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멤버 더 네임-374화 (374/956)

노는 게 좋아(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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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 축구 해 볼 생각 없나?”

라는 말이 절로 나올 상황이었지만, 감독은 입을 꾹 다물었다. 오히려 코치가 안달을 하다못해 감독의 멱살을 잡을 지경이었다.

“감독님, 저 선수 놓치면 안 됩니다!”

“쟤, 선수 아니다.”

“아무튼요! 그게 중요합니까? 저건 이미 고교 급, 아니 고교 급 중에서도 에이스급이란 말입니다!”

어디서 저런 무시무시한 ‘캐논슛’을 볼 수 있을까? 사실 단유가 키가 크고 덩치가 좋아서, 모르는 사람이 보면 고등학생이라고 볼 법도 했다. 하지만 요즘 아이들이 워낙 발육이 좋다 보니, 키가 큰 아이를 보지 못할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키가 큰 것과 힘이 좋은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게다가 힘이 좋은 것과 그 힘을 고스란히 발에 실어서 골을 넣는 것은 또 전혀 다른 이야기였고.

“저거는, 아니 저 애는 꼭 축구를 시켜야 합니다! 안 시키면 국가적 손해라고요!”

뭘 굳이 ‘국가’까지 들먹이나 싶을 수도 있지만, 솔직히 감독도 같은 생각이었다. 비록 유명하지 않은 프로축구 선수 생활이었지만, 프로에 몸을 담아 수백 경기를 치러 본 감독의 경험과 눈에 비쳐 봐도 저 정도 재목이라면 반드시 축구로 성공하고도 남을 아이였다. ‘라이언’? 저 정도면 ‘라이언’은 브런치 샐러드 감도 안 될 것이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

“무슨 문제 말입니까?”

“첫째는···저 녀석 전교 1등이다.”

“그건 지난번에도 말씀하신 거잖습니까? 그리고 방금 본 녀석의 실력이라면 전교 1등 중의 1등이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는 실력이라고요.”

그렇긴 했다. 전교 1등이라고 해봐야, 전국에 3천여 곳이 넘는 중학교 중 하나인 장계 중학교의 1등에 불과(?)하고, 그렇게 따지면 3천 명 중의 1명일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저런 실력을 갖춘 중학생을 찾자면, 전교 1등이 아니라 전국 1등 정도의 실력이라야 비슷하리라.

“두 번째는···.”

하지만 감독은 두 번째 이야기를 잇지 못했다.

“뭡니까?”

코치가 재차 물어봐도 감독은 입을 열지 않았다. 다만 이를 악물어 도드라진 턱의 근육이 감독의 심정을 대변할 뿐이었다.

“감독님! 이 신발이요, 단유가 선물해 준 거예요!”

라고 자랑하던 명수의 눈빛이 떠오른 감독은 쯧, 혀를 찼다. 아무리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프로축구 선수로 가기 위해서는 현실적으로 필요한 것들이 너무 많았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단연 필요한 것은 ‘돈’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사정을 대충이나마 알고 있는 감독으로서는 감히 그 길을 걸으라고 말하기가 미안했다.

‘재능만으로 미래를 열 수 있는 세상이 아니라는 게 안타깝구나.’

하지만 곧, 감독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네?”

“저 정도 재능이라면 권하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한 거지. 내가 너무 세상의 때를 탄 모양이다.”

꿈을 가져라, 꿈을 키워라, 버릇처럼 말하던 것과 달리 지레 포기부터 하는 습성은 언제 생겨난 것일까. 감독은 속으로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 자체가 화가 났다.

“지도자라면, 당연히 현실보다 꿈, 희망을 이야기해줘야 하는 법인데.”

코치는 감독의 혼잣말을 들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김단유!”

감독이 큰 소리로 불렀다.

“네?”

감독의 손짓에 단유가 성큼성큼 뛰어 왔다. 단유의 접근에 도리어 코치의 가슴이 두근거렸다. 과연 어떤 말로 단유를 꼬실까?

“너, 저기 남형이랑 바꿔서 뛰어봐.”

“네?”

“남형아! 단유랑 자리 바꿔봐.”

이게 무슨 소린가 싶어 코치가 상황을 보니, 명수와 상대 팀으로 서로 붙어보라는 소리였다는 걸 알았다.

“너희 둘이 한 팀인 건 너무 반칙이야.”

“아, 예.”

단유가 다시 운동장으로 뛰어들어간 사이에 코치가 물었다.

“무슨 생각이십니까?”

“아무래도 라이벌이 있어야 경기가 재밌지 않을까?”

쉬우면 재미가 없잖아, 라는 말은 하지 않아도 알 것이라 생각하며, 감독은 남은 연습 경기를 흥미롭게 지켜볼 요량으로 다시 팔짱을 꼈다.

****

회사에 도착한 나윤은 먼저 사무실로 올라가 팀장님을 뵀다.

“뭐야? 어제는 안 나올 것처럼 굴더니?”

‘기껏 큰소리치더니 불안하던가 보구나’라는 얼굴로 핀잔을 던진 팀장을 향해, 나윤은 담담히 말했다.

“연습하고 갈게요.”

받아쳐 봐야 좋은 소리를 들을 것도 아니니, 그냥 간단하게 용건만 말하되, 절대 당신의 뜻대로 끌려가지만은 않겠다는 각오를 표정으로 연기하며 돌아섰다.

연습실로 내려와 거울 앞에 선 나윤은 그제야 숨을 푹 내쉬며 자리에 철퍼덕 주저앉았다.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팀장의 떠죽거림과 사무실 직원들의 시선을 견디며 내려오는 게 쉽지만은 않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회사에 오지 않는 거였는데,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는 법 이랬던가.

“하아.”

한참을 그렇게 있던 나윤은 끙, 앓는 소리를 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애초에 이런저런 생각을 잊기 위해서 왔던 거 아니었나? 그냥 다 잊자, 다 잊고 미친 듯이 연습이나 하자.

나윤은 연습실에 비치된 컴퓨터를 조작해 음악을 튼 뒤, 연습실 가운데 섰다. 거울 속에 있는 자신을 보며, 그 얼굴에 깃든 어둠을 땀과 함께 씻어내자 다짐하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니, 시작하려 했다. 때마침 울린 핸드폰 벨 소리만 아니었다면.

****

팀을 바꾼 후 뛴 10여 분간, 두 팀은 정말 맹렬한 폭격에 시달려야 했다. 단유는 원했던 대로 미친 듯이 뛰어다녔고, 앞에 있던 수비수들이 움찔 놀라며 물러설 정도로 쾅쾅 소리를 내며 공을 찼다.

“기술은 다소 약하군요.”

“힘으로 기술을 압도하는군.”

처음의 임팩트가 컸던 터라, 잘 몰랐는데 자세히 살피니 세밀한 기술은 확실히 부족한 면이 있었다. 다만 공을 정확히 차는 타점과 드리블 시의 힘의 분배는 여타 아이들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였다.

반면, 명수는 비록 단유에 비해 힘이 모자란다는 소릴 들을지 모르나 다른 아이들에 비해 월등한 체력과 힘, 그리고 기술을 이용해 수비를 헤집고 다녔다. 그리고 적절한 포인트에서 정확한 공격과 패싱을 통해 골을 만들어냈다.

“저 정도 실력이면 수비가 막지 못하는군요.”

“확실히 명수도 실력은 고교 급이지.”

코치는 콧등을 긁다가 넌지시 입을 열었다.

“저 둘이면···.”

굳이 말을 잇지 않아도 감독은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알 수 있었다.

‘아마 저 둘이 한 팀으로 전방에 선다면, 과연 누가 막을 수 있을까?’

재능도 재능이지만 절친으로서의 호흡 역시 주목할 부분이니, 최고의 투 톱이 되리라 예상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리라.

10여 분의 맹폭 같은 공격이 오고 간 뒤, 점수를 세는 것이 무의미할 정도의 점수가 만들어졌다. 고작 10분이었지만, 마치 농구 게임을 하듯 한 사람이 넣으면 다른 한 사람이 넣는 식으로 골을 주고받았다.

덕분이랄까, 감독과 코치는 선수들의 수비 시 문제점을 파악해 내는 데 도움이 되었다.

“주혁아, 공격이 오면 공보다 먼저 공간을 차지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잖아? 그리고 단유 같은 애가 또 있을지는 몰라도, 상대가 오는데 피할 생각부터 하는 수비수가 어딨어? 결코 지지 않겠다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단 말이야!”

“시원아, 명수처럼 기술이 화려한 선수가 또 있을지는 몰라도, 혼자가 안 되면 두 사람이 협력 수비를 해야지, 너한테 오는 거 아니라고 가만히 있으면 어떡해?”

아이들은 ‘저런 애 또 없어요!’라고 소리치고 싶은 걸 꾹 참으며, 감독의 조언을 새겨들었다.

그 사이 수돗가로 가서 머리를 식히던 단유가 젖은 머리를 말리며 다가왔다.

“수고했다.”

“배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머리가 좋고, 예의가 바른 친구다. 하지만 감독은 미소 대신 더 굳은 얼굴로 단유를 바라볼 뿐이었다. 미소를 지을 마음의 여유가 없었기에.

“재밌었지?”

단유는 바로 답을 하지 않았다. 잠시 생각하더니 옅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네.”

“잘 됐군. 혹시···.”

“하지만, 축구는 제 길은 아닌 것 같네요.”

미리 선을 그어버리는 단유였다.

“공부가 더 재미있다는 거냐?”

“···네.”

하지만 속사정은 조금 달랐다.

대답한 바와 같이 ‘재미’는 있었다. 쉬지 않고 몸을 움직이며 흘리는 땀과 바람을 가르며 달리는 시원함과 힘을 실어 공을 차는 통쾌함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건 그저 ‘놀이’였다. 그저 달리고 공을 차는 행위가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여겨지지도 않았고, 끈질기게 매달려야 할 필요성도 없었다.

공부가 재미있고 없고를 떠나, 축구는 그저, 보드 게임방에서 게임을 하는 수준 이상의 의미가 되지 못하는 것이었다.

“···아쉽구나.”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단유는 달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준 감독님과 코치님에게 정중하게 인사를 드린 뒤, 스탠드에 놓아둔 겉옷을 가지러 가려 했다.

“그런데 말이다.”

“네?”

“혹시 축구부를 도울 생각은 없니?”

단유는 감독의 말이 무슨 의미인가를 궁리해도 알기가 어려웠다. 머쓱한지 헛기침을 두어 번 한 감독은 쓰고 있던 모자를 고쳐 쓰며 입을 열었다.

“알다시피 우리 팀에는 서브 골키퍼가 없다. 그래서 만약 주전 골키퍼가 나오지 않으면 대신 봐줄 선수가 없지. 비록 시합 때는 다른 포지션 선수를 서브로 넣고 있긴 해도, 전문적으로 골키퍼를 준비하는 선수가 아니다 보니 어려움이 있다.”

감독은 단유의 표정을 살핀 뒤, 다시 말을 이었다.

“알다시피 추계대회가 또 있거든? 그런데 사실 추계대회 때 강한 팀들이 많이 참여한단 말이다.”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어요. 그런데 그러면 제가 다른 선수의 기회를 뺏는 거 아닌가요?”

“어디까지나 서브다. 주전은 계속 원래 멤버가 할 거야. 다만 불가피하게 주전이 골키퍼를 서지 못할 때 도와달란 이야기다. 오히려 니가 도와줌으로써 서브를 번갈아가며 맡는 선수들이 원래 담당으로 뛸 수 있게 되니 도움이 더 된다고 할 수 있겠지.”

단유는 연습에 열심히 참여하지 못함을 이야기하며, 그로 인해 선수들 사이에 불만이 생길 수 있지 않겠냐는 걱정을 드러냈고, 감독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아마 니가 도와준다고 하면 다들 좋아할 거다.”

지금까지 몇 번의 연습 경기를 가지면서, 아이들 역시 단유의 골키퍼 실력을 높게 평가했다. 게다가 오늘의 실력을 보면 결코 거부할 리 없다고 감독은 확신했다.

“이름만 올려놓았다가 시합 때 벤치를 지켜주면 고맙겠구나. 가끔 연습 때 나와주면 더 고맙겠고.”

결국 단유는 부담을 최대한 줄여주려는 감독의 배려를 고려해 제안을 받아들였다. 감독이 그 사실을 아이들에게 알렸고, 아이들은 박수로 단유의 결정을 환영했다. 명수가 달려와 단유의 등에 업히며 기쁨을 표현했고, 단유는 명수를 업은 채로 스탠드로 향했다.

“지금 바로 가려고? 점심 먹고 가. 우리도 이제 점심 먹으러 갈 거야.”

춘계 대회 우승 후, 학부모와 학교의 지원이 많아져서 이렇게 오전 연습 후 단체로 점심도 먹을 수 있게 되었단다. 단유는 괜찮다며, 옷을 주워들었다.

겉옷 주머니에 들었던 핸드폰을 꺼내 바지에 집어넣으려던 단유는 읽지 않은 문자 메시지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누구지?’

****

“여보세요?”

[전데요, 단유.]

그 순간, 나윤은 사고 회로가 정지하는 기분이 들었다.

[여보세요?]

“어, 어. 왜?”

나윤은 자신이 더듬거리고 있다는 사실도 자각하지 못할 정도로 정신이 없었다.

‘왜 전화했지? 혹시 나한테 마음이 있는 걸까?’

‘내가 보고 싶어서 전화했다고 말하면 뭐라고 대답하지?’

‘사실은 나도···.’

‘어머, 너 왜 그러니?’

‘우린 아직 학생이고···.’

‘사실은 나도···.’

‘차분하게 대답해야 할까, 아니면 웃으면서 이야기할까, 진지해야 하나?’

[그게, 누나 문자가 와 있어서요.]

“···어?”

나윤은 단유의 말이 무슨 뜻인지를 이해할 수 없었다.

[30분 전쯤에 문자가 왔던데요?]

나윤은 부랴부랴 핸드폰을 조작해서 문자 메시지를 확인했다.

「보고 싶어.」

나윤은 자리에 주저앉았다. 아니 힘이 풀려 쓰러졌다. 그 바람에 꽤 큰 소리가 빈 연습실을 울렸다.

[여보세요? 무슨 일이에요?]

“아, 아무것도 아니야.”

[어딘데요?]

“나 회사···아, 아냐.”

나윤은 눈물이 핑 돌았다. 갑자기 쓰러지면서 바닥에 찧은 무릎이 아픈 까닭이리라.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며 소리를 내지 않으려는 나윤은 대신 빈손으로 머리를 힘껏 쥐어뜯었다.

‘미쳤어. 미쳤어. 미쳤어.’

[회사에요?]

“아냐, 아냐···. 그, 무, 문자를 내가 보···.”

‘문자 내가 보낸 거 아냐’ 라고 말하고 싶은데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도대체 언제 이런 ‘민망한’ 문자를 보냈던 거지? 30분 전이면···.

‘버스 안에서 보낸 건데. ···도대체 버스에서 내가 뭘 했었지?’

그저 바깥을 보고 있었을 뿐인데. 가끔 버스 안에 서 있는 사람도 보고, 그러다가 핸드폰도 잠시 보···았었나?

‘아무리 그래도 저건 너무 적나라하잖아! 바보! 멍청아!’

[여보세요?]

“으, 응?”

[잘못 보내신 거예요?]

뭐라고 하지? 잘못 보냈다고? 그럼 다른 남자한테 보낸 거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그런 오해를 받고 싶진 않았다.

그렇다고 너에게 보낸 거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도 없는 입장이라 나윤은 그저 막막한 기분이 들었다.

[여보세요?]

“으, 응?”

갑자기 핸드폰 속에서 웃음소리 비슷한 소리가 들렸다. 왜 웃지?

그때였다. 똑똑, 연습실 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려 나윤은 고개를 홱 돌렸다.

“누구세요?”

아마도 자신이 넘어지면서 큰 소리를 낸 바람에 옆 연습실에 있던 사람이 찾아온 모양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던 찰나, 문이 열리며 들어온 사람은 단유였다.

“여기 계셨네요.”

나윤은 입을 쩍 벌린 채, 미소를 지으며 연습실 안으로 들어오는 단유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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