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알 바 아닌데(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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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공개 수사?”
장 형사가 흡연 후 상담실로 돌아왔을 때, 후배는 반장과 통화를 하고 있었다.
“무슨 소리야?”
“비공개 수사라서 소문 안 나게 조심하라고.”
후배는 혹시라도 들릴세라 핸드폰을 한 손으로 덮으며 조용히 말했다.
“미친.”
장 형사가 후배에게 손을 내밀자, 후배는 격렬하게 고갯짓을 했다. 의미 없는 짓이란 걸 알면서도.
장 형사는 후배의 손에서 핸드폰을 빼앗았다.
“여보세요? 반장님? 반장님이시네. 우리 반장님이시네. 우리 반장님이 또 세상 물정 모르는 윗분들 때문에 전화하셨네. 그렇죠? 그니까 윗분들한테 이야기 좀 전해줘요. 여기에 사람만 천 명이 넘게 돌아다니고 있는데 비공개 수사가 말이 되냐고. 네? 아니, 그건 그쪽 사정이고, 우린 우리 사정이 있는 법이잖아? 에이, 반장님도 그렇게 이야기하면 섭섭하지. 여기 입이 몇 개고, 눈이 몇 갠데 그게 막는다고 막아져? 네? ···반장님. 나 진짜 반장님이라서 내가 존나 참고 있는 거 알죠? 아니면 나 벌써 핸드폰 집어 던졌어.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 이렇게 스트레스 주는 거 아니다, 진짜. ···맘대로 하라 해! 맘대로! 아 씨.”
장 형사는 진짜 핸드폰을 집어 던지려다 멈칫하더니 후배에게 가볍게 던졌다. 기겁하던 후배가 두 손으로 핸드폰을 잡아챈 뒤, 몰래 한숨을 쉴 때, 장 형사는 머리를 마구 헝클어뜨렸다.
“말 같지도 않은 소릴 하고 있어.”
“뭐라고···하시는데요?”
“몰라. 신경 꺼. 애들이 무슨 까막눈이야? 당장 이사장실 앞에 폴리스 라인을 대놓고 쳐놓은 마당에 말이야. 그걸 모르게 하라는 게 말이야, 방귀야!”
마침 수업이 끝났음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가서 다음 애들 불러와.”
후배가 나간 틈에 좌우로 목을 꺾어보던 장 형사는 또다시 치밀어오르는 흡연 욕구를 참기 위해 주머니를 뒤적거려 껌을 하나 꺼내 씹기 시작했다. 껌 속에 욕지기도 함께 섞어 질겅거리는 장 형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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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1교시가 끝이 났다. 병호 때문인지, 아니면 또 다른 이유 때문인지 선생님도 집중을 못 하고 수업이 진행되는 둥 마는 둥 하다가 끝이 났다.
그런 분위기를 느낀 것이 단유 혼자만은 아니었는지, 수업이 끝났음에도 떠들썩하게 소란을 피우는 아이들이 많지 않았다. 두런두런 속닥이는 속에 차분히 쉬는 시간이 지나가나 싶은 때였다.
“야, 이것 봐.”
한 아이의 외침에 마치 미어캣들처럼 한쪽으로 시선이 몰렸다.
“뭔데?”
“살인사건이란다. 이사장 죽었대.”
핸드폰을 치켜든 아이, 전일이 목청을 높여 떠들었다. 그러자 마치 무덤 속 좀비들이 부활한 것처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괴성을 지르며 몰려드는 상황이 연출되었다. 전일은 핸드폰으로 받은 문자 메시지를 보여주며, 이제야 모든 의문이 풀렸다는 듯 들뜬 얼굴로 마치 속보를 알리는 앵커처럼 주절댔다.
“주말에 이사장이 죽은 채로 발견됐나 봐. 그래서 아침에 이사장실 앞 복도를 사람들이 막고 있었나 봐.”
장 형사의 예측대로 눈과 귀가 많은 이곳에서 비밀이란 게 있을 리가 없었다. 그나마도 10시가 될 때까지 사정이 밝혀지지 않은 채로 유지되었다는 게 오히려 더 신기한 상황이었다. 누구의 입에서, 혹은 누구의 눈에서 진실이 밝혀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한 번 드러난 이상 그 사실이 전교생에게로 퍼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문자와 SNS를 통해 전파된 ‘이사장의 죽음’은 곧 모든 학교 학생들과 학부모들에게까지 알려졌고, 교무실에는 곳곳에서 걸려오는 확인 전화 때문에 선생님들은 쉴 틈이 없이 전화 응대를 해야 했다.
“조용하게 넘어갈 리가 없지.”
상담실에 앉아 있던 장 형사는 벽을 넘어 전해지는 난리부르스(?)를 음미하며 껌을 씹었다.
그쯤에 상담실로 들어온 학생은 3학년이었는데, 중간고사 시험지를 훔치려 했다고 털어놓았다. 요즘도 이런 애가 있네, 라고 생각하던 장 형사는 학생의 머리를 때렸다.
“착실하게 공부나 할 것이지···. 그리고 그것도 범죄야, 이 녀석아. 절도 미수라고!”
“···죄송해요. 그런데 진짜 살인은 안 했어요.”
학생들도 다 알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잠시 스쳐 갔다. 장 형사는 범행에 참여했던 다른 아이들의 이름도 모두 대라고 윽박질렀으나 의리를 지키기 위해서인지 소년은 입을 열지 않았다.
“너 지금 용의자야.”
“진짜, 진짜 살인은 안 했어요.”
“니 말만 듣고 어떻게 믿어. 어느 범인이 내가 범인이요 하든? 제대로 안 밝히면 의심만 더 산다.”
소년은 침을 한번 꿀꺽 삼킨 뒤, 공범자 4명의 이름을 댔다. 후배 형사가 이 이름을 선생님에게 알려주었고, 선생님이 쿵쾅거리는 걸음으로 해당 학생들을 찾으러 갔을 때, 장 형사는 손가락으로 탁자를 두드리며 ‘절도 미수자’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교무실에는 늘 사람이 지키는 걸 몰랐어?”
“그 날, 학교 축구부 결승이 있고 다들 경기장에 간다고 했으니까, 교무실에 아무도 없을 줄 알고···.”
“교무실 문이 잠겼으면? 따고 들어가려고? 너 자물쇠 따는 기술이라도 있냐?”
“······.”
이런 얼치기 같은 ‘절도 미수범’ 같으니라고. 몇 마디를 더 나눈 뒤, 진짜 얼치기임을 확신한 장 형사가 혀를 찰 때, 선생님이 다른 학생들을 데리고 들어왔다.
“학교 와서 혹시 수상한 거 목격한 사람, 손?”
모두가 맞춘 것처럼 똑같이 겁먹은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그들이 침입한 시간은 CCTV에서 확인한 바와 같이 4시를 훨씬 넘긴 시간이었고, 때문에 범죄 발생 추정시간과 맞지 않았기에 또 한 번 장 형사는 혀를 찼다. 손을 내저으며 아이들을 선생님에게 넘겼다.
“얘들은 학교에서 알아서 하세요.”
선생님은 달궈진 주전자처럼 콧김을 뿜어내면서 아이들을 끌고 교무실로 향했다. 다시 조용해진 틈에 후배가 장 형사에게 물었다.
“잠깐 나가보니까요, 교무실이 꽤 시끄럽더라고요.”
“여기서도 들린다.”
후배가 잠시 입을 다고 귀를 기울이다 고개를 끄덕였다.
“비공개, 물 건너갔지?”
“그런 것 같네요.”
“됐다. 그게 뭐 중요하냐. 우린 범인만 찾으면 돼. 저건 저쪽 소관인 거고.”
말끝을 줄이던 장 형사는 탁자를 거세게 내리쳤다. 쿵, 하는 울림이 상담실을 채우고 후배를 움찔 놀라게 했다.
“그런데 도대체 왜 범인이 안 나오는 거야?”
“혹시 외부 인물은 아닐까요?”
“CCTV 봤잖아? 범인은 이 안에 있는 게 틀림없어.”
“아까 걔들처럼 담을 넘어서 왔을지도 모르잖아요.”
하지만 장 형사는 그럴 가능성은 없다고 생각했다. 계획범죄의 정황이 없는, 우발적인 살인인데 담을 넘어서 침입을 한다? 가능성이 없지는 않지만, 형사의 감은 ‘내부의 범인’을 가리켰다.
“우발적 살인치고는 너무 깨끗하게 자신의 흔적을 지운 거 아닌가요?”
“범인은 이사장의 목을 그은 뒤에도 한참을 이사장실에 남아 자신의 흔적을 지우는데 시간을 썼다. 그 말은 이사장실에 사람이 잘 출입하지 않는다는 걸 잘 아는 내부자의 소행이란 뜻이기도 해.”
“우발적 살인 후에 차분하게 자신의 흔적을 지운다고요?”
“차분하지는 않았지.”
장 형사는 사진 몇 장을 꺼내 짚었다.
“범행도구는 그 자리에 모두 뒀어. 몸만 빠져나간 거야.”
“······.”
“지문만 닦아내고 이사장실을 나갔어. 즉 도구들을 처리할 방법이 마땅치 않았다는 거지. 용케 지문을 지우긴 했지만, 그렇게 넉넉한 시간은 없었다는 거다. 제대로 숨기지도 못했으니까.”
때문에 내부자일 가능성이 높았다. 자신의 공석이 길어지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볼 수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 장 형사의 껌 씹는 속도가 점차 느려졌다.
****
“넌 뭘 그렇게 열심히 하냐?”
도하는 옆자리에 앉은 단유가 반의 소란은 전혀 신경도 안 쓴다는 듯 미친 듯이 노트를 채우고 있는 모습을 보다가 물었다. 하지만 단유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수업 시간에도 계속 그러고 있더만.”
옆에서 훔쳐봐도 도대체 뭔지 알 수가 없었다. 본인의 지식이 부족한 탓에 알아볼 수 없는 점도 있었으니, ‘원소’라든가 ‘플라즈마’라든가 하는 단어가 한국사와는 관계가 없다는 정도 외에는 조금도 이해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이사장이 죽었다는데 놀랍지 않아?”
“놀라워?”
단유는 여전히 펜을 움직이는 채로 입을 열었다.
“응.”
“니 눈에 저게 놀라서 저러는 것처럼 보여?”
단유가 턱짓으로 가리킨 곳에는 마치 스탠딩 코미디쇼에 참석한 코미디언과 관중들의 공연장 같은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었다.
“놀라서 저러는 거지.”
“···‘유희’야.”
한 시간 이상 쉬지 않고 노트를 빼곡히 채우던 단유는 잠시 펜을 놓고 손목을 돌리며 그 광경에 시선을 두었다.
우성과 도하가 싸울 때 둘러싸던 아이들의 눈빛이나, 지금 이사장의 죽음에 대해 요란스럽게 토론을 벌이는 모습이나 똑같았다. 지루한 일상에 던져진 이레귤러는 흥미 이상은 되지 않았다.
“이사장이 죽었다고 당장 학교 문을 닫는 것도 아니고, 시험이 미뤄질 것 같지도 않고, 수업이 중단되지도 않을 테니까. 결국 똑같은 일상이겠지. 그런 생각이 기저에 깔렸다 보니, 살인이 벌어져도 실감이 안 나는 거야. 마치 TV 속 쇼 같은 느낌이겠지.”
현실과의 괴리감이 아이들에게 걱정이나 슬픔보다 흥미를 이끌어냈다.
“유희가 뭔데?”
도하는 정말 궁금하다는 눈으로 단유를 바라보았다.
“흥미거리, 같은 거야. 왜 죽었을까, 어떻게 죽었을까, 누가 죽였을까 같은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는 게 재미있는 거야.”
저곳에 죽은 사람을 위한 애도는 없었다. 단지 살인이라는 사건에 대한 흥미만 가득할 뿐. 그때였다.
“야, 강병호. 너 아까 경찰한테 갔었던 거지?”
한 소년의 물음에 주제가 바뀌었다. 질문을 받은 병호는 얼굴이 파랗게 질렸고, 질문을 던진 이와 대답을 기다리는 이들의 얼굴은 기대감에 상기되었다.
“혹시!”
“설마!”
“맙소사!”
몇몇 아이들의 과장된 몸짓은 분명 병호를 놀리려는 목적이 다분했다. 하지만 당사자는 그렇지 못했으니, 눈에 보일 정도로 어깨를 떨며 고개를 숙였다.
“진짜 니가 했냐?”
“에이, 설마.”
“저 봐, 말 못하잖아? 니가 했어? 했어?”
“했네, 했어.”
몇 번이고 느꼈던 일이지만, 이 나이의 아이들은 악의 없이도 짓궂게 굴었다. 아이들은 병호 옆에 다가와 어깨를 툭툭 치며 말 좀 해보라고 시비를 걸었다. 하지만 주눅이 든 병호가 입을 열 리가 없었다. 무섭고, 두렵고, 배신감이 들었다.
‘내가 지들한테 얼마나 많이 퍼줬는데.’
아이템을 달라고 빌 때는 간이고 쓸개고 내놓을 것처럼 사근사근하게 굴더니, 갑자기 이렇게 돌변해서 괴롭히기 있기냐?
“어머, 무서워라.”
“어이쿠, 죄송합니다. 어이구, 그렇게 쳐다보지 마십쇼. 그러다 죽겠습니다.”
아이들은 깔깔대면서 병호를 놀렸다.
“너 좀 있다 잡혀가는 거 아냐? 은팔찌 차는 거야?”
“수업 중에 짭새들이 와서 은팔찌 채우면 웃기겠다. 그치?”
키득거리는 아이들을 보던 단유는 다시 펜을 집어 들자 도하가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그건 왜 하는데?”
“공부.”
“시험공부?”
“아니.”
“그럼 왜 하는데?”
“···재미있어서.”
재미가 있으니까 하는 거다. 재미가 있으니까 집중해서, 몰입해서 빠져드는 것이다. 학교 수업을 등한시 할 만큼.
쉬는 시간이 끝날 때까지, 병호는 눈물이 핑 돌만큼 어깨를 떨어야 했고, 아이들은 그저 ‘장난으로’ 병호를 놀리다가 종이 치고 나서야 자리로 돌아갔다.
이번 시간은 수학 시간이었다. 수학 선생님이 근엄한 얼굴로 교실을 들어왔을 때, 평소와 다른 인상의 선생님을 보고 아이들은 수군댔다. 하지만 그런 수군거림에도 수학 선생님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이전 시간에도 그랬고, 남은 시간에도 아이들이 보일 반응이 크게 다르지 않을 걸 알기에 그런 걸까?
“수업 시간에 쓸데없는 잡담 말고, 잘 따라와라.”
평소라면 가벼운 농담으로 아이들의 분위기를 환기시키고 수업을 진행했을 수학 선생님은, 대신 엄포를 놓았다.
“다들 이빨 보이지 마라. 오늘 이빨 보이면 가만 안 둔다?”
아이들은 달라진 분위기에 바짝 얼어서 긴장한 채로 수업에 임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노트 필기에 집중하는 단유 같은 케이스도 있었지만, 떠들지만 않는다면 선생님도 딱히 수업을 끊을 생각이 없었던 것 같았다.
그렇게 수업을 듣는 둥 마는 둥, 수업을 하는 둥 마는 둥 하면서 각자의 시간을 보내는 수학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