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언과 예측 사이(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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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고사가 시작되기 전 벌어졌던 사건은 중간고사가 끝나는 시점과 맞물려 끝이 났다. 때문에 몇몇 음모론자들은 시험 귀신이 붙어 생긴 일이라며 호들갑을 떨었고, 몇몇 아이들은 귀신이 어디 있냐며 이사장실 안에 몰래 들어가서 인증을 하는 등의 허세를 부리기도 했다. 물론 그러다 걸리면 학년 주임 선생님과 오붓한 상담 시간을 가져야 했지만 말이다.
아무튼 이 사건으로 인해 학교가 당한 피해는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일단 이사장의 죽음, 아니 살해라는 불명예를 떠안아야 했으며 이로 인한 이미지 실추는 쉽게 회복될 만한 것이 아니었다. 게다가 그 사유가 아들의 문제로 인해 벌어진 일이기에 재단으로서는 난감할 따름이었다.
두 번째는 수업 문제였다. 사건 발생 후부터 시험이 끝나고 난 뒤까지도 수업이 정상적으로 진행이 되지 않는 분위기가 있었다. 학생들이 수업에 제대로 집중을 하지 못하는 문제도 있지만, 선생님이라고 다를 바 없는 것이 선생님들끼리 모일 때면 그 사건에 대한 이야기가 오가면서 어수선한 분위기가 이어진다는 것이 문제였다.
하지만 두 사건이 모두 시간이 해결해줄 수 있는 문제라면, 다른 한 문제는 현재 학교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였다.
“큰일이군요.”
“면목 없습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지난 이야기 해서 뭐합니까?”
교장 선생님은 앞에 놓인 서류를 내려놓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 서류는 이번 중간고사의 결과가 요약된 문서였다.
한 마디로 이번 중간고사는 대대적으로 ‘망했다’. 심각할 정도로 점수가 내려가 아이들의 내신에 굵은 주홍글씨가 새겨질 정도로 심각했다. 한두 학생이면 모를까, 학교 전체 학생들의 내신이 떨어질 정도가 돼버리면, 내신관리를 잘못한 학교 측에 문제가 있다고밖에는 달리 설명할 수가 없었다.
살인 사건의 범인이 잡히고, 종료된 시점이 중간고사가 시작되기 며칠 전이었다. 조금만 더 늦었다면, 차라리 중간고사를 미뤘을 텐데, 이미 시험문제가 모두 출제된 마당인 데다 사건까지 마무리되니 학교 측에서는 굳이 계획된 일정을 연기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거의 2주 넘게 수업이 정상적으로 진행되지 않았던 점과, 살인 사건의 여파가 이리도 깊이 남을 줄 몰랐던 점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학생들은 시험을 잘 보지 못했고, 결국 대량 낙제에 준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1학년 수학은 평균이 32점, 2학년은 41점, 3학년은 29점? 이게 말이 됩니까?”
각 학년 수학 선생님들이 단체로 미쳐서 수학 난이도를 올렸다면 모를까, 이런 평균 점수가 나오도록 시험문제가 만들어진다는 게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죄송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몇 주간 마음고생이 심했던지, 살이 마르고 터서 볼이 핼쑥했던 교감은 더욱 마른 얼굴로 고개를 조아렸다.
“영어도, 국어도···. 엉망이네요.”
“···죄송합니다.”
교장 선생님은 얼마 남지 않은 머리숱을 붙잡고 뱃속 깊이에서 올라오는 감정을 토해냈다.
“어떻게 하실 겁니까?”
“일단, 기말고사 때···.”
“교감 선생님, 지금 시험만 문제인 게 아니잖습니까? 눈이 없어요, 귀가 없어요? 여기서도 보이는 문제가 선생님 눈에는 안 보인답니까?”
교장 선생님은 임시로 교무실 가장 안쪽에 파티션을 설치하여 교장실을 대체한 업무공간을 마련하고 있었다. 아마 이것도 일선의 선생님들이 불편하게 느낄만한 요소이리라.
“이사장실 없애죠.”
“네?”
“아예 이사장실 구조변경해서 창고 같은 부속실로 만들고, 교장실도 옮기죠.”
좋은 핑계다. 아마 교장실을 옮기고 싶었던 거겠지, 라고 생각하며 교감 선생님은 다시 한번 고개를 조아렸다.
“조치 취하겠습니다.”
“이사장실 폐쇄는 제가 직접 재단에 알리겠습니다.”
‘학교 면학 분위기 정상화’를 위한 핑계가 곧 재단에 전달될 것이다.
“그리고 기말고사 때 평균 점수 좀 많이 올라가도록 하시고요.”
“알겠습니다, 선생님.”
그것으로 이야기가 모두 마쳤다고 생각한 교감 선생님이 자리를 물러나려 할 때, 교장 선생님은 다시 그를 붙잡았다.
“이사장실과 교장실 변경을 맡을 업체는 재단에서 선정한 업체로 하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손대지 말란 소리겠지. 애초에 꿈도 꾸지 않았습니다, 선생님. 교감 선생님은 고개를 숙여 보인 뒤,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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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단유.”
이름이 불린 단유는 교실 앞으로 나가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2학년 첫 스타트를 또 전교 1등으로 시작하는구나. 수고했다.”
“고맙습니다.”
단유는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자리로 돌아갔다.
“대단하다, 대단해.”
도하의 말은 순수한 칭찬이자 감탄이었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냐?”
옆에서 지켜봤기에 더 신기한 모습이었다. 도하가 알기로 학원에 다니는 것도 아니니, 다른 아이들처럼 선행학습을 하는 친구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수업 시간에 열심히 집중하는 스타일인가 싶었는데, 3월 초반까지는 그런 모습을 보이다가 4월에 들어서는 거의 수업을 듣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런데도 전교 1등이라는 성적을 거두니, 아무래도 평범한 녀석들과 아예 차원이 다른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진도하.”
“네.”
“넌 니 짝한테 좀 배우라니까 뭐 했어?”
“······.”
“좀 배우자, 응?”
도하가 받은 성적표는 그야말로 최하위권이었다. 반에서 꼴찌라는 사실도 그렇고, 전교 순위로 보아도 제일 뒤에서 두 번째였다.
“재밌지 않아?”
“뭐가?”
“전교 1등과 전교 꼴찌가 같이 앉아 있는 게?”
단유는 피식 웃었다.
“정말 심각함과는 거리가 멀다, 너.”
“심각할 상황이야? 이게?”
“아니야?”
“말했잖아. 난 편하게 지내고 싶다고. 난 이제껏 살아오면서 요즘처럼 편하게 지낸 적이 없다니까.”
단유는 그렇게 말하는 도하를 물끄러미 지켜보았다. 확실히 그의 말이나 행동에서 그림자 같은 어둠은 보이지 않았다. 명수처럼, 그러니까 공부에 아예 관심이 없는 대신 다른 쪽으로 집중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의 말마따나 이전과 달리 얼굴에 그늘 한 점 보이지 않는, 탈속한 도인의 얼굴에서나 볼 법한 여유로움이 엿보이는 도하였다.
단유도 귀가 있어, 이번 시험이 별로 어렵지 않았는데도 점수가 잘 나오지 않았다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상대 평가에 의해 순위가 정해지는 것과 달리 내신이 엉망이 됐다며 울상을 짓는 아이들도 보였다.
시험을 망쳐서 우는 아이가 있고, 도하처럼 이러나저러나 마찬가지라며 무관심한 이들이 있는가 하면, 성적이 급상승해서 기뻐하는 아이도 있기 마련이었다.
“미친 거 아냐?”
지태는 명수의 성적표를 보고 부들부들 거렸다.
“넌 왜 이렇게 점수가 많이 오른 거야! 난 떨어졌는데!”
비련의 여주인공 코스프레라도 하는지 애절한 얼굴을 하고 명수를 향해 울부짖는 시늉을 하는 지태에게 명수가 입꼬리를 올리며 답했다.
“원래 세상이 이래. 좋을 때가 있으면 나쁠 때가 있고, 나쁠 때가 있으면 좋을 때가 있는 법.”
“인생이란 너울의 높낮이가 있듯이.”
명수의 말에 채윤이 맞장구를 쳤다. 둘은 히죽 웃으며 하이파이브를 했다.
이들에게도 놀라웠던 일이 벌어졌으니, 명수가 무려 2학년 전체에서 중간 등수를 차지했다는 점이었다. 늘 하위권을 차지하던 명수의 성적이 무려 중간 이상이 된 것은, 물론 명수의 노력도 있지만 결국 학교 전체를 장악했던 사건의 여파 때문이었다. 명수도 그 일에 흔들리지 않았느냐고 묻는다면,
“그게 나랑 뭔 상관?”
이었다. 애초에 그런 일에 관심을 두는 성격은 아니었던 명수였기에 덜 흔들렸고, 집에서 단유와 시험공부를 했던 효과가 제대로 발휘된 탓이었다. 채윤 역시 명수와 비슷한 이유로 성적이 그리 높지 않음에도 전교 등수가 오른 케이스.
반면 지태는 특유의 사교력을 바탕으로 아이들과 어울려 온갖 음모론과 초자연적 발견물에 대한 토론을 나누느라 공부에 소홀했던 측면이 그대로 시험에 반영되고 말았다.
“이럴 수가. 만약 이러다가 명수한테 지게 되면, 난 더 이상 공부를 할 의욕을 갖지 못할 거야.”
“오버한다, 자식. 야, 오늘은 기분도 좋은데 내가 떡볶이 쏜다!”
“이예!”
명수의 제안에 가장 먼저 손을 들고 기뻐한 것은 지태였다.
“스트레스는 먹는 걸로 풀어야 제맛이랬다!”
라며 명수에게 ‘가방 들어줄까’라고 제안을 하기까지 했다. 그렇게 4 사람이 교문 밖을 나설 때였다.
“야, 저기.”
채윤이 가리킨 방향에서 단유네는 눈에 익은 한 사람을 발견했다. 그 사람 역시 단유네를, 정확히는 단유를 발견했다. 손을 들어 아는 척을 하더니, 단유에게로 다가왔다.
“형사 아냐?”
“···맞아.”
단유는 씁쓸한 미소를 띠며 형사를 기다렸다.
“무슨 일이세요? 설마 저 때문에 오신 건가요?”
“어른을 보면 임마, 인사부터 해야 하는 거야.”
“혼자이신 걸 보면, 개인적인 용무로 오신 거라고 봐도 되나요?”
“야, 요녀석 빈틈이 없네?”
형사는 히죽 웃으면서 단유 뒤에 서 있던 명수네를 바라보았다.
“친구들?”
“네.”
“어디 가는 중이었냐?”
지태가 나서서 대답했다.
“얘가 떡볶이 사준다고 해서 분식집 가는 중이었는데요?”
“그래? 그럼 같이 갈까?”
“형사님이 사주시는 거예요?”
“그래, 사주마. 뭐, 그게 별거라고.”
학교 앞 분식점에 친구들과 우르르 모여서 이쑤시개 하나로 떡을 집어 먹으며 수다를 떨던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며 형사는 호기롭게 외쳤다.
몇 분 뒤, 형사는 분식집 메뉴판에 적힌 가격을 보고 한 번 놀랬다. 아이들이 시킨 양에 또 한 번 놀래고, 끝도 없이 ‘처먹는’ 일에만 집중하는 명수와 지태를 보며 또 한 번 놀랬다.
“잠깐 이야기 좀 할까?”
형사는 단유와 따로 이야기하기를 청했고, 단유는 다른 아이들을 먼저 돌려보냈다.
“뭐 마실래?”
“아뇨, 그냥 이야기만 하시죠. 이미 많이 쓰신 거 같은데.”
“얼굴에 티가 나든?”
“저 말고 다른 아이들도 알았을걸요?”
“요즘 떡볶이는 왜 그렇게 비싼 거야? 우리 때는 학교 앞 떡볶이라고 하면 한 접시에 천원이고, 두 사람이 배를 채우고도 남았어.”
“그런 경우에 시대가 변했다, 는 표현들을 자주 쓰시더군요.”
단유는 슈퍼에서 생수 한 병 사서 운동장 근처의 벤치로 향했다. 형사는 단유 옆에 앉아 운동장을 바라보다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거의 매일 학교로 출근해서 익숙할 줄 알았는데, 또 여기서 보니까 낯설게 느껴지네. 이 운동장.”
“보는 시점이 달라지면 익숙한 대상도 낯설게 보일 때가 있죠.”
형사는 의외라는 눈으로 단유를 바라보았다.
“너 되게 똑똑하구나, 그런 말도 할 줄 알고.”
“제 말이 아니고 러시아의 빅토르 쉬클로프스키라는 분의 말이에요.”
“응?”
“러시아 형식주의자인 쉬클로프스키의 ‘낯설게 하기’라는 표현법에 그런 설명이 나오더라고요.”
“···음, 뭐 그런 전문적인 건 모르겠고. 아무튼, 뭐.”
장 형사는 헛기침을 두어 번 한 후, 본론을 꺼냈다.
“실은 아무래도 그날 너의 행적이 궁금해서 말이야.”
“사건과 전혀 상관이 없잖아요.”
“상관은 없지만, 나한테는 중요한 문제다. CCTV와 경찰의 감시망을 벗어나 있을 수 있다는 건 큰 문제거든. 비록 너는 사건과 관련이 없었지만, 앞으로 벌어질 또 다른 사건들에서 너와 같은 경우가 있다면, 난, 아니 우리 경찰들은 꼼짝없이 당하고 말 테니까.”
‘니가 범인이 아니어서 다행일 정도라니까’라며 너스레를 떠는 장 형사에게 단유는 달리 할 말이 없었다. 솔직히 이렇게 찾아와서 물어볼 줄은 몰랐으니까.
애초에 자신의 행적을 밝힐 때 각오한 면이 없잖아 있었다. 앞으로 조금 귀찮은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고. 하지만 사건의 범인이 빨리 잡히면서 단유는 귀찮은 일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렇게 다가와서 캐물을 줄이야.
갑자기 웃음이 났다. 행정실의 그 여자분도 나처럼 방심하고 있었겠지, 라고 생각하며.
“왜 웃냐?”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냥 개인적인 일로.”
“어쩐지 경찰을 비웃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만.”
“아뇨, 그런 건 아닙니다.”
“됐다. 그럼 털어놔 봐.”
단유는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