렀다.
“교체카드가 한 장 남았다.”
그래서?
“나가서 몸 좀 풀어봐라.”
“다른 애들도 있잖아요.”
“그냥 임팩트 있게 시합을 끝내고 싶다. 이래 봬도 춘계대회 우승팀 감독인데 욕심이 안 나가겠니?”
그냥 이렇게 시합이 끝나도 이기는 것은 매한가지이지만, 감독은 확실한 챔피언 이미지를 상대팀은 물론 관중석에서 관람하고 있는 다른 팀들에게도 보여주고 싶어 했다.
“딱 한 골만 넣고 끝내봐라.”
“제가 넣고 싶다고 넣을 수 있나요?”
“할 거 같으니까, 주문하는 거지.”
감독의 기분이 꽤 업이 된 것 같았다. 단순히 시합을 이겨서만이 아니라 선수들의 파이팅에 고무된 탓일 테다.
남은 시간은 추가 시간을 합쳐도 5분이 되지 않을 시간. 공격 한 번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의심스러운 시간에 장계중학교는 교체카드를 사용했다. 스트라이커 포지션의 선수를 빼고 등장한 단유는 다른 팀들에게 낯선 얼굴이어서 호기심을 자아냈다.
“단유야.”
필드 중앙으로 뛰어가던 중에 윙을 맡고 있던 3학년 선배가 말을 걸었다.
“네.”
“패스해 줄게.”
“고맙습니다.”
단유는 살짝 미소를 지어 보인 뒤, 중앙 센터 써클 부근에 섰다. 골키퍼에서 시작된 장계 축구부의 공격은 곧 윙어에게 공이 갔고, 앞을 막는 수비수를 무리하게 뚫는 대신 패스를 선택한 윙어의 공은 곧 단유에게로 향했다.
준다고 하기에 받겠다 했지만,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다. 하지만 그렇다고 당황할 이유는 없었다. 오른발로 공을 받고 몸을 돌려 상대의 골문을 흘깃 바라본 단유는 곧 달리기 시작했다.
“막아!”
덩치가 큰 선수에 대한 선입견인지 드리블을 잘 못 하거나, 혹은 느릴 거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단유가 빨랐다.
하지만 단유는 그렇게 오래 뛰지 않았다. 센터 서클로부터 20m 정도를 더 뛰다 멈춘 단유는 다른 수비수들이 뭔가를 하기도 전에 공을 찼다. 페널티 에어리어로부터 10m는 더 떨어져 있던 지점, 골대로부터도 대략 30m에 조금 못 미치는 먼 거리에서 찬 공이었다.
뻥―, 워낙에 큰 소리가 나서 달려들던 수비가 놀라서 몸을 움츠릴 정도였고, 멀리 떨어져 있던 벤치의 선수들까지 몸을 들썩거릴 정도의 소리가 나왔다. 단유의 발에서 시작된 하얀 선이 골대를 향해, 마치 직선을 그리듯 그어지더니 곧 골망을 뒤흔들었다.
장계 축구부 선수들은 연습 도중 한 번 본 적이 있어 충격이 덜하다지만, 그래도 같은 나이 또래의 시합 중에는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파괴력의 캐논슛이었고, 정식 시합 중에 구사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던지 놀란 눈을 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물론 상대 팀의 충격보다야 덜하겠지만.
“뭐야?”
“저 선수 뭐야? 중학생 맞아?”
“저걸 어떻게 막아?”
관람석에서 지켜보던 다른 팀 선수들까지 놀란 얼굴을 하고 수군대기 시작했다.
단유는 덤덤한 얼굴로 돌아섰고, 달려오는 같은 팀 선수들의 환대에 넘어지지 않기 위해 힘을 줘야 했다. 머리와 어깨, 등을 맞으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던 단유는 고개를 돌려 관중석을 보다가 입꼬리를 올렸다. 그리고 손가락 하나를 치켜세우고 어느 한 방향을 가리켰다.
‘뭐야?’
벤치 근처에서 뛰쳐나와 수건을 휘돌리며 기뻐하고 있던 명수가 고개를 돌렸다. 관중석 안쪽 깊숙한 곳에 선글라스를 끼고 있던 한 여자가 수줍게 손뼉을 치고 있었다.
“뭐야, 누나 안 온다면서?”
명수는 혀를 차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부뚜막 고양이가 저놈이었어.”
단유는 관중석을 향해 박수를 몇 번 쳐 보이고는 고개를 돌려, 같은 팀의 환대에 답례했다.
경기는 그대로 마무리되었고, 단유의 캐논슛은 각 팀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데 성공했다.
“수고했다.”
“고맙습니다.”
“정말 넣을 줄 몰랐다.”
단유는 멀뚱멀뚱 쳐다보았다.
“정말요?”
“그래. 아무튼, 잘했다.”
감독은 단유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 주었다.
“아, 그리고 장래 희망, 진지하게 고려해 봐라. 축구 선수도 꽤 괜찮은 직업이다. 멋있는 직업이기도 하고.”
“안돼요, 감독님.”
명수가 불퉁한 얼굴로 말을 가로챘다.
“단유가 진짜 축구 선수가 되면 저의 축구 인생에 큰 걸림돌이 될 거란 말이에요.”
“단유가 없으면 걸림돌도 없다는 이야기냐?”
“그렇지 않을까요?”
히죽 웃는 명수의 머리를 헝클어뜨리며 감독이 너털웃음을 지었다.
“오만한 녀석.”
그래도 잘하니까 봐준다. 감독은 땀에 젖은 명수의 머리를 웃음이 그칠 때까지, 격하게 쓰다듬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