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언과 예측 사이(2)
-------------- 364/952 --------------
봄철이라 황사가 심했던 탓에 서울 하늘이 오래된 흑백TV 마냥 뿌옇게 보였다. 매년 심각해지는 황사와 미세 먼지는 TV 뉴스의 단골 소재였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 더럽지 않냐?”
장 형사는 자동차 문을 열려다, 손가락에 묻어나는 두꺼운 먼지의 양을 보며 투덜거렸다.
“세차할 시간이 없어서 그래요.”
영식은 아무렇지 않게 운전석에 올라타 시동을 걸었다. 안전벨트를 매던 장 형사가 이맛살을 찌푸린 채, 앞 유리창을 문질렀다. 바깥쪽은 말할 것도 없고, 유리창 안쪽도 먼지가 배어 나오긴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 심하지 않냐?”
“···조만간 하려고 했어요.”
이윽고 영식이 차를 몰아 장계 중학교로 가는 길 위에 올랐을 때, 장 형사가 물었다.
“알아보라고 한 건?”
“재단에 돈 문제가 없는 건 아닌 거 같아요.”
영식은 레버를 당겨, 워셔액으로 대충 전면 유리창을 닦아보려 했지만, 워셔액은 나오지 않고 와이퍼만 양쪽으로 왔다 갔다 할 뿐이었다. ‘워셔액도 보충해야겠네요’라며 머쓱하게 대답하는 영식을 한심하게 보던 장 형사는 설명이나 계속하라며 재우쳐 물었다.
추경예산안에 비정기지출항목을 집어넣은 뒤, 특정 관계에 있는 기업을 끼워 넣는 식을 혜택을 주고, 리베이트를 이사장 개인에게 돌려주는 형식이라는 영식의 말에 ‘늘 그런 식이지’라며 중얼거리는 장 형사였다.
“얼마 전에도 그런 식으로 추경 예산안이 잡혔고, 화단공사 명목으로 선정된···.”
“됐고. 그런 구체적인 것까지 알 필요 없잖아. 그래서 그게 관련이 있어, 없어.”
“그게···특별히 원한 관계나 다툼이 벌어질 부분은 발견되지 않았어요.”
“다음.”
영식은 1차선에서 깜빡이를 켜고, 좌회전을 준비하는 동안 다음 조사 내용을 보고했다.
“골프를 치러 지방 출장이 잦고, 그래서 사건 당일 외박에도 신고가 늦은 이유라고 했잖아요.”
“그래서?”
“그런데 부인이 남편의 외박을 아무렇지 않게 여긴다는 게 이상해서 말입니다.”
이상한 포인트에서 의심을 하네? 라는 눈으로 후배를 바라보던 장 형사는 ‘로맨티스트 새끼’라고 중얼거렸다.
“네?”
“아냐. 계속해 봐.”
“예. 그래서 혹시 부인이 뭘 숨기고 있는 건 아닌가 싶어서 주변 인물들을 탐문해 봤는데요.”
“너 시간 많나 보다? 세차할 시간도 없다는 놈이?”
“네?”
“신호 들어왔어.”
장 형사의 언급에 영식은 부랴부랴 핸들을 돌려 좌회전을 시도했다. 다시 주행을 시작한 영식은 마저 보고를 끝냈다.
“부인이 호스트바를 다니나 보더라고요. 남편이 12시 전에 들어오지 않으면 거의 대부분 청담동에 있는 호스트바로 향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거기에 기둥서방이라도 심어놨다고? 그래서 그게 이 사건과 또 무슨 연관이 있는데?”
“어, 거기까진 아직 관계가 밝혀진 바는 없지만 말입니다. 아내의 부도덕한 유흥을 눈치챈 남편이 손을 썼고, 이에 앙심을 품은 아내와 호스트가···.”
“됐고. 너 이제 영화 그만 봐, 새끼야. 도대체 왜 이렇게 현실 감각이 떨어지지? 너 그래 가지고 제대로 수사하겠냐?”
“그래도 여러 가지 방향으로 생각해 보는 것이···.”
“애초에 학교 안에서 벌어진 사건이야. 평소의 학교라면 외부인이 마음대로 이사장실을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아? 아무한테도 안 들키고? 즉, 이번 사건은 학교 행사에 대해 어느 정도 지식이 있는 사람의 소행이다, 이거야. 게다가 학교 행사에 교장, 교감은 모두 갔는데 이사장만 가질 않았어. 만약 외부인이라면 이사장이 경기장을 갔을지, 학교에 남았을지를 어떻게 알겠어?”
“그럼 내부인의 소행이란 말씀이십니까?”
“아니. 니가 조사한 것들이 전부 잘못됐다는 이야기다, 새끼야.”
‘용의자 특정’에 있어서도 단순히 원한 관계 위주로 파악할 것이 아니라, 사건의 정황을 고려해서 유효한 용의자들을 집중적으로 파악해야 한다는 선배의 핀잔에 영식은 주눅이 들었다.
“지한영이는?”
“크흠. 어, 아들은 그냥 좀 노는 정도인데요. 지난번 조사한 내용에서 크게 달라진 점은 없었습니다.”
강남 유명 클럽을 자주 드나들고, 과거에는 여자관계가 복잡해서 그 때문에 길 한복판에서 싸움이 날 정도였다는 이야기는 이미 들은 바가 있었다. 얼마 전의 음주운전도 다시 재조사가 들어가서, 아마 지한영은 병원을 나오자마자 구속 수사를 받아야 할 것이다.
“아들이 의심스러워.”
“아들이요?”
이유는 없었다. 알고 보면 가족들이 모두 재단에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었으면, 아내는 얼마 전 이사직 연임이 결정되었고, 아들은 이사이면서 동시에 학교 행정실장으로 일하는 중이었다. 행정실 직원들의 진술에 의하면 출퇴근 시간이 자유로운 것 외에는 일 적인 측면에서 딱히 무능하지도, 유능하지도 않은 정도의 아주 평범한 모습이라고 했다.
“하지만 ‘평범’할 리가 없잖아.”
매일 밤 클럽을 다니다시피 하고, 새벽까지 술을 마시고, 아침 출근 시간에도 술이 덜 깬 채로 출근하는 이가 ‘평범’?
고의로 진술을 하지 않았거나, 혹은 진술하지 못하도록 입막음을 했을까? 선생님들 역시 행정실장에 대해 특별한 언급이 없었음을 떠올려보면 수상한 점이 있긴 했다. 다만 공통적으로 ‘여자관계’가 복잡하더라는 소문이 있다는 진술만 나올 뿐이었다.
[‘다’ 조사 중인 거 맞죠?]
장 형사는 관자놀이를 꾹꾹 눌러보다가, 영식을 향해 입을 열었다.
“전교 1등이면 보통 애들이랑 다를까?”
“전교 1등이요? 글쎄요. 제 때는 전교 1등 하던 애가 미국에서 살다 들어온 애였는데, 특별히 영어를 잘한다는 거 말고는 별로 다른 점을 못 느끼겠던데요?”
“넌 몇 등 했는데?”
“에이, 선배님. 그런 건 묻는 게 아니죠.”
“몇 등 했는데?”
“에이.”
“몇 등?”
“···30등 안에는 들었습니다.”
“오호? 공부 잘했네? 전교 순위?”
“아뇨, 반 순위요.”
“전교에서는?”
“···중학교 때는 좀 방황하던 때라서 말입니다. 별로 잘하진···.”
“몇 등?”
“한 350등 정도? 그래서 저희 때는 전교 인원이 500명은 됐지 말입니다.”
갑자기 이상한 말투로 자기 변명을 하는 영식을 보며 장 형사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공부가 뭔 상관있냐? 형사질 하면서 그런 건 써먹어 본 적이 없다.”
“그렇죠? 사회 나오니까 말이죠, 그게 다 쓸모가 없더라고요. 별로 쓰지도 않을 것들을 그때는 뭐 그렇게 중요하다고 매달렸는지 모르겠어요. 차라리 그 시간에 쓸모있는 걸 배웠으면 훨씬 유용했을 텐데 말입니다.”
“유용한 게 뭔데?”
“뭐··· 대충··· 사회에서 쓸만한 것들, 이죠. 뭐.”
딱히 생각이 나지 않던 영식은 말을 얼버무리다가 얼른 화제를 돌렸다.
“다 왔습니다, 선배님.”
하얀 먼지를 풀풀 날리며 장계중학교 교문을 들어서는 낡은 승용차는 학교 외곽 길을 따라 천천히 올라가 본관 뒤편 주차장으로 향했다.
****
시험이 얼마 남지 않았음에도 아이들의 주 관심사는 여전히 ‘살인 사건’에 있었다. 아이들 뿐만 아니라 인근 지역 사람들의 관심이 쏠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리라. 뉴스에도 보도가 되면서 세인의 관심을 끌었던 사건은 발생 일주일이 지나도록 범인이 잡히지 않은 채, 여전히 경찰들이 이사장실 앞 복도를 점거한 중이었다.
그리고 김지연 선생님이 복귀했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며칠간 학교에 나오지 못했다고 하지만, 알 사람은 다 아는 상황이었다.
“선생님, 괜찮아요?”
“네. 괜찮아요.”
웃음으로 심정을 대변해 보려 했지만, 바라보는 이들의 시선에 담긴 복잡한 감정을 볼 때면 쉽게 웃음이 나지 않아 곤혹스러웠다. 자리에 앉아 업무를 정리하려니 일주일 사이에 밀린 서류들이 책상에 한가득이었다. 연구부 평가 서류도 작성해야 하고, 교육청, 교육부에서 내려온 공문도 처리해야 하고, 학기 초에 작성을 끝냈어야 할 수업계획 평가 수정안도 이러저러한 이유로 반려되어서 책상 위에 올려져 있다.
그나마 시험문제 출제가 끝난 상황이라 다행이지만, 당장 2, 3일은 야근을 해서라도 마쳐야 할 서류들이 짜증을 불렀다. 정확히 말하자면, 짜증은 서류가 아니라 서류를 보는 자신을 훔쳐보는 선생님들의 시선 때문이었다.
마침 수업 종이 울렸고, 지연은 출석부를 챙겨 들고 교무실을 나갔다.
“무리하지 마세요, 선생님.”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지연을 격려하는 다른 선생님들에게 눈웃음을 지어 보였지만, 스스로 느끼기에도 볼살이 경직된 느낌이었다. 조금 느릿한 걸음으로 가더라도, 2학년 교실은 교무실에서 가까워서 금방 도착했다.
문을 열고 들어간 교실이 갑자기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아마 아이들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는 것이겠지.
‘무죄 추정의 원칙도 모르냐!’
고 창문을 열고 소리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자, 일주일 뒤에 시험이지? 그동안 선생님이 사정이 있어서 수업을 못 했지만, 오늘부터는 좀 빠르게 갈 테니까 잘 따라와야 한다. 알았지?”
“네.”
대답이라도 해주니 다행이랄까? 지연은 아이들에게 신경을 끊었다. 지금부터는 오로지 책과 싸우면서 진도를 빼는 것에만 집중할 것이다. 아이들이 수군대든 말든, 공부하든 말든, 오로지 진도만 쭉쭉 나가리라. 그 와중에 잘 듣고 따라오면 문제 하나 더 맞힐 수 있을 것이고, 아니면 틀리는 거고. 그건 니들 하기 나름이야.
그 시간, 단유는 열심히 노트를 채우는 중이었다. 집에서는 아이들 때문에라도 시험공부를 하고는 있지만, 당장 단유는 시험보다 이 노트를 채우는 일이 더 시급하고 중요하다고 느꼈다. 그래서 도하가 의아하게 생각할 정도로 수업에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다.
“야, 선생님 범인 아냐?”
“아니니까 풀려난 거 아닐까?”
“증거가 없어서 풀려났을 수도 있어. 하지만 증거가 없다고 해서 범인이 아니라고는 말 못해. 선생님이니까 영리하게 증거를 숨겼을 수도 있잖아?”
“그래도 일주일 넘게 조사하고도 경찰이 알아내지 못한 거면, 진짜 아닐 수도 있는 거잖아?”
“미국에는 한 달 동안 조사를 받고도 증거가 없어서 풀려났다가, 몇 년 뒤에 진범으로 밝혀져서 다시 잡힌 경우도 있대. 즉, 당장 밝히지 못했다고 해서 범인이 아니라고 단언할 수 없다는 거지.”
전일은 책을 앞에 세워두고 얼굴을 그 뒤에 파묻은 채, 짝과 속삭거렸다. 속삭이는 소리가 조금 커서 선생님 귀에 들릴 정도였다는 게 문제였지만.
“누가 떠드니? 수업 중에 조용히 하랬지.”
잠시 조용해지면, 다시 또 숙덕거리는 아이들이 어디 하루 이틀 일일까마는 오늘따라 유난히 귀에 거슬리는 지연이었다. 전일 뿐만 아니라 다른 아이들도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고, ‘최초 용의자’로 선정된 선생님의 범죄 유무에만 관심을 보였다.
“누구야!”
결국 지연이 책을 던지듯, 교탁 위에 내려놓고 교실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아이들의 눈빛은 자신을 두려워한다기보다, 호기심을 품고 자신을 관찰하는 눈빛이었다. 지연의 입술이 저도 모르게 덜덜 떨렸다.
“선생님, 경찰이 뭐라고 안 했어요?”
한 아이의 질문.
“선생님, 왜 의심받으신 거예요?”
“선생님, 조사 때문에 학교 안 나오신 거 맞아요?”
“선생님!”
“선생님!”
주먹이 하얗게 변할 정도로 쥐어진 주먹이 교탁 위에서 덜덜 떨려왔다. 머릿속에서 왁자지껄하게 떠드는 소리 때문에 눈앞이 흐려지는 기분이었다.
아이들은 갑자기 낯빛이 변하며 표정을 일그러뜨리는 선생님을 보고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야, 갑자기?”
“왜 저러시지?”
한참 칠판에 필기하시던 선생님이 갑자기 소리치며 돌아서더니, 화가 난 얼굴로 부들부들 떨고 계셨다. 아이들은 영문을 몰라 물끄러미 바라보지만, 선생님은 아무 말씀도 없이 아랫입술을 꽉 깨물고 정면을 바라볼 뿐이었다.
도하가 단유의 팔을 툭툭 건드렸다. 단유가 눈썹을 찡그리며 돌아보자 도하가 턱 끝으로 앞을 가리켰다. 시선을 돌려 앞을 보자, 얼굴을 붉히고 덜덜 떠는 선생님의 모습이 눈에 들었다. 단유는 몸을 바로 세우고 선생님을 바라보다가, 주변 아이들을 둘러보았다. 수군대고는 있지만 다들 이유를 몰라 어리둥절한 눈치였다.
“안 좋은데.”
“뭐가?”
도하의 물음에 답할 생각은 않고, 한숨을 내쉬었다. 단유가 보기에 지금 선생님은 정신적 공황 상태인 것 같았다. 가빠진 호흡과 초점을 잃은 눈, 어깨뿐만 아니라 몸 전체에 과하게 힘이 들어가 경직된 근육들이 경련을 일으키는 것처럼 부들부들 거리는 것이다.
단유는 허리를 등받이에 기댄 채로 선생님을 바라보다가 일차적으로 바람을 불렀다.
잠시 후, 창문도 닫혀서 밀폐된 교실임에도 지연의 앞머리가 바람에 나부끼듯 슬쩍 흔들렸다. 짙은 홍조가 든 볼도 색이 가라앉듯 진정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여전히 초점이 돌아오지 않는 눈이었다.
‘이걸로는 부족할까?’
저대로 두면, 몸에 문제가 생길 것 같았다. 단유는 의자를 뒤로 밀며 일어났다. 그 소리에 아이들의 시선이 쏠렸다.
단유는 교실을 나섰다. 그리고 바로 옆 반, 2학년 4반의 앞문을 두드렸다. 잠시 후 ‘들어오세요’ 라는 소리에 단유는 문을 열었다. 어리둥절해하는 선생님과 4반 아이들의 시선을 받으며 단유는 선생님에게 다가가 조용히 사정을 알렸다.
“너희들, 조용히 하고 있어.”
옆 반에서 수업을 진행 중이던 사회과 선생님이 아이들을 조용히 시킨 후 단유를 앞세워 3반으로 향했다.
“선생님? 선생님?”
들어와 보니, 이미 선생님은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몸을 약하게 떨고 있는데, 이는 아마도 근육의 경련 때문일거라, 단유는 판단했다.
사회 선생님은 얼른 선생님을 등에 업었다.
“반장, 애들 조용히 시키고, 넌 따라와.”
단유는 선생님을 따라 복도로 나섰다. 양호실은 1학년 교실이 있는 1층에 있었는데, 중앙계단을 통해 내려가는 게 빨랐다.
그리고 중앙계단을 반쯤 내려갔을 때, 단유는 장 형사와 마주쳤다.
“뭡니까?”
장 형사의 물음에 사회 선생님은 잠시 멈칫했다.
“선생님, 먼저 가세요. 급합니다.”
“아, 그래.”
단유의 말에 다시 걸음을 옮기는 선생님이었고, 그 뒤를 단유와 장 형사가 뒤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