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멤버 더 네임-393화 (393/956)

룸(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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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학기가 시작됐지만, ‘이상기온’이라는 단어가 매일 뉴스를 장식할 만큼 에어컨을 빵빵하게 돌려도 더위가 쉬 가시지 않을 정도여서, 몇몇 학생들은 다시 방학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실없는 소리를 하기도 했다. 날씨가 학생들에게만 더운 건 아닐 테니 선생님들이라고 다를 바가 없었지만 그렇다고 정규 수업을 날림으로 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자, 자. 다들 힘들겠지만, 정신 단디 챙기고, 거기 뒤에 누고? 눈깔 뒤집어지는 거 봐라. 눈에 힘 팍 안 주나?”

승민도 나름 고군분투 중이었지만, 방학이 끝나고 난 뒤의 어수선함과 더위가 겹치면서 수업을 수월하게 진행하기가 쉽지 않았다. 더군다나 그의 집중을 방해하는 요소 중 하나는 집에 있는 딸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또래에 비해 왜소한 편이라 걱정이 많은데, 방학이 끝나기 며칠 전에 끙끙 앓더니, 개학을 하고도 열이 떨어지지 않아 등교를 하지 못하고 집에서 아내의 간호를 받는 중이었다.

“자, 여기서 숫자는 숫자끼리, 미지수는 미지수끼리 묶으라고 했었제? 기억나나? 동류항을 묶으라고 했제? 그라믄 어찌 돼노? 3x 마이너스 2x가 이쪽보다 크다, 작다? 작다, 맞나?”

아이들을 둘러보며 집중을 하고 있는지를 살펴보지만, 사실 집중을 못 하고 있는 게 자신이어서 아이들이 제대로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승민이 집중하지 못하는 또 하나의 요소는 바로 교무실의 분위기였다. 사실 지금 교무실은 바깥의 더위 따위 저리 가라 할 정도로 냉랭한 분위기였다.

이사장이 살해당한 이후, 약간의 번잡함은 있었지만 순조롭게 재단 내 권력이 교체되는 것처럼 보였다. 가장 큰 이유는 이사장 다음으로 가장 지분이 많은 이사장의 아내, 전혜숙 이사의 양보 때문이었다. 남편의 죽음과 그 죽음에 아들의 추문이 관련되어 있기에 이사장직을 받기를 거부한 까닭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사장이 죽기 바로 전에 열렸던 정기 이사회에서 결정된 연임으로 인해 이사회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비극적인 사건으로 충격을 받은 전 이사는 재단에서 물러나고 싶어 했다. 또한, 지한영 이사 역시 자신의 추문에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했으니, 결국 이사진의 물갈이가 불가피해졌다. 여기서 재단 내 권력 구조가 개편되니, 이전에는 드러나지 않았던 세력들이 등장하여 빈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싸움이 시작되었다.

학교 재단 이사회의 변경은 선생님들에게도 민감한 사항이었다. 당장 학교 내부 정책의 변화가 있으리란 건 분명한 사실이니, 어느 계열의 이사가 들어와야 학교에, 혹은 자신에게 유리한가를 따지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 더 솔직하게 이야기해서, 사립학교의 교사는 학교 법인의 ‘직원’ 신분이니 이사회에서 결정하면 군말 없이 옷을 벗어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결국, 밥그릇 걱정이다.

더러 ‘교사는 학생들 수업만 신경 쓰면 된다’며 신경 쓰지 않는 이도 있었지만, 그런 사람들은 현실 감각이 떨어지는, 그래서 아예 진급을 고려하지 않는 축이라 무시당할 수밖에 없었고, 많은 선생님들은 새로운 이사회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형편이었다.

전임 이사장, 지강목 전 이사장의 경우, 전혀 비리가 없다고는 할 수 없으나, 학교 정책에 있어서는 다른 사립학교들에 비해 꽤 여유롭게 자유를 보장하는 측면이 있었다. 보통 다른 사립학교들은 외부평가에 민감해서, 사고를 미연에 방지한다는 명목으로 이상한 규칙들을 만들어 자유를 구속하는 면이 많은 편이었으나, 장계중학교는 다른 국공립과 비슷한 수준의 가이드라인만 설정해서 따르도록 하고 있었다. ‘자유’는 학생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교사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이었고, 따라서 이런 분위기에 만족하여 들어온 교사도 적지 않은 편이었다.

그런데 이제 변화가 생길 조짐이 보이니, 뒤숭숭해지는 것은 필연이라 하겠다.

‘믄 생각하노. 수업 시간이다, 자슥아.’

잠시 분필을 쥐고 칠판을 노려보던 승민은 다시 판서(板書)를 계속했다. 본래 능변(能辯)이라 칠판 가득 글을 채우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지금은 머릿속이 정리되지 않아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승민 나름대로, 수업을 듣는 학생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게끔, 교사의 본분을 지키려 애쓴다 하더라도 미처 생각하지 못한 점이 있었으니 바로 학생들의 시각에서 보는 학교였다.

아무리 어린 나이의, 통찰력이 부족한 중학생들이라 해도 대부분 선생님들이 보이는 어수선함을 눈치채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비록 그 상황이 재단 이사회에서 비롯된 것까지는 몰라도, 모종의 이유로 선생님들이 수업에 최선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까지는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요즘 학교 분위기가 영 수상하지 않냐?”

“다들 더위를 먹어서 그런가?”

“교무실은 우리보다 에어컨 더 빵빵하게 틀 텐데?”

“그건 아닌 거 같더라. 내가 교무실 잠깐 가봤는데, 선생님들이 더워 죽으려 하던데?”

현행 학교 전기요금 부과 체계에 따라 학교의 최고 전력량이 경신되면, 향후 1년 동안 적용되는 기본요금이 덩달아 오르는 문제가 발생하기에 학교에서는 에어컨을 오랜 시간 사용하지 못하게 하고 있었다. 그래서 더위가 최고조에 이를 점심시간 이후가 아니라면, 켜지 못 하게 하고 있었고, 때문에 더욱 힘든 시간을 보내는 학생들이었다.

결국, 어수선한 학교 분위기란 그런 이유들이 복합적으로 얽히면서 벌어진 현상이었다.

마침 선생님과 학생들을 구원한 것은, 에어컨이 아니라 시보기(時報機)의 벨소리였다.

“더운 데 수고 많았데이. 그리고 단유야.”

승민은 나가기 전에 단유를 복도로 불러냈다.

“혹시 나중에 시간 되면 우리 지선이한테 전화 좀 해줘라. 우리 지선이가 조금 아프다.”

단유는 놀란 눈으로 승민을 바라보며 물었다.

“얼마나 아픈데요?”

“그리 심각한 건 아이고, 그냥 감기 비슷한 건데 열이 좀 많이 나가지고 학교도 못 가고 있다 아이가. 일부러 찾아갈 필요는 없고, 그냥 전화 한 통 해서 힘 좀 내라고 해도. 그래도 걔가 니를 많이 좋아하니까 니 전화 받으면 힘 좀 날 것 같은기라.”

“예. 나중에 전화해 볼게요.”

고맙다며 단유의 어깨를 톡톡 두드려준 승민이 복도를 가로질러 교무실로 향한 사이, 단유는 교실로 돌아왔다. 교실이 텅 빈 것처럼 보이는 것은 최근에 벌어진 더위와 무관하지 않았다. 대부분 아이들이 쉬는 시간만 되면, 화장실에 가서 물을 끼얹거나 매점에 가서 음료수나 빙과류를 사 먹으려고 달려가는 탓이었다.

물론 그 짓도 귀찮다고 책상에 드러누워서 땀과 침을 동시에 배출하고 있는 아이들도 있었다. 도하도 그중 한 명이었다.

“너 땀 많이 흘리는데?”

단유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도하를 바라보자, 오히려 도하는 신기하다는 눈으로 단유를 바라보았다.

“넌 안 덥냐? 어떻게 땀도 안 흘려?”

단유는 어깨를 으쓱거려 보였다.

“땀을 잘 안 흘리는 체질인가 보지.”

“부럽다.”

허리에 힘을 주고 상체를 들어 올린 도하는 마치 책상 위에 녹은 촛농처럼 끈적거리는 땀을 털어내며 몸을 바로 세웠다. 그마저도 힘든 듯 열기가 묻어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 모습이 어찌나 딱한지 저절로 동정심이 일어날 지경이었다.

“나가서 바람이라도 쐬자. 일어나.”

“나가면 더 덥지 않을까?”

“여기보단 나을 거다.”

단유가 창을 바라보며 말했다. 창을 열어도 바람이 불지 않으니 오히려 답답한 교실 공기가 사람을 더 지치게 만든다.

밖으로 나오니 텅 빈 운동장에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모습이 보였다.

“보기만 해도 덥네.”

단유는 고개를 돌려 학교 본관 주변을 살폈다. 몇몇 학생들이 매점을 향해 걸어가거나 매점에서 나오는 중인 것을 빼면, 주변에 사람의 인기척이 없었다.

“뒤에 그늘 있는 쪽으로 가보자. 거기가 좀 시원할 거 같다.”

흐느적거리는 걸음으로 단유를 따라가던 도하는 본관 옆으로 짙게 드리워진 그늘에 들어서고서야 숨을 편하게 내쉴 수 있었다.

“와, 시원하다.”

그늘이라 직사광선을 피할 수 있다는 점도 있지만, 이곳에서만 바람이 부는지 도하의 앞머리를 흔들 만큼 시원한 바람이 더위를 잊게 해주었다.

“사람이 없어서 시원한가?”

도하가 나름 합리적인 추론으로 지금의 상황을 이해했다. 도하처럼 건물 벽에 등을 기대고 선 단유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면도 있겠지.”

인간의 몸은 36.5℃를 항상 유지하려 한다는 것은 상식이다. 그리고 그 온도를 맞추기 위해 사람은 끊임없이 열을 내뿜는다. 그 열의 양이 200W 정도라고 하니, 비유를 들자면 교실 안에 200W 백열전구 30개를 켜두는 꼴이다. 그런데 찜통더위가 한창인 지금, 그 열이 순환되지 않으니 결국 과열이 되고 고장이 나는 것은 당연지사라 할 수 있다.

더위를 식히느라 시간이 가는 줄도 몰랐다. 종이 울린 뒤에야 두 사람은 교실로 돌아갔다. 짧은 휴식이 도하에게 도움이 되었는지, 아까보다는 얼굴색이 좋아 보였다.

“역시 내 선택이 맞았어.”

도하의 혼잣말에 단유가 무슨 말이냐고 물었다.

“니 옆에 있으면 편하다니까.”

뭐가 편하냐고 묻지 않기로 했다.

한편, 백열전구 30개 정도로는 성에 안 찬다 싶을 만큼 뜨거워진 곳이 있었다.

에어컨을 틀었지만, 모인 이들의 상기된 얼굴은 식을 줄 몰랐다.

“지 전 이사장은 너무 방만했어요.”

“어허, 돌아가신 분을 모욕하시는 건 삼가세요.”

“모욕이라뇨? 이건 그분을 모욕하려는 게 아니라 사실이 그렇다는 겁니다. 지난해 인터넷에 우리 학교 이름이 떠들썩했던 거, 잊으셨습니까?”

“잘 마무리된 사건을 왜 또 끄집어내십니까?”

파란색 줄무늬 넥타이를 맨, 숱이 적은 중년 남자가 미간을 좁히며 성을 냈다.

“잘 마무리돼요? 그게 어찌 잘 마무리된 겁니까? 어쩌다 운 좋게 흐지부지되면서 묻힌 거죠. 그때 제 주변에서 얼마나 많은 전화가 왔는지 아십니까? 학교에서 그런 폭력 사건이 벌어졌는데 문제없겠냐고 걱정하는 전화가 쉬지 않고 왔었단 말입니다. 그런데 지금 현재 교장직을 맡은 이가 이 사건을 제대로 수습도 하지 않았다는 얘기를 듣고 어찌나 기가 막히던지.”

넥타이를 매지 않은, 아니 맬 수 없을 만큼 목에 살이 많아서 숨 쉬는 게 어렵진 않을까 걱정스러울 정도의 외모를 가진 중년인이 흥분하며 대꾸했다.

“제대로 수습을 하지 않았다니요? 제대로 보고서는 읽어 보신 겁니까? 비록 학교폭력자치위원회는 열지 않았지만, 충분히 교장 직권으로 사건을 잘 마무리했고, 학생들도 반성의 의미로 봉사활동도 이수했고요. 또한, 담당 선생님에 대한 징계도 합리적인 수준에서 공정하게 진행했어요. 도대체 뭘 보고 제대로 수습을 하니 마니 하시는 겁니까?”

“학교 안에서 수습만 하면 답니까? 지금 대외적으로 우리 학교의 위상이 얼마나 떨어졌는지 몰라서 그런 말을 해요? 폭력, 살인이란 키워드가 우리 학교의 대표 키워드랍니다!”

“누가 그런 말을 합니까? 누가! 어디서 유언비어를 퍼뜨려요?”

“유언비어요? 이봐요, 장 이사님? 말 가려 하세요! 여기가 어디라고!”

“말을 가려? 허, 참. 박 이사님이야말로 말 가려 하세요!”

파란 넥타이와 목살이 서로 삿대질하기 직전까지 가서 얼굴을 붉힌 가운데, 다른 사람들이라고 편히 감상만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편이 갈라진 것이 분명해 보였는데, 한쪽은 전임 이사장에게 우호적인 쪽이었고, 다른 쪽은 그 반대였다. 우호적인 쪽은 전임 이사장이 살아있을 때도 ‘콩고물’을 얻어먹던 쪽이었고, 반대쪽은 좀 더 ‘원칙’을 지키자는 목소리로 압박하는 중이었다.

“자자, 다들 침착하시고. 지금 지나간 허물을 다시 꺼내서 이야기하자는 자리가 아니니까···.”

“지나간 허물이 아닙니다! 우리 학교의 명예와 위신이 걸린 현재진행형의 문제입니다! 비단 지난해뿐만이 아니라 매년 폭력 사건과 입에 담기 힘든 문제들이 발생해서 주변 지역 사회에 눈총을 받는 중임을 모르셔서 하시는 말씀입니까? 더 이상 방관할 수 없으니 이러는 거 아닙니까?”

지지 않겠다고 목소리를 드높이는 이들은 어떻게든 자리의 주도권을 가지기 위해 반대편이 인정할 수밖에 없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었고, 그 명분을 인정할 수 없는 이들은 그저 반대의 몸짓과 목소리로 받아칠 뿐이었다. 이러니 좁지 않은 회의실의 열기가 쉽게 사그라들 리가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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