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광을 찾아서(1)
-------------- 390/952 --------------
첫 월급을 받았을 때, 단유는 손에 쥐어진 65만 원이란 돈을 어떻게 써야 할지 막막했다. 돈을 벌기 전에는, 그리고 용돈을 받을 때는 생각지도 못했던 돈의 ‘사용’에 대해 고민이 든 것이다.
애초에 생각했던 것은 데이트 비용으로 얼마 정도를 쓰고, 명수와 하은을 위한 선물 구입비, 그리고 친구들에게도 한턱 쏠 정도면 충분히 잘 쓰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러고 남은 돈은 저축을 하겠다고 마음먹었고.
단유가 아르바이트를 결정했을 때, 하은이 ‘돈 벌면 뭐할 건데’라고 물었을 때도 그렇게 대답했었다. 그리고 하은이 의미심장한 미소로 ‘할 수 있으면 해 봐라’고 대답할 때도 그 의미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정작 돈을 받고 나니, 돈을 쓰는 게 쉽지 않았다.
돈이 아깝다는 의미가 아니라, 돈을 쓰기에 애매한 액수라는 점이 문제였다. 돈을 쓸 일이 없을 때는 몰랐던 문제지만, 생각보다 나가는 금액이 컸다. 하다못해 자신이 한 달 동안 쓰는 핸드폰 요금만 해도 스스로 쓰는 양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돈이 지출된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최근 나윤이 단유가 준 소박한(!) 선물들에 즐거워 해줘서 딱히 다른 비싼 선물을 사줘야 할 필요성까지는 못 느끼고 있었는데, 상미가 태클을 걸었다.
“여자친구한테는 이거보다 더 좋은 거 선물해야지.”
단유가 선물한 텀블러를 흔들어 보이며 말했다. 텀블러는 아침에 운동을 나갈 때, 상미가 하나쯤 있으면 운동하기 편하겠다고 이야기해서 생각하고 있다가 사준 것이었다. 명수는 고맙다며 텀블러를 받아들었지만, 상미는 여자친구한테는 뭘 사줄 거냐고, 명수에게 ‘오지랖’이라고 핀잔받으면서도 꿋꿋이 단유에게 물었다. 그에 단유가 특별히 생각한 게 없다고 대답하자 말한 것이었다.
“나중에 언니가 알면 섭섭해할걸?”
그럴 사람은 아니라고 단유는 생각하면서도, 같은 여자인 상미가 저렇게 말한다면 나윤도 저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유는 홀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 생각하여 정공법을 선택했다.
“뭐 받고 싶은 거 있어요?”
“뭘 계속 주고 싶어 해? 부담스럽게? 안 줘도 돼.”
나윤은 안 줘도 된다며 손사래를 쳤고, 단유는 안심했다.
“멍청한 놈아.”
“그래. 내가 생각해도 그건 멍청한 짓이다.”
상미와 명수가 합심해서 단유를 공격했다. 단유가 얼떨떨한 눈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자, 두 사람이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얘가 공부만 해서 그래.”
“그러게. 저렇게 여자 마음을 모르면서 어떻게 연애를 한 대?”
단유는 두 사람에게 바보 취급을 받는 신기한 경험과 그 감정을 가슴 속에 묻어 두고 말했다.
“나 평소에도 꽃 같은 거 선물하는데?”
“그런 거랑 다르지. 니가 받은 첫 월급이잖아? 그런 의미 있는 돈을 받았는데 당연히 의미 있는 선물을 줘야 여자친구도 기쁠 거 아냐?”
“나도 그 정도는 안다.”
상미와 단유의 쿵짝이 잘 맞는다고 느끼며 단유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건 사람마다 다른 게 아닐까?”
“여자는 다 똑같애.”
언젠가 한 번 들어본 적이 있는 대답으로 상미는 말을 맺었다. 결국 이번에도 단유는 ‘도대체 여자란 남자랑 근본적으로 다른 것인가’라는 의문을 머릿속에 남긴 채, 방으로 돌아가야 했다.
“고맙다, 단유야.”
“좋은 걸 사드리고 싶었는데, 어떤 게 좋은지도 모르겠고 그래서 이걸로 했어요.”
하은에게는 핸드크림을 사줬다. 평소 학원에서 분필을 자주 사용하기 때문에 손을 씻는 일이 많은데, 그때 손 거칠어지지 말라고 사준 것이었다.
“단유에게 이런 선물을 받으니까 기분이 좋네. 이런 날이 올 거라곤 생각도 못했어.”
단유는 하은의 미소에 괜히 뿌듯함을 느꼈다. 그간 하은에게 받기만 하고 준 게 없었다. 솔직히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 사실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진 않았다. 그러나 선물을 고르고, 그 선물을 하은에게 주면서, 하은이 미소를 보이자 뿌듯한 마음이 들면서 동시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더 좋은 걸 사야 했는데, 란 생각이 드네요.”
“이것도 충분해. 다른 어떤 선물보다 더 고맙고 감사한걸? 평소에 나를 이만큼 생각하고 있었다는 거 아냐? 안 그래도 나이가 들면서 손이 점점 거칠어진다고 느끼고 있었는데.”
하은의 너스레에 웃음으로 화답한 단유는 최근 고민하는 문제에 대해 털어놓았다.
“60여만 원이라는 돈이 큰돈이 아닌 것 같아요.”
사실 명수에게는 텀블러 외에 새 축구화를 하나 사줬다. 이전에 사줬던 축구화는 고작 6개월 만에 걸레짝처럼 망가져서 새 신발이 필요하던 상황이었다. 그리고 나윤을 만나 선물 대신 하루 치의 데이트 비용을 단유가 부담하는 것으로 돈을 썼다. 몸이 커진 탓에 입을 옷이 없던 차여서 조금 욕심을 내, 자신의 옷을 사는 데도 돈을 썼다.
“처음에는 저축할 돈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3분의 1도 안 남았어요.”
“드디어 단유 니가 경제에 눈을 뜨는구나.”
하은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단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솔직히 60만 원이면 적은 돈은 아니지. 니 나이대 애들이 쓰기에 큰돈이기도 하고. 하지만, 요즘 물가가 워낙 높아서 쓰려고 마음만 먹는다면 일주일은 고사하고 3일 만에 탕진하기도 쉬워. 그래서 돈을 계획적으로 써야 한다고 말을 하는 거야. 돈 벌기는 어려워도 쓰는 건 쉬운 법이니까.”
단유는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선생님이 지금 너무 부담을 많이 지시는 거 아니에요?”
“아냐. 솔직히 예전보다 많이 쓰는 건 있지만, 적어도 집값은 안 들잖니? 그리고 더 솔직히 말해서, 이 집에서 제일 부자인 사람은 너잖아.”
“저요?”
“이 집이 네 거잖아?”
재훈이 명의를 변경해준 사실을 언급한 하은에게 단유는 머쓱한지 볼을 긁적이며 말했다.
“그건 쓸 수도 없는 거잖아요?”
“요즘 시대에 집 하나 있는 게 얼마나 큰 건지 아니? 어떤 사람은 한 달 월세로 5, 60만 원을 쓰는 사람도 있다고.”
하은은 짐짓 엄한 얼굴을 하고 단유의 눈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생각 너무 많이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돈을 버는 건 나중에, 네가 어른이 돼서 해도 충분하다고 생각해. 지금은 그저 공부하는 것만 생각하라고. 어른 흉내 내는 건, 3년은 이르니까 말이야.”
요즘 주위 사람들이 모두 ‘공부’에만 신경 쓰라고 한다. 반대로 이야기하면 단유가 예전과 달리 공부 외의 것에도 관심을 쏟기 시작했다는 말이 될 것이다. 주변 사람들이 걱정하는 바를 모르는 것도 아니고, 그들이 말하는 바의 의미, 지금 차근차근 준비해서 좋은 대학가고 좋은 직장에 취업해서 돈을 벌면 된다는 의미를 모르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들이 한결같이 말하는 그 길이 자신의 ‘길’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아직은 어떤 길들이 있는지, 그 길들이 어디로 향하는 길인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자신이 가야 할 길이 따로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넌 다른 아이들과 달리 선행학습이란 점에서 이미 중학교 수준을 넘었으니까, 지금 학교에서 시행하는 교육 수준이 기대에 못 미칠 수도 있어.”
그런 점도 어느 정도 있었음을 단유는 인정해야 했다.
“중학교 입학 전에 영재 학교를 추천했던 것도 그런 이유였던 거야. 비록 경쟁이 너무 심해서 과도하게 스트레스를 받고 학구열? 의욕이 떨어지는 경우는 있어도, 기대에 못 미칠 정도의 낮은 수준의 학습이란 없으니까.”
하은도 경험이 있기에 단유에게 솔직하게 충고를 해줄 수 있었다.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단유를 보아도, 단유만큼 학습 의욕과 재능을 가진 이는 영재 학교에서도 보기 힘들었다. 물론 지금은 시대가 달라진 만큼, 또 다양한 유형의 사람들이 존재하니만큼 단유 정도의 아이들이 없으리란 법은 없지만, 적어도 영재학교는 단유에게 하나의 돌파구가 되리란 생각이 들었다. 단유의 미래를 위해서도.
“지금은 잘 모르겠어요. 일단 더 생각해보고 결정해봐도 될까요?”
“만약 영재학교를 가려면, 중3이 되기 전에 선택하는 게 맞아. 그리고 중3 때부터 열심히 준비해서 영재학교 입시를 치러야 하니까, 빨리 결정해야 돼.”
고작 고등학교를 결정하는 문제지만, 이것이 단유의 미래를 결정짓는 중요한 선택임을 하은은 누차 강조했다.
“선택은 신중하게 해야 돼. 이런 선택은 뒤로 물릴 수가 없으니까.”
****
이야기의 흐름이 어떻게 그런 식으로 흘러가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돈’이란 것에 대한 문제 인식이 흐려진 것은 아니었다. 한때 재훈과 이야기를 나눌 때, 재훈이 농담처럼 ‘돈은 많을수록 좋아’라고 하던 것도 생각났다. 물론 하은의 말처럼 정규 과정을 다 거친 뒤, 본격적으로 독립하고 사회에 진출할 때가 되었을 때 고민해도 될 문제, 라고 치부해버려도 그만이다.
그렇지만 당장의 문제를 그저 시간에 맡긴 채 무시하기엔 단유가 느끼는 감정을 무시할 수 없었다. 단유는 이것이 자신의 ‘생존’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이란 사실을 무시할 수 없었다.
하지만 당장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보이는 것은 아니었다. 어딘가에서 들었는지, 보았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학교를 때려치우고 취업전선에 뛰어들어 성공한 사람의 케이스가 있음을 안다. 하지만 단유가 그런 선택을 할 필요도 없고, 할 생각도 없었다. 무엇보다 단유의 가장 큰 목표는 단순히 공부를 잘하는 게 아니라, 현대의 수준 높은 지식을 이용해 자신의 ‘마법’을 성장시키는 게 목표다. 그런 목표를 위해 공부를 하는 것이지, 단순히 좋은 대학 가자고 하는 일이 아니니 당연히 공부를 포기하는 선택은 있을 수 없었다.
또 단유가 이 생활을 크게 바꾸고 싶지 않은 것은 자기 주위의 사람들을 지키고 싶다는 생각이 크기 때문이다. 명수든 하은이든 이 사람들과 함께 살면서 이들을 자신의 능력이 닿는 한에서 지키고 싶다는 생각이 단유의 ‘생존’과제에 부가된 미션이라 하겠다.
이런저런 생각 중에 끼어든 ‘돈’이란 문제는 또 다른 미션이라 하겠다. 현실적으로 이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생존’ 수단이니 당연히 누군가에게는 최우선 고려 대상이겠으나, 단유에게는 최우선은 아니더라도 중요도 3위권에는 들, 그런 문제였다.
‘돈은 벌면 좋지만, 돈을 벌긴 위해서는 시간을 소요해야 한다.’
시간은 돈보다 더 중요한 자원. 당연히 그 자원을 소모해서 돈을 버는 것은 별로 반갑지 않다. 앞으로 어떤 삶을 살게 될지 모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지금 이렇게 느슨하게 살아선 안 될 것 같다는 것이다. 하지만 역으로 지금이 어쩌면 가장 자유롭게 시간을 낼 수 있는 때일 수도 있었다.
단유의 고민은 꽤 심각했지만, 과연 이 고민을 해결할 정답이 있을지는 모르겠다.
“돈? 솔직히 많이 벌면 좋겠지. 그런데 난 아직 잘 모르겠어. 성공만 하면 저절로 따라오는 게 돈이라고 생각하니까, 지금은 돈을 번다는 생각보다 성공하겠다는 생각으로 연습할 뿐이야.”
나윤에게 고민을 살짝 비추자, 나윤은 성공하기 전엔 전부 빚이야, 라며 대답했다.
“성공한 가수들이 부모님 명의로 건물도 사드리고 노후 명목으로 땅도 사고하는 거, 많이 보니까 나도 그러고 싶지. 하지만 그게 목표는 아니야. 일단은 모두가 인정하는 가수가 되는 거야. 그렇게 된 뒤에야 생각해 볼 문제라고 생각해. 너도 지금은 일단 학생으로서 충실하게 사는 것만 생각하는 게 옳지 않을까?”
나윤이라고 정답을 가지고 있을 리 없었다.
“남들이 다 그렇게 살라고 하는 건, 그만큼 그 방법이 신뢰할 수 있는 방법이고 경험으로 증명된 방법이기 때문이 아닐까? 노래를 부를 때도 다양한 창법이 존재하지만, 그중에서 몇 가지 창법들만 연습하는 건 기존에 검증된 창법이고 자신에게 맞는 창법이기 때문이잖아? 그것처럼 사람들이 마냥 하는 말은 아닐 거라고 봐.”
오래 살아보지 못했던 사람은 오래 살아온 사람들의 경험을 존중하고 그 경험을 빌려와 지혜를 얻는다. 검증된 것이니만큼 신뢰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과연 그것이 내게 맞는 옷인지는 입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일이지 않을까?
아르바이트, 연애 등으로 시작된 가벼운 여름방학이 결국 여러 가지 문제를 단유에게 남기고 끝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