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멤버 더 네임-391화 (391/956)

금광을 찾아서(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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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이다.”

도하가 예의 무기력한 반응을 보이며 인사를 보낸 뒤, 책상에 턱을 괴고 엎드렸다. 개학 첫날부터 변함없는 모습을 보이는 도하를 보니, 단유도 새삼 학교에 돌아왔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겨울보다 여름이 아이들의 변화를 가시적으로 볼 수 있는 계절임은 분명했다. 여름이라서 더 자라는 건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1학기 때와 또 다르게 변한 모습으로 나타난 아이들이 많았다. 키가 쑥쑥 자라서 나타난 아이가 있는가 하면, 얼굴이 새까맣게 탄 채로 등장한 친구들도 있었다. 턱밑이 거뭇한 소년과 곱슬곱슬한 구레나룻을 기르고 등장한 친구도 있었다. 물론 모든 소년들이 성장기를 똑같이 거치는 것은 아닌지라, 변함없는 얼굴을 하고 나타난 이들도 있었다.

이를테면 병호가 그랬다.

“밥 먹었냐? 안 먹었으면 매점 가서 라면이나 먹자.”

도하는 왜 또 친한 척이냐며 귀찮은 척했지만, ‘라면’은 끌리는지 단유의 눈치를 봤다.

“난 괜찮으니까 니들 끼리 가서 먹어.”

“야, 니가 안 가면 얘가 날 사주겠냐?”

“사주려고?”

“그래, 내가 살게.”

병호는 뒷주머니에서 장지갑을 꺼내 자랑하듯 손바닥에 올려두고 툭툭 쳤다.

“됐어. 난 아침 먹고 와서 괜찮아. 그리고 니가 왜 사?”

“오랜만에 만난 ‘친구’한테 한턱내고 싶어서 그래.”

병호의 표정에서 단유는 방학 전의 기억을 떠올릴 수 있었다. 병호는 여전히 자신을 보호해줄, 혹은 소속을 확실히 할 수 있는 무리가 필요한 것처럼 굴었다.

“필요 없단다.”

도하는 단유를 흘깃 본 뒤, 병호에게 매정하게 대답했다. 자기도 꼭 먹고 싶었던 것은 아니라는 듯.

“너 아침 먹었어?”

단유의 물음에 도하는 대답을 피했다.

“먹고 싶으면 가.”

“그럼 너도 같이 가.”

“왜 날 끌고 가는데?”

“그래야 편하게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병호와는 다른 의미로 도하는 단유를 곁에 두려고 했다. 도하의 이해하기 힘든 저 성향을 어찌 이해해야 할까?

“가서 물이나 마시고 있던지.”

단유는 아닌 척하지만 갔으면 좋겠다고 눈빛을 보내는 도하가 마치 어린 지선이를 보는 것 같아 피식 웃음이 났다.

‘지선이도 요즘은 안 저러더라.’

단유가 엉덩이를 들자, 내키지 않는다는 듯한 표정으로 냉큼 일어난 도하가 먼저 교실을 나섰다. 그러면서도 단유가 잘 따라오는지를 확인하는 도하의 모습에 단유는 실소를 금치 못했다.

아침 조례가 시작되기도 전에 매점에 올 일이 별로 없었던 단유는 매점의 진풍경에 혀를 내둘렀다.

“원래 이렇게 사람이 많아?”

“아침 안 먹고 오는 애들이 많으니까.”

매점 앞은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고, 테이블에서는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컵라면을 후후 불며 먹고 있거나, 간단하게 빵과 우유로 끼니를 때우는 아이들이 보였다.

“넌 저기 자리 잡고 있어, 나랑 병호가 사 가지고 갈게.”

도하가 마침 테이블을 비우는 이들을 확인하고 손으로 가리켰다. 단유는 순순히 그 지시에 따라 테이블에 앉아 두 사람을 기다렸고, 이내 두 사람은 컵라면과 빵, 음료수를 사 들고 왔다.

“이거라도 먹어.”

라며 도하가 건넨 것은 카페인이 듬뿍 들어갔다는 음료였다.

“공부하는 애들이 좋아한다더라.”

자신은 질색이라며 미간을 찌푸리는 도하에게 웃음을 보이며 음료수를 받아들었다. 단유도 딱히 좋아하는 음료수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못 먹는다고 가릴 정도는 아니었다. 애초에 단유가 가리는 음식이 없기도 했고.

“단유 넌 몸이 더 커진 것 같다?”

병호가 단유를 요리조리 보더니 한 마디를 건넸다. 어쩌면 필사적으로 할 말을 찾던 중에 꺼낸 말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병호의 감상은 도하도 동의하는 바였다.

“키 컸냐?”

“아니.”

키는 크게 변화가 없었다. 조금 자랐을지도 모르겠지만, 눈에 띄게 컸다는 느낌은 없었다. 다만 몸이 커졌다고 느낄 정도로 좋아지긴 했다. 그간 단유가 규칙적인 운동으로 몸을 단련하기는 했으나, 대체로 한 자리에 앉아 책을 보는 일상이 대부분인지라 몸이 눈에 띄게 좋은 편은 아니었고, 그보다는 조금 말랐다는 인상이 컸다. 그러나 이번 방학 때는 아르바이트는 물론이고 데이트를 핑계로 여기저기 나가서 몸을 움직이는 일이 많았던 데다, 나윤과 맛있는 것들을 자주 챙겨 먹다 보니 절로 살이 붙었다. 그래서 몸이 크게 불지는 않았지만, 마른 인상은 사라졌다.

“단유 넌 진짜 연예인 해도 되겠다. 너 음원도 냈었잖아? 거기 계약 안 했어?”

병호의 질문에 단유는 고개를 저었다.

“연예인은 별로 관심 없어.”

“쓸데없는 이야기 하지 말고, 라면이나 먹어.”

도하가 병호의 말을 잘랐다. 확실히 도하는 병호가 다가오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고 있었다.

“알았어.”

병호는 살짝 기가 죽은 채로 컵라면을 휘휘 젓더니, 단유와 도하의 눈치를 보다가, 다시 말을 꺼냈다.

“난 이번 방학 때 진로를 결정했어.”

안물안궁, 이라고 도하가 나직하니 말하고는 라면 국물을 들이켰다. 뜨겁지 않을까? 하지만 병호는 이번에도 단유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사실 내가 게임을 많이 좋아하잖아? 그런데 지난번···학교에서 큰일이 있었을 때, 내가 좀 그랬잖아?”

모호한 단어로 자신의 과거를 설명하며 이해를 부탁하는 건 친한 사이라고 해도 힘든 일인데, 하물며 단유라고 병호의 말을 알아들을까?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너한테는 이야기했었잖아? 그, USB 해킹 프로그램 말이야.”

“아.”

단유는 그제야 방학 전에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 때문에 게임에 흥미를 잃었었거든.”

“개가 똥을 끊지.”

도하는 어느새 라면의 밑바닥을 젓가락으로 훑어내는 중이었다. 병호는 도하를 흘낏 본 뒤, 다시 단유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단유는 누구에게든 좋은 리스너였으니까.

“그런데 방학 되니까 시간이 많이 남아도니까, 할 게 없잖아? 그래서 시간 때울 만한 게 있을까, 하고 검색을 해봤는데 ‘프로겜블러’란 직업이 있대.”

“프로겜블러?”

단유에게는 생소한 단어였지만, 도하에게는 익숙했는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니가?”

병호는 시치미를 떼고 계속 말을 이었다.

“포커 게임 같은 거로 돈을 버는 직업인데, 그걸로 억만장자가 된 사람도 있다더라? 그래서 게임을 찾아보고 배웠거든. 우선 온라인 게임으로 포커를 해 보고 내가 과연 적성이 맞는지, 잘할 수 있는지 알아보자는 의미에서 말이야.”

도하는 젓가락을 내려놓고 눈을 게슴츠레 뜬 채로 병호를 바라보았다.

“그냥 게임 하고 싶어서 핑계 찾은 거네.”

‘너 같은 애들이 하는 생각 따위는 내가 잘 알지’라는 표정으로 병호를 압박했다. 병호는 오로지 단유만 보면서 말을 계속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나한테 재능이 있는 거야. 그게 다른 사람이 가진 패가 뭔지도 예측해야 하고, 내가 가지게 될 패도 예상해서 배팅을 해야 하거든? 상대의 심리를 잘 읽고, 예측해서 게임을 해야 승리할 수 있는 고난도의 게임인데, 내 게임머니가 벌써 55억이란 말이지.”

뭔가 단유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뿌듯함을 드러내는 병호였다.

“결론이 뭔데?”

“그 게임머니를 환전해서 돈을 좀 벌었단 말이지.”

병호가 아까 손에 들었던 장지갑을 펼쳐 보였다. 그 지갑 안에 든 노랗고 파란 지폐들이 시선을 끌었다.

도하는 이죽거리며 말했다.

“너 그러다 한순간에 훅 간다. 그거 불법인 거 알고 하냐?”

“불법 아냐. 그거 다 정부에 허가받아서 하는 거야.”

홈페이지에 정식 등록 업체임을 증명하는 글이 올라와 있다며 항변하는 병호에게 도하는 코웃음을 쳤다.

“내가 아무리 공부 머리가 바보래도, 그런 쪽으로는 너보다 빠삭하다. 인터넷 환전은 전부 불법이다, 이 멍청아.”

“안 걸리면 그만이지.”

병호는 기죽은 얼굴로 투덜대듯 변명하더니 곧 목소리를 가다듬고 자신의 포부를 밝혔다.

“아무튼, 지금은 내가 학생이라서 이렇게 하지만, 일단 이건 연습이야. 앞으로는 진짜 포커 게임 대회 나가는 프로겜블러가 될 거라고.”

눈을 반짝이는 병호는 뭐라도 리액션을 보여달라는 눈치였다.

“수고해라.”

도하가 머리를 흔들며 일어섰다.

“가자.”

단유는 빈 캔을 쓰레기통에 버리고 도하의 뒤를 따랐고, 그 뒤를 병호가 따라붙었다.

“그런데 부탁이 있어.”

“부탁?”

도하가 걸음을 멈추고 병호를 노려봤다.

“사이트에 가입해서 추천인 아이디로 내 아이디 써주면 안 될까?”

“왜?”

“추천인 써주면 게임머니가 들어오거든? 가입한 사람도 받을 수 있고.”

“이 병신 새끼가···.”

한순간 도하의 얼굴이 변하며 과거의 도하를 떠올리게 만드는 표정이 만들어졌다.

“이 겁대가리 없는 새끼가 누구한테···.”

“도하야.”

단유가 나직이 부르자 도하의 성난 눈길이 단유에게로 향했다.

“넌 성격 죽은 줄 알았더니, 여전하네.”

덤덤한 단유의 말이 도하의 정신을 깨운 모양이었다. 도하의 눈에 힘이 조금씩 빠지는가 싶더니 곧 아침에 보았던 나른한 눈이 되었다.

“아, 몰라. 다 귀찮네. 야, 너 저리 가. 오지 마.”

툴툴대던 도하가 먼저 걸음을 옮겼다. 그 모습을 본 뒤 단유가 병호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난 사정을 몰라서 모르겠지만, 적어도 도하가 저렇게 화를 내는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

“아니, 그게 그렇게 화낼 문제는 아···.”

“들어봐.”

단유는 손을 들어 병호의 말을 끊었다.

“니가 우리에게 한 부탁의 경중을 사정을 모르는 내가 판단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적어도 도하가 저렇게 화를 낼 정도라면 아마도 무리한 내용이지 않을까 싶어. 더군다나 불법이라는 이야기까지 오고 간 마당이니까. 아니, 잠깐 내 말부터 들어. 만약 내가 알아보고 그게 별 위험성이 없는 단순한 부탁이라면 들어줄 수도 있어.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넌 대단히 실수한 거란 걸 ‘경고’해주고 싶다.”

병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조금 전의 대화로 보건대, 너 역시도 니가 하는 일의 경중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않거나, 혹은 알면서도 우리에게 부탁한 것일 수도 있겠지. 전자라면 내가 확실히 알아보고 충고든 조언이든, 혹은 너의 부탁을 들어주는 일이든 다 해줄게. 만약 후자라면,···그건 그때 생각해보자.”

단유는 확실하게 태도를 정리한 뒤 돌아섰다. 조금 날 선 태도로 병호를 대했다는 느낌도 있었지만, 이렇게 하지 않으면 병호가 알아듣지 못할 것 같았다.

설령 병호의 부탁이 전혀 무리한 게 아니고, 간단하게 할 수 있는 내용이라 하더라도 병호가 자신과 도하에게 ‘부탁’이라는 걸 할 수 있는 관계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카페인이 든 음료를 마셔서 신경이 날카로워진 것일지도.’

교실로 향하는 사이, 종이 울렸고 교실로 복귀하기 위해 뛰어다니는 아이들로 인해 복도가 잠시 소란스러워지는 사태가 있었지만, 단유는 서두르지 않고 교실로 들어갔다.

쉬는 시간을 이용해서 명수에게 가서 물었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명수도 그런 내용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었다. 아무리 명수가 단유와 달리 공부 외적인 부분, 특히 게임 같은 유흥 분야에 관심이 많고 아는 것이 많다 하더라도 이런 문제는 집에서든 바깥에서든 접하기 어려웠던 부분이었기에 알지 못했다.

반면 지태와 채윤은 그 부분에 대해 조언이 가능한 정도의 배경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거 사기 아냐?”

라는 지태의 반응과

“그거 불법인데.”

라는 채윤의 대답 정도로도 어느 정도 감을 잡을 수 있었다.

“니가 인터넷을 잘 안 해서 모르겠지만, 인터넷 하면 그런 인터넷 카지노 사이트 광고가 되게 많거든? 그런데 들어가면, 처음에는 돈을 벌 수 있는 것처럼 환전 잘 해주다가 나중에는 자기 돈을 계속 입금해야 하는 거라고 알고 있어. 게임머니 충당은 현금으로 해야 하니까.”

실제 카지노에서 현금을 칩으로 바꾸듯, 온라인에서는 게임머니로 바꾼다는 이야기였다.

“너 잘 안다?”

지태가 채윤을 보며 의심스러운 눈길을 보냈고, 채윤은 손사래를 치며 ‘뉴스에서 봤어’라는 말로 항변했다. 두 사람은 여전히 사이가 좋아 보였다.

“그런 곳에 가입하면 맨날 핸드폰에 광고 문자 오고 그렇대. 수신 차단해도 계속 오고 그래서 짜증 난다고, 우리 삼촌이 그랬어.”

삼촌을 팔아 광명을 찾은 채윤에게 ‘넌 그런 거 하면 안 돼’라며 어깨를 붙잡고 흔들어대는 지태를 말린 뒤, 단유는 교실로 돌아왔다. 병호를 찾으니 병호가 주위 친구들에게 ‘노다지’를 광고하는 중이었다.

“신경 쓰지 마라.”

“왜?”

“저러다 제대로 걸려봐야 정신 차리지, 안 그러면 정신 못 차려.”

도하는 점심을 먹은 후라 졸린다는 듯, 책상 위에 늘어진 자세로 웅얼웅얼거렸다.

“인생은 실전이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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