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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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단유를 아는 이들이 이 모습을 보았다면 꽤 놀랐을 것이다. 평소 단유가 이렇게 감정을 드러내는 일이 드물기도 하지만, 상대를 윽박지르는 스타일도 아니었으니까.
단유 스스로도 상대를 향해 위협을 가한 경우는 처음이라 할 수 있었다. 숱하게 위기를 겪고, 악의와 맞닥뜨렸지만 이렇게 적극적으로, 그리고 직접 행위를 취한 적은 없었으니까.
“야, 김단유.”
도하가 와서 단유의 손을 붙잡고 말했다. 아니, 말하려 했다. 하지만 우성을 바라보는 단유의 눈빛에 도하 역시도 움찔 놀라고 말았다. 이제껏 단유에게 시비를 먼저 걸면서도 절대 저런 식으로 자신을 바라본 적 없던 단유였던지라, 저런 눈빛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상상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단유는 도하가 말리려고 옆에 붙었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는 사람처럼, 오직 우성만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니가 누구랑 뭘 하든 상관 안 하는데, 내 친구한테 그따위 흑심을 가졌다가는 결코 가만 안 둔다.”
이전에 아지트에서 우성이 하던 짓을 지켜봤던 단유였다. 하지만 그때와 지금은 달랐다. 불쾌한 마음과 더러운 눈빛도 참기 힘들었지만, 그 눈빛이 향하는 대상이 자신의 친구라는 사실이 역겨워서 참기 힘들었다.
“나한테 시비를 걸든, 양아치 짓을 하든 상관 안 한다. 그런데 내 친구한테 그랬다간 가만 안 둘 거다.”
단유의 말은 높낮이 없이 평이했고, 그래서 담담했지만, 결코 그 속에 든 의미는 담담하지 않았다. 분노?
“경고했다.”
“······.”
“대답해.”
우성은 식은땀을 흘리며 대답했다.
“아, 알았···어요.”
저도 모르게 높임말을 쓴 우성의 눈에 단유는 동급생이나 전교 1등 같은 수식어로 표현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었다. 순간적이지만 단유가 마치 자기보다 한참 윗대의 어른처럼 느껴졌었다.
도하 역시 단유의 다른 모습을 본 것 같아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교실에서는 늘 표정 변화가 없어 ‘공부하는 기계’처럼 느껴지기도 했었고, 어제와 같이 ‘팔씨름’이라는 어처구니없는 요구―도하는 종일 자신이 건 내기 내용 때문에 부끄러워했다―에도 핀잔하는 대신 묵묵히 받아주던 모습에 수더분한 성격이라고 여기기까지 했었다.
그랬던 단유가 이리 나오니 당사자가 아님에도 가슴이 철렁했다. 물론 몰래 짐작하던, 실루엣의 주인이라는 것도 한몫하긴 했지만 말이다.
단유는 우성의 대답에도 한동안, 마치 그 속에 든 것이 진심인지를 판별하는 것처럼 우성의 눈을 직시하며 손을 떼지 않았다. 그리고 손을 떼는 순간, 우성은 이제껏 숨도 못 쉬고 있었다는 듯 격하게 숨을 몰아쉬었다. 단유는 유성의 그런 모습에 관심이 없다는 듯 몸을 돌려 스탠드로 돌아갔다. 도하와 우성이 제 자리로 돌아온 것은 한참이 지난 뒤였다.
곧 시합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그러나 단유는 시합에 집중하지 못했다. 화가 나서는 아니었다.
화? 그것은 분노였다. 일찍이 자신의 목숨이 경각에 달렸던 그때에도 느끼지 못했던 분노였다. 하지만 분노가 치밀어 올라 충동적으로 우성을 겁박했던 것은 아니었다.
솔직히 단유가 힘을 쓴다면, 마치 정환에게 그러했듯이,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그 세계에 우성을 처박아둘 수도 있었다. 현실에서야 몇 가지 복잡한 사정이 있겠지만, 단유에게 화살이 돌아올 염려도 없을 터였고.
다만 그렇게 하지 않은 이유는 우성이 자신과 동갑이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어리니까.’
단유도 이제는 세상 물정 모르던 어린 철부지가 아니었다. 이 세상이 어떤 시스템으로 돌아가는지, 어떤 군상들이 모여 살아가는지를 파악하고 있었다. 때문에 우성이란 놈이 지금의 인성과 버릇대로 컸을 때, 성범죄자가 될 수도 있고 혹은 범죄조직의 칼받이 정도로 성장할 수 있음을 예상할 수 있었다. 혹은 어떤 계기로 개과천선해서 모범생이 되고 대학에 들어가 번듯한 회사에 취직하고 가정을 꾸리며 평범하게 살게 될 확률도 있었다.
때문에 ‘세상에 해악이 될 놈’이라 낙인찍을 생각은 없었다. 미래는 알 수 없으니까.
물론 지금 현시점에서 우성은 ‘해악’이고 ‘해충’같은 놈이라고 판단할 여지는 있었다. 하지만 그게 다 무슨 상관인가. 제 놈이 그렇게 살았고, 살아가는 것을 단유가 신경 쓸 이유는 없었으니까.
다만,
‘내 사람들에게 해를 끼친다면 용서하지 않을 거야.’
더 이상은 사람을 잃기 싫었다. 그 상황이 벌어진 연유에 자신이 핑계가 되든, 되지 않든 말이다.
그래서 단유는 뒤통수를 간지럽게 만들던 우성의 음심(淫心)을 강하게 ‘경고’하는 선에서 정리하기로 결심했고 이를 행동에 옮겼다. 경고에 그친 이유는 전술한 바와 같이, ‘어리기’ 때문이었다.
정환과 같이 다 큰 어른도 아니었고, 그래서 자신의 말과 행동에 책임을 지기엔 부족함이 많은 ‘아이’였기 때문이었다. 15살이라면 다 큰 게 아니냐고 할 수도 있을 테지만, 단유는 아직 자신이 ‘다 컸다’는 자각이 없었다. 여전히 부족하고, 여전히 모자란 ‘아이’라는 게 단유의 열다섯, 본인에 대한 평가였다. 여전히 모르는 게 많았고, 그래서 더 많이 배우고 익히고 고민하고 성장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그와 같은 나이의 아이들도 아직 ‘어리다’는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었다.
심지어 자신이 힘이 세다는 것도 동년배 한정으로 생각하는 단유였으니.
단유가 자기도 모르게 자기 주위에 둘렀던 경계선의 범위를 조금씩 넓혀가고 있을 때, 가장 먼저 경계선 안으로 들어와 지금은 경계선의 가장 안쪽에 위치한, 친구의 시합이 시작되었다.
상대는 비슷한 나잇대의 중학생. 이제껏 아저씨들만 상대해오던 명수가 동갑, 혹은 한 살 밖에 차이 나지 않는 아이들과 겨루게 되었다.
“어리다고 봐주지는 마라.”
단유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시합에 집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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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집으로 돌아갈 거지?”
“네!”
하지만 대답이 시원찮다. 담인 선생님은 눈초리를 샐쭉하게 뜨고 학생들을 돌아보았다.
“···부탁이니까 제발 사고 치지 말고 다들 얌전하게 ‘놀다가’ 집으로 가야 한다. 알았어?”
“네!”
이번에는 좀 더 큰 환호성이 곁들어진 대답이었다.
“그럼 해산.”
“와!”
아이들이 뿔뿔이 흩어져 내달리는 모습을 보며 담임선생님은 피식 실소를 지어 보였다.
“이것들이, 선생님한테 인사도 안 하고 가네.”
하지만 조금이라도 더 많은 시간을 놀고 싶어 하는 아이들의 마음을 모르지 않아, 담임선생님은 미소로 아이들을 배웅했다. 그러다가 아직 자리를 뜨지 않는 아이들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너흰 안 가?”
단유가 대표로 나서서 대답했다.
“저희는 명수랑 같이 가려고요.”
“그럴래? 그런데, 옆에 저 친구는 네 여자친구냐?”
상미를 흘끔 본 단유가 고개를 저었다.
“‘여자’친구 아니고, 그냥 ‘친구’인데요.”
니 속을 내가 모르겠냐, 는 식으로 웃는 담임선생님의 오해를 적극적으로 풀어야 하나 갈등하던 단유의 등을 토닥여 준 뒤, 선생님은 등을 돌리려다 한 마디를 더 남겼다.
“아, 그리고 네 친구 공 잘 차더라. 잘 봤다고 전해라.”
“네.”
선생님은 시야에 들어온 도하에게도 한마디 했다.
“야, 스트리트? 너도 단유랑 같이 가려고?”
개학 첫날, 도하의 소개가 인상적이었던지, 선생님은 도하를 ‘스트리트’라고 불렀다.
“네.”
“녀석, 참. 괜히 공부 잘하는 애 물들이지 말고.”
경고인지 농담인지 모를 말을 남기고 담임선생님이 먼저 떠나셨다.
“너 안 가?”
“···왜?”
심통인지 불안인지 정확히 분간이 안 가는 묘한 느낌으로 단유를 바라보는 도하였다.
“우성이 갔잖아? 같이 갈 줄 알았지.”
“내가 걔 보모냐?”
단유는 ‘맥락 없는 녀석’임을 재확인하곤 고개를 저었다. 그때, 출구로 뛰쳐나오던 명수가 단유의 이름을 외쳤다.
“와, 저 새끼 나는 얼굴도 안 보이나? 야, 임마! 네 눈에는 단유 밖에 안 보이냐?”
지태의 타박에도 명수는 싱글벙글 웃으면서 단유에게 달려왔고, 두 사람은 손을 높이 치켜들고 하이파이브를 했다.
“어땠냐?”
정작 대답은 상미에게서 나왔다.
“고맙다, 명수야.”
명수가 어리둥절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니가 왜 고마워?”
“네 덕분에 오늘 점심 한 끼 해결됐거든.”
“응?”
“그런 게 있어.”
상미는 명수의 어깨를 툭툭 친 뒤, 호기롭게 외쳤다.
“가자! 밥 먹으러!”
“잠깐, 난 못 가.”
“왜?”
“감독님이 회식시켜 준댔어.”
오늘의 경기는 나름 대승이라 할 만했다. 단유네는 별로 정보가 없었지만, 상대팀은 지난 추계대회에서 4강에 들 정도로 강한 팀이었다. 그런 팀을 상대로 3골이나 얻으며 승리를 따냈으니, 지도자로서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간 판이었다. 더구나 자식들의 승전보에 학부모들도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은 터라, 성대한(?) 회식을 결정하기에 이르렀다.
“오오? 그럼 우리도···.”
지태의 말은 채윤의 손에 막혔다. 눈치 없이 굴지 마, 라는 채윤의 말을 뒤로하고 단유가 입을 열었다.
“알았어. 그럼 있다가 보자. 나 먼저 집에 갈게.”
그리하여 명수는 다시 운동장으로 돌아갔고, 어느새 주변을 배회하던 반 친구들이나 몇몇 외부인들도 사라져, 넓은 주차장에는 단유네만 덩그러니 남았다.
“그럼 밥 먹으러···.”
“난 그냥 집에 간다.”
“아, 왜.”
지태와 상미가 같은 표정을 하고 단유를 바라보았다.
“나 돈 없다니까?”
“사준다고.”
“왜?”
“내기에서 졌으니까.”
지태와 상미는 끝까지 같이 가고 싶어 했다. 하지만 단유는 아쉬움을 뒤로 하고 등을 돌려야 했다. 그리고 그 뒤를 도하가 뒤따랐다. 잠시 후, 도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나 때문이냐?”
“뭐가?”
“나 때문에 니 친구들이랑 밥 먹으러 안 간 거냐고.”
비록 시선이 도하에게로 와 닿지는 않았지만, 어쩐지 자기 때문에 단유가 친구들과 가지 않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단유는 뜬금없다는 눈으로 도하를 쳐다보다 피식 실소를 터뜨렸다.
“맥락 다음에는 자격지심이야?”
“···무슨 소리야?”
두 단어 모두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은데 의미를 모르겠다. 그래도 욕은 아니겠지, 라며 도하는 스스로를 위로하며 단유에게 물었다.
“됐고, 너 때문 아니니까 신경 쓰지 마라. 진짜 그냥 집에 일찍 갈 일이 있어서 그래.”
“집에 꿀이라도 발라 놨냐?”
아, 이놈의 미친 맥락. 단유는 도하와의 대화가 어릴 때의 명수랑 하던 대화보다 더 어렵다고 느꼈다.
“도대체 집에 왜 꿀을 바르냐? 그리고 집을 꿀로 바르려면 얼마나 발라야 하는지 알고 말하는 거야?”
집 내부의 실내 면적을 계산해서 정확한 수치로 말을 해줘야 하나, 를 고민하던 단유를 보며 이번에는 도하가 고개를 저었다.
“모르면 됐고, 밥이나 먹자.”
이 새끼, 진심으로 단유는 그렇게 생각했다. ‘이 새끼!’ 라고.
“넌 조금 전에 내가 한 말 못 들었어?”
“할 말이 있어서 그래.”
그제야 단유는 걸음을 멈추고 도하에게로 몸을 돌렸다.
“할 말 있으면 여기서 말해.”
“여기서?”
길 한가운데 서서 이야기를 하자고?
“여기는 조금 그렇고, 그냥 둘이서 이야기할 만한 곳이···.”
“말 안 하면, 나 저 버스 타고 간다.”
마침 다가오는 버스가 집으로 가는 방향의 버스였다. 도하는 어물거리다 단유가 몸을 돌리려는 모양새를 취하자 황급히 그의 팔을 붙잡았다.
“부탁이 있다.”
“뭐.”
시큰둥한 단유의 표정을 보며 침을 삼킨 도하가 말했다.
“담배 끊는 거 도와줘.”
단유는 고개를 저었다.
“미친놈.”
단유는 냉정하게 돌아섰다. 그리고 마침 정류장에 선 버스를 향해 가려는데 또 도하가 붙잡았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애정행각으로 착각할 법한 행동이기도 했고, 원체 스킨십이 익숙하지 않은 단유는 눈썹을 치켜세우며 도하를 보았다.
“도와줘.”
“야, 그걸 내가 어떻게 돕냐? 그리고 왜 내가···.”
“친구 하자, 우리.”
단유는 온몸에 돋는 소름 때문에 아찔할 지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