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알 바 아닌데(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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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형사님.”
장 형사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 이의 얼굴을 확인하니, 마른 턱에 눈이 퀭한 교감이 몸을 기울여 눈치를 보고 있었다.
“예? 무슨 일이시죠?”
교감은 문을 닫고 상담실로 들어왔다. 실내에 사람이라곤 두 형사와 교감뿐이건만, 뭔가 눈치를 보는 사람 같았다.
“혹시 김지연 선생님···이 한 건 아니죠?”
장 형사의 미간이 좁혀지는 것을 본 교감은 괜한 말을 꺼냈나, 하는 후회가 밀려듦을 느꼈다.
“왜 물으시죠?”
“아니, 그냥···.”
“아직은 아무것도 밝혀진 게 없기에, 답을 드릴 수 없군요.”
굳은 형사의 표정에서 느껴지는 단호함에 기가 눌린 교감은 말을 얼버무렸다.
“아, 네.”
“···혹시 달리 해 주실 말씀이라도 있으신가요?”
“네? 아, 아닙니다.”
장 형사는 교감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딱히 어떤 감정이 깃든 것도 아니건만, 현직 형사의 날카로운 눈초리를 버텨낼 깜냥이 없던 교감은 고개를 비스듬히 틀어 그 시선을 피했다.
“잠시 주변 좀 둘러봐도 될까요?”
“주변이요?”
“학교 전체가 현장이나 마찬가지니까요.”
“아, 예. 그러시죠.”
어찌 보면 엉뚱하다 여길만한 제안이었지만, 교감은 반갑다는 듯 제안을 받아들였다. 이후 장 형사는 후배와 함께 상담실을 나와 학교 중앙현관을 통해 밖으로 나왔다.
“표정이 많이 안 좋으신데요?”
나올 때까지 선배의 눈치를 보던 후배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나? 아냐. 안 좋긴.”
사실 장 형사는 조금 불쾌감을 느끼고 있긴 했었다. 어제 하루 동안 지연을 취조하는 과정에서 교장이나 교감과 있었던 일까지 전해 들은 터였기 때문이다.
“자기 딸이었으면 그렇게 했겠냐?”
“네?”
“아니다.”
학교가 신성한 교육의 장이란 것도 옛말이지, 라고 중얼거리며 장 형사는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후배도 어제 장 형사와 함께 자리했던 터라, 대충 선배의 마음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었다. 해서 후배는 말없이 선배의 뒤를 따랐다.
“흠.”
“왜요?”
“어제 저기 다 뒤졌지?”
어느새 학교 뒤를 돌고 있던 두 사람 앞에는 쓰레기가 수북이 쌓인 쓰레기장이 보였다. 아직 치울 시간이 되지 않았던 탓에 제법 많은 쓰레기가 쌓여 있는 모습이었고, 일요일에 경찰들이 뒤졌던 탓인지 주위에 많이 흩어져 정리가 덜 된 모습이기도 했다.
“네.”
“우리 때는 소각장에서 다 태웠었는데.”
“저희 학교는 제가 다닐 때 소각장을 없앴어요. 불법이잖아요.”
“환경에 안 좋긴 하지.”
혼잣말하듯 중얼거리며 둘러보다 돌아선 장 형사는 다시 학교 중앙현관으로 향했다. 중앙현관에서 오른쪽은 교장실과 이사장실이, 왼쪽은 행정실과 기타 부속실과 1학년 교실이 자리 잡고 있었다. 양쪽을 번갈아 보던 그는 계단을 통해 위로 올라가려다 몸을 돌려 행정실 방향으로 움직였다.
행정실을 지나면 부속실이 하나 나오고 그 뒤로 1학년 교실들이 기억자 복도를 지나서까지 연결되어 있었다.
수업 중이라 조용한 복도였다. 그 복도를 거닐며 수업 중인 교실들을 훔쳐보던 장 형사는, 가끔 눈이 마주치는 선생님을 봐도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뒤에서 바라보면 진짜 산책을 하는 한량의 모습과도 같았다.
“여긴 왜 오신 겁니까?”
아무리 봐도 수사 때문이라고 보긴 어려웠던 후배가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질문을 던졌다.
“그냥. 옛날 생각도 나고.”
“옛날 생각이요?”
“몇십 년 만에 학교를 찾았더니 이것저것 생각이 나네.”
말만 들으면 마치 향수에 젖은 노인네가 오랜만에 고향을 찾아 추억을 더듬는 모양새지만, 당사자의 얼굴은 이보다 무심할 수 없다는 듯 감정이 깃들지 않은 눈으로 주위를 살펴볼 뿐이었다.
“예전에 말이야.”
1학년 교실이 있는 1층 복도의 끝에 다다를 무렵, 장 형사가 다시 입을 열었다.
“예전에 체육 시간에 나가면, 바지를 벗겼어. 내복을 입고 있는지, 없는지 검사를 하기 위해서. 내복을 입으면 건강하지 않다고, 튼튼해질 수 없다고 생각했나 봐. 그래서 ‘내복 안 입기 운동’ 같은 걸 하고 그랬지.”
그런 것도 있었나 싶어 어리둥절해 하는 후배의 의문과 상관없이 장 형사는 말을 이었다.
“교실에서 담배를 피우던 친구가 있었어. 쉬는 시간이었는데 선생님한테 안 들키려고 커튼을 두르고 창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담배 연기를 뿜었지. 담배 연기를 뿜어낸 후에는 우리를 보면서 웃었어. 아마 자신이 그만큼 용기 있다고 뽐내고 싶었던 거겠지. 그런데 창밖으로 연기가 뿜어져 나오는 걸 선생님이 보셨나 봐. 교실로 달려 들어와서는 그 아이의 머리를 붙잡고 미친 듯이 때리더라고.”
2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오르는 동안에도 주절주절 장 형사는 과거의 이야기를 떠들었다.
“손에 쥐고 있던 담배를 놓쳤는데, 그게 커튼에 검은 구멍을 냈지. 별로 크진 않았지만, 그게 또 선생님의 눈에 띈 거야. 그 아이는 얼굴이 부풀어 오르도록 맞았어. 나중에는 고막이 나갔다는 거야.”
후배는 선배의 이야기가 사건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몰라 계속 머리를 굴렸다.
“결국, 아이는 전학을 갔어. 정학당하는 대신 말이야.”
“예?”
“선생님은 그 뒤로도 계속 학생 주임을 맡았고.”
“아이가 그렇게 심하게 다쳤는데도요?”
“내게 학교는 그런 곳이야.”
2층에 오른 장 형사는 다시 교실 안을 훔쳐보며 복도를 걸었다.
“다른 사람들은 아무 말 없었나요?”
“다른 사람들? 누구?”
“뭐 학생들이라던가, 학부모들이라던가.”
“승진가산점을 덜 받았을지도 모르지.”
“네?”
장 형사는 2층 복도를 지나 교무실에 이르렀다. 교무실 안에는 아까보다는 덜해도 전화가 많이 울리는 중이었다. 몇 안 되는 선생님들이 전화를 받으며 응대를 하는 중이었는데, 그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던 장 형사는 상담실로 돌아갔다.
“영식아.”
“네.”
“지한영이 조사 좀 해봐라.”
“지한영이요?”
살인사건 당시 병원에 있었음이 확인된 상태였다.
“범인이 누구든, 동기는 학교 문제는 아닐 거 같다.”
“왜요?”
“학교에 동요가 없어.”
그걸 그냥 둘러본 것만 가지고 안다고? 요즘 시대가 어떤···.
“1학년 4반, 2학년 2반에서 수업을 하고 있던 선생님들이 당시 지연과 함께 학교에 남았던 선생님들이었어. 그런데 그 선생님들, 날 보면서도 동요가 없었어. 그리고 김지연 씨에 대해 물어본 사람도 교감 선생님뿐이야. 물론 그것도 자신이 벌인 짓이 어떤 관련이 있는 건 아닌지 걱정되어서겠지.”
“하지만 전부 추론일 뿐이지 않나요? 증거가 없잖아요.”
장 형사는 탁자 위에 놓여있던 메모지에 ‘지강목’이라는 이름을 적었다. 이름 주위로 원으로 그리고는 사방으로 줄을 그었다.
“죽은 이사장의 사회적 위치를 고려하면 여러 방향으로 동기를 생각해 볼 수 있어. 그중 한 줄기가 학교야.”
‘학교’라고 적는 장 형사의 펜이 잠시 멈칫했다.
“그리고 만약 학교 내부 문제가 범행동기라면, 김지연 씨가 용의자로 붙잡혀 있는 이 상황에서 다들 그 문제가 어떻게 변화될 것인지 관심을 기울일 거야. 하지만 특별히 그런 낌새가 느껴지지 않는, 보통의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는 건, 학교 내부에서 논란이 될 만한 문젯거리가 없다는 거지. 그렇다면 다른 쪽으로 방향을 살펴보는 게 좋지 않겠어? 예를 들면.”
‘학교’와 반대편에 선을 죽 긋더니 ‘지한영’이라고 이름을 적었다.
“괜히 김지연 씨가 용의자로 지목된 것은 아닐 거란 말이지.”
‘지한영’이란 이름 위에 덧씌워지는 원이 점점 두꺼워지고 있었다. 영식은 머리를 긁적이다가 상담실을 빠져나갔다. 나가기 전 다시 확인했다.
“그럼 학교에서는 조사할 게 없나요?”
“나 혼자 해도 충분해. 가봐.”
“네.”
영식은 꾸벅 고개를 숙여 보인 뒤, 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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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치게 엄숙했던 수학 시간이 끝나고 다시 쉬는 시간이 되었어도, 교실의 화제는 단연 ‘이사장의 죽음’에 있었다. 그리고 몇몇 아이들은, 병호에게 달라붙었다.
“말해봐. 응? 경찰이랑 무슨 말 했었는데?”
“······.”
“금요일에 학교에 왜 왔는데? 진짜 이사장이랑 한 판 뜨려고?”
“병호야, 현실은 게임이 아니라니깐?”
“게임중독이라 그래.”
“이래서 사람들이 중독, 중독 하는구나.”
병호가 부들부들 떠는 모습이 멀리 앉은 도하에게도 보일 정도였다. 도하가 단유를 돌아보니, 여전히 노트에 필기 중이었다. 살면서 이토록 필사적으로 공부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던 도하는 신기하다는 듯 단유를 보았다.
“왜?”
시선의 집요함을 못 이긴 단유가 물었다.
“아니. 이렇게 공부하니까 전교 1등을 하나보다 싶어서.”
단유는 펜을 놓았다. 너무 오래 펜을 쥐고 있었는지, 손바닥에 아릿한 통증이 느껴질 정도였다.
“방해한 거야?”
“조금. 그런데 손이 아파서 놓은 거니까 신경 쓰지 마.”
“넌 누가 너 신경 쓰는 거 되게 싫어하나 보다.”
“···꼭 그런 건 아닌데.”
“넌 착한 놈은 아니지?”
단유는 한쪽 눈을 살짝 찡그리며 뜬금없는 인물평의 의미를 물었다.
“그냥 그런 생각이 들어서. 만약 나나 우성이가 너한테 시비를 걸지 않았다면, 우리가 뭘 하든 신경을 쓰지 않았을 거란 생각이 들어서 말이야.”
“그럴지도 모르지. 그런데 왜 그런 질문을 하는 건데?”
도하가 병호를 가리켰고, 단유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답했다.
“사정을 알지 못하는 모든 일에 시시비비를 가릴 수는 없잖아. 그리고 저런 일이라도, 저건 내가 도울 문제가 아니지.”
“그래?”
단유는 병호 쪽을 바라보다 한숨을 내쉬었다.
“너 성격 이상한 거 아냐?”
“내가 왜?”
“지금 저쪽을 가리킨 의도가 있을 거 아냐? 정 마음이 동하면 니가 직접 해.”
“내가? 왜?”
단유는 도하가 시치미를 떼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처음에는 별로 말도 걸지 않던 애가, 이제는 틈만 나면 툭툭 건들면서 말을 건다. 편해지려고 같이 있고 싶다더니, 진짜 편해졌나 보다.
“아니라고!”
병호 쪽에서 거친 소리가 터졌다. 병호가 시뻘게진 눈으로 벌떡 일어나서 고함을 친 것이다.
“이 새끼야! 놀랐잖아!”
“새끼가 왜 이래? 야, 너 미쳤냐?”
“왜 장난을 진심으로 받고 지랄이냐? 너 진짜 뭔 짓 했냐? 아니면 왜 그러냐?”
아이들은 도리어 병호를 타박했다. 병호는 분기를 참지 못해 소리를 질렀지만, 곧 주위 아이들의 타박에 거품 빠진 사이다처럼 기운을 잃고 힘이 풀렸다. 그때 쾅, 하는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반의 학생들이 순간적으로 놀라 입을 닫고 소리의 근원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야. 적당히 해라.”
“어?”
아이들이 돌아보니 도하가 주먹을 쥐고 책상을 강하게 내려쳐 소리를 낸 것이었다. 한동안 조용히 지내고는 있었다지만, 도하의 클래스(?)가 어디 가는 건 아니었다.
“시끄러워서 단유가 공부를 못하잖아. 단유 공부 못하면 니들이 책임질 거야?”
단유의 이마에 힘줄이 불끈 솟아올랐다.
“야, 임마. 거기서 왜 내 핑계를 대?”
“어? 너 나한테 욕했어?”
“와, 이놈아! 지금 그게 중요하냐?”
“너도 욕할 줄 아는구나.”
“아놔.”
아이들이 영문을 몰라 할 때, 단유는 한숨을 내뱉고 병호와 그 주위의 아이들을 쳐다보며 말했다.
“야. 니들 하던 거 계속해.”
“뭐?”
“병호 괴롭히던 거 계속하라고. 신경 안 쓸 거니까.”
“······.”
“다른 애들도 별로 신경 안 쓰는 거 같으니까, 계속하던 거 해. 도하는 내가 얌전하게 있도록 할 테니까.”
아이들의 시선이 병호 쪽으로 몰렸다. 이제 병호 주위의 아이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당장 멍석을 깔아주면, 머뭇거리게 마련이었고, ‘괴롭힌다’고 정의까지 내린 마당에 누가 계속할 수 있을까? 그렇다고 누구 하나 제자리로 돌아가지도 않았으니 묘한 대치 형국이 되었다.
“안 할 거면 그만 괴롭히고 돌아가.”
이게 참 3반의 묘한 분위기 중 하나였다. 분명 단유는 반장도 아니고 그의 말을 따를 이유가 하나 없는데도, 기존의 단유라는 아이가 가지고 있던 ‘전교 1등’이라는 이미지와 도하와 우성이라는 두 ‘주먹’을 힘으로 누른 사람이라는 이미지가 겹쳐서 그를 무시하지 못하게 하는 게 있었다. 아이들은 그것에 대해 정확히 정의를 내리지 못할지도 모르겠지만, 그건 일종의 ‘권위’였다. 그리고 ‘권위’에 복종하도록 교육받는 아이들은, 단유의 말을 쉽게 무시하지 못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리로 돌아갔다. 슬금슬금 움직이는 아이들은 스스로도 그렇고 지켜보는 이들도 이 모습에 대해 비웃을 수 없었다.
‘김단유’가 돌아가라고 했으니까.
그리고 마치 이 모습을 예상했다는 듯, 도하가 씩 웃음을 지었다.
“왜 웃어?”
“욕먹어서?”
“아놔.”
단유는 도하의 뒷머리를 툭 쳤다.
“이제 때리기도 하네.”
“너랑 있으니까 진짜 사람 이상해지는 것 같다.”
“좋은 게 좋은 거야.”
“진짜 말 좀 생각하고 말해.”
“조용하니 좋잖아?”
단유는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며 다시 펜을 들었다. 어쨌든 교실은 조용해졌고, 다시 노트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으니. 좋은 게 좋은 거라 생각하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