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언과 예측 사이(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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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장실 앞을 지키는 경찰들에게 간단한 손 인사를 보낸 후, 2층 교무실로 가기 위해 계단을 오르던 장 형사는 쿵쾅거리는 소리에 걸음을 멈추었다. 곧 2층에서 허겁지겁 내려오는 남자 선생님과 그의 등에 업혀 늘어진 낯익은 여자 선생님을 발견할 수 있었다.
“뭡니까?”
왜 저기 김지연씨가 저런 모습으로? 라는 생각을 가질 때, 정신을 깨우는 목소리가 들렸다.
“급합니다, 선생님.”
앳되지만 나직한 중저음의 목소리가 장 형사의 시선을 돌리게 했고, 멈춰섰던 선생님의 발걸음을 다시 떼도록 만들었다. 지나가는 소년의 시선이 잠시 장 형사에게 머무를 때, 장 형사 역시 소년의 시선을 마주했다.
아, 장 형사는 속으로 아이의 정체를 떠올렸고, 이내 아이의 뒤를 따랐다.
양호실에 들어선 선생님은 급히 김지연을 침대에 눕혔고, 양호 선생님이 호들갑을 떨며 상황을 물었다.
“···호흡이 가빠지고, 팔과 어깨에 경미한 정도의 근육 경련이 관찰돼서 위험을 감지했습니다. 그래서 우선 4반에서 수업하는 선생님에게 도움을 부탁할 요량으로 찾아뵈었고···.”
장 형사는 소년의 브리핑(?)을 들으며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전교 1등이라서 그런 건지, 아니면 요즘 아이들이 다 저 정도가 되는 건지 가늠이 되진 않았지만, 확실히 자신이 만나오던 아이들에 비하면 월등히 구별되는 점이 있었다.
조리 있게 설명을 한다거나 하는 점을 떠나, 일단 침착한 모습이 눈에 가장 먼저 들어왔다. 브리핑을 들어봐도, 그 순간에 침착하게 상황을 파악하고 우선순위를 구별하여 행동에 옮긴 것은 어른들이라고 해도 쉽게 하기 힘든 일. 마치 이런 상황에 대비한 매뉴얼이라도 외우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의심스러울 정도로 차분한 대응이었다.
“양호실에서 처치할 수준은 아닌 거 같으니까, 우선 119를 불러야겠어요.”
양호 선생님의 말에 사회 선생님이 동의했고, 곧 119에 전화를 걸어 구급차를 요청했다. 장 형사가 바라보니 김지연은 정신을 잃긴 했지만, 그리 위험해 보이지는 않았다. 다만 낯빛이 다소 파랗게 질려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위험한가, 라는 의심만 해볼 뿐이었다.
“지연 선생님 많이 말랐네요.”
“그간···마음고생이 심했을 테니까요.”
두 선생님의 대화를 들으며 장 형사는 조금 미안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혹시, 진짜 범인이 아니라면, 김지연은 자기들 때문에 이렇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전 이만 가 보겠습니다.”
소년은 선생님들의 대화를 듣는 둥 마는 둥 하더니, 이내 교실로 올라가 보겠다고 먼저 밝혔다. 그제야 사회 선생님도 교실로 올라가 봐야 겠다며 양호 선생님께 자리를 양보했다.
“아, 잠시만요.”
장 형사는 급히 두 사람을 불러세웠다. 무슨 일이냐는 시선에 장 형사는 사회 선생님께 양해를 구해야 했다.
“저 아이랑 잠시 이야기 좀 할 수 있을까요?”
“수업 시간인데요.”
“잠시면 됩니다. 그리고, 어차피 지금 수업 못 받지 않습니까?”
장 형사가 지연을 가리키자, 사회 선생님은 소년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소년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어깨를 으쓱거려 보였다.
“너무 많은 시간 뺏지 말아 주셨으면 합니다.”
“네, 그럴 겁니다.”
잠시 후, 장 형사는 소년, 단유를 데리고 학교 밖으로 나왔다. 바람이 선선하게 부는 야외에서 조용히 대화하자며 끌고 나온 것인데,
“아, 먼지. 어, 선배님. 여기 계셨습니까? 위에도 안 계셔서 찾으러 나왔는데··· 왜 나와 계십니까? 공기도 안 좋은데, 안에 들어가 계시지 않고.”
주차하고 뒤늦게 따라왔던 후배, 영식의 말에 장 형사는 단유를 데리고 다시 상담실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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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형사와 단유는 상담실 책상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 장 형사는 기이하다는 듯 단유를 바라보았다.
“너, 중학생 맞니?”
“예.”
“요즘 중학생들은 다 너처럼 키가 크냐?”
“과거에는 어쨌는지 모르겠지만, 요즘은 학생들의 수만큼이나 다양해서 키 큰 사람도 있고, 키 작은 사람도 있습니다.”
단유는 장 형사가 대화의 물꼬를 엉뚱한 곳으로 틀지 않기를 바랐다. 시간은 금이니까.
“물어보시고 싶으신 게 뭔가요?”
“급한 일이라도 있냐?”
“공부해야죠.”
학생이 공부를 해야 한다는 데 무슨 할 말이 필요할까?
“너 지난번에 나한테 한 말 있지?”
“무슨 말이요?”
“왜, 너 그때 그랬잖아? 학교에 있는 사람들 다 조사해 봤냐고?”
“아, 네.”
“그때 왜 그런 말을 했던 거야?”
단유는 대답을 하는 대신 앞에 앉은 두 사람을 관찰했다. 이 시간이 되도록 범인을 못 찾았을 뿐만 아니라, 학교의 분위기를 흐리고 있는 주범이나 마찬가지였으니. 다만 흐려진 분위기 덕에 수업 시간에 딴짓을 해도 걸리지를 않으니, 단유로서는 나쁘지만은 않은 상황이라고 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온종일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공부하는 것도 좋은 환경은 아니었다. 하지만 단순히 그런 이유만은 아니었으니, 기분을 찝찝하게 만드는 요소를 아예 배제시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갑자기 그걸 물어보시는 건지 여쭤봐도 될까요?”
단유의 되물음에 두 형사가 각기 다른 표정을 지어 보였다. 영식은 선배의 물음에 답을 하지 않는 ‘건방진’ 학생의 행동에 열이 올라서 콧김을 뿜었고, 장 형사는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단유를 바라보았다. 본인은 인정한 적이 없지만, 어지간한 사람들은 장 형사와 대면해서 저토록 차분하게 말을 하는 이가 없었던 탓이었다. 형사가 아니면 조폭, 이라는 반장의 말마따나 장 형사의 얼굴은 험악한 인상이었기 때문에 15살의 어린 아이가 저리 차분하게 대꾸한다는 게 이상할 따름이었다.
“너···.”
장 형사는 영식의 말을 막았다.
“수사는 지금 잘 진행되고 있어. 조금만 있으면 금방 범인을 잡아낼 거다. 그런데, 내 성격이 좀 지랄 맞아. 사소한 거라도 놓치고 가는 게 없었으면 하거든? 그런데 니가 한 말이 마치 내가 뭘 놓치고 있는 것처럼 느껴져서 말이야.”
“그때는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시지 않으셨나요?”
“사람이 꼭 제때 밥 먹냐? 밥 시간이 돼도 배가 안 고프면 미뤘다가 나중에 배고파져서 밥솥 열 때도 있는 법이야.”
비유가 마치 명수 같다. 단유는 보이는 것만큼이나 단순한 사람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며 말을 꺼냈다.
“아까 김지연 선생님이요, 저희 반 수업이었거든요?”
갑자기 왜 김지연 선생님 이야기지?
“솔직히 전 수업에 듣지 않고 있었어요. 따로 공부하는 게 있었거든요.”
전교 1등이라는 녀석도 수업 시간에 딴짓한다는 걸 말하고 싶은 걸까?
“갑자기 짝이 제 팔을 툭툭 쳤어요. 그래서 봤더니 선생님이 교탁 앞에서 돌아서서 저흴 보고 있는데, 보는 순간 위험하다고 느꼈어요.”
“위험하다?”
“얼굴빛이 붉고, 호흡이 가쁘고, 초점이 불분명할 정도로 잘게 떨리고 있었거든요. 어깨 근육이 가늘게 떨리는 것도 보였고, 땀이 턱을 따라 흐르는 것도 보였죠. 그 정도면 의사가 아니더라도, 이상이 있다는 걸 느낄 정도는 되죠?”
“관찰력이 뛰어나다, 는 걸 자랑하고 싶은 건 아닐 테고.”
“그런데 다른 아이들은 그 모습을 보고도 가만히 있었어요.”
“왜?”
“안 보였으니까요.”
“안 보여?”
단유는 자신이 예로 든 5가지 증상을 손가락으로 꼽았다.
“이 중에 2가지만 빼볼까요? 얼굴빛이 붉고, 호흡이 가쁘고, 어깨가 가늘게 떨린다. 이 증상 3가지만 가지고 ‘위험’이라는 신호를 떠올릴 수 있을까요?”
영식은 무슨 말장난인가 싶어서 단유의 말을 끊으려 하는데, 장 형사가 먼저 단유의 말을 받았다.
“어렵겠지?”
“얼굴빛이 붉고, 호흡이 가쁘다는 두 가지만 놓아도 상대의 몸에 이상이 생겼구나라고 판단할 사람은 없겠죠. 그냥 화가 났겠거니, 혹은 무슨 슬픈 일이 생겼다거니, 판단하겠죠. 제 말은 결국 상대를 제대로 보지 않으면 상대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알 수 없다는 말이죠.”
“니가 예로 든 게 무슨 뜻인지는 알겠다. 하지만 우리들도 나름은 이 사건을 제대로 보려고 하고 있다. 하지만 사람을 관찰하는 것과 달리 사건이란 게 보고 싶다고 다 볼 수 있는 건 아니야.”
“그렇겠죠. 그러니 상대가 진실을 말하는지 거짓을 말하는지도 모르는 거겠죠.”
“응?”
“지금 이쪽 형사님은 저한테 하고 싶은 말이 많으신데, 형사님 때문에 말을 못 하셔서 많이 답답하신가 봐요.”
장 형사가 영식을 쳐다보자, 영식의 얼굴이 붉어졌다.
“어린 나이에 불과한 제가 감히 형사님의 자존심을 건든다고 생각하신 건지, 불쾌하시기도 하고요.”
“어, 어···.”
말을 잇지 못하고 어버버 거리는 영식을 보던 장 형사는 다시 단유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여태까지와 달리 이번에는 마치 살인범을 마주하고 취조할 때의 것과 같은 날카로운 눈빛이었다. 반면 덤덤하기로는 세계 최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단유였다. 저 정도 눈빛이야 살면서 너무 많이 겪은 터라.
“반대로 형사님은 보이는 것과 달리 이런 문답을 꽤 즐기시나 봐요. 마음이 급하실 텐데도 여유롭게 이 대화를 즐기시려는 게 보이네요.”
“···비유가 아니었구나.”
장 형사는 단유의 말이 수사에 대한 비유라 생각했는데, 실제 사람을 상대하고 관찰하는 것에 대한 언급이었다.
“거짓말을 했다는 거냐? 누가?”
“그 전에, 저도 최소한의 자기방어는 해야 하지 않겠어요?”
“응?”
“형사님에게만 따로 이야기를 드리고 싶은데?”
“뭐!”
이번에는 진짜 영식이 화를 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어난 김에 잠깐 바람 좀 쐬고 와라.”
“선배님!”
“잠깐이면 된다.”
“아니, 그게···.”
잠시 후, 둘만 남게 된 상담실에서 장 형사는 단유를 독촉했다. 그리고 단유는 깜짝 놀랄 만한 이야기를 했다.
“그날, 저도 학교에 있었어요.”
“뭐!”
이번에는 장 형사도 깜짝 놀라서 자리에서 일어날 뻔했다.
“설마···.”
단유는 장 형사의 머릿속에서 만들어지는 시나리오를 막았다.
“자수는 아니고요. 그날 그냥 학교에 있었어요. 개인적인 사정이니까 자세한 건 묻지 말아 주셨으면 좋겠어요. 사건과 전혀 관계가 없으니까.”
“그, 그럼 범인이라도 목격했다는 말이야?”
“아니요.”
그 말에 또 장 형사는 황당하다는 얼굴을 하고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 날 절 본 사람이 학교에 있어요.”
그 말에 장 형사는 단유의 말을 전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날, 학교에 있었던 사람들을 전부 조사했냐는 말은, 그럼에도 왜 자신을 부르지 않았냐는 말과 같은 말이었다. 단유도 학교에 있었는데 왜 단유를 불러 조사를 하지 않았을까? 그건 단유를 본 사람이 봤다는 증언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하지 않았을까?
“누구지?”
장 형사의 목소리가 바닥을 구르는 묵직한 쇠구슬처럼 흘러나왔다.
“행정실 여자분이신데, 이름은 잘 모르겠네요. 급식비 수납할 때 빼고는 만날 일이 없는 분이셔서.”
행정실에 여직원은 한 명이다. 장 형사가 벌떡 일어났다. 바로 상담실을 나갈 듯하다, 돌아보며 물었다.
“넌 그때 뭐하려고 학교에 왔었지? 아니, 어떻게 학교에 들어온 거야?”
“그건 묻지 말아 주셨으면 좋겠는데요? 안타깝게도 제게는 알리바이가 없어요.”
“그렇다면 너도 용의자에 들어간다는 거, 알겠지?”
“동기가 없지 않나요?”
“우발적으로···.”
“아, 우발적 범행이었구나.”
형사는 입을 다물었다. 공개수사로 전향이 되지 않아서 수사에 대한 정보가 밖으로 나간 적이 없던 차였다. 당연히 학내의 아이들이 알 턱이 없는 정보였다.
“아무튼, 학교에 어떻게 들어왔고, 무엇을 했는지 말해야 할 거야.”
“그게 중요한가요?”
“중요한 거다.”
“지금 제가 알려줬던 정보보다 더요?”
“······.”
단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부분을 설명하기 싫어서 장 형사님에게만 이야기한 거예요. 사실 말 안 하고 넘어갈 수도 있는데, 그러면 학교 안에 살인을 저지른 사람이 있는 거잖아요? 그거 되게 찝찝하더라고요. 그래서 빨리 잡아가시라고, 이렇게 말씀드리는 거예요.”
그러니까 헛다리 짚지 말고 일이나 하세요, 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무능력한 형사들이 학교를 휘젓고 다니든 말든 상관 안 하려 했지만, 놔두면 괜히 귀찮은 일만 벌어질 것 같다는 예감 때문에.
“그 날 시간은 2시 30분 정도였던 걸로 기억해요. 중앙현관에서 그분과 만났는데, 계단을 오르려고 올라가던 저를 미처 발견하지 못해 그분이 자리에서 넘어졌죠. 넘어지면서 들고 있던 커피를 옷에 쏟았고요. 아무 옷을 버려야 했을 거예요.”
“버려?”
커피 때문에? 순간, 장 형사는 어느 때보다 빠르게 머리를 굴렸고, 곧 단유의 말을 이해했다.
“버려야 했구나.”
“아무튼, 그분은 많이 당황하셨는지, 심하게 땀을 흘리셨고, 그런 채로 행정실로 곧바로 들어가셨죠. 들어가시는 걸 보고, 전 2층의 교실로 올라갔고요.”
장 형사는 단유를 노려보다가 몸을 돌렸다. 돌아서기 전 한 마디 남기는 것을 잊지 않았다.
“지금은 일단 이렇게 가는데, 조만간 따로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야 할 게 있을 것 같다.”
“한 가지만 부탁드릴게요.”
“···뭐냐?”
“제 이름은 거론해주지 말아주세요.”
“뭐?”
“한 학생이 당신을 만났다더라, 정도만 해도 충분할 거 같으니까요. 목격자로 이름을 널리 알리고 싶은 마음은 없어서요.”
장 형사는 가타부타 말없이 상담실을 나섰다. 문을 거칠게 열고 나간 틈에, 단유는 여유롭게 자리에서 일어나 복도로 나섰다. 중앙계단을 통해 쿵쾅거리는 소리가 흐릿하게 들려왔지만, 단유는 신경 쓰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