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멤버 더 네임-383화 (383/956)

출구는 어디인가요(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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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유가 주변의 만류에도 처음 도전하기로 한 것은 신문 배달이었다.

“왜 하필 신문 배달이야?”

그게 얼마나 힘든데, 라고 묻는 하은에게 단유는 어깨를 으쓱거려 보였다.

“오피스텔 앞 전신주에 붙어 있더라고요. 구인광고.”

고작 그런 이유로? 라는 하은에게 덧붙여 설명했다.

“원래 새벽에 일어나 운동하는 게 일상인데, 일어난 김에 자전거 타면서 신문 돌리면 어렵지 않을 거 같더라고요.”

‘일단은 쉬운 것부터 해보려고요’라는 단유의 말에 ‘그게 쉽냐?’고 핀잔을 주듯 되묻고 싶었던 하은이었다.

“요즘 신문 보는 사람이 별로 없을 텐데.”

“요즘 신문 보는 사람이 많이 줄긴 했지만, 그래도 어르신들은 아침 신문을 찾아보시거든.”

장계동의 신문보급소장은 그렇게 운을 떼며, 단유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너 몇 살이니?”

“15살인데요.”

“어쩐지···몸은 튼실해 보이는데 얼굴이 워낙 어려 보여서 말이야. 아무튼 15살이면, 중학생?”

“2학년이요.”

“그럼 공부 때문에 힘들지 않겠어? 그리고 사실, 중학생은 좀 받기가 그래. 금방 포기하는 애들이 많아서 말이야.”

요즘 애들은 끈기가 없어, 라는 중얼거림을 대충 흘려들으며 단유는 보급소를 둘러보았다.

“급여는 어떻게 돼요?”

단유의 물음에도 보급소장은 ‘의지’가 어느 정도인지 궁금했다.

“계속 할 수 있겠어?”

“일단 한 달만 해도 돼요?”

“한 달이라도 제대로만 해준다면야 안 될 건 없지. 워낙에 사람이 부족해서 말이다.”

원래는 한 달도 안 돼. 한 달 하고 말 놈이면 아예 안 시키고 말지, 라며 단유를 관찰하는 보급소장이었다. 두툼한 배 위에 팔짱을 끼니, 팔이 가슴에 있는 건지, 배 위에 얹어져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200부 정도 돌린다고 하면, 60만원까지는 챙겨준다.”

하지만 찜찜한 얼굴의 보급소장은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안 되겠어. 낮밤이 바뀌면 애들이 많이 힘들어하더라고.”

“새벽에만 잠깐 하는 거잖아요?”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 하면 힘들어.”

“전 익숙해요. 새벽에 일어나는 거.”

새벽 5시에 일어나 매일 운동을 한다는 단유의 증언에도 소장은 썩 내켜하는 표정이 아니었다. 말뿐이라 믿기 어려운 탓도 있었고, 어지간해서는 대부분 일주일도 못해 달아나는지라 선뜻 일을 주기가 어려운 탓도 있었다. 그래도 인상이 나쁘지 않고, 몸도 중학생이라고 보기엔 크고 단단해 보이는 것이 어느 정도 체력은 돼 보였다.

“새벽 4시까지 주공아파트로 나와라. 일단 거기서 배달해야 할 집 알려 줄 테니까.”

다음 날, 반신반의했던 소장의 기대를 저버린(?) 단유는 정확히 4시에 주공아파트 단지 앞에 나타났다. 말쑥한 외모와 말똥말똥한 눈동자를 보며 소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가자. 가면서 알려줄게.”

소장은 끌고 온 오토바이에서 신문 더미를 꺼내 일부는 단유에게 주고 일부는 자신이 짊어졌다.

“원래는 다른 사람이 알려줘야 하는데, 배달 일정이 꼬이는 바람에 내가 이 고생을 한다. 그러니까 한 번에 잘 기억해 둬.”

보급소장은 메모지에 적힌 암호 같은 숫자들을 보며 배달을 시작했다. 어떤 집은 우유 주머니에 넣어주고, 어떤 집은 창틀에 꽂아주고, 어떤 집은 현관에 부딪히지 않게 문 옆에 가지런히 놔주어야 했다.

“이런 게 다 주문 사항이라 꼭 지켜야 해.”

단유는 보는 즉시 머리에 저장하며 소장을 도왔다.

두 시간이 지날 즈음, 150부 정도의 배달이 완료되었다. 소장은 메모지에 적힌 암호(?)를 해독하는 방법을 알려주며 말했다.

“아직 어리니까, 150부 정도로 하고. 오토바이는 면허증이 없으면 타질 못하니까, 일단 자전거로 해라. 만약 너무 무거워서 어렵다 싶으면 부수를 줄이고.”

부수를 줄이면 임금도 준다는 얘기를 덧붙이는 소장에게 그럴 필요 없다고 말했다.

“혹시 실수하거나 잘못된 게 있으면 곧바로 나한테 전화해라.”

다음 날부터 단유 홀로 배달을 시작했다. 우선 보급소로 가서 신문을 받기 전, 신문 사이에 삽지를 넣는 일부터 했다. 이후 자전거에 150부를 싣고 떠나는 단유를 불안한 눈동자로 배웅하는 소장이었다.

1시간 후, 단유가 돌아왔다.

“벌써? 너 뭐 어디 버리고 온 거 아니지?”

소장이 버럭 소리를 지르려다, 너무 편안한 얼굴로 소장을 마주하는 단유를 보고 미심쩍다는 시선을 보냈다.

“아뇨. 어제 본대로 다 넣고 왔는데요?”

첫날인 데다 무려 150부인데, 그걸 한 시간 만에 다 처리했다는 단유의 말을 소장은 믿을 수가 없었다.

“내일은 200부 해도 될 거 같던데요.”

실은 시간이 남아서, 천천히 돌다 왔다는 단유의 말은 더더욱 믿을 수 없었다. 어린아이의 치기? 혹은 허세? 그러나 확인 결과, 소장은 단유의 말이 사실임을 알았다.

다음 날, 단유는 200부로 올렸고, 역시 1시간 만에 왔다.

“너 정말 다 돌린 거 맞아?”

자전거를 보급소 안쪽 창고에 세워두며 단유가 대답했다.

“네.”

기어에 기름칠 좀 해야겠던데요, 라고 말하던 단유가 슬쩍 소장의 눈치를 보며 물었다.

“300부 하면 돈 더 주나요?”

당연한 소리. 하지만 소장은 고개를 저었다.

“300부는 자전거로 배달하기 힘들어. 무게도 보통이 아니어서 실으면 금방 쓰러질걸?”

그다음 날, 단유는 한 번 더 소장에게 부탁했고, 소장은 역시 반신반의하며 300부를 억지로 자전거 뒤에 쌓는 걸 도와주었다. 저 정도 무게면 페달을 밟고 10m를 전진하는 것도 무서워질 것이다, 라는 기대감으로 바라보는데 전혀 무게감을 느끼지 못할 만큼 자연스럽게 자전거를 몰고 가는 단유의 뒷모습에 턱을 떨어뜨렸다.

물론 자연스럽게 보였을 뿐, 단유가 전혀 힘을 쓰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운동 되겠네.’

단유는 호흡을 고르며 자전거의 페달을 밟고 중심을 잡는 일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그렇게 자전거를 몰고 배달장소로 향한 단유는 우선 150부가 배정된 아파트 앞에 섰다.

‘오늘은 얼마나 걸리려나?’

단유는 주변을 살핀 뒤, 아파트로 들어갔다. 제일 위층에서부터 아래층까지 내려오는 데 2분도 걸리지 않는 시간 동안 12부를 돌렸다. 사실 단유가 신문을 돌리는 방법은 간단했다. ‘능력’을 이용하면 되니까. 눈으로 신문을 거치할 장소를 고른 후, 능력을 사용하고 곧바로 아래층으로 내려오면 되니까. 몸을 움직일 필요도 없었다.

그런 식으로 아파트를 모두 돌면 150부를 돌리는데 30분이 채 걸릴까 말까였다. 갖가지 주문사항이 적힌 암호 같은 메모들은 정말 암호를 외우듯, 숫자로 기억하니 외우기 어렵지도 않았다. 게다가 이틀 동안 반복하기도 했고, 능력을 사용하는데도 숙달이 되면서 오늘은 150부를 26분 안에 끝내는 경지에 이르렀다.

그다음은 더 쉬웠다. 상가와 주택가를 도는 일인데, 그냥 자전거를 몰고 가면서 눈으로 ‘확인’하고 ‘이동’시키면 그만인 일이었다. 그러면 신문은 어디 구겨지는 곳 하나 없이 얌전하게 집 앞에 대령이 된다. 자전거를 타고 가면서 하다 보니 시간이 더 단축되는 기분이었다. 비록 배달해야 할 거리가 조금 있었지만, 그 정도를 감안해도 남은 150부는 30분이 조금 넘는 시간에 모두 돌릴 수 있었다.

만약 지나가던 누군가가 단유를 보더라도, 조금 빠른 속도로 자전거를 타고 골목을 지나는 정도로만 인식할 정도였다. 계속 지켜보았다면, 자전거 앞 바구니에 꽂아두었던 신문이 줄어드는 걸 알아차릴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어스름한 새벽에 신문 배달하는 소년을 구경하는 취미를 가진 이는 없었다.

‘너무 일찍 가면 또 이상하게 생각하시겠지?’

단유는 빈 자전거로 동네를 두어 바퀴 돌다가 보급소로 향했다. 더 많은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 건, 단유 본인의 개인 스케줄도 있었던 탓이었다. 그럼에도 소장의 놀란 눈은 쉬이 진정되지 않았다.

“니가 정말 배달의 역군이구나.”

무슨 뜻으로 하는 말인지 이해하지 못한 단유는 그냥 아재 개그라 치부하며 보급소를 나왔다. 오늘은 좀 할 일이 많았기에 함부로 시간을 낭비할 수 없었다.

****

“피곤하지?”

“괜찮아요.”

로드매니저가 어색한 분위기를 깨기 위해선지 먼저 말을 걸었다.

“사실 나 너희 팀 로드 하고 싶었던 거 알아?”

“우리 팀이요?”

“작년에 가디스R 할 때 말이야. 그때 현철이가 로드였잖아? 되게 부러웠는데.”

나윤은 어색한 미소로 답을 대신했다.

“가디스R 때 난 개인적으로 수련이보다 니가 더 노래에 잘 어울렸다고 생각했어.”

“···고맙습니다.”

굳이 회사를 떠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것도 좋지 않게 떠난 사람들의 이름을 거론하며 이야기할 필요가 있을까? 그런 나윤의 마음도 모르고 로드매니저는 신이 나서 자신이 생각하는 지난 활동 최고의 무대에 대해서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마치 자신이 로드 딱지만 떼 내면 훌륭한 매니저가 될 수 있다는 걸 어필하듯이.

행사장을 찾아가는 것은 로드매니저와 함께 하기로 했다. 따로 매니저를 붙이지 않은 까닭은 로드가 전부 일임하기로 한 탓이었다.

“이제 나도 로드 졸업해야지 않겠어?”

그렇게 자기를 소개한 로드매니저가 나윤을 데리고 처음 향한 곳은 강남의 샵이었다. 가디스R 활동할 때는 자주 왔었지만, 이후로 거의 오지 않았던 곳이었다. 사장님이 반갑게 맞아주며 나윤을 안내했고, 곧 행사용 메이크업으로 ‘변신’을 시도했다.

“수고하셨습니다.”

수련은 어디서든 인사를 잘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사람한테 깊은 인상을 심어주는 것이 연예인으로서의 덕목이라며. 의상 코디도 없이 단둘이서 승용차를 타고 충남 보령으로 향했다.

“피곤하면 잠이라도 자.”

“괜찮아요.”

밴이면 모를까, 승용차에서는 자칫 잘못 누우면 기껏 공들인 헤어스타일을 망칠 수 있었다. 노래라도 들을까 싶어 라디오를 만지작거렸더니 소음만 나왔다.

“이 차가 라디오 안테나가 고장이 났거든.”

멋쩍은 웃음과 함께 로드는 버튼을 눌러 내장된 시디를 틀었다. 어딘가 고장 난 게 분명한 고르지 못한 사운드의 베이스 음과 함께 최근 핫하다는 여자 아이돌 그룹의 노래가 나왔다.

“요즘 어떤 음악이 대세인지 궁금해서 말이야.”

묻지도 않은 변명은 궁금하지도 않아요.

나윤은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고속도로의 풍경이야, 거기서 거기다. 다만 나윤이 생각하는 것은 그런 지루한 풍경이 아니라, 어제 저녁 단유와 나누었던 대화였다.

****

“일이 힘들진 않았어?”

[별로 힘들진 않았어요. 오히려 운동도 되고 좋던데요?]

“넌 참 신기하다. 그 새벽에 일어나는 게 쉬워? 난 힘들어 죽을 것 같던데.”

[습관이 돼서 그런가 봐요. 그건 그렇고, 내일이죠?]

“응. 그런데 조금 떨려. 무섭기도 하고.”

[무서워요?]

“응···. 솔직히 말하면 그래. 무대에 오를 수 있다는 게 좋기도 하지만, 사실 시장이면 젊은 사람들보다 아줌마, 아저씨들이 많을 거 아냐. 그런 분들은 내 노래 잘 모를 거고.”

그리고 실장에게 제의를 받을 때는 생각하지 못했던 점이지만, 향후에 다시 아이돌 그룹으로 컴백 했을 때 혹시나 좋지 않은 이미지를 만드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기도 했다. 우스갯소리로 아이돌의 ‘흑역사’를 거론하곤 하지만, 이건 그냥 흑역사가 아니라 정체성에 관한 문제가 될 수 있으니까.

[사실 그 점에 대해서는 제가 모르는 분야라 뭐라고 이야기하기가 어렵네요. 그런데요.]

잠시 단유의 목소리가 끊어졌다. 가끔 단유는 이렇게 대화 중간에 생각을 가다듬는 경우가 있었다. 신중한 성격이라 그렇겠지만, 그런 대화 간의 정적이 상대로 하여금 기대감을 돋게 했다.

[결국 어떤 무대든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게 가수잖아요. 특정 타겟층을 지정해서 그들을 상대로만 노래를 해야 한다는 법은 없지 않아요? 상대가 누구든, 목소리와 감정으로 설득하는 일이 바로 가수가 할 일 아닐까요?]

주제넘게 나선 거 같아 부끄럽네요, 라는 단유의 말은 그저 겸양의 표현만은 아닌지 목소리에 홍조가 묻어나는 느낌이라 듣는 나윤도 기분이 좋았다. 아니, 그 전에 단유의 응원이 기분을 좋게 해준 것이리라.

[맞아. 그게 가수고 내가 꿈꾸는 길이야. 단순히 아이돌로서 잠깐 반짝하는 가수가 아니라 전 세대에 아울러 사랑받는 가수!]

“그럼 트로트 가수로 전향하는 건 어떨까요? 나중에 디너쇼도 하고 그러면 되겠는데요?”

[또 놀리지? 너 요즘 나 놀리는 데 취미 붙인 거 같아?]

단유는 화창한 날씨만큼이나 맑은 목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나윤과 대화를 하면 상쾌한 기분이 들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나윤에게 뒤가 없기 때문이리라. 속없이 밝고, 어두울 때도 마치 너무 맑은 달빛이라 어두운 구름마저 선명하게 보이는 밤하늘 같았다. 만약 그녀를 주변의 사람들과 굳이 비교하자면, 명수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두 사람 모두 너무 맑아서 투명하게 비치는 심장을 가진 이들같이 느껴졌다.

그래서 단유도 명수에게 하듯, 자연스럽게 농담을 주고받아도 어색하지 않았고, 오히려 기분 좋게 웃음을 터뜨릴 수 있었다.

[보고 싶을 거야.]

다른 점이라면, 나윤은 자신의 마음을 숨기는데 어설픈 점이 있었다. 제 딴에는 숨기려고 하는지도 모르겠지만 툭툭 튀어나오는 본심도 그렇고, 얼굴과 몸짓에서 드러나는 감정이 너무 적나라해서 단유는 그저 웃으며 받아줘도 부담을 느끼지 못했다.

“보러 갈까요?”

[거기가 어딘데 보러와. 넌 공부나 해.]

“요즘 계속 공부나 하라네요? 그러지 말고 같이 공부하는 게 어때요?”

[같이?]

“제가 가르쳐드릴게요.”

[야!]

단유는 또 한 번 웃음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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