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어디에 있었어?(6)
-------------- 356/952 --------------
마침내 경기장에 휘슬이 울렸다. 선수들의 얼굴에 희비가 교차하는 가운데, 함성과 환호, 탄식과 탄성이 공설운동장을 가득 채웠다. 최종 스코어는 2:0. 한 골을 실점한 이후 이를 만회하기 위해 공격으로 방향을 전환했다가 되려 반격을 당해 한 골을 더 헌납해야 했던 상대 중학교 선수들은 눈물 콧물을 흘려대며 경기장 위를 벗어나지 못했다.
어수선한 장내가 진정된 이후, 시상식이 이어졌다. 트로피를 들고 승리를 만끽하는 선수들에게 박수를 보냈다.
“3반.”
“예!”
“재미있었지?”
아이들은 더욱 큰 소리로, 악을 지르듯 대답했다. 선생님도 소속 학교의 승리를 즐기는 얼굴로 아이들을 돌아보았다.
“밖에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몰릴 것 같아, 여기서 바로 종례한다. 여기서 나가면 괜히 엄한 데 돌아다니면서 사고 치지 말고 곧바로 집으로 가야 한다.”
“네.”
“내일 아침에 지각하지 말고.”
각 반마다 그런 식으로 현장 종례를 마친 후, 아이들은 들뜬 얼굴로 경기장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명수야, 오늘 회식인가?”
“응. 회식할 거래. 오늘 내 배가 터지나 안 터지나 시험하고 가려고.”
붉게 물든 얼굴에서 웃음이 떠나질 않고 있었다.
“알았어. 그럼 선생님이랑 둘이서 저녁 먹어야겠네.”
“내 몫까지 많이 먹어.”
“알았어.”
명수는 경기장 펜스에서 물러나며 손을 크게 휘저었다. 단유도 손을 들어 화답하곤 뒤로 돌았더니, 도하가 멀뚱멀뚱 바라보고 있었다.
“왜?”
“아냐. 그냥 집에 가는 거야?”
“응.”
“잘 가.”
싱겁긴. 단유는 피식 웃고 가방을 어깨에 둘러멨다. 도하는 뭔가 아직 남은 말이 있다는 듯 입술을 달싹이다가 다시 단유를 불렀다.
“근데 있잖아.”
“뭐?”
“저기···, 우성이 말인데.”
“신경 쓰지 마라니까.”
“아니, 너무 심하게 때리지 말라고.”
단유는 교복을 정리하던 걸 멈추고 도하를 바라보았다.
“뭐?”
“그냥 우성이도 불쌍한 애니까 좀 살살 다뤄주라고.”
도하는 바닥을 발뒤꿈치로 툭툭 치며, 시선을 피했다.
“내가 지금 싸움 나가냐?”
단유와 눈이 마주친 도하가 얼른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싸울 거 아냐?”
“아닌데?”
“그래? 알았어. ···그래도 우성이 불쌍한 애니까 적당히 때려.”
단유는 관자놀이 부근을 통통 때리며 지끈거리는 통증을 다스려야 했다.
“준비해.”
“문자 넣었어. 다들 거기 모여 있을 거야.”
작전(?)지역은 지난번에 왔을 때, 눈여겨 두었던 공설운동장 뒤편의 작은 공원이었다. 공설운동장 주변의 부대시설로 사람들이 잠시 쉬었다 갈 수 있게 몇 개의 벤치가 놓여 있었다. 하지만 큰길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터라 사람들의 출입이 많지 않았고, 눈에도 잘 띄지 않을 곳이라 작업을 하기에 좋은 장소라 우성은 판단했다.
“넌 먼저 가 있어.”
“근데, 여기 출입구가 많잖아? 만약 다른 데로 빠지면 어떡해?”
“2층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데리고 갈게. 반대쪽 관중석으로 넘어가서 나가지 않는 이상은 다 그쪽으로 나올 테니까 거기서 기다리면 돼.”
“···혼자 괜찮겠냐?”
“그냥 데리고 가는 정도라면 괜찮을 거야.”
우성은 펜스에 붙어 명수와 이야기하던 단유를 떠올렸다.
‘잠깐 조용한 데서 이야기 좀 하자.’
‘할 이야기 없어.’
‘난 꼭 해 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
‘그럼 여기서 이야기해.’
‘보는 눈이 많아. 여기서 할 이야기가 아니야.’
‘알았다.’
이런 식으로 대화를 이끌어가면 되리라. 우성은 혼자 고개를 두어 번 끄덕이며 자신의 시나리오에 자신감을 가졌다. 비밀 이야기인 것처럼 하려면 주변에 사람이 없어야 하니, 당연히 진태도 눈에 보이지 않아야 했다.
“그럼 먼저 갈게. 뭔 일 있으면 바로 콜해라.”
“알았다.”
진태가 먼저 운동장 바깥 통로를 통해 아래로 내려가고, 우성은 뒤를 힐끔 보며 단유를 기다렸다. 도하가 뭔가를 이야기하는 듯했는데, 도하가 단유보다 먼저 출구로 나오고 있었다.
‘잘 됐어.’
도하가 있어도 상관은 없지만, 없는 게 낫다. 도하는 출구를 빠져나오다가 우성을 보았다.
“뭘 봐?”
우성은 입술을 까뒤집듯 끌어내리며 한껏 불량스러운 인상을 지어 보였다. 도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바라보다 몸을 돌렸다.
“배신자 새끼.”
도하가 나간 후에도 우성은 도하의 아지트를 이용했다. 아니, 이제는 우성의 아지트였다. 도하는 그 뒤로 전혀 모습을 드러낼 생각을 하지 않고 있으니.
한때는 우성도 도하를 두려워했지만, 그때는 도하의 눈에 어린 독기 때문에 그랬다. 무슨 짓이라도 저지를 것 같은 눈. 망설임 없이 사람을 죽이고도 아무렇지 않을 것 같은, 그런 무자비한 기운이 느껴져서 도하가 어려웠다. 하지만 지금은 광종이란 녀석보다 더 무기력하게 느껴지는 터라 우성은 도하를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주먹, 싸움 기술, 이런 건 부수적인 문제다. 진짜는 바로 세상을 향해 내지를 줄 아는 독기. 그런 독기가 있는 애들이 ‘진짜’였고, 그런 독기 없는 애들은 그저 엄마, 아빠 뒤나 졸졸 쫓아다니며 콧물이나 흘려대는 ‘가짜’였다.
시간이 흘렀는데도 단유가 나오지 않았다. 우성은 의아함을 느끼고 출구 안쪽으로 고개를 집어넣었다. 몇몇 애들이 가방을 메고 느긋하게 나오고 있었는데, 그중에 단유는 보이지 않았다.
“어? 이 새끼, 어디 갔어?”
당황한 우성이 서둘러 단유를 찾았지만, 단유는 어디서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야, 진태야.”
[왜? 무슨 일 있어?]
“애들 다 데리고 나와봐. 단유 안 보인다.”
[도망 간 거야?]
도망인지, 아니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놓친 건지 확실하진 않았지만, 어쨌든 중요한 건 단유를 찾아야 한다는 점이었다.
“빨리 애들 데리고 나와서 찾아봐. 몇 명은 운동장으로 보내서 지금 운동장 남문 쪽으로 가봐.”
남문 쪽이 큰길과 가까우니 대중교통을 위해서는 대부분 그쪽으로 나올 터였다. 문제는 그쪽에 선생님들도 다수 자리하고 계실 거란 문제였지만, 지금은 그걸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결론적으로, 우성네 패거리는 단유를 찾지 못했다. 갑자기 땅으로 꺼졌는지, 하늘로 날았는지 몰라도 단유는 운동장에서 사라졌다.
****
장계중학교 행정실에서 근무하는 여직원은 학교 중앙 현관을 가로지르는 복도를 지나는 중이었다.
“깜짝이야!”
여직원은 갑작스레 나타난 인기척에 놀라서 엉덩방아를 찧었다. 들고 있던 커피를 쏟으며 옷이 젖을 정도였던지라, 단유는 얼른 손을 내밀며 사과했다.
“괜찮으세요?”
“어머, 어머. 깜짝이야.···괘, 괜찮아요.”
여직원은 크게 당황했는지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다, 커피로 물든 옷을 발견했다. 황급히 앞섶을 추스르며 얼룩을 가린 여직원은 ‘어떡하지’를 연발하며, 자리를 피했다. 단유를 흘끔 바라보는 눈에 깃든 당황 때문에 더 민망해진 단유는 얼른 고개를 숙이며 ‘죄송합니다’ 사과를 했다.
여직원이 잔걸음으로 단유를 지나 행정실로 들어간 뒤, 단유는 한숨을 내쉬었다. 학교에 아무도 없을 줄 알고 온 것이었는데, 행정실에서 근무하는 사람과 마주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단유는 다른 사람과 마주치기 전에 얼른 이 층으로 올라갔다.
단유가 학교에 온 이유는 바로 ‘마법’ 때문이었다. 분명 자신이 마법을 사용했다는 자각은 있지만, 그래도 확실하게 실험을 해 봐야 할 것 같았다. 지금 이 시간이라면 교실에 아무도 없을 테고, 운동장도 비어 있으리라. ‘바람’의 마법이라면, 학교의 황토 운동장에서 시현해 보기 딱 좋다고 생각하며 이곳으로 온 단유였다.
교실 창가로 향한 단유는 바깥을 내려다보았다. 밝은 햇살이 내리비추는 황토 운동장에는 약하게 불어오는 봄바람에 먼지가 살짝 뜨다 가라앉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심호흡을 한 후, 적당한 세기의 바람을 설정하고 ‘컨슈메(재현)’ 했다. 마법은 즉각적으로 발동했다. 인위적인 힘의 이동이 느껴질 만큼 강한 바람이 운동장을 쓸면서 한쪽 축구 골대에서 다른 쪽 골대까지 이동했다. 이번에는 반대방향으로 바람을 일으켰다. 역시 모래 구름이 반대편 골대를 향해 이동하는 것이 눈에 보였다.
‘이게 되는구나.’
머릿속에서는 바람에 대한 다양한 지식들과 그 지식에 기반한 다양한 수식과 함수들이 여러 방식으로 조합되고 해체되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그에 따라 다양한 형태와 움직임의 바람들이 재현되었다.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세상에 이런 일이’ 같은 프로에 신고할 만한 장면이었다.
‘귀신의 장난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단유는 피식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그 시간, 진짜 귀신의 짓인가 의심하며 운동장을 바라보는 사람이 있었다.
“선, 선생님! 저거 봐요!”
교무실에서 한 선생님이 창가를 지나다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다.
“왜 그래요?”
“저, 저기 봐요!”
또 다른 선생님이 뭔가 하는 호기심에 다가갔다가 경악에 찬 소리를 질렀다.
“저, 저게 뭐예요?”
지연도 호기심에 펜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창가로 다가갔을 때, 운동장에는 굵은 기둥 같은 회오리가 운동장 가운데에 생겨나 있었다.
“우와, 저 정도의 회오리는 처음 보네요?”
지연도 예전 학창 시절, 운동장에서 생겨난 회오리를 본 적이 몇 번 있었지만, 저 정도로 큰 걸 본 적은 없었다. 봄철 지면 부근의 대기 불안정으로 회오리바람이 분다는 상식이 있던 터라, 놀랍다기보다는 신기하다는 느낌이었다.
“방금 전까지는 저런 회오리가 아니었어요. 양쪽에서 회오리가 생겨서 합쳐서 저렇게 됐다니까요? 선생님은 보셨죠?”
다른 선생님이 맞장구를 치며 창가에 얼굴을 떼지 못하고 있을 때, 지연은 의아하다는 듯 되물었다.
“두 개가 합쳐져요?”
“이럴 게 아니라, 핸드폰! 핸드폰 어디다 뒀었지?”
구경하던 선생님들이 책상으로 돌아가 핸드폰을 챙겨올 때, 지연은 가만히 서서 회오리를 구경했다. 얼마 전 우연히 본 해외 토픽에, 중국 어느 초등학교의 운동장에서 발생한 회오리에 초등학생이 공중으로 말려 올라가더라는 기사가 있었음을 떠올렸다.
‘저 정도면 중학생도 떠오를 수 있겠는데.’
라고 생각할 무렵, ‘마법같이’ 회오리가 사라지며 말려 올라가던 모래들이 모래 안개를 만들며 운동장에 가라앉았다.
“어? 끝났어?”
촬영을 하지 못해 아쉬움 가득 담긴 표정을 짓던 선생님들은 쉽게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혹시나 하는 기대감을 품은 채 ‘과거에 난 이런 신기한 것을 봤다’라는 주제로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지연은 거기에 끼지 못하고 조용히 물러났고, 자리로 돌아온 지연은 조금 전 사라진 회오리의 잔상을 떠올리며 펜을 들었다.
「갑자기 나타났다가, 갑자기 사라진 그대여. 운명이여.」
펜을 끄적이다 피식 웃으며 종이를 구겼다. 천성이 선생이라, 작가는 되지 못할 팔자인가보다, 라고 자조하며 지연은 다시 교과서와 참고서로 눈을 돌렸다. 오늘 중으로 시험문제를 끝내야 주말을 편히 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창가에서 수다를 떠는 선생님들도 잊고, 신기한 회오리의 잔상도 잊고 오직 문제에만 집중했더니, 어느새 하루가 저물고 있었다. 경기장에 갔었던 선생님들도 학교로 돌아와 잡무를 보기 시작했고, 간간이 인사를 하면서도 시험지에 집중을 하던 지연은 퇴근 시간에 이르러서야 문제 출제를 끝낼 수 있었다.
“끝났네.”
이제 남은 것은 홀가분하게 퇴근해서 주말을 맞이하는 것만 남았다. 오늘 교무실을 지켰기 때문에 내일은 학교에 나오지 않아도 된다. 모처럼 편하게 주말을 보낼 생각을 했더니 지연은 기분이 좋았다.
****
토요일에는 늦잠을 자고, 일요일에는 날이 좋아서 나들이를 생각하던 오전, 누군가가 찾아와 문을 두드렸다.
“김지연씨?”
“네?”
“경찰입니다.”
두 사람 중 연회색 바람막이를 입은 중년 사내가 품에서 신분증을 꺼내 확인을 시켜주었다.
“무, 무슨 일이시죠?”
“장계 중학교 교사 맞으시죠?”
“네.”
“잠시 저희와 동행하시겠습니까?”
“무슨 일인지···.”
“가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지연은 나들이 갈 마음에 들떠서 입었던 화려한 복장 그대로인 채 경찰서로 향했다.
"지강목 이사장 아시죠?"
"네."
"살해당했습니다."
"네?"
지연은 황망한 눈으로 두 형사를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