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4)
-------------- 349/952 --------------
단유는 나무를 멀리 치워버리고 창고로 다가갔다. 여덟아홉 걸음 앞에서도 코를 찌르는 악취가 단유의 걸음을 머뭇거리게 하였다. 창고의 문은 찌그러진 경첩과 구조물 때문에 쉬이 열리지 않았다. 몇 번 힘주어 당긴 뒤에야 거친 비명을 토하며 부서진 경첩을 매달고 떨어져 나왔다.
눈살을 찌푸린 단유가 코를 막고 내부를 살피니, 이미 썩어서 부패하기 시작한 시체들이 창고 바닥에 나란히 누워있었다. 몇 달 전 단유가 이들을 여기 눕혀뒀던 모습 그대로였다. 다만 다른 이들이 이전의 모습과 별다른 차이가 없는 반면, 정환은 며칠 전 보았던 노인의 얼굴을 하고 있다는 것이 특이한 점이었다.
“후우.”
단유는 그 모습을 물끄러미 보다가 몸을 돌렸다. 예전 이곳에서 바라본 어두운 하늘과 달리, 밝은 대낮에 바라본 전경은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좌우에 드리워진 산등성이들이 마치 가운데 드러난 하늘을 떠받드는 형국이었고, 산 아래로는 넓은 평지 위에 크기가 제각각인 논들이 타일 조각들처럼 달라붙어 전원(田園)의 풍경을 즐기기 좋았다.
악취만 없었다면 오래도록 이 자리에 서서 저 풍경을 즐겨볼 테지만, 지난날의 악의를 떠올리게 할 만큼 지독한 악취가 이를 방해했다.
‘어쩌면 이리도 비교될까.’
저리 좋은 경치를 가슴에 담기도 벅찬 마당에 다른 한쪽에서는 악의로 가득한 눈깔로 소년들을 납치하고 죽이려 했다는 사실이 너무 아이러니했다. 만약 자신이 아무런 힘도 없는 아이에 불과했다면, 그래서 저 뒤에 누운 이들의 손에 죽었다면, 저들은 일을 마치고 손을 털며 이곳에 서서 저 경치를 여유롭게 구경하고 있었을까?
“나도, 아이러니지.”
과연 자신이 ‘인간의 본질’에 대해 운운할 자격이나 있을까? 물론 명분도 있었고, 핑계도 있었지만, 등 뒤에 누운 이들을 시체로 만든 자신이 별다른 죄책감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 아닌가?
지금도 굳이 핑곗거리를 찾자면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었다. 하지만 그가 배우고 익힌 바, 사람을 죽이고도 아무렇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하였는데, 단유는 저 시체들을 눈에 담으면서도 평온한 마음을 유지할 수 있으니 자신에게 큰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 걱정이 들었다.
‘어쩌면 나도 자각하지 못하는 사이, 병을 앓고 있는 걸까?’
도하처럼.
문득 도하를 생각했더니, 짜증이 확 밀려왔다. 그리고 동시에 단유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조금 전까지 ‘살인’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들여다보며 걱정을 하던 와중이었는데, 고작 도하를 생각했다고 짜증을 부리다니.
‘어른들이 말하던 간사함 마음이란 게 이런 걸까?’
안트가 말했었지. 모든 걸 의심하라고. 단유는 자신의 공부부터 다시 되짚으며 돌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자신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감히 누구를 평가하고 예측한단 말인가.
“그나저나, 진짜 걱정은 걱정이네.”
조금 전, 도하를 떠나보내며 보았던 표정을 생각하며 단유는 머리를 긁적였다.
잠시 후, 소년은 그 자리를 떠났고, 그곳에 있던 무너진 창고는 나지막한 언덕처럼 변해서 모르는 사람이 보면 길 중간에 솟아난 언덕 정도로 착각할 법한 지형이 되어버렸다. 몇 달간 방치되었던 그들은 이제야 땅속에서 영면을 취하게 되었으니, 단유의 마지막 배려랄까.
****
사람들의 왕래가 적은지 조용한 병실 복도에 또각거리는 하이힐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검은 광택의 하이힐이 복도에 규칙적인 울림을 주더니 어느 병실 앞에 멈춰섰다.
지연은 얕은 한숨을 내쉰 뒤, 병실의 문을 두드렸다.
“들어오세요.”
드르륵거리는 레일 소리와 함께 열린 문 안쪽에서 가슴을 동여맨 붕대맨이 어울리지 않게 히죽 웃으면서 지연을 반겼다.
“어서 오세요, 선생님.”
“네, 안녕하세요.···몸은 괜찮으세요?”
“괜찮다마다요. 아, 그건 저기 놔두시면 됩니다.”
지연은 붕대맨이 가리킨 수납장 위에 과일 바구니를 올린 뒤, 붕대맨에게로 몸을 돌렸다. 얄팍한 인상을 가진 사내는 뭐가 그리 좋은지 연신 웃는 얼굴로 손짓했다.
“여기 앉으세요, 선생님.”
지연은 살짝 입술을 깨물고 다가가 권해준 의자에 앉았다.
“굳이 안 오셔도 되는데, 이렇게 와주시니 황송할 따름입니다. 하하.”
그러면 차라리 아무 말도 하지 말던가, 왜 다른 사람 통해서 오라 마라야, 라는 외침이 혀끝에서 맴돌다 침과 함께 삼켜졌다.
“제가 몸만 좋았어도 버선발로 나가서 반길 텐데, 보다시피 이래서 죄송합니다. 결례라 생각하지 말아 주세요.”
진심이라곤 1도 느껴지지 않는 빈말이 혀끝에서 쏟아져 나와, 지연은 현기증이 느껴질 정도였다. 저런 말에 어떤 대꾸를 하리.
“괜찮습니다.”
“그나저나, 학교 밖에서 보니 감상이 새롭습니다, 선생님. 정말 아름다우세요.”
요즘 ‘아무말 대잔치’란 말이 유행이라던데, 여기는 ‘빈말 대잔치’가 펼쳐지고 있었다. 저렇게 번들거리는 눈동자로 아름답네 어쩌네 해 봐야 지연은 발가벗겨진 채 희롱당하는 느낌만 받을 뿐이었다.
‘1시간, 아니 30분 정도 말벗이나 해 주고 오세요, 김 선생님.’
교장 선생님의 명령 아닌 명령이 떠오른 지연은 절로 시계로 눈이 갔다. 이제 병실에 들어온 지 겨우 5분여가 지났는데, 남은 20여 분은 어떻게 버틸까.
“남자친구, 없으시죠? 선생님?”
“네?”
“아, 그냥 예의상 여쭤봤습니다, 선생님.”
히죽 웃는 면상을 하이힐로 찍어버리고 싶었다. ‘남친’ 유무를 묻는 말이 어떻게 ‘예의’냐?
“······.”
“하하하.”
지연의 대답 대신 침묵을 지키자 머쓱해진 붕대맨, 한영은 웃음으로 넘기며 다른 말로 화제를 돌렸다.
“선생님도 운전하시죠?”
당연히 한영은 지연이 몰고 다니는 국산 경차의 번호를 외울 정도였지만, 괜히 한 번 더 물었다. 지연이 고개를 끄덕이자 한영은 또 한 번 웃음을 터뜨리며 자신의 경험담을 늘어놓았다.
“제가 아침에 출근하는데요···.”
처음엔 당황스럽기만 했던 일이었지만, 사람들이 모두 관심을 보이고 흥미로워하는 모습을 보이자 당사자인 한영은 왠지 모르게 우쭐거리는 기분이 들었다. 남들이 쉬이 겪지 못할 일을 겪었다는 자부심이랄까?
물론 본인도 처음에는 전날 마셨던 술의 취기가 남아 벌어진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었지만 지금은 그저 기적과도 같은 일을 겪은 당사자로서 간증하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원래 이런 간증은 스스로를 도취시키게 마련이다.
“···그래서 브레이크를 잡으려고 하는데 갑자기! 눈앞의 건널목이 사라지는 겁니다! 그 순간에 제가 얼마나 놀랐는지. 사람이 너무 놀라면 몸에 힘이 잔뜩 들어가잖아요? 급히 브레이크를 밟았는데, 달리던 속도가 있다 보니 차가 흔들리는데 이건 제힘으로 어찌할 수 없잖아요? 제가 나름 운동신경이 좋은 편이라 어지간해서는 핸들을 컨트롤해서 중심을 잡을 텐데,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라 아무것도 못 하겠더라고요.”
간간이 개인 자랑을 섞어가며 그 날의 일을 마치 전래동화 이야기하듯 말하는데, 사정을 대충 파악하고 있던 지연은 우습지도 않았다. 음주운전으로 과속하다 사람을 칠 뻔하고, 어떻게 운이 좋아서 사람을 치는 대신 가로수를 들이받아 끝난 사고를, ‘급발진’과 ‘기적’이라는 요소를 섞어서 미담으로 만들어 버렸다.
“마지막 순간에 정신을 차렸죠. 이대로 가면 큰 사고가 나겠구나. 차라리 나만 다치는 게 좋겠다. 그래서 경황이 없는 와중에도 핸들을 틀어서 사람이 없는 쪽으로 향했죠. 결국 ···쾅! 뭐, 이렇게 됐죠.”
‘세상에, 그 순간에도 다른 사람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다니, 한영씨 멋져요!’라는 말을 기대했던 것일까? 한영은 눈을 반짝반짝 빛내면서 지연의 리액션을 기다렸다.
“아, 네.”
지연의 심심한 반응에 한영의 입술이 꿈틀거렸다. 씰룩거리던 입술이 진정되는 데는 시간이 걸렸다.
“말을 많이 했더니, 목이 마르네요. 괜찮으시면 물 좀 가져다주실래요?”
“아, 네. 사올까요?”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는 지연에게 한영은 또 한 번 씰룩거리는 입술을 꼭 깨물어 보였다.
“물, 저기 냉장고 안에 있어요.”
지연은 냉장고의 위치를 확인한 뒤,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실망한 표정을 감추기 위해 고개는 얼른 돌렸지만. 하지만 어차피 한영의 시선은 얼굴에 있지 않았기에 의미가 없었다.
잘록한 허리와 완만한 곡선을 그리는 엉덩이를 보며, 저도 모르게 혀를 내두른 한영은 엉덩이를 감싸고 있는 치마 아래 있을 속옷을 상상했다.
‘천천히 옷을 벗기고···아니, 꼭 천천히 할 필요가 있나? 확 찢어버려도 되지 않을까? 앙탈을 부리려나? 여린 손목을 한 손으로 붙잡아 머리맡에 두고 다른 한 손으로 남은 속옷들을 벗기는 거야. 위의 것도, 아래 것도.’
음흉한 상상의 대상이 된 줄을 아는지 모르는지 지연은 서두르지 않으며, 냉장고에서 물병을 꺼내고 컵에 물을 따랐다. 최대한 늦게 시간을 끌어서라도 한영에게서 떨어져 있고 싶다는 생각뿐이었으니까.
돌아서던 지연은 한영의 눈과 마주친 뒤, 멈칫거렸다. 개미, 지렁이, 바퀴벌레···. 떠올릴 수 있는 온갖 곤충들을 모두 모아놔도 지금 한영이 보인 눈빛만큼 소름 돋게 할 수는 없으리라.
‘그냥 학교 때려치울까?’
울고 싶은 마음으로 지연이 시계를 바라보니, 이제 15분 정도 남았다.
****
병호가 친구들과 기분 좋게 피시방을 나왔을 때는 벌써 날이 어둑해지고 있었다. 아직은 3월이라 그런지 해가 그리 길지 않았던 탓이었다.
“다음에 또 같이하자?”
“그래.”
“야, 다음에는 나도 버스 좀 태워 줘라.”
“알았어.”
아이들은 환한 미소로 헤어졌고, 병호는 자신감 가득한 걸음으로 길을 걸었다. 이때를 위해 방학 동안, 모진 구박에도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학원을 땡땡이 쳐가며 게임을 했었나 보다.
1학년 때는 별 장기도 없고, 특기도 없으면서, 말재간도 없던 터라 친구들이 많지 않았다. 친구가 없어도 편하게 지낼 수만 있었다면 상관이 없겠는데, 친구도 없이 혼자 책상에 덩그러니 남은 아이는 다른―질이 좋지 않은―아이들에게 맛좋은 먹잇감처럼 여겨졌던 모양이었다.
병호는 흔히 말하는 ‘셔틀’이었다. 다만 다른 아이들과 다른 점은, 병호는 다른 아이들에게 맞은 적이 없다는 것이다. 맞기 전에 나섰으니 그럴 수도 있지만, 어쨌든 빠릿빠릿하게 행동했더니 ‘힘 좋은’ 친구들이 병호를 좋아했다. 그래서 그들은 병호를 ‘셔틀’이라고 부르는 대신, ‘친구’라고 불러줬다.
“친구야, 빵 좀 사와라.”
“친구야, 목마르다.”
“친구야, 체육복 좀 빌려와라.”
그래서 병호는 자신이 ‘셔틀’이라는 자각이 없었다.
힘 좋은 ‘친구’들이 병호를 데리고 피시방을 가기 시작했을 때, 병호는 새로운 세계에 입문하게 되었다. 당시 오픈한 무협 게임이었는데 의외로 병호가 소질을 보였던 것이다. 병호는 게임에 점점 빠져들어 갔다. 어떻게 해야 빨리 캐릭터를 레벨업 시킬 수 있는지, 어떻게 설정해야 캐릭터를 강하게 만들 수 있는지, 어떻게 조종해야 전투에서 유리한지를 고민하고 연구했다.
그리고 그 성과가 마침내 2학년에 이르러 빛을 보았다. 당시의 ‘힘 좋은 친구들’은 모두 뿔뿔이 흩어졌지만, 겨울 방학 동안 단련한 게임 덕분에 병호는 ‘좋은’ 친구들을 사귈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제 나도 더는 혼자가 아냐.’
가끔 힘 좋은 친구들과 같이 있어도 외롭다는 생각을 하곤 했었던 병호는, 한 살이라도 더 먹은 김에 스스로 바뀌겠다는 결심을 했다. 친구도 생겼으니 그 결심은 꼭 좋은 결과를 맞이하리라.
****
“선생님? 왜 이렇게 서두르세요?”
단유가 어리둥절해 하는 것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거실로 급히 뛰어든 하은은 명수의 인사도 받는 둥 마는 둥 하면서 소파 위를 둘러보았다. 한쪽에 처박힌 리모컨을 찾은 하은은 서둘러 리모컨을 조작, 곧 화면에서 색색의 공이 돌아가는 기계가 번쩍이는 불빛 속에서 숫자를 토해내는 장면으로 전환되었다.
손을 부들부들 떨며 말없이 화면을 바라보던 하은은, 이윽고 자신을 멍하니 바라보는 두 아이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멋쩍은 웃음으로 인사를 대신한 하은이 입을 열었다.
“밥 먹었니?”
그녀의 손에서 로또 용지가 갈가리 찢기고 있었다.
잠시 후, 식탁에 저녁이 준비되고 세 사람이 둘러앉았다. 한쪽 무릎을 굽혀 의자 위에 올린 하은이 힘이 빠진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역시 사람은 요행을 바라는 게 아니야. 묵묵히 정진하는 것이 사람의 바른 자세지. 알겠니?”
“어차피 재미 삼아 하는 거라고 하시지 않으셨어요?”
하은은 숟가락을 치켜들고 선언하듯 말했다.
“사행성 게임은 재미 삼아 하는 게 아냐.”
“그럼 왜 하셨어요?”
“이게 다, 너희들에게 사행성 게임이라는 게 얼마나 유해한지를 보여주려고 한 거야. 이것 봐라. 돈 낭비에, 시간 낭비까지. 할 짓 아니지 않니? 그러니까, 요행을 바라지 말고 너희들도 꾸준히 공부해서 좋은 직장을 가져야 한다는 교훈이 되는 거지.”
“5천 원짜리 복권 용지에 엄청난 의미가 들어있었군요.”
“김 단유, 비꼬는 거니?”
“설마요?”
하은은 머리를 절레절레 저으면서 숟가락을 국그릇에 집어넣었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5천 원이면 육개장이 한 그릇인데.”
단유와 명수는 못 들은 척했다.
“아, 맞다. 명수 오늘 시합 어땠어?”
“이겼어요.”
“명수가 두 골 넣었어요.”
“정말? 잘했네! 그럼 기념으로 치킨이나 먹을까?”
“5천 원짜리 치킨이 있나요?”
“이게!”
명수가 숟가락을 물고 방으로 뛰어들어갔다.
“선생님은 왜 내가 말할 때만 그래요!”
“니가 말하면 열 받아서 그래, 열 받아서!”
단유는 문 하나를 두고 씨름하는 두 사람에게서 신경을 끄고, 묵묵히 젓가락으로 김치를 집어 먹었다. 신맛이 단유의 입에 딱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