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멤버 더 네임-381화 (381/956)

출구는 어디인가요(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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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여러 사람이 모이니 어느새 7명의 대 인원이 되었다. 길 위에서 이러지 말고 일단 어디든 이동해서 이야기를 나누자는 사모님의 제안에 선생님은 얼떨떨한 표정은 감추고 걸음을 옮기셨다. 밥 시간도 되었으니, 라는 핑계로 향한 식당은 원래 가려고 마음먹고 있던 식당이라고 했다. 딸, 지선이가 좋아하는 메뉴라서 골라놨던 갈빗집이었다.

인원이 많았기에 가게에서는 가장 안쪽의 룸으로 안내해주었다. 어떤 이야기가 오갈지는 몰라도 여러 사람의 시선을 받지 않는 곳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있었기에 사모님은 기꺼워했다. 반면 선생님은 가슴 안쪽의 지갑을 괜히 더듬다 눈치를 보고 슬쩍 손을 내렸다.

선생님 부부와 지선이 먼저 들어가 자리를 잡고 맞은 편에 단유네가 앉기로 했다.

“여기 앉으세요.”

단유가 먼저 방석을 깔며 나윤의 자리를 만들어주자, 나윤은 고맙다며 자리에 앉았다. 사실 이곳으로 오기 전, 단유는 나윤에게 먼저 돌아가도 된다고 언질을 줬다.

“불편하시면 집에 먼저 가세요. 제가 나중에 연락드릴게요.”

하지만 나윤은 굳이 자리를 피할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해 단유의 제안을 사양했다. 무엇보다 무언의 직감이 자리를 쉽게 떠나선 안 된다고 경고하고 있었다. 이유는 모르겠다.

“일단 음식부터 시킬까?”

선생님의 목소리가 살짝 메인 것 같다고 느꼈지만, 단유는 아무렇지 않게 메뉴판을 집어 들어 선생님께 건넸다.

“저희는 많이 먹지 않을 테니 선생님께서 골라주세요.”

“그러지 말고 골라요. 이럴 땐 선생님이 사주시는 거예요. 그쵸 여보?”

“그, 그럼.”

사모님은 메뉴 선정을 남편에게 일임한 이후, 먼저 단유에게로 시선을 던졌다.

“학생 이야기는 많이 들었어요. 전교 1등을 한 번도 놓친 적이 없다고?”

“아뇨, 작년에 한 번 놓쳤어요.”

“야 이 자슥아. 전교 3등 한 번 한 거 가지고 놓칫다 하면 딴 애들은 불쌍해서 우짜노? 겸손도 적당히 떨그래이.”

음식이나 골라요, 라며 말을 끊고 들어온 남편을 타박한 사모님은 다시 미소를 띠며 물었다.

“그래, 우리 지선이랑 같은···시설에 있었다고요?”

“네. 여기 명수도 똑같이 지냈어요. 저희가 5학년이 되기 바로 전이었으니까, 3년도 넘었네요? 그때까지 함께 지냈고요. 그때 지선이는 1학년이었죠.”

지선은 여전히 시크한 얼굴로 단유의 얼굴만 바라보다가 틈틈이 곁에 앉은 나윤의 얼굴을 훔쳐보았다. 역시 지선의 얼굴을 바라보던 나윤이 슬쩍 미소를 지어보았지만, 지선은 표정 변화 없이, ‘이건 뭐’라는 눈으로 바라볼 뿐이라 머쓱할 따름이었다.

“사실, 그래요. 지선이는 우리가 입양했어요.”

지선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바라보는 사모님의 눈빛은 따뜻했다.

“다행이네요.”

단유의 말에 사모님이 살짝 놀란 눈으로 단유를 바라보았다. 일반적으로 ‘입양’을 이야기했을 때 돌아오는 반응은 ‘잘 됐네요’ 같은 미지근한 반응이나, ‘축하드려요’같은 형식적인 반응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비록 같은 시설에 있었다 하더라도 신선한 반응이라 메뉴판을 들여다보는 척하던 선생님도 시선을 들어 올리니, 그 시선을 받은 단유가 ‘초등학교 입학할 정도로 큰 아이들은 입양이 잘 안 된다더라’는 이야기를 덧붙이며 명수에게 동의를 구했다.

“그렇지?”

“네.”

단유는 지선을 향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렇게 보니 지선의 표정이 많이 밝아진 것 같아 단유도 기분이 좋았다.

“보육원이 폐원될 때, 저희는 운이 좋아서 좋은 후원자분을 만나 이렇게 생활할 수 있게 되었는데, 다른 아이들은 모두 다른 보육원으로 흩어졌었죠.”

“맞아요. 사실 저희도 걱정 많이 했거든요. 어린 애가 숫기도 별로 없고, 보육원에 친구도 많지 않아서 저희가 자주 놀아주고 그랬거든요.”

“어머, 그랬어요?”

그때 지선이가 사모님의 소매를 잡아당겨 시선을 끌었다. 사모님이 ‘왜’ 하고 묻자 손가락을 들어 명수를 가리켜 보이는 지선이었다.

“저 오빠, 나 죽인댔어.”

“헉!”

육성으로 헛바람을 크게 들이키는 소리를 낸 명수가 급히 몸을 일으키며 손을 내저었다.

“아, 아니에요, 내가, 내가 언제 그랬어?”

지선은 태연한 얼굴로 고자질을 이어나갔다.

“저 오빠가 나 잡히면 죽이겠다면서 계속 뛰어서, 나도 계속 도망갔어. 그래서 나 가슴도 아프고 다리도 아픈데 죽을까 봐 계속 도망갔어.”

“야! 공지선!”

말을 내뱉자마자 실수를 깨닫고 얼른 사과부터 하는 명수였다. 과거의 성씨를 말하는 것 자체가 실례란 생각에서였다.

“죄송해요, 선생님. 그···습관이 되어서요.”

“뭐가? 애 잡아 죽인다는 게?”

선생님은 짐짓 엄한 표정을 지으며 명수를 째려보았다.

“아, 아뇨! 그건 아니고요. 진짜 그건 오해예요. 그게요.”

명수는 열심히 머리를 굴리다 생각났다는 듯 눈을 부릅뜨고 지선이를 향해 삿대질을 했다.

“아, 이제 생각났다! 쟤가 있잖아요, 내 나비, 내 제비나비를 완전히 찢어가지고요, 그래서 화가 나서 쫓아가니까 도망간 거예요. 그거 단유가 잡아준 나비였는데, 진짜 귀한 나비였단 말이에요, 진짜 예쁜 거였는데.”

명수는 말하다 말고 울컥하는지 고개를 쳐들었다. 새까만 날개에 빨간 점들이 두드러진 제비 나비를 떠올리며 ‘진짜 예뻤는데’라고 중얼거리는 명수를 무심히 바라보는 지선의 표정이 재미있어 단유는 피식 웃었다.

“저게 무슨 소리니?”

이해를 못 한 선생님과 사모님께 초등학교 시절 방학 숙제로 나비를 잡아주다 벌어졌던 소동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러자 상미가 명수의 팔뚝을 찰싹 때렸다.

“그게 언제적 이야긴데 이러고 있냐?”

“진짜 예쁜 나비였다고. 내가 얼마나 좋아했는데.”

‘애들한테 자랑하려고 스크랩도 멋지게 했었는데’라며 울먹거릴 것 같은 분위기에 주위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 사이 선생님은 갈비를 주문했고, 사모님은 웃음기 배어든 얼굴로 단유를 바라보았다.

“사실 우린 지선이를 예전부터 알고 있었어요.”

설명하자면, 지선이는 선생님 부부의 친구 딸이었다고 했다. 갑작스러운 사고로 친구 부부가 명을 달리하게 되었고, 그 딸인 지선은 어린 나이에 오갈 데가 없어져 결국 보육원으로 들어가야 했다. 안타까운 사정은 알았지만, 당시 선생님 부부도 그리 넉넉한 편은 아니어서 도울 수가 없었고, 도울 방법도 알지 못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 뒤, 선생님도 ‘안정’을 찾았고, 사모님도 개인적으로 하는 일이 잘 풀리면서 여유가 생겼단다. 게다가 두 사람에게 아이가 없었기에 지선을 입양하기로 하는 결정을 내리기가 어렵지만은 않았다고.

“보육원이 폐원됐다는 이야기를 늦게 들었어요. 그래서 우리가 지선이를 빨리 찾으러 가지 못한 게 미안할 따름이죠.”

지선이는 자기 이야기를 하는 동안에도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턱을 괴고 단유를 바라보고 있었다.

“잘됐네요.”

라며 웃음을 지어 보이는 단유에게 지선이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물었다.

“여자친구야?”

그 물음에 모두의 시선이 나윤에게로 쏠렸다. 나윤이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어른 앞에서 실례가 될 것 같아 모자를 벗고 있었더니, 얼굴을 가릴 게 없었던 나윤은 그저 고개를 푹 숙여 보일 뿐이었다.

“응.”

하지만 이어지는 단유의 대답에 나윤의 고개가 번뜩 올라갔다.

“뭐야? 저 표정은? 마치 자기가 여자친구인 줄 몰랐다는 표정인데? 니 혹시 니 혼자 착각하는 거 아이가?”

선생님의 짓궂은 질문에 단유가 웃으며 나윤을 바라보았다.

“그래요? 착각인가?”

나윤은 얼른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저 단유 여자친구예요!”

그 반응에 선생님과 사모님이 웃음을 터뜨렸다.

“거, 여자친구가 시원시원하네!”

선생님은 나윤의 반응에 즐거워하시며 너털웃음을 짓다가 갑자기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눈을 좁혔다.

“그런데 그쪽 얼굴이 꽤 낯이 익다 아이가?”

“어머? 이이가 또 왜 주책이래? 남자 중학교에 있는 양반이 여학생 얼굴을 어디서 봤다고 그래요?”

“아인데? 어디서 마이 봤는데?”

그때 물잔을 들어 입술을 축이던 상미가 끼어들었다.

“저 언니, 연예인이에요.”

“뭐?”

선생님과 사모님은 두 가지 사실에 놀라 나윤과 상미, 단유를 바라보았다.

“연예인?”

“언니?”

곧 선생님이 얼굴을 기억해냈다.

“맞네! 내 그쪽 얼굴 봤었네. 우리 학교에 얘들 좋아하는 애들이 많아 갖고 수업 시간에도 막 영상을 찾아보고 있는 기라. 그래서 그걸 뺏느라고 내 고생 좀 했었다 아이가. 그때 봤었데이. 가디스 뭐라카는 그룹 아이가?”

“예, 맞아요.”

단유가 선선히 대답했다.

“그러면, 연상이가?”

“네. 저보다 연상이죠.”

“이야, 단유 니 능력도 좋대이. 공부만 하는 범생인 줄 알았드만.”

선생님의 너스레에 단유는 그저 웃음으로 화답했다.

“진짜 여자친구야?”

이번 물음은 상미에게서 나왔다. 마치 ‘그 쪽이 오른쪽이야?’라고 묻는 평범한 질문이었다.

“응.”

단유 역시 특별한 의미 없이 받아들였고, 사실관계를 인정하는 단답형 대답으로 돌려주었다.

“축하해.”

하지만 두 사람 사이의 짧은 대화로 인해 조금 분위기가 썰렁해졌다고 느낀 건, 명수뿐만이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선생님은 짧게 헛기침을 하며 입을 열었다.

“그래, 마 내가 단유 니니까 넘어간다. 명수 같았으믄 지 앞가림도 몬 하는 게 무슨 연애질이냐고 한 소리 할라캤는데.”

“제가 뭘 어쨌다고요···.”

주눅이 든 목소리로 어렵게 항변하는 명수를 향해 유쾌한 웃음을 터뜨리며 명수의 머리를 한 번 쥐어박았다.

“그니까, 니는 그냥 축구나 해라. 열심히 축구해갖고 나중에 프로 선수 되믄 인터뷰 때 꼭 이야기 하그래이. 중학교 때 수학 선생님이 연애를 못 하게 해서 훌륭한 선수가 되었노라고. 알앗제?”

“에이, 그런 게 어딨어요?”

“어딨기는 여 있제. 야, 그걸로 모자라면 고기도 먹여줄게. 고기 먹자.”

마침 주문한 고기가 나온 덕에 자연스럽게 분위기가 전환되었다. 불판이 올라가고 지글지글 맛깔스럽게 구워지는 갈비를 바라보던 중에, 사모님이 단유와 명수에게 말했다.

“가끔 와서 우리 지선이랑 놀아주고 그래요. 지선이도 오랜만에 좋아하는 오빠들 만나서 신이 난 거 같으니까요.”

저 얼굴이? 의아해하는 명수와 달리 단유는 고개를 끄덕였다.

“니는 좀 자주 와서 놀아주고 해도 된대이. 와서 우리 지선이 공부도 좀 갈켜주고 그래라. 우리 지선이도 니 덕에 전교 1등 할지 누가 알겠노, 그자?”

“그럼 더 좋죠. 지선아, 너도 좋지?”

“응.”

“저는요?”

“니? 니는 마 공이나 차뿌리면서 뛰기 바쁠 텐데 올 시간이 어딨노? 또 괜히 왔다가 지선이 죽이겠다고 달려들믄 우짤라꼬?”

억울하다는 듯, 명수가 두 손을 포개고 사정하듯 말했다.

“진짜 아니라니까요? 솔직히 예전에 지선이가 얼마나 저 괴롭혔는데요! 제가 오빠라서 그냥 참아주느라고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쟤한테 당한 거 생각하면, 어휴.”

명수가 가슴을 탕탕 치는데 주위 사람들은 그저 우스운 코미디극을 보는 기분이었다.

“오빠, 먹어.”

그 와중에 지선이 명수에게 고기를 건네자, 명수가 놀란 눈으로 지선을 바라보았다. 화해의 손을 먼저 건네는 것인가?

“익었는지 한 번 먹어봐봐.”

그럼 그렇지, 라는 시선을 던지면 고기를 곱씹더니, ‘덜 익었네!’라고 투덜거리는 명수였다. 덕분에 사람들이 또 한 번 웃을 수 있었다. 물론 모두가 다 편하게 웃은 것은 아니었지만, 눈치가 있는지라 차마 어른들 있는 자리에서 티나게 시무룩해 하거나, 티나게 긴장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 두 사람이었다.

****

“나 먼저 간다.”

“같이 가.”

“됐어.”

“어차피 같은 방향인데, 같이 가.”

명수는 기어코 상미를 붙잡았다. 뭐가 그렇게 불안한지, 눈빛이 흔들리는 명수를 보며 상미가 코웃음을 쳤다.

“왜? 내가 무슨 사고라도 칠까봐?”

“아니, 난 그냥.”

“너 아까 극장에서 단유 봤었지?”

“······.”

“봤네. 영화 보러 갔다더만, 거기서 본 거네.”

명수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상미는 말없이 걸음을 옮겨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걸음을 걷는 동안 과거의 한 장면이 눈앞을 아른거렸다.

단유가 어깨를 다쳐서 집에 혼자 있을 때였다. 병문안을 마다하길래 조금 섭섭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가 단유의 집을 찾았다. 마침 명수는 집에 없었고, 단유 혼자 집을 지키고 있었다. 단유를 곁에 두고 혼자 게임을 하던 상미가 단유와 이야기를 나누던 와중이었을 것이다.

“너 진짜 못 됐어.”

기말고사 공부나 하자며 병문안 온 사람 무안하게 만들 발언이나 하는 단유에게 상미가 한마디 했다. 하지만 속내는 달랐다. 자기가 굳이 명수가 없는 시간을 찾아와 단유 곁을 지키려 한 이유가 뭔지 묻지 않는 단유에 대한 섭섭함이었다.

“뭐가?”

“너 나 싫어하지?”

지나가듯 물었다. 의미 없이.

“아니.”

“그럼?”

기대감 없이 되물었다. TV화면에 시선을 둔 채로.

“좋아하지.”

평이한 어조의 말이었음에도 그 순간 상미의 가슴은 들뜬 강아지마냥 요동을 쳤다.

“진짜?”

“응.”

그 뒤로 별 의미 없는 대화가 오갔지만, 상미는 그때의 대화를 잊을 수가 없었다. 오죽하면 지금 그 대화를 상기하는 것만으로 눈시울이 뜨거워질까?

“괜찮아?”

저도 모르게 발걸음을 멈춘 탓에 명수가 얼굴을 들이밀며 걱정스레 물었다.

“뭐야, 너. 사람 민망하게. 저리 가.”

상미는 명수의 어깨를 툭 치고는 다시 걸음을 옮겼고, 그 뒤를 명수가 졸졸 따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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