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멤버 더 네임-341화 (341/956)

인본(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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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 종이 울리고 단유는 책을 덮었다. 그리고 잠시 눈을 감았다.

“야, 도하야.”

우성이 뒤로 돌아보며 도하를 불렀다. 깊은 잠에 들었는지 도하는 여전히 책상에 엎드린 채였다.

“야, 진도하.”

단유가 눈을 뜸과 동시에 도하가 화들짝 놀라며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억.”

깊은 물 속에 잠겨 있다가 튀어나온 사람처럼 컥컥거리며 뒷걸음질 치는 와중에 의자가 바닥에서 구르며 요란한 소음을 냈다. 아이들의 시선이 뒤로 몰린 와중에 도하는 교실 뒤 사물함이 있는 곳까지 물러나더니 벽에 바싹 붙어서 깊은숨을 몰아쉬었다.

“야, 너 왜 그래?”

우성의 의아한 시선에도 도하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숨을 몰아쉬다가 좌우를 둘러보았다. 그 틈에 단유가 슬그머니 일어나 여유로운 걸음으로 도하의 앞을 지나 교실을 나갔다. 그런데도 도하는 전혀 그 모습에 신경 쓰지 못했다.

“여, 여기 어디야?”

“···너 꿈 꿨냐?”

보통은 수업시간에 잠을 자도 조금씩 꿈틀대며 인기척을 내던 애가 너무 조용하게 엎드려 있었던 탓에 있는지 없는지 모를 정도, 라 생각하던 중이었는데 갑자기 저렇게 ‘발작’을 하면서 정신 못 차리는 모습을 보니 우성은 도하가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속내를 드러낼 수 없어, 대신 걱정하는 시늉을 했다.

“괜찮냐?”

“야, 야.”

“응.”

“지금··· 낮이냐?”

가끔 그럴 때가 있다. 자다가 일어나서 시간이 혼동되는 경우. 보통 저녁 무렵과 새벽이 헷갈려서 시각을 착각하는 경우는 있었지만, 이렇게 밝은 햇살이 들어오는데 밤낮을 못 가리는 경우는 처음 본 우성이었다.

“너 왜 그래? 무슨 꿈을 꿨길래 그래?”

“꿈? 꿈이라고.”

도하는 인정할 수가 없었다. 산길을 내 달리다, 발바닥이 찢어지고 배는 고픈데 먹을 건 보이지 않고, 마실 물도 보이지 않아 목구멍이 갈라지는 체험을 하던 중이었다.

‘물’을 생각하니 갑자기 목이 말랐다.

“물 있냐?”

우성은 갸우뚱거리다, 다급해 보이는 도하의 눈빛에 뒤를 돌아보았다. 황급히 고개를 돌리는 아이들의 뒤통수를 노려보며 우성이 외쳤다.

“물 있는 사람?”

대답이 없었다.

“야, 물 있는 새끼 없냐고!”

그래도 대답이 없었다.

“아오, 이 존만한 새끼들이.”

도하는 더는 기다릴 수 없다는 듯 교실을 나가려다 통증에 무릎을 굽혔다. 절로 신음이 터져 나왔다.

“야, 또 왜?”

도하는 조심스럽게 신을 벗기고 양말을 벗었다. 찢어진 발바닥이 보이자 눈을 크게 뜨며 소리를 질렀다.

“워어어!”

“야, 너 발 왜 이래? 유리라도 들어간 거야?”

급히 도하의 신발을 거꾸로 세워 들고 흔들어보지만, 아무것도 나오는 게 없었다.

“무슨 일인데?”

마침 진태가 교실로 들어오고 있었다.

“야, 도하 좀 부축해봐. 양호실 가야겠다.”

“왜?”

“이 발 좀 봐라?”

이윽고, 도하가 부축을 받으며 사라지자, 아이들은 곧 수군대기 시작했다. 그러나 상황을 짐작할 단서가 없어 그저 추측만 난무할 뿐이었다. 그 사이 단유가 볼일을 보고 느긋하게 교실로 들어왔다.

“야, 단유야.”

“응?”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한 아이가 다가왔다.

“도하, 그 새끼한테 무슨 일 있었어?”

“무슨 일?”

단유가 눈을 껌뻑거리며 묻자, 당장 할 말이 궁해진 아이였다.

“방금, 막 미친 듯이 소리 지르고 넘어지고 한 거 못 봤어?”

“못 봤어. 화장실 갔다 왔잖아.”

“수업시간에 도하, 그 새끼 뭐 했어?”

“아무것도. 그냥 잤어.”

“아, 뭐지?”

두 사람의 대화에 솔깃한 단서라도 들을 수 있을까 모여들었던 아이들이 실망감을 드러내며 자리로 돌아갈 때, 단유는 보일 듯 말 듯 미소를 지었다. 이틀 만에 만족스러운 수업시간을 만끽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도하는?”

“양호실 갔는데요.”

“왜?”

“발바닥을 다쳐가지고요.”

“어? 왜?”

“모르겠는데요.”

우성의 대답에 담임선생님은 머리를 긁었다.

“언제 그랬어?”

“조금 전 쉬는 시간에요.”

“도대체 너희들 쉬는 시간에 뭘 했길래 그래?”

딱히 대답할 말이 없는 우성의 표정을 보며 곤혹스러워하던 담임선생님은 일단 수업부터 하자며, 수업을 진행했다. 단유는 여유롭게 교과서를 펼치고 수업에 집중할 수 있었다.

반면, 양호실에 간 도하는 깊지 않은 상처라는 진단을 받고 간단한 치료와 함께 침대에서 10여 분간 쉬다 갈 수 있는 여유를 처방받았다. 하지만 깨끗하게 소독된 하얀 면포의 침대 위에 누워있어도 여유는커녕, 불안감에 계속 두리번거리는 도하였다.

‘뭐였지? 그게 꿈이라고? 그럼 지금은? 내 발은?’

도하는 10여 분간을 벌벌 떨다가, 양호 선생님에 의해 교실로 쫓겨났다.

“왔으면 자리로 돌아가.”

선생님은 간단하게 상태를 물어본 뒤, 자리로 돌아가 수업받을 것을 요구했고, 도하는 어울리지 않게 순순히 대답했다.

“네.”

목소리만 들으면 중병에 걸린 사람이라도 되는 것 같았지만, 겉으로 보이는 문제는 크지 않아 선생님은 일단 수업에 집중하기로 했다.

“자, 자. 다시 칠판 봐.”

선생님은 칠판에 필기하면서 설명을 이어 나가셨고, 그사이 도하가 단유 옆에 얌전히(?) 앉았다. 아니 옆자리에 단유가 있다는 사실을 전혀 의식하는 못하는 눈치였다. 흘깃 시선을 던졌던 단유는 덤덤한 표정으로 수업에 집중했다.

“야, 도하야. 괜찮냐?”

우성의 질문에도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이지만, 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고,

“도하야, 우성아. 삥 뜯은 걸로 매점이나 가자.”

며 다가온 진태는 호주머니에서 지갑이 또 사라졌다는 사실을 깨닫고 당황해했다.

그 뒤로 단유는 평화로운 분위기 속에서 하루를 마칠 수 있었고, 앞으로도 종종 이 방법을 써먹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추측이지만, 앞으로도 도하는 두세 번은 더 ‘성찰의 시간’을 가져야 하리라 생각했다.

다음 날.

역시나 도하는 껌을 짝짝 씹으며 교실로 들어왔다.

“뭘 봐, 새끼야. 재수 없게.”

좀 더 신경질적이고, 좀 더 날카롭게 변했다. 사람은 하루아침에 변하는 경우가 없다는 것을 또 한 번 확인한 단유였다.

1교시는 수학이었다.

“아침부터 수학 공부하려니까 즐겁제? 아이가? 안 즐거운 사람 손들어봐라. 없제? 그럼 다들 즐겁게 수업하는기다.”

유쾌한 수학 선생님은 즐거움을 강제 소환하여 아이들을 세뇌시키며 진도를 나갔고, 단유는 이미 아는 내용이라도 선생님의 독특한 교습법에 흥미를 느끼면서 수업에 집중했다.

“자, 이 문제는 조금 어렵데이. 누가 풀어볼래?”

수업이 즐거운 것을 떠나, 수학 시간에 수학 선생님과 반 아이들이 지켜보는 와중에 칠판에 적힌 문제를 푸는 일은 어느 학생이나 꺼려지게 마련이었다.

“니, 나와 봐라.”

선생님은 단유를 지명했다. 보통의 선생님들은 단유를 잘 지적하지 않았다. 물어봐야―좋은 의미로―뻔한 결과였고, 수업 태도 자체가 좋은 아인데 굳이 나오게 해서 시킬 이유가 없었다.

“이게 쉬운 문제가 아니거든? 니들을 무시하는 게 아이고, 니들 친구가 어찌 푸나 보라고 부른 거니까, 잘들 봐라.”

단유는 ‘x/24와 x/35를 모두 유한소수가 되게 하는 자연수 x의 값 중 가장 작은 값을 구하라’는 문제의 풀이를 머릿속에 그림과 동시에 분필로 칠판에 풀이과정을 막힘없이 풀어냈다.

“잘 하네,잘 해.”

수학 선생님의 추임새를 들어가며 단유가 마침내 답을 도출해내자, 선생님이 박수를 쳤다.

“잘했다. 들어가라.”

단유가 고개를 꾸벅 숙여 보이곤 자리로 돌아가려는데, 수학 선생님이 불러 세웠다.

“아, 잠시만. 들어가는 김에 니 짝꿍 정신 좀 차리라 캐라. 애가 계속 넋이 나가 있는데 보기 안쓰럽네.”

‘안쓰럽다’는 표현으로 돌려 말하긴 했지만, 도하를 지적하는 말임을 모를 리 없는 아이들의 시선이 일순 뒤로 몰렸다. 도하가 눈을 부라리자, 얼른 고개들이 돌아가긴 했지만.

이후로 도하 역시 눈을 부릅뜨고 앞을 쳐다보고는 있는데, 역시 마음이 콩밭에 가 있다는 것을 옆에 앉은 단유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뻣뻣하게 고정된 얼굴과 달리 손가락은 연신 움직이면서 샤프를 만지작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서 불안인가?’

그런 추측이 맞았는지 수업이 끝나자마자 가방에서 또 자기 지갑이 아닐 게 뻔한 지갑을 꺼내 호주머니에 넣고 교실 밖으로 달려가듯 나가는 도하였다. 물론 이번에도 단유는 도하가 집어넣은 지갑의 위치를 몰래 옮겼다. 이러다 학교 밖 녹색 페인트칠 된 옥상이 지갑들로 꽉 차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얼굴이 붉어진 채로 돌아온 도하가 ‘한 놈만 걸려라’는 눈치로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수업이 시작된 뒤, 습관적으로 엎드렸을 때, 단유는 또 한 번 도하를 깊은 숙면에 취하게 만들었다. 직접 손대지 않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유용한 점이 많은 방법이라 생각하며 단유는 수업에 집중했다.

****

도하는 미칠 것 같았다. 어제 몇 시간 동안이나 내달리고 내달렸었는데, 도로 제 자리에 와 있으니 말이다.

“이게 뭐야, 씨발!”

도하의 울부짖음은 또 다른 이름 모를 짐승의 화답으로 묻혔다. 가까운 곳에서 들린 것 같은 으르렁거림에 도하는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어쩐지 수풀 속에서 빛나는 눈동자를 본 것도 같았다.

‘그리고 왜 또 맨몸이야!’

보는 사람도 없으니 상관은 없겠지만, 그래도 나름 다 컸다고 생각하는데 맨몸으로, 가운데가 덜렁거리는 볼썽사나운 꼴을 하고 있으려니 자괴감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자괴감은 둘째치고 일단은 도망을 가야 했다. 이틀 째라 그런지, 맨바닥을 달리는 일이 나름 숙달된 것인지, 발바닥을 다치게 할 만한 돌들을 피해가며 달릴 수 있게 된 도하였다.

하지만 그런 것과 상관없이, 미지의 장소에서 보이지 않는 위협에 대한 공포심 때문에 도하는 침이 흐르는 줄도 모르고 계속 앞으로 내달려야만 했다. 만약 단유가 적당히 안전이 보장된 장소로 도하를 이동시켰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그렇게 열심히 달리지 않았겠지만 말이다.

도하에 대한 제2차 정신교육 겸 체력단련이 끝이 났을 때, 단유는 이 교육의 장점에 100% 만족감을 보였다. 하지만 이후 교육의 부작용을 발견되기 시작했다.

첫째는 심해진 정서불안이었다. 이제 도하는 수업시간에 졸지 않았다. 책상에 머리를 박았다가는 곧바로 미지의 세계로 옮겨져 밥도 물도 없이, 죽음과 외로움의 공포와 직면해야 한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여기까지라면 만족할 만한 수준이었건만, 수업시간 내내 꼼지락거림이 심해졌다는 것이 부작용이었다. 주위를 계속 둘러보며 확인하는 습관과 손과 발을 가만두지 못하고, 계속 연필이나 책을 집었다가 놓는다거나 30분 내내 다리에 경련이 생긴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다리를 떠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둘째는 소리였다. 첫째와 같은 이유인지 아무 이유 없이 호흡이 거칠어지면서 듣기 불편한 소리를 내는 것이었다. 그 때문에 앞에 앉은 우성은 물론이고 주위 아이들이 모두 돌아볼 정도로 거친 호흡 소리를 내는데, 정작 자신은 그런 소리를 낸다는 의식이 없었다.

셋째는 부산스러움이었다. 수업이 끝나기도 전에 일어나려고 엉덩이를 들썩거린다거나, 선생님의 시선이 와 닿는 것 같으면 과장되게 고개를 숙이고 움찔거리는 모습이 옆에서 지켜보기에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하루가 지나면서 조금씩 증상이 완화되긴 했지만, 그런 부작용에 오히려 신경이 쓰이면서 단유는 자신의 방법을 마음대로 쓰기 곤란해졌다.

‘역시 통제가 되지 않으니까 문제구나.’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곳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어떤 일을 하는지를 알 수 없다 보니 이런 부작용이 생겨도 이유를 알기가 어려웠다.

****

“야, 진도하? 너 괜찮냐?”

우성과 진태가 가는 눈초리로 도하를 쳐다보았다.

“뭐, 임마.”

“너 요즘 이상해?”

“설마 어제 말한 그것 때문에 그러냐?”

스스로는 자각하지 못하는 ‘정신교육’의 일환으로 이세계를 다녀왔던 일을 두 친구에게 이야기했을 때, 두 사람은 꿈도 야무지게 꿨다며 도하를 타박했었다.

“···나 오늘도 갔다 왔다.”

“어딜? 어제 거기? 산속에?”

뜬금없이 산속에서 죽도록 달렸다는 도하의 말은 믿으려야 믿기 힘든 이야기. 발가벗고 산을 뛰어내렸다는 이야기에 웃기도 했지만, 넋 나간 표정의 도하를 보니 그냥 둬서는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진태가 우성에게 말했다.

“얘, 아무래도 진정제가 필요하겠는데?”

“진정제?”

진태는 엄지와 검지로 동그랗게 만 뒤, 다른 손가락으로 원 안을 집어넣는 제스처를 보였다.

“미진이 부를까?”

“불러. 난 먹을 것 좀 사 가지고 올게.”

진태가 녹슨 철문을 열고 나가는 소리가 들릴 때쯤, 우성도 상대와 통화를 시작했다.

“나다. 응. 이리 와라. 놀자고. 그래. 진태, 먹을 것 좀 사러 갔다.”

우성의 통화를 들으면서도 도하는 여전히 몽롱한 기분이었다. 몇 시간을 내달렸던 기억이 너무 생생했던 탓이리라.

“후우.”

피곤한 탓인지 주변이 흐릿하게 보였다. 차라리 몸이 힘든 쪽이 마음이 편했다. 차라리 귓속을 막는 게 편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게 마음의 안정을 되찾게 해주는 것 같았다.

“후우.”

누군가가 자신의 뒤에 서 있는 것 같았다. 그래도 도하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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