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알 바 아닌데(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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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수선한 교실 분위기는 오전 내내 계속되었다. 수업 시간에도 아이들은 좀처럼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는 분위기였고, 몇몇 선생님들이 다그치기도 했지만, 효과는 별로 없었다.
“시험이 며칠 남았다고 정신들 빠져 있어? 오늘 수업에서 시험 문제 나온다고 했지? 정신들 차려!”
사실 선생님들이라고 온전히 수업에 집중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솔직히 학생들이야 이사장이 무슨 관계가 있겠냐 만은, 선생님들의 경우에는 마치 회사 사장님이 살해당한 꼴이나 마찬가지니 부하직원으로서 영향이 없을 수 없었다.
그런 분위기 속에 점심시간이 되었다. 단유와 도하는 점심을 먹기 위해 중앙계단을 지나 식당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아이들이 모여있는 모습이 눈에 띄어 살피니, 이사장실 앞에서 힐끔거리며 정황을 파악하려는 아이들이 모여있던 탓이었다.
이사장실 앞 복도에 서 있던 사복 차림의 두 사람이 경찰로 판명되었음에도 두 사람은 정복으로 갈아입지 않았는데, 윗분들이 여전히 ‘비공개’를 원칙으로 정한 탓이었다.
“저리 가라.”
점잖게 아이들을 물리려는 경찰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의 호기심이 쉬이 사라지지 않았다. 동물원 원숭이도 이보단 낫지 않을까, 란 생각에 이맛살을 찌푸리는 경찰들은, 그래도 차마 중학생에 불과한 아이들에게 큰소리를 내기 힘들어 묵묵히 버텨낼 뿐이었다.
물론 단유는 그런 쪽에 관심이 없었다. 머릿속에는 얼른 식사를 마치고 돌아와서 하던 작업을 이어가는 것이 전부였으니 말이다. 도하도 달리 호기심을 보이지 않은 채 그저 단유의 옆을 지켜 걸음을 맞출 뿐이었다. 두 사람이 중앙현관을 빠져나올 무렵, 단유의 이름을 부르며 따라오는 이가 있었다.
“단유야.”
돌아보니 병호였다. 귓불이 빨갛게 물든 병호는 단유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인사는 도하한테 해. 난 아무것도 안 했어.”
쭈뼛대며 도하에게도 고맙다, 인사하는 병호는 분명 도하를 두려워하고 있음이다. 도하도 딱히 인사를 바라지 않았는지 쿨하게 손을 저어 별거 아니라는 제스쳐를 취했다. 인사가 끝났음에도 병호는 떨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한 걸음 뒤에서 두 사람을 따라왔다.
식판을 받아 테이블에 앉을 때도 잠시 주저하긴 했으나 단유네와 마주 앉아 식사하기 시작한 병호였다. 그런 병호를 살펴보니, 단유와 도하의 눈치를 볼 뿐만 아니라, 주변 아이들의 시선까지도 신경 쓰는 모습이라 단유는 병호의 속내를 짐작해볼 수 있었다.
도하 역시도 병호의 속내를 짐작했던지, 침묵을 깨트리고 입을 열었다.
“우린 보호자가 아냐.”
병호가 무슨 말이냐는 듯 도하를 바라보다 또 한 번 얼굴을 붉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잘나가던(?) 도하였다. 도하 옆에 줄 서 보겠다고, 붙어서 ‘셔틀’ 하던 애들이 없었을까?
“아니, 그게 아니고···.”
도하는 이미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는 듯, 병호에게 관심을 끊고 식사를 이어나갔다. 그 모습을 불안하게 보던 병호는 힘겹게 말을 꺼냈다.
“사실은 금요일에 학교에 왔었거든. 경기 끝나고. 그런데 그게 학교 CCTV 있잖아? 정문에. 거기에 찍혔나 봐. 그래서 경찰이 왜 학교에 왔냐고 물었던 거야. 절대 이사장 이야기는 안 나왔어.”
“안 물어봤다.”
도하는 국을 한 입 떠먹고는 인상을 찌푸렸다.
“이거 너무 짠데?”
“그냥 먹어.”
딱히 까다로운 입맛도 아닌 단유인지라, 대신 밥을 두 숟가락 정도 먹고 반 숟가락 정도 국을 떠먹는 식으로 자체 해결 중이었다.
“금요일에 살인 사건이 난 거야. 그 시간쯤에. 그런데 그 시간에 학교에 있던 사람이 몇 없잖아? 그래서 다 조사 중이었던 거고. 그래서 조사받은 건데, 난 알리바이가 있어서 아무 죄가 없대. 난 4시쯤에 왔으니까, 그 전에 사건이 난 거지.”
실제로는 누구도 병호에게 ‘죄가 없다’고 말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스스로 ‘무죄’라고 확신을 주려는 듯, 악센트를 넣어 강조하는 병호였다.
“안 궁금하니까, 그냥 밥이나 먹어라.”
도하는 젓가락을 들어 병호를 가리켰다. 병호는 그 위협적인 동작에 입을 다물었다. 이후 다시 얌전하게 식사를 재개한 도하는 김치도 짜네, 라며 중얼거렸다.
반면 단유는 잠시 숟가락질을 멈추고 병호를 바라보았다.
“왜? 뭐, 궁금한 거 있어?”
뭐든 물어봐, 다 대답해줄게, 라는 자세로 질문을 기다리는 병호를 보던 단유가 고개를 저었다.
“아냐, 밥 먹어.”
단유는 머리를 긁적였다. 생각해보니, 조금 수상한 점이 마음에 걸렸다.
‘학교에 있던 사람들을 모두 수사 중이다?’
“야, 비듬 떨어져.”
도하의 말에 단유는 무의식적으로 아래를 바라보았다가 도하를 쳐다보았다.
“농담이야.”
단유는 입을 살짝 벌렸다가 이내 포기하고, 다시 식사를 재개했다. 그게 다 무슨 상관이야. 지금은 빨리 밥 먹고 교실로 들어가서 뉴턴의 제2 법칙에 관한 지식을 정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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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비슷한 시각, 상담실에서 마지막 학생까지 조사를 끝낸 장 형사는 기지개를 켜며 찌뿌둥한 몸을 움직였다. 수업에 최대한 피해가 가지 않게 학생들을 부르다 보니, 몇 안 되는 학생들을 조사하는 시간보다 기다리는 시간이 더 오래 걸린 탓이었다. 마침 핸드폰에서 기본 벨소리가 울렸다.
“여보세요.”
파트너인 영식이 짧은 시간에도 조사가 충분했던지, 중간보고를 했다. 몇 사람 안 만나봤지만, 공통적으로 ‘지한영’이란 인물이 소위 ‘개망나니’같은 짓을 저지르고 다녔다는 진술이었고, 이런 아들의 뒤치다꺼리를 ‘이사장’이 줄곧 해오고 있었다는 이야기였다.
“원래 자식새끼가 사고 치면 부모가 뒤치다꺼리하는 거야.”
평범한 아들이었다면 그러려니 했겠지만, 돈 많고 인성이 그릇된 젊은 남자라면 좀 더 과격한 사고를 칠 수도 있다는 영식의 설명이었다. 폭력, 음주, 강간 등의 혐의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는 말에 장 형사는 혀를 찼다.
[지금 병원에 입원한 것도 음주운전으로 사고를 일으켜서라는데요.]
“음주운전? 그런데 왜 아무 말이 없어?”
[그러니까 아버지가 뒤처리를 했다는 거죠.]
“경찰에도 힘을 썼다는 이야기야?”
장 형사의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영식은 제가 한 것도 아닌데 괜히 기가 죽어서는 ‘그런 것 같아요’라고 답변했다.
“더 알아보고, 서에서 보자. 나도 여기 대충 마무리 짓고 서로 갈 테니까.”
장 형사는 핸드폰을 바지 주머니에 집어넣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김지연의 증언에 신빙성이 더해지기도 했지만, 동시에 범행동기로서 충분하다고 여길 부분이기도 했다. 아들이 치근대는 여자를 따로 만나서 무슨 이야기를 했을까? 지연의 말처럼 ‘며느리’로 생각하며 일상적인 대화만 나누었을까?
그 이상은 소설 같은 추리에 불과하니, 일단은 조금 더 조사를 해봐야 하겠다. 우선 지연을 다시 소환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장 형사는 중앙계단을 내려왔다.
“야, 니들 뭐야. 저리 가.”
이사장실 근처에서 서성대던 아이들을 말 한마디로 내쫓으니, 그제야 한숨을 내쉬며 장 형사에게 고마움을 표시하는 경찰들이었다.
“바보냐? 지금 학교 전체가 다 알고, 학부모들도 다 아는 일이야. 조만간 언론사에서도 와서 취재하려고 달려들 텐데, 멍청하게 시치미나 떼고 있으니 그런 구경거리나 되는 거잖아? 그냥 사건 현장이라고 말하고 다가오는 사람 있으면 다 내쫓아.”
“하지만 반장님이···.”
“반장 같은 소리 하고 앉아있네. 야, 내가 책임질 테니까 그냥 내쫓아. 뭐냐, 이게. 경찰 가오 떨어지게.”
장 형사는 경찰들의 경례를 받으며 중앙 현관을 벗어났다. 바깥 공기를 쐤더니 도리어 담배가 생각났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오전 중에 봤던 쓰레기장을 떠올렸다. 그 뒤편이 주변의 시선을 잘 끌지 못할 것 같더라는 사실을 생각하며 걸음을 옮긴 장 형사는, 그곳에서 미리 자리를 잡고 있는 학생들을 만나게 되었다.
“이 새끼들이···.”
헛웃음을 짓는 장 형사를 보고 급히 담뱃불을 꺼뜨리는 학생들이었다.
“동작 그만.”
지금 이 시각, 선생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험악한 인상의 사복 차림 남자라면 당연히 ‘경찰’임을 모를 수 없던 아이들은 굳은 얼굴로 눈동자를 요리조리 굴리며 빠져나갈 구멍을 찾기 시작했다.
“머리 돌아가는 소리가 아주 요란하다 못해 시끄럽다, 시끄러워. 내가 니들 얼굴 모를 것 같아서, 지금 튀면 괜찮을 것 같냐? 어디 한 번 튀어봐. 내가 한 놈만 잡아서 수갑 채운다.”
‘수갑’이란 단어에 아이들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하지만 학교에서 흡연을 할 정도의 아이들이라면, 당연히 깡이 있기 마련.
“우리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수갑 차요? 뻥 치지 마요.”
“허? 이것 봐라?”
장 형사가 기도 안 찬다는 듯 실소를 터뜨리며 아이들을 꼬나보기 시작했다.
“그래, 흡연이 당장 무슨 죄는 아니지. 그런데 니들 담배는 어디서 났냐? 설마 청소년 담배 구입이 합법이라고 우길 건 아니지?”
아이들의 얼굴이 창백해지는 것을 느끼며 장 형사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씨발!”
누군가의 욕설에 장 형사의 눈썹이 꿈틀댈 때, 아이들은 재빨리 몸을 돌려 달아나기 시작했다. ‘요놈들 보소?’라는 생각으로 장 형사 역시 쫓아가려는데, 아이들이 여간 날쌘 게 아니었다. 게다가 미리 탈출 경로(?)를 정해 놨던 것인지, 무작정 달리는 게 아니라 주변 지형지물을 활용하며 몸을 피해 달아났다. 그러다 보니 장 형사가 쉽게 그들을 쫓기가 어려웠다.
물론 장 형사도 적극적으로 그들을 쫓을 생각은 없었다. 당장은 자리에서 쫓아낸 것만 해도 충분했으니까.
“아이구, 개새끼들. 커서 뭐가 되려고. 쯧.”
장 형사는 아이들이 버리고 간 장초들을 발로 툭툭 쳐서 모은 뒤에 뒤꿈치로 살살 비벼 불씨를 완전히 없앴다. 그 상태에서 곧 자신의 담배를 꺼낸 뒤 불을 붙이고 연기를 뿜어냈다. 하얗게 구름을 만들어 흩어지는 연기를 바라보며 장 형사는 ‘인생무상이라’ 중얼거렸다.
밥을 먹고 나와서 다시 교실로 돌아가던 단유와 도하는 학교 본관 건물 뒤편에서 달려 나오던 한 무리와 마주쳤다. 2, 3학년이 섞인 학생들은 두 사람을 지나 운동장으로 달려가는데, 도하가 불렀다.
“야, 유우성.”
무리 중에 섞여 있던 우성이 도하의 부름에 뜀박질을 멈추고 단유와 도하를 바라보았다. 단유와 눈이 마주쳤을 때, 살짝 눈꼬리가 올라가는 듯도 했지만, 몸은 단유에게서 멀어지려는 듯한 걸음 뒤로 물러서는 모양새를 취했다.
“선생님한테 걸렸냐?”
“···뭔 상관인데? 신경 쓰지 말라며!”
단유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냥 가.”
우성이 단유를 노려보며 사라지는 것은 보던 도하가 짐짓 감탄하는 척을 했다.
“저 새끼가 저런 놈인 줄 몰랐네.”
“뭐?”
“아니, 저렇게 깡다구가 센 놈인 줄 몰랐다고.”
어지간하면 단유에게 기가 죽을 만도 한데, 금세 잊어버리고 또 저렇게 날을 세우는 모습을 보니 보통 깡이 아니다 싶었다. 단유는 뭔 얘긴가 했다 싶어 피식 웃음을 보인 뒤, 교실로 들어가려 했다.
“누구 남았나 본데?”
“뭐?”
“저 뒤에.”
비록 거리는 멀지만, 저렇게 드러내고 담배 연기를 뿜어내는 모습을 보이면 누구라도 눈치를 채지 못할 리 없었다. 보통 아이들은 연기가 잘 보이지 않게 아래로 연기를 뿜어냈으니까.
“가 보자.”
“너 혼자 가.”
“같이 가 보자.”
“왜?”
“착한 짓 좀 하려고.”
‘얘가 진짜 머리가 어떻게 됐나?’라는 생각이 들 때, 도하는 단유의 팔을 붙잡고 학교 건물 뒤로 향했다.
하지만 그 자리에 있던 것은 학생이 아닌 어른이었다. 눈에 익은 사람이 아닌 것을 보니 이 학교 선생님은 아니었고, 복장도 선생님의 복장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분명 ‘경찰’일텐데.
“경찰은 학교에서 담배 피워도 돼요?”
도하는 ‘착한 짓’을 하기로 마음을 먹은 것인지, 아니면 ‘경찰’에게 한 방 먹일 기회를 잡아서 신이 났던 것인지, 아니면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지른 것인지 경찰에게 ‘훈계’를 시전했다.
“뭐?”
“민중의 지팡이가 학교에서 담배 피우면 안 되는 거잖아요? 그래가지고 무슨 법을 지킨대?”
어이가 없다는 눈으로 도하를 바라보는 장 형사의 시선이 옆에서 관자놀이를 툭툭 치고 있는 아이에게로 옮겨졌다.
“니들 뭐냐? 설마 니들도 여기 담배 피려고 왔냐?”
“아닌데요.”
“그럼 여기 왜 왔어?”
“저기서 보니까 담배 연기가 보이길래, ‘선도’하려고 왔어요.”
“선도부냐?”
“우리 학교는 선도부 없어요.”
“선도부가 없는 학교도 있어?”
“요즘은 선도부 없는 학교도 있어요.”
“그럼 아침에 학교 앞에서 복장 검사 같은 거 안 하냐?”
“그건 지도 선생님이 하시는데요.”
“학생들은 안 하고?”
“네.”
“하긴 선도부가 약간 불량 써클처럼 변한 곳도 있으니까, 없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그 시간에 공부나 하는 게 낫지.”
흡연이 불법인 학교 내에서 버젓이 담배를 태우는 경찰과, 어디로 튈지 모르게 마음 내키는 대로 말을 꺼내는 ‘맥락 파괴범’ 도하의 대화는, 옆에서 지켜보는 단유의 머리를 어지럽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