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멤버 더 네임-368화 (368/956)

예언과 예측 사이(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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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고발자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뜬금없이 시작된 단유의 이야기에 장 형사는 고리눈을 하고 바라보았다.

“내부고발자를 보호해주는 제도가 없다면, 양심선언도 없을 것이고 비리 척결에 어려움을 겪을 거라는 취지의 사설이었던 것 같아요.”

“니가 내부고발자라도 된다는 이야기야?”

단유는 고개를 저었다.

“언론에는 취재원을 보호하기 위해, 법정에서도 묵비권을 행사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경찰도 정보를 제공해주는 이의 신원을 보호하기 위해 비밀을 지킨다는 이야기도요.”

“미안하지만, 넌 그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는 것 같다만?”

“제가 아저씨한테 이야기를 털어놓을 때 제 행적에 대해 묻지 말아주십사 부탁을 드렸던 것으로 기억하는데요.”

“너의 증언이 사건 해결에 도움이 되었다는 것은 인정한다만, 그것과 너의 행적은 전혀 별개의 것으로 보이는구나. 혹시 말 못할 비밀이라도 있는 것이냐?”

“그럼요. 말 못할 비밀이니까, 이렇게 말씀드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죠.”

“그렇다면 더더욱 호기심이 생기는걸? 만약 너의 그 비밀이 범죄나 좋지 않은 일에 이용될 경우 꽤 곤란해질 것 같아서 말이야.”

오늘은 전교생이 모두 성적표를 받았을 것이다. 그 말은 지금 운동장에서 약 먹은 원숭이들처럼 미친 듯이 뛰어다니는 아이들 역시 성적표를 받았다는 뜻이다. 어쩌면 성적이 좋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그 분풀이를 저렇게 해소하는 것일지도 모르니.

단유는 운동장에 시선을 둔 채 말을 이었다.

“예언과 예측은 달라요. 둘 다 미래를 설명한다는 점에서 비슷하지만, 예측이 주장의 근거를 바탕에 두고 한다면, 예언은 증빙할 수 있는 근거 없이 미래를 짐작하는 것이죠.”

아이들이 찬 공이 공중을 비행하다 운동장 끝머리쯤에 다다라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아이들은 지치지도 않는지 쉴 새 없이 뛰어다닌다. 아마도 공을 차는 게 목적은 아닌 것 같았다. 공을 차는 게 목적이라면, 저렇게 비효율적으로 우르르 몰려다닐 이유가 없으니까.

“범죄에 이용될 소지가 있다고 하셨는데, 그 근거가 있나요?”

“······.”

꼬마의 말에 따르면, 자신은 영락없이 예언자가 될 판이었다.

“처음의 이야기로 돌아가서, 내부고발자든 취재원이든 정보원이든 그 사람들이 하는 말의 신빙성을 의심할지언정, 그 사람의 정체를 드러내서 알리려고 하지는 않아요. 그 사람들 역시 나름의 각오를 했겠지만, 왜 그런 말을 하느냐고 추궁당하지는 않잖아요? 만약 그렇게 추궁하는 사람이 있다면, 부당하다고 느끼지 않을까요? 제가 지금 그렇게 느끼는 것처럼요.”

“너 참 말 잘하는구나.”

장 형사는 감탄을 터뜨리며 단유를 바라보았다.

“솔직히 중학생이니까, 전교 1등이든 뭐든 얼마나 하겠냐고 생각했었는데, 역시 다르구나.”

장 형사는 히죽 웃으면서 단유의 머리를 가볍게 톡톡 두드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난 좀 들어야겠다. 이제는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서 내 감이 꼭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고 하거든.”

단유는 어깨를 으쓱거려 보였다. 되도록 이런 식으로 해명하고 싶진 않았는데.

“마술사가 흔히 쓰는 트릭 중의 하나로 미스디렉션(misdirection)이란 게 있는 데 아세요?”

“미스, 뭐?”

“미스디렉션. 예를 들면 사람의 시선을 한쪽으로 유도한 뒤, 다른 쪽 손으로 마술을 완성 시키는 거예요.”

단유는 양손을 내밀었다. 손바닥을 펼쳐 앞뒤로 흔들어 보였다. 아무것도 없음을 보여준 뒤, 주먹을 쥐었다. 그리고 오른손과 왼손의 간격을 벌렸다. 장 형사의 시선이 오른쪽과 왼쪽을 번갈아 오가며, 어떤 변화를 찾으려 함을 단유는 알 수 있었다.

어깨보다 좀 더 넓게 손을 벌렸을 때, 오른손을 펼쳤다. 그 손 위에는 동전이 하나 놓여 있었다.

“마술사냐? 어떻게 한 거야?”

장 형사는 놀란 얼굴로 동전을 보며 물었다.

“간단한 트릭이에요. 두 손이 벌어지는 틈에 동전을 꺼내는 거죠. 미스디렉션, 간단하죠?”

“동전을 어디에서 꺼냈는데?”

“아저씨. 그건 아저씨가 찾아야 할 문제지, 제가 알려줄 이야기는 아니지 않나요? 마술을 볼 때마다, 마술사에게 찾아가서 어떻게 마술을 하는지 물어볼 심산이신 게 아니라면요.”

장 형사는 입이 벌어진 줄도 모르고 단유의 얼굴과 손을 바라보았다. 소매를 걷은 상태라 소매 안에 숨겨둔 것도 아닌 것 같았고, 그렇다고 주머니 근처로 손을 가져간 것도 아니니, 마치 공중에서 동전을 끄집어낸 것 같았다.

“간단하죠? 그래서 ‘보는 법’이 중요하다는 거예요.”

장 형사는 감히 어린 꼬마라고 얕볼 수만은 없는 단유를 평소 후배 대하듯 윽박지르지도 못하고, 속으로 끙끙 앓아야 했다.

‘뭔가 계속 홀리는 기분이야.’

단유는 피식 웃음을 지으며, 다시 운동장으로 시선을 던졌다.

“저기 저 공 보이시죠?”

이번엔 또 웬 공인가 싶어, 시선을 돌렸더니 시커먼 땀방울을 턱 끝에 주렁주렁 달고 운동장을 뛰어다니는 아이들이 보였다. 그 아이들 무리 속에서 치열한 공 뺏기가 진행 중이었다.

‘저 공이 왜?’

라는 의문을 가지고 잠시 바라보다가 문득 옆으로 돌렸더니, 조금 전까지 옆에 있던 단유가 보이지 않았다.

“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장 형사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단유를 찾아보았지만, 주변에는 그림자 하나 없었다.

“뭐야?”

조금 전까지도 바로 옆에 있던 아이가 잠시 한눈을 판 사이에 사라지다니. 황급히 교문 밖으로 뛰어나가 보았지만, 역시 단유는 보이지 않았다.

꼭 귀신에 홀린 것만 같은데, 귀신은 아닐 테니 그저 황당할 뿐이었다.

“미스디렉션이라고 했나?”

장 형사는 머리를 긁적이다 헛웃음을 짓고 말았다. 다음에 꼭 비밀을 알아봐야겠다고 다짐하며. 또 다음에는 절대 한눈팔지 않겠다 다짐하며.

****

학교가 정상 분위기를 찾는 데는 꽤 긴 시간이 걸렸다. 살인사건이라는 흔치 않은 일이 벌어졌는데, 아무렇지 않게 넘길 아이는 드물다 할 수 있었으니, 선생님들이 꽤 고생을 많이 했다.

그러다 보니 시간의 흐름마저 잊어버릴 만큼 혹독하고 치열한 상반기 학사일정을 보내야 했다. 원래 4월 말 중간고사가 끝난 뒤 가질 예정이었던 수련회는 취소가 되었고, 5월의 체육대회 역시 잠정보류에서 취소로 결정되었다. 하지만 학업 진도를 위해 모든 과정을 보류 및 취소로 전환할 수만은 없었으니, 학부모 수업 공개도 해야 했고, 체력검사도 해야 했다.

그 와중에도 인정 사정 볼 거 없다는 듯, 상위 부서로부터 쏟아지는 서류와 공문과 보고서 더미들에 허우적대느라 더욱 정신없는 상반기를 보내야 했던 선생님들이었다.

“1학기 기말고사는, 최대한 내신 보충이 되도록 부탁드립니다.”

라는 교감 선생님의 지령은 곧, 최대한 난이도를 떨어뜨려서 전반적인 성적 향상으로 이끌어내라는 뜻으로 해석되었으며, 때문에 변별력을 상실한 기말고사가 학생들의 손에 들리게 되었다.

“미친 거 아냐?”

불과 2달 전에 들었던 말 같은데, 라고 생각하던 차에 명수가 히죽 웃으며 지태의 어깨에 손을 걸었다.

“문무를 겸비한 지성인이 바로 나란 말씀이다.”

날이 갈수록 족집게 선생이 다 되어가는 단유 덕분인지, 아니면 어처구니없게도 난이도가 대폭 하락한 시험 때문인지, 명수가 무려 100점짜리 시험지를 자랑하기에 이르렀다.

“살다 살다 명수가 100점 받는 경우를 다 보네.”

하은이 얼이 빠진 모양으로 명수의 시험지를 바라보다, 명수를 안아 주었다.

“어, 왜, 왜 이러세요?”

명수는 평소와 달라도 너무 다른 하은의 모습에 당황했다.

“선생님이 바빠서 챙겨주지도 못했는데, 이렇게 성적도 좋으니까 어떻게 표현할 방법이 없네. 너무 고마워서 그래. 고마워서.”

“언제는···.”

명수는 허우적대다 단유와 눈이 마주친 후, 뒷말을 삼켰다.

“단유가 많이 도와줘서 그래요. 제가 뭘 한 게 있다고···.”

“그래도 우리 명수가 이렇게 공부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준다는 게 고마워서 그래.”

하은에게 안긴 상태라 하은의 얼굴을 보진 못했지만, 하은의 목소리가 젖어 있다는 사실을 안 명수는 가만히 서서 하은을 마주 안았다.

“저도 고마워요, 선생님.”

잠시 후, 명수에게서 떨어져나온 하은은 명수를 보며 씩 웃었다.

“자, 그럼 명수가 백 점 맞은 기념으로 외식이나 할까?”

“진짜요?”

“마침 선생님도 월급을 탔으니까, 내가 쏜다!”

“우와!”

명수는 옷 갈아입고 오겠다며 허겁지겁 방으로 뛰어들어갔다. 그 사이 눈꼬리에 매달린 눈물을 찍어내며, 손에 들린 시험지를 천천히 훑어보기 시작했다.

“근데 너희 선생님들도 대단하다. 어떻게 이런 문제를 다 내니? 이건 틀리는 게 더 힘든 거 아냐?”

“그래도 틀리는 애들은 틀리더라고요.”

점수를 맞춰보던 아이들이 시험지를 움켜쥐고 울부짖던 모습을 떠올리며 대답했다. ‘이렇게 쉬울 리가 없어’라며 머리를 한 번 더 써서 답을 고른 아이들은 여지없이 틀리고 말았다. 덕분에 또 한 번 대(大)파란의 시험이 벌어졌고, 아마 오늘내일, 혹은 일주일 정도 선생님들은 학부모들의 심한 항의에 시달릴 것이다.

“넌?”

“글쎄, 일부러 틀리기가 힘들 정도?”

“역시. 나이를 먹을수록 겸손보다 거만함을 배우는구나, 김단유.”

“어떤 선생님 덕분이죠.”

“그 어떤 선생님은 늘 겸손하라고 가르친 것 같은데.”

“그 어떤 선생님은 늘 자기 자랑에 여념이 없으시더라고요.”

“난 아닌 거 같은데?”

“착각도 심하시네요.”

하은은 단유의 머리를 붙잡고 헤드락을 걸었다.

“이 녀석!”

“선생님, 밥 먹으러 가요!”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사복으로 갈아입은 뒤, 신발까지 신으면서 선생님을 부르는 명수였다.

****

우여곡절 끝에 방학이 다가왔다. 선생님들은 그제야 한숨 돌릴 수 있게 되었다며 방학식을 반겼고, 아이들은 귀신 나오는 학교에서 떠나게 되었다며 아쉬움(?)의 한숨을 지었다.

교장선생님은 여전히 새 교장실이 완전히 꾸며지지 않아, 교무실의 임시 거처에서 방송으로 방학식을 진행하였다.

“학생 여러분들은 더운 여름에도 지치지 말고, 학생으로서의 본분을 지키며, 방학 중에도 학업에 대한 끈을 놓지 마시길 바랍니다.”

도하는 턱을 괸 채 교실 앞 모니터를 바라보다 중얼거렸다.

“공부하란 소리를 왜 저렇게 늘인대?”

“넌 조금 새겨들을 필요가 있어.”

“나?”

단유는 고개를 끄덕였다. 명수도 점수가 올라서 생애 최고일지도 모를 내신 성적을 얻은 바로 그 시험에서 최하위권을 차지한 도하였다.

“난 별로. 어차피 대학도 안 갈 건데, 공부해서 뭐해.”

“생각해 둔 게 있어?”

“아니. 천천히 찾아보지 뭐.”

한결같이 여유로운 도하는 하품을 늘어지게 하더니 책상 위에 철퍼덕 엎어졌다. 과거에는 주변과 담을 쌓을 요량으로 엎드려 잠을 청했다면, 지금은 햇볕 따뜻한 양지에서 꾸벅 조는 새끼 고양이처럼 오수를 즐기는 도하였다.

“방학 잘 보내라.”

단유는 도하의 잠을 깨우지 않았다. 방학식이 끝날 때까지. 차마 깨우기 미안할 정도로 곤히 자는 도하의 얼굴이 평화스러워 보였던 탓이었다. 짝도 깨우기 미안할 정도인데 다른 아이들이라고 오죽할까? 결국 교실에 홀로 남아 잠을 청하는 도하였다.

“단유야!”

중앙 현관 근처에서 단유를 기다리던 명수와 지태, 채윤이 보여 그 곳으로 향했다.

“오늘 제대로 한 번 놀아볼까?”

“또?”

“또는 무슨 또 야? 어디 갈까? 보드겜방?”

단유가 고개를 젓자, 지태가 왜 그러냐고 물었다.

“거기 너무 비싸.”

“오늘은 특별한 날이잖아? 오늘 같은 가서 즐겨야지.”

“됐어.”

“가자, 응? 아니면 노래방?”

하지만 어쩐지 오늘따라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이유를 모르겠지만, 굳이 변명하자면.

“오늘은 영 컨디션이 안 좋네. 놀 기분이 아니야.”

지태가 허리에 손을 얹고 혀를 찼다.

“니가 언제는 놀 기분이라서 놀았냐? 그냥 따라와. 우리가 책임지고 즐겁게 해 주마.”

지태의 말에 명수와 채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눅눅한 공기가 와 닿는 느낌이 좋지 않은데. 단유는 어깨를 으쓱여 보이곤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셋이 열심히 새로운 놀 거리를 궁리하며 교문을 나설 때였다.

“어?”

먼저 발견한 것은 채윤이었다.

“저기, 저···맞지?”

채윤이 단유의 팔을 붙잡고 소심하게 손가락만 들어 어느 방향을 가리켰다. 단유가 그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옮겼을 때, 그곳에서 의외의 인물을 발견했다.

“누나?”

눈이 마주치자 그녀, 나윤이 슬쩍 손을 들어 아는 척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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