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알 바 아닌데(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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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이 나가신 후에도 교실은 다소 어수선했다. 갑작스러운 난투와 뜬금없는 호출의 여파로 아이들의 호기심이 자극된 탓에 곳곳에서 웅성거림이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아이들의 관심이 멀어진 틈에 눈 밖에 났던 우성은 여전히 교실 맨 뒤에서 몸을 굽힌 채였다.
“일어나라.”
우성이 고개를 들어보니 단유가 우성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때 우성의 머릿속은 혼란 그 자체였다. 어느 누가 싸움 중간에 끼어들어서 그렇게 정확히 주먹을 낚아챌 수 있을까? 동영상으로 봤던 단유의 실력은 진짜배기였다는 생각에, 힘과 기술을 겸비한 단유와 맞붙으면 결코 이득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에 우성은 어떻게 행동을 취해야 할지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사과를 하는 것은 너무 약해 보일 것 같았다. 반 아이들이 전부 자신을 만만하게 볼 것 아닌가. 그렇다고 강하게 뻗대기에는 단유의 힘이 두려웠으니, 순간 광종이 쥐죽은 듯이 지내는 모습이 이해됐다.
‘이럴 바에는 저 새끼 눈에 안 띄는 곳에서 조용하게 지내는 게 좋겠다.’
하지만 불행히도 우성은 ‘그 새끼’의 바로 앞자리에 앉아야 했고, 하루 종일 단유의 시선을 뒤통수로 느끼면서 버텨야만 할 텐데, 우성은 도저히 참기 힘들 것 같았다.
우성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단유가 그를 물끄러미 쳐다보다 말했다.
“따라와.”
“어디가?”
도하가 물었다.
“잠깐 이야기 좀 하고 올게. 아직 시간 있으니까.”
“죽···.”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라고, 제발.”
도하의 말문을 막은 뒤, 단유는 우성을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조례가 진행 중인 반도 있어 복도는 조용했다. 우성을 데리고 나간 단유는 우선 화장실로 향했다.
우성은 화장실의 제일 끝 칸에 끌려가 뒤지게 맞는 자신을 상상했다. 머리가 좋은 녀석이니 아마도 얼굴은 때리지 않겠지만, 복부를 제대로 맞으면 숨도 못 쉴 정도로 고통스럽다는 것을 경험해 본 우성은 다리가 덜덜 떨리는 기분이었다. 호주머니 속에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진태라도 호출을 할까 싶었지만, 조례 중인 진태가 나오지 못할뿐더러 괜히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가 단유가 핸드폰을 빼앗아 바닥에 던져버리는 만행을 저지르면 그것 또한 자신의 손해였다.
무표정한 얼굴로 폭행을 가한 뒤, ‘까불지 말랬지’라고 다짐받으려는 단유에게 결코 무릎을 꿇거나 비굴한 모습은 보이지 말자고 다짐하던 우성은 단유를 따라 화장실로 들어갔다.
“씻어라.”
“뭐?”
단유는 대답 대신 손가락으로 얼굴 주위를 돌리며 원을 그렸다. 그 동작에 우성이 거울을 바라보니, 거울 속 자신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어?”
“씻어.”
우성은 얼른 소매로 얼굴을 훔쳤지만, 눈물과 먼지로 엉망인 얼굴이 그 정도로 나을 리 없었다. 단유의 말대로 세면대에서 물을 틀고 얼굴을 대충 닦아내는데, 쪽팔림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언제부터 울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교실에서부터 울고 있었다면 이만저만 쪽팔린 게 아니었다. 차라리 싸움에서 지는 게 낫지, 바보같이 눈물을 보이다니.
얼굴을 대충 닦았을 때, 단유가 손가락으로 변기 칸을 가리켰다. 이제 저 안으로 들어가서 맞을 차례인가?
“휴지.”
우성은 황급히 달려가 휴지를 뜯어 얼굴의 물기를 훔쳐냈다. 그러면서도 이게 뭔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도무지 단유의 의도를 파악하기 힘든 우성이었다.
“가자.”
“뭐?”
“곧 수업 시작해.”
“···그럼 여기 왜 왔는데?”
단유는 가만히 있다가, 얼굴을 가리켰다.
“너 씻으라고.”
그러고 보니 교실에서 나올 때도, 다른 교실을 지날 때도 단유는 우성의 옆에 서서 걸었다. 마치 다른 사람의 시선을 가려주는 보디가드처럼. 하지만 진짜 그 때문이냐고 물어볼 수는 없었다. 지나친 억측일지도 모르고, 대놓고 물어보기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단유는 가볍게 손을 씻고 화장실을 나왔다. 그 뒤를 아까와 같이 뒤따라갔다. 이번에는 분명히 단유가 자신보다 한발 앞서 걷는 모양새였다. 우성은 단유가 정확히 무슨 생각으로 그랬는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그때 단유가 걸음을 천천히 하며 나직하게 말했다.
“역지사지란 말 아냐?”
“뭐?”
“만약 내가 널 24시간 내내 때리고 괴롭히면 넌 어떨 거 같애?”
깜짝 놀란 우성이 자리에서 멈춰 서고 말았다. 단유도 걸음을 멈춰 서서는 우성을 돌아보았다.
“학교 안에서나 밖에서나 눈에 띌 때마다 머리를 때리고 팔을 부러뜨릴 듯이 꺾고, 다리가 저릴 정도로 때리면 어떨 거 같애? 말 한마디 할 때마다 주먹으로 입을 때리고, 밥 먹으러 갈 때 니 목을 조르면 어떨 거 같애?”
무표정한 얼굴로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단유였기에 우성은 더 큰 두려움을 느꼈다.
“···혀, 협박하는 거야?”
“그냥 물어보는 거야. 어떨 거 같냐고.”
“······.”
우성은 단유라는 아이가 혹시 사이코패스 같은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진짜로 방금 말한 것처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경기장에서 자신의 목을 조를 때 보였던 눈빛도 심상치 않았던 것 같고.
“선생님한테 이르면 두 대 때리고, 집에 가서 이야기하면 세 대 때리고, 경찰한테 이야기하면 네 대 때리고. 아무 말 안 하면 한 대만 때린다고 할 때, 넌 어떤 기분이 들어?”
우성은 저도 모르게 주춤거렸다.
“그게 니가 추구하는 힘이란 것의 성질이야. 당장 주먹질이 오가지 않더라도, 다른 사람을 주눅 들게 하고 떨게 만드는 것. 24시간 내내 맞는 기분이고, 주변 사람들한테는 보복이 두려워서 말도 못 하게 하는 거. 그게 니가 추구하는 힘이야. 그런 힘을 원하는 거야?”
힘.
“그런 식으로 주위 사람을 굴복시키려는 게 좋아? 그렇게 살고 싶은 거야? 그런 기분을 느끼게 하고 싶어?”
단유는 몸을 돌렸다.
“모든 건 상대적인 거야. 니가 추구하는 그 힘이 너에게 향할 때 어떤 기분일지 생각해.”
그러고도 모른다면 어쩔 수 없고. 단유는 교실로 들어갔지만, 우성은 교실로 들어가는 게 무서웠다. 단유 앞자리에 앉아 있다가 갑자기 뒤통수를 때리면 어떡하지?
그때,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는 손길이 느껴져 우성은 화들짝 놀라며 뒷걸음질 쳤다.
“왜 이래? 너.”
오히려 때린 선생님이 더 놀라서는 우성을 걱정스럽게 바라보았다.
“무슨 일 있냐?”
“아, 아니요.”
“수업 종 친 거 몰라? 빨리 교실로 들어가.”
우성은 교실로 달음박질쳤다.
****
“그러니까, USB를 찾으려고 학교에 왔다?”
“네.”
장 형사는 머리를 긁적였다.
“알았다. 일단 수업 시작한다니까 들어가 보고, 나중에 다시 부를 수도 있어.”
“네.”
병호가 상담실을 나간 뒤, 장 형사는 호주머니를 뒤적거렸다.
“여기 금연이랍니다, 선배.”
“에이 씨.”
장 형사는 제 머리를 마구 헝클어뜨린 뒤, 몸을 뒤로 기울였다.
“두 명 더 있지?”
“네.”
“빨리하고 가자.”
“한 시간 기다려야 할 걸요?”
사건 발생 후, 여러 가지 증거들이 수집되면서 꽤 빠르게 사건 수사가 진행되고는 있는데 범인만 윤곽이 잡히지 않았다. 지연이라는 선생이 제일 유력한 용의자임은 틀림이 없지만, 이렇다 할 확정적인 증거가 없어 송치를 못 하고 있는 판국이었다. 그 와중에 피해자 강상묵 이사장이 죽은 시간이 대략 금요일 3시부터 5시 사이라는 국과수의 의견에 더더욱 김지연의 알리바이가 흐릿해진 상황이었다.
“1시 전에 이사장과 독대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 이후 김지연은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나갔고 그때까지도 이사장은 살아 있었단 말이지. 그런데 김지연이 다시 학교로 돌아온 시간이 3시 부근이고.”
“김지연에게는 범행동기가 있어요.”
“그렇지.”
이사장의 아들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김지연의 진술은 다른 사람들에게서도 교차 확인된 사항이었다.
“범행동기로 보기엔 너무 어설프지만 말이야.”
장 형사가 못마땅한 눈으로 서류를 뒤적거렸다.
“그래도 우발적으로 일을 저지를 수도 있지 않습니까?”
피해자는 골프채로 머리를 맞고 쓰러졌다. 그 후, 책상 위에 놓인 중세 환도(環刀) 모양의 편지 칼로 경동맥에 자상을 입혔고, 이로 인한 과다 출혈이 원인이 되어 사망.
“도구는 그대로 두고, 지문만 싹 지워나갈 정도라니.”
그 외에는 너무 많은 지문들이 남아 있어 범인을 특정하기 어려울 지경. 이사장실이라는 특성상 교장, 교감부터 행정직원과 몇몇 학생들까지도 들락날락했던 탓이었다.
“아, 담배 피우고 싶네.”
“조금만 참으십쇼.”
“다음 누구야?”
“어, 3학년인데요.”
그나마 당일 학교 외부 행사로 인해 학교에 사람이 많지 않았다는 것이 용의자를 추릴 기회였다. 그런데 학교 정문 CCTV를 조사하던 와중에 묘한 장면이 몇 개 걸렸다. 아무도 없어야 할 그 시간에 몇몇 학생들이 정문을 조심스럽게 지나 본관으로 향하고 있었던 것이다. 50만 화소도 안 되는 조악한 화질임에도 대략적인 얼굴을 알아볼 수 있어서 용의자를 추가 확보한 상황. 문제는 용의자가 학생이라는 점이었다.
“얘가 담치기한 애야?”
4시쯤이 되었을 때, 학교 정문이 아닌 동쪽 담을 넘어 본관으로 들어가는 학생이 발견되었다. 한 명이 아니라 세 명이었는데, 화질 때문에 누구인지 알지 못할 뻔 했으나, 다행히 나갈 땐 정문으로 나간 덕에 얼굴을 확인할 수 있었다.
“네.”
“나 참.”
장 형사는 범인이 학생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물론 추측일 뿐이지만, 감이 그랬다. 그래서 이런 식으로 일거리를 늘리는 작태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안 되겠다. 나 좀 나갔다 올게.”
“학교 바깥으로 나가셔야 하는데요.”
“교문 밖으로?”
“네.”
“요즘 애들은 학교 뒤에서 담배 피우고 안 그러나?”
후배 형사는 서류를 뒤적거리며 대답을 회피했다.
“담이나 보고 올게.”
장 형사는 느릿하게 움직여 상담실 문을 열었다. 조용한 복도를 보니 괜히 어릴 적 생각도 나고 할 법한데, 장 형사는 괜한 짜증만 났다.
“내 때는 화장실에서도 폈는데.”
설마 남선생님들 중에 화장실에서 담배 피우는 사람이 없을까? 장 형사는 휘파람을 불면서 화장실로 향했다.
‘똥 때리면서 피우는 담배가 제맛인데.’
장 형사의 걸음은 느긋했다.
****
교실로 돌아온 병호는 수업 시간 내내 고개를 들지 못했다. 정확한 사정은 모르지만, 경찰이 들어와 금요일의 행적을 조사할 정도라면 뭔가 그 날 큰일이 났음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날 벌어진 큰일이라면 역시,
‘USB!’
해킹 프로그램은 불법 프로그램이고, 게임 회사 측에서 고발하면 형사 소송까지도 갈 수 있는 사항이었다. 즉, 병호는 범법자란 소리.
거기에 생각이 미치자, 미친 듯이 땀이 나고 등줄기가 서늘해지는 기분이었다. 형사들에게는 중요한 ‘USB’ 디스크라고 했지, 그 내용물에 대해서는 진술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병호는 후회 중이었다.
‘USB 말고 다른 걸 찾으러 왔다고 말할걸.’
너무 주눅이 든 상황이라 저도 모르게 USB라고 토설(吐說)을 하고 말았으니, 어쩌면 경찰들이 눈치를 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찰들이 먼저 찾은 걸까? 아니면 거래처가 들켜서 여기까지 쫓아온 거?’
갖가지 망상과 상념들이 머릿속을 헤집는 통에 병호는 선생님이 부르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강병호!”
짝이 팔을 쳐서 알려준 뒤에야 병호는 선생님에게로 주의를 돌렸다.
“잤어?”
“···아닌데요.”
“아닌데 왜 불러도 대답을 못 해? 뒤로 나가.”
병호는 의자를 끌며 일어나, 교실 뒤로 향했다. 아이들의 시선이 따라오는 게 느껴져 부끄럽고 자존심이 상했다. 허나 그보다 더 심한 건 역시 사라진 USB의 행방과 경찰의 조사였다.
‘만약 경찰이 집에까지 찾아오면 뭐라고 해명해야 할까.’
저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어쭈? 야, 너 왜 울어?”
울먹거렸던 게 선생님의 눈에 걸렸다.
“강병호. 너 왜 울어?”
아이들의 시선이 모두 병호에게로 쏠렸다. ‘왜 우냐’는 선생님의 물음이 더 병호의 가슴을 할퀴었다. 눈물을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쏟아졌다. 병호도 왜 우는지 알 수 없는, 그런 눈물이 쏟아졌다.
마치 미취학연령의 아이처럼 고개를 저으면서도, 눈물이 멈추지 않아 소매로 눈을 가리는 병호를 보며 우성은 진한 동질감을 느꼈다.
‘무서워서 그래.’
병호가 무엇을 무서워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렇게 우는 건 정말 너무 무서워서,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는 것이리라. 우성은 괜히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기분이었다.
‘이게 역지사지란 걸까?’
단유가 우성의 속내를 알았다면, 혀를 차고 말았을 일이지만 우성은 병호의 기분을 이해했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