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멤버 더 네임-392화 (392/956)

금광을 찾아서(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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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세다, 말세야.”

하은이 혀를 찼다.

“왜요?”

“무슨 중학생이 벌써 돈맛을 들여서 도박이나 한다는 거니? 우리 때랑 비교하면 진짜 우리 때 애들이 참 순진했던 거 같아. 학교에서 공부하라고 하면 공부만 해야 하는 줄 알았거든.”

“에이, 그럴 리가요?”

명수가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자 하은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왜 못 믿냐며 되물었다.

“이야기 들어보니까, 예전에는 막 본드도 불고 그랬다면서요?”

“허, 참. 나. 그런 이야기는 어디서 들어 가지고? 그건 진짜 막 나가는 ‘소수’의 애들이나 하던 짓이고. 그리고 솔직히 그 일도 사회학적으로 분석하자면, 청소년기의 반항심을 풀어낼 곳이 없어 자신을 자해하는 형식으로 풀어낸 거야. 그 때문에 청소년들의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위락시설을 사회적 차원에서 건설해야 한다는 데 의견이 모였고, 그래서 지금 니들이 피시방이고 노래방이고 다 가서 놀 수 있는 거 아냐.”

물론 지금은 그게 너무 심해져서 이런 부작용이 벌어졌네, 라며 말이 이어졌지만, 단유가 듣고 싶은 주제의 이야기는 아니었다.

“어쨌든 그 도박 사이트를 이용하는 건 분명히 불법인 거죠?”

“현금을 환전해주는 방식 자체가 모두 불법으로 규정되어 있다고 알고 있거든. 만약 신고하면, 당장 경찰 외사과에서 건수 올리겠다고 달려 들만한 일이란 거지. 아이디랑 접속기록만 확인하면 바로 건수 올리는 거니까 말이야. 그러고 보면 요즘 경찰들이 너무 약아빠졌어. 얼마 전에는 안 보이는 곳에 숨어있다가 신호 위반하는 차들이 있으면 불쑥 나타나서는 손을 막 이렇게 흔들면서 잡더라니까. 물론 난 안 잡혔지만, 그래도 그런 식으로 해서 실적이나 쌓으려는 건 아니라고. 교통 법규를 지키게 하려면 나와서 감독하는 모습을 보여야지, 숨어서 그게 뭐야?”

또 엉뚱한 화제로 이야기가 옮겨져서 괜히 혼자 열을 내고 성을 내는 하은에게 단유는 젓가락 부딪치는 소리로 주의를 돌렸다.

“그런데요, 그 포커라는 게임은 어떤 게임이에요?”

“왜? 혹시 너도 해보려고? 하지 마. 도박은 애초에 손을 안 대는 게 최고야. 도박하다 손모가지 날아간단 얘기도 못 들었니? 행여라도 할 생각 마라.”

하은은 어느 때보다 험악하게 인상을 쓰며 엄포를 놓았다.

“엄밀히 말해서 포커가 도박은 아니지 않아요?”

그냥 카드 게임이지, 라는 명수에게 하은의 매서운 눈빛이 날아들었다.

“명수 너! 혹시 너도 몰래 해 본 거야?”

“···단유 이야기처럼 한 건 아니지만, 하는 방법은 알죠. 그건 그냥 게임인데요, 뭐.”

초등학교 때 이미 포커를 배웠다는 명수의 말에 하은이 이를 갈며 경고했다.

“그냥 카드 게임으로 즐기면 몰라도, 절대 도박은 안 된다!”

“그럼요. 그리고 전 판돈도 없는데요.”

“판돈이라니! 그런 부정한 단어를 쓰다니!”

하은이 벌떡 일어나자 명수 역시 놀랍도록 빠른 반사신경으로 식탁에서 물러나더니 방으로 도망갔다.

“명수, 이 문 안 열어!”

“아, 선생님! 잘못했어요!”

“잘못 했으면 문 열어! 문 안 열면 계속 잘못한 거야!”

“아, 선생님!”

단유는 젓가락을 입에 물고 ‘포커’라는 게임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룰은 모르지만, 포커라는 게임이 있다는 것은 단유도 알고 있었다. 알게 된 계기는 사실 수학 공부를 하던 중에 있었다. 정확히 어느 책이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포커라는 게임에 수학, 특히 ‘확률’을 이용한다는 내용이었다. 52장의 카드를 조합하여 특정 카드가 나올 확률과 기댓값을 구하는 예시를 보이며, 미국의 어느 학교 학생들이 이를 취미활동으로 즐긴다고 했었다.

이 내용을 기억하고 있던 단유였기에 병호가 처음 ‘포커’라는 단어를 언급하고 ‘심리’, ‘예측’이란 표현으로 게임을 이야기하기에 그렇게 심각한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만약 도하가 심각한 얼굴로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면 아마 단유는 병호가 방학 동안 수학에 눈을 떠서 새로운 취미활동을 즐기는구나, 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명수의 멱살을 붙잡고, ‘정신교육이 단단히 해야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하은이 명수를 데리고 다시 식탁으로 돌아왔을 때, 단유는 구겨진 명수의 옷을 펴주며 물었다.

“선생님은 포커 하실 줄 모르세요?”

멈칫, 하던 하은은 곧 자연스럽게 숟가락으로 밥을 뜨며 말했다.

“밥 먹자.”

“에이, 선생님도 할 줄 아시네.”

찌릿, 한 시선이 명수에게로 향했다. 명수는 아차, 하며 얼른 남은 밥을 떠먹기 시작했다.

“다른 게 아니고, 제가 책에서 그런 내용을 읽었거든요.”

단유의 이야기를 들은 하은은 한숨을 내쉬었다.

“밥 먹고 이야기하자. 이러다가는 제대로 먹지도 못하겠어.”

잠시 후, 거실 소파에 앉아 커피를 홀짝이며 하은이 입을 열었다.

“만약 니가 그 친구의 일을 서두에 꺼내지 않았다면, 좀 더 편하게 이야기를 했을 테지만, 아무래도 조금 불편한 이야기가 되었어. 하지만 수학을 전공한 선생님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하자면, 확실히 포커라는 게임은 수학적으로 접근했을 때 즐기기 좋은 게임이긴 해.”

‘수학’이란 단어에 진저리를 치며 명수는 호빵을 품에 안은 채, 게임 패드를 손에 쥐었다.

“52장이라는 카드 속에서 몇 가지 족보를 만들어 서로의 패를 비교하고 승리를 점치는, 어쩌면 단순한 게임이지. 하지만 서로가 서로의 패를 모르는 상태에서 상대의 패를 예측하고 자신의 패와 비교하여 승리를 점치는 방식은 단순히 확률의 문제만이 아니라 심리적인 면도 들어가기 때문에 유희적인 면에서도 우수한 게임이라고, 말들을 하지. 실제로 몇몇 나라들에서는 ‘포커 게임’을, 비록 도박이지만 공인해서 즐길 수 있게 하기도 하고.”

의외로(?) 하은은 포커 게임에 대해 꽤나 자세하게 알고 있었다. 뒤늦은 고백으로 알게 된 사실은, 하은이 처음 포커를 접한 게 영재 학교에서였다는 것이었다.

“걔네들은 솔직히 좀 재미없게 하는 편이긴 했지. 서로의 패가 주어졌을 때, 자신의 확률이 떨어진다 싶으면 뒤도 없이 포기했으니까. 계산이 워낙 빠른 대신 상대의 심리를 읽어서 승리하겠다는 마음은 덜하니까. 카드를 돌리고 패를 확인한 뒤, 계속할 것이냐 포기할 것이냐의 선택지에서 대부분 포기를 하고 말거든. 자신이 확실히 승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면 계속 진행하지도 않아. 오히려 그들은 게임이 끝나고 상대의 패를 물어봐서 자신의 예측과 맞는지 틀리는지를 맞추는 걸 더 좋아했지.”

돈을 안 걸어서인지, 아니면 그냥 순수해서인지 모르겠다만, 이라고 말을 줄이던 하은은 다시 설명을 이어갔다.

“이런 경우라면 아무런 걱정도 하지 않겠지만, 사실 많은 사람들이 도박에 중독되는 건 그런 확률을 떠나 상당히 운에 기반한 요소도 많기 때문이야. 어떤 카드가 자신의 손에 들어올지는 정해져 있지 않으니까, 반드시 머리 좋은 사람이 승리하는 건 아니란 말이지. 그리고 10분 남짓한 게임에서 몇백 달러, 몇천 달러가 오가다 보니 사람들이 중독되는 거야. 쉽게 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해서 말이야. 니 친구도 그런 거지 싶네.”

하은의 경고는 계속 이어졌다. 그리고 그런 경고가 끝난 뒤에야 하은은 카드를 가지고 와서 포커의 룰을 가르쳐 주었다.

“그런데 우리 집에 카드가 왜 있어요?”

“어느 집에나 카드랑 화투는 구비하고 있어야 하는 법이거든.”

그런가? 명수랑 단유가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이에 하은은 카드의 종류와 룰을 가르쳐 주었다. 하면서 배우는 게 빠르다, 며 게임을 시작했다.

두 세 게임이 지난 후, 단유는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재밌네요. 기본적으로는 4.83%의 패지만, 게임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여러 가지 변수에 의해 퍼센티지가 변한다는 게요.”

단유는 흥미롭다는 듯 카드를 펼쳐 보이며 내려놓았다. 그리고 명수는 의기양양하게 카드를 긁어모았다. 계산은 빠르지만, 그렇다고 게임에서 이기는 것은 아니었다. 첫 게임은 단유가 투 페어로 이겼지만, 다음 두 게임은 모두 명수가 이겼다.

“사실 난 그런 거 다 필요 없다고 봐요. 봐요, 두 번 다 제가 이겼잖아요?”

하은은 피식 웃었다.

“우리가 칩이나 돈을 걸지 않아서 그렇지, 만약 건다면 또 다를걸?”

한 판만 해볼까? 라고 떠보는 하은에게 명수가 콜을 외쳤다. 그리하여 다음 판은 각자의 돈을 걸고 하는 경기.

단유에게 주어진 카드는 모두 모양이 다른 3, 9, J 카드였다. 단유는 그 중 J카드를 내밀고 다음 카드를 받아들었다. 하지만 2개의 카드를 받아드는 동안, 단유는 이렇다 할 족보를 완성할 수 없었고, 남은 두 장의 카드를 받더라도 다른 두 사람에게 이길 확률이 낮다고 봐서 일찌감치 포기를 선언했다.

“이것 봐. 머리 좋은 애들은 금방 포기한다니까.”

하은은 히죽 웃으면서 베팅을 올렸다.

“5천 원.”

“콜.”

명수는 나름 포커페이스라고 인상을 드러내지 않으려 애를 쓰고는 있는데, 그 모습이 단유에게 웃음을 자아내게 했다.

다음 카드를 받고 또다시 공격적인 베팅을 하는 하은은 만원을 불렀다. 이번에 명수가 또 콜을 하게 되면, 누적된 금액만 총 3만 9천 원이 된다. 명수나 단유에게는 결코 적지 않은 금액.

명수의 공개된 카드가 같은 스페이드 모양이 3개인 것 외에는 특별한 연계성을 찾지 못하는 사이, 선생님의 공개된 카드에는 이미 Q 원페어가 만들어져 있고, A카드도 들어가 있는 상태였다. 어쩌면 투 페어일 가능성도 있고, Q트리플일 가능성도 있었다. 하지만 3.03%의 확률로 명수가 플러시를 할 가능성도 없는 건 아니었으니,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고 단유는 생각했다.

명수는 콜을 외쳤고, 이제 히든카드만 남은 상태였다. 명수의 손끝이 살짝 흔들린다고 생각했을 때, 명수는 눈을 들어 하은을 바라보았다.

“어이, 꼬맹아. 그렇게 사람 눈치 보면서 달달 떨면 모르는 사람도 니 패가 뭔지 알겠다.”

하은이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입을 열자, 명수는 시치미를 뚝 떼며 큰 소리를 냈다.

“아무리 선생님이라도 그건 무리일 걸요? 선생님은 각오하시는 게 좋을 건데요?”

“각오? 어쩌면 좋니? 난 각오 같은 게 필요 없을 거 같은데?”

하은은 입꼬리를 잔뜩 올리더니, 옆에 두었던 지갑에서 돈을 꺼냈다.

“5만 원, 따라올래?”

“우와, 너무 하시네. 그런 게 어딨어요!”

“뭐가 너무해? 이게 다 선생님이 아끼는 우리 명수한테 용돈 보태주려고 그러는 건데?”

“용돈이요? 그런 건 이런 데서 말고 그냥 주세요. 그럼 잘 받아 쓸게요.”

“에이, 그러면 재미가 없잖니?”

하은의 너스레에 명수가 머리를 벅벅 긁었다.

“아, 미치겠네.”

바라보는 단유야 흥미로울 수밖에 없었다. 만약 명수가 플러시라면, 명수가 당장 견제해야 할 족보는 풀하우스 밖에 없었다. 같은 플러시가 나올 확률은 현재 공개된 카드의 정보로 보자면, 2%도 되지 않을 것이니까. 하지만 만약 2.6%의 풀하우스가 하은의 손에 들려 있다면, 명수는 손을 털어야만 할 것이다.

“좋은 거예요?”

슬그머니 떠보는 명수에게 하은이 미소를 지어 보였다.

“몰라.”

명수는 머리를 싸맸다.

“아, 진짜 미치겠네.”

“궁금하면 5만 원 내고 봐.”

“제가 그럴 돈이 어딨어요!”

“왜 없어? 있잖아?”

“그럼 제 한 달 용돈이 다 사라지는 거란 말이에요.”

“그래서 말했잖아? 도박은 패가망신의 지름길이라고. 넌 지금 그 지름길로 가는 중인 거야.”

결국 명수는 더 큰 돈을 잃을 수 없다는 생각에 카드를 던졌다.

“뭔데요, 선생님?”

“안 가르쳐주지.”

선생님은 혀를 삐죽 내밀었다.

“아악! 정말!”

단유가 이를 바라보며 히죽 웃었다. 단유는 사실 정답을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선생님이 풀하우스를 만드는 데 필요한 카드를 자신이 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카드는 지금 자기 자리 앞에 엎어져 있는 상태. 그러니 선생님이 풀하우스를 만들 가능성은 0%였다. 반면 명수는 확실히 플러시였으니 분명 끝까지 갔다면 명수가 이겼을 것이다. 명수는 확률이 아니라 얼굴에서 이미 플러시라고 광고를 하고 있었으니까.

“좋은 패를 가지고 있어도 심리전에서 밀리면 안 되는군요.”

“그것도 있지만, 더 큰 건 바로.”

하은은 앞에 놓인 돈을 가리켰다.

“욕심이지.”

돈이 많으면, 그래서 테이블에 올리고도 여유가 있다면 욕심이 줄어든다. 욕심이 줄어들면 냉정하게 게임을 즐길 수 있다. 하지만 여유가 없다면 반대로 욕심은 커진다. 그리고 욕심이 눈을 가리고 머리를 뒤흔든다.

하은은 돈을 끌어모은 뒤, 지갑 속에 넣었다.

“어, 진짜 안 돌려주시는 거예요?”

명수가 정말 예상 못했다는 듯이 하은을 바라보았다.

“수업료. 니들이 절대 도박을 하면 안 된다는 교훈을 알려준 의미로다가.”

하은은 카드를 정리하고 아이들을 각자의 방으로 돌려보냈다.

단유는 방으로 돌아와 노트를 펼치기 전, 조금 전의 게임을 복기해보았다. 어떤 면에서 보면 친구들과 보드 게임방에서 했던 게임과 비슷한 면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과 다르게 확실히 포커는 도박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돈이 걸리면 다 도박이지만, 특히 포커라는 게임은, 적어도 단유가 아는 선에서는 가장 위험한 도박이었다. 왜냐하면,

‘확률은 정답이 아니니까.’

1%의 가능성이 현실이 되기도 하고, 99%의 가능성이 실패로 끝나기도 하는 게 확률이니까. 즉, 확률이란 것 자체가 도박이었다.

단유는 확률에 의지해 선택을 내리는 심리 자체가 위험하다고 판단했다. 자칫하면 확률만 믿고 옳지 못한 선택을 하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으니까.

잠시 노느라고 시간을 소모하긴 했으나, 정해진 일과를 마치기 위해 단유는 노트를 펼치고 지식을 정리해나갔다. 이 작업으로 얻게 될 이익은 마법사로서의 역량 강화. 이것은 결코 확률에 의한 선택이 아니다. 이것은 오로지 누적된 경험치 만큼 돌아오는, 확실한 보상이 기다리는 과제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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