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언과 예측 사이(1)
-------------- 363/952 --------------
“나 간다.”
애초에 흥미도 없이 끌려왔던 단유가 걸음을 옮기자 도하가 ‘같이 가자’며 단유 옆에 붙었다.
“어이, 거기.”
이번에는 장 형사가 두 사람을 불렀다. 돌아보는 두 사람을 보며 장 형사는 불씨를 바닥에 비벼 꺼뜨린 뒤 물었다.
“너희들 혹시 아까 도망친 놈들 패거리 아냐? 내가 갔나 안 갔나 확인하러 온 거 같은데?”
“그런 거 아닙니다.”
단유가 단호하게 선을 긋고서, 고개를 꾸벅 숙여 보인 뒤 몸을 돌렸다. 도하가 아무 말도 안 했다면, 그대로 교실로 들어갈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얘, 전교 1등인데 싸움도 잘해서 걔들은 찍소리도 못할 걸요?”
“진도하!”
“오호? 전교 1등? 뭐로? 싸움으로?”
“전교 1등을 무슨 싸움으로 해요? 공부로 하지.”
장 형사의 눈이 조금 커졌다.
“진짜 전교 1등? 공부로?”
“네.”
“진도하!”
도하를 노려보던 단유는 혼자 가겠다며 발걸음을 뗐다.
“잠깐만, 거기.”
“김단유에요. 쟤 이름.”
단유는 걸음을 멈추고 순진한 얼굴인 ‘척’하는 도하를 째려보다가, 형사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왜요?”
“진짜 전교 1등이야?”
“그게 왜요?”
“아, 신기해서 그러지. 전교 1등 하는 애들은 어찌 생겨먹었나 궁금하기도 하고.”
“아, 네. 볼일 끝나셨으면 이만 가 보겠습니다.”
“잠깐만, 왜 이렇게 급해? 화장실 가고 싶어서 그래?”
“그런 거 아니고요, 가서 공부할 게 있어요.”
“이야, 전교 1등은 핑계도 멋지구나.”
진심인지, 놀림인지 모를 장 형사의 어투에 살짝 짜증이 난 단유는 그 마음을 담아 물었다.
“그게 끝인가요? 신기한 얼굴 다 보셨으면 이만 가 보겠습니다.”
“하나만 물어보자.”
장 형사는 얼굴에 미소를 지웠다.
“이 학교 이사장에 대해서 혹시 아는 이야기 같은 거 있니?”
“어떤 거요?”
“뭐, 이를테면···.”
장 형사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뭐 그런 이야기들 있잖아? 사립 학교라면 으레 건물 공사비와 관련된 비리라든가, 운동장 부속시설 건립을 핑계로 학교공금을 횡령한다든가.”
단유는 헛바람을 뱉으며 조소하듯 답변했다.
“이제 겨우 중학교 2학년인 저희가 그런 이야기를 어떻게 알 거라고 생각해요?”
“중 2면 알 거 다 알지 않나?”
엉뚱하게도 도하가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단유는 도하를 흘깃 본 후, 고개를 저었다.
“몰라요, 그런 이야기는. 관심도 없고요.”
“너는?”
“저도 모르겠는데요?”
장 형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그럼 이사장과 관련해서 너희들이 아는 소문 같은 건 없단 말이지? 이사장이든, 이사장 아들이든, 이사 재단에 대해서든?”
“네.”
깨끗한 재단인지, 아닌지는 몰라도 학생들과는 동떨어진 이야기였고, 게다가 주변의 가십거리에 관심 없는 단유로서는 알 수도 없는 이야기였다.
“혹시 범인이 누구예요?”
“이사장 말하는 거냐?”
“네.”
“됐어, 진도하. 그냥 가자.”
단유는 도하를 제지했다. 더 할 말 있냐는 듯 형사를 바라보니, 형사도 더 이상은 궁금한 게 없다는 듯 고개를 살짝 저었다. 자신의 추측대로 학교 내부에 논란이 될만한 문제는 없는 것처럼 보였다. 저 아이가 좀 특별한 것처럼 보이긴 했지만, 학교의 논란이 발생했을 때 아이들이 모를 수 없는 법이니까.
굳은 얼굴로 상념에 빠진 형사를 보던 단유가 교실로 향하려다 멈칫했다. 잠깐 주저하더니 형사를 향해 물었다.
“학교에 있던 사람들을 조사 중이었다고 들었는데, 맞나요?”
“응? 뭐, 그래.”
“그럼, 금요일에 학교에 있던 사람들을 다 조사 중인 거죠?”
“···근데 그걸 어떻게 알았어?”
“우리 반 애도 조사받았다던데요?”
도하의 대답에 장 형사는 한숨을 내쉬었다. 쉬쉬하며 불러도 알 사람은 다 아는 법이다. 이러니 ‘비공개’가 어림도 없는 거지.
“너희들한테 이야기해 줄 수 있는 사항이 아니다. 아무튼 고맙다. 이만들 가라. 가서 공부나 열심히 해. 그리고 니 관상을 보니까, 딱 공부 못하게 생겼는데, 옆의 친구 좀 본받고 그래라. 건방지게 경찰한테 따박따박 말이야.”
끝말은 분위기를 좀 풀어보려고 농담조로 한 말이었기에, 도하도 딱히 기분 나쁘지 않다는 듯, ‘수고하세요’라는 말로 인사를 끝냈다. 반면 단유는 그런 형사를 잠시 바라보다 이내 도하와 함께 몸을 돌렸다.
중앙현관을 지나칠 때쯤, 도하가 단유에게 물었다.
“아까 경찰한테 무슨 말 하려고 했던 거 아냐?”
“···별거 아냐.”
여전히 1층 중앙현관의 오른쪽 복도는 두 경찰관이 가로막고 있었고, 왼쪽의 행정실을 지나는 복도는 어수선한 분위기가 계속되고 있었다. 하지만 지나가면서 눈치를 볼망정, 멈춰 서서 구경하는 모양새는 줄었다.
****
“니네 학교에 살인 사건 났다며?”
정말 소문이란 게 이렇게 빠르구나, 라는 걸 느꼈다.
“어떻게 알았어?”
“소문 다 퍼졌던데?”
상미는 호들갑을 떨면서 무슨 일이냐고 캐물었고, 어떻게 이야기를 들었는지 명수가 패드를 내려놓고 자기가 들은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지태와 채윤이 드레싱을 곁들이듯 설명을 덧붙이다 보니, 단유도―원치 않았지만―나름의 사정을 파악할 정도가 되었다.
“와, 그럼 혹시 선생님이 한 거 아냐? 그때 애들은 전부 경기장에 갔었다며?”
“처음부터 경기장에 안 간 애들도 있고, 경기 끝나고 학교로 간 애들도 있대.”
“정말? 그래도 애들이 살인을 했다고 하기엔 좀 그렇지 않나?”
“모르지. 솔직히 사람 죽이는 게 어렵나? 그냥 칼로 푹 찔러도 죽더만.”
“마치 해 본 사람처럼 말한다?”
“야, 말이 그렇다는 거지. 영화 보면 그렇잖아? 칼로 배 한 번 찌르면 다 죽는데.”
“안 죽는 사람도 있어.”
“그건 주인공이니까 그런 거고.”
“주인공 친구도 안 죽어.”
“죽을 때도 있어.”
“얘들아.”
단유는 손가락을 튕겨서 아이들의 시선을 끌었다.
“시험공부 하러 왔으면 공부를 해야지?”
“선생님, 화났어요?”
상미가 장난스레 애교 섞인 목소리로 되물었다.
“선생님이라고 부르지 말랬지?”
“알았어요, 선·생·님!”
단유는 가방에서 노트를 꺼내 애들에게 건넸다. 단유가 줄곧 지식을 정리하느라 채웠던 노트가 아닌, 특별히 친구들의 시험공부를 위해 만든 노트였다.
“과목당 암기해야 할 부분이랑 중요한 부분 체크해 둔 거니까, 그거 보고 공부해.”
“어?”
평소라면 단유가 하나하나 짚으며 설명을 해 줄 텐데, 이번에는 노트 보고 ‘알아서’ 공부하라고 하니 의아해진 지태가 물었다.
“화나서 그래?”
“아냐. 난 따로 할 게 있어서.”
“따로?”
“응.”
단유는 자신의 노트를 챙겨 방에 들어갔다. 펜을 들어 화학 분자식을 쓰고 공유결합(covalent bond)에 관한 지식들을 채워 넣으며 정리하기 시작했다.
‘공유결합은 결합 되어 있는 원자들이 전자를 서로 공유한다. 그리고 이 결합을 끊는 데 필요한 에너지는···.’
화합물의 다양한 결합방식 중 하나인 공유결합은 원자가 보유한 전자를 서로 내놓고 이를 결합하여 분자를 형성하는 형태를 설명한다. 안정된 형태의 분자들을 설명하는 유효한 방식인 공유 결합에 대해 지식을 정리하던 단유는 문득 펜을 멈췄다.
‘공유, 결합, 안정.’
이 세 단계는 여러 방식으로 패러다임화 시킬 수 있을 것 같았다. 지식의 예를 들어도, 서로의 지식을 공유하여 결합하면, 혼자만의 지식보다 풍부한 지식을 재정립할 수 있고, 편견이나 오류를 범할 위험을 줄이면서 안정적인 지식을 얻는 데 도움이 된다. 실제로도 그런 방식으로 학습이 이루어지고 있지 않은가? 여러 사람의 지식을 모아 교과서를 만들고, 이를 통해 학생들은 검증된 지식을 보충받는다.
반면 홀로 공부를 하면, 저도 모르게 발생할 수 있는 편견과 오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그래서 늘 경계하고 조심해야 한다. 안트의 가르침은 그런 이유일 것이다.
‘모든 것을 의심하라.’
진짜 그 사실을 의심하라는 말보다, 지식과 정보를 얻는 스스로를 의심하라는 말일 테다.
단유는 처음으로 홀로 공부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들었다. 지금은 교과서든, 책이든 혼자 보고 공부하는 게 익숙해서 그렇게 하고는 있지만, 과연 그 책의 내용을 오롯이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있는지 의심해봐야 할 것 같았다. 어쩌면, 자기도 모르게 무비판적으로 책의 내용을 지식의 진체(眞體)라 생각하고 받아들이고만 있었던 것은 아닐까?
제윅이 그랬지 않던가. 제윅 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도 자신만의 아집으로 세상을 보면서도, 그것이 자신의 아집이란 사실을 모르지 않았던가.
단유는 노트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다 펜을 놓았다.
“생각이 많아서 그래, 생각이.”
단유는 중얼거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의심도 좋지만, 그렇다고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까지 흔들리면 어떡하냐고 중얼거리며.
밖으로 나왔더니, 거실에는 아이들이 모여서 열심히 토론을 빙자한 수다를 떨고 있었다. 수다의 내용도 며칠 남지 않은 시험에 대한 것이 아니라, ‘누가 범인일까’에 대한 내용이었다. 범인을 알면 공부가 잘되기라도 한단 말인가?
“추리 게임 같은 거야. 마피아 찾기 같은 거.”
하지만, 게임이라도 단서가 있어야 찾지, 아무런 단서도 없이 추측만으로 이러쿵저러쿵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냥 니들끼리 노는 거지.”
“그럼 넌 누가 범인이라고 생각해? 선생님? 학생? 아니면 다른 또 다른 인물?”
“그러니까, 그게 누구인지 어떻게 아냐고.”
“그냥 재미로 맞혀 봐.”
“그게 재밌어?”
단유만 이해 못 하는 재미를 아이들은 느끼고 있었나 보다.
“선생님은 아닐 거야. 다른 선생님들도 같이 있었다고 하니까.”
“몰래 할 수도 있지.”
“사람을 막 죽이는데 큰 소리가 나지 않았을까?”
“큰 소리가 안 나게 할 수도 있지. 닌자처럼 막 이렇게 몰래 들어가서 쑥 하는 거야.”
몸동작을 곁들이는 명수의 설명에 상미가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야. 어쩌면 아이들일 수도 있어. 너희 학교에도 막가자는 식으로 다니는 애들도 있을 거 아니니?”
“그때는 애들이 전부 경기장에 있었다니까?”
“학교로 돌아온 애도 있다며?”
“그건 시간이 안 맞는대.”
지태는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쳤다.
“이건 틀림없이 외부자의 소행이야.”
“왜?”
“내부자였으면 벌써 경찰들이 찾았겠지. 며칠째 학교를 들락날락하면서 조사를 했는데, 왜 범인을 못 찾겠어? 거꾸로 말하면, 학교에 범인이 없기 때문에 경찰들이 범인을 못 찾고 있는 거야.”
학교 밖에 주차된 자동차의 블랙박스와 골목마다 서 있는 CCTV를 모두 조사해봐야 한다는 식으로 주장하는 지태의 말을 끊고 단유가 끼어들었다.
“거기까지.”
“왜?”
“공부 좀 하자. 니들 2학년 첫 시험인데, 망칠 거야?”
“그럼 같이하든가.”
“그래, 니가 없으니까 공부할 맛이 안 난다.”
단유는 한숨을 푹 쉬며, 명수 옆에 엉덩이를 붙였다.
“근데 단유야.”
“응?”
“넌 범인이 누구일 거 같아?”
“내가 경찰도 아닌데 어떻게 알아?”
“그래도 한번 말해봐.”
“모른다니깐.”
“에이, 재미없게.”
이런 지식의 결합은 사양하고픈 단유였다.
“공부하자.”
하지만 말과는 다르게 단유 역시 속으로 학교에서 벌어진 사건에 대해 생각 중이었다. 다만 다른 이들과 다른 점이라면 호기심이 아니라 의문 때문이었다.
‘왜 나를 안 부르지?’
단유는 스스로에게 되물어도 그 점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물론 단유 본인으로서는 다행스러운 일이긴 하지만, 만약 조사를 충분히 했다면 분명히 자신을 불러야 했는데, 그렇지 않다는 게 수상한 것이다.
‘수사를 제대로 안 하나?’
게으르거나 무능하거나. 단유는 고개를 휘휘 내젓고는 아이들과 시험공부를 시작했다. 아니, 시험에 나올 법한 부분을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
“와, 이거 진짜 미치겠네.”
김지연은 추가 소환 이후로는 부르지 않았다. 다만 김지연 주변으로 상시 대기조가 붙어 감시를 진행 중이었다. 그녀의 증언과 주변 정황으로만 봐서는 범행 사실이 입증되지 않지만, 그렇다고 의심을 거둘 순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장 형사는 그런 조치와 무관하게 머리를 싸매고 책상에 고개를 묻고 있었다.
“왜 그러십니까, 선배님.”
“응? 아, 도저히 모르겠어서 그런다. 분명히 뭔가 놓친 게 있는데, 뭘 놓쳤는지 모르겠어.”
일요일부터 수요일까지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학교로 출근하다시피 했다. 그리고 당시 학교에 남았던 선생님들뿐만 아니라 알리바이가 충분한 선생님들까지도 조사해서 용의점을 털어낸 상태였다. 외부의 침입도 고려했지만, 그 시간 학교 주변에 시선을 끌 만한 사람이나 상황이 발생하지 않았음을 확인했다.
“내일 다시 한번 학교에 가봐야겠어.”
“내일 또요?”
영식은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비록 수사를 핑계로 대고는 있지만, 눈치 보면서 상담실을 쓰는 것도 그렇고 학생들이 자신들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시선도 부담스러웠다. 게다가 선배란 양반이 걸핏하면 교내에서 담배를 피우려고 해서 그걸 말리는 일도 힘들었고.
“음.”
침음(沈吟)을 뱉으며 장 형사는 문득 한 아이의 눈빛을 떠올렸다. 별거 아닐 수도 있지만, 간절하다 보니 문득 그 아이가 물었던 질문이 떠오르게 되었다.
[학교에 있던 사람들을 ‘다’ 조사 중인 거 맞죠?]
“다?”
장 형사가 눈빛을 반짝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