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본(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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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학일 다음 날, 다행히도 등교하는 길은 무사 평안했고 단유는 아무 일 없이 학교에 도착했다. 하지만 문제는 지금부터였으니, 단유답지 않게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한숨을 내쉬며 자리를 찾아갔다. 전날, 정규수업시간이 모두 끝난 뒤, 선생님에 의해 자리가 재배치되었고 단유는 다시 제일 뒷자리로 오게 되었다. 2학년이 되면서 단유의 키가 170대 중반에 이르렀지만, 단유보다 키가 큰 학생이 2명은 더 있었다.
덕분이랄까, 단유는 창가 쪽 분단에 자리를 갖게 되었고, 위치만큼은 대만족 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다만 문제라면 짝으로 배정한 소년이 문제였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온 소년은 아침부터 껌을 질겅질겅 씹으며 교실로 들어오더니 뚜벅뚜벅 걸어 단유가 있는 자리로 다가왔다. 그리고 단유 옆자리에 가방을 내던지듯 올려놓고 거칠게 의자에 앉았다. 책을 읽고 있던 단유는 옆자리에서 들려온 소음보다 시비조로 다가오는 소년의 말투에 인상을 찌푸려야 했다.
“얼굴 펴라, 새끼야.”
반 아이들 모두에게 불친절한 소년, 도하였지만 유독 단유에게 더 심하게 뿔을 세웠다.
“그럼 말이나 곱게 하던가.”
“좆 까.”
단유는 잠깐 능력을 써서 없애버리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자제심. 쓰더라도 사람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 써야 안전할 일이다.
심호흡으로 마음을 안정시키려 하는데, 숨을 들이켤 때마다 코의 점막을 자극하는 냄새 때문에 오히려 마음이 불편해지는 기분이었다. 덕분에 단유는 1교시가 시작될 때까지 꽤 오랜 시간 책에 집중도 못 하고 불쾌한 마음으로 아침 시간을 보내야 했다.
단유가 그러거나 말거나, 도착하자마자 건너편 자리에 앉은 우성과 시시껄렁한 이야기나 나누며 시간을 보내다가 1교시가 시작되자, 할 일이 끝났다는 듯, 책상에 엎드려 잠을 청하는 도하였다.
그러다가도 쉬는 시간만 되면 어떻게 정신을 차리는 건지, 벌떡 일어나서 우성과 함께 매점으로 향하는 도하는 매시간 무언가―빵이나 과자나 껌이나―를 입안에 집어넣은 채로 교실로 돌아왔다.
“뭘 봐, 새끼야. 책이나 쳐 봐.”
단유는 눈을 감고 다시 심호흡을 했다. 깊게 들이쉬고, 호흡의 따뜻한 기운을 가슴 속 아래까지 밀어 넣었다가 잠시 후 천천히 내뱉는다. 숲속의 청량함 속에서 심신의 안정과 도약을 위해 배운 호흡을 이런 곳에서 쓰게 될 줄이야.
“같잖은 게 꼴값 떠네. 진짜 죽도록 맞아야 정신 차리지?”
이제는 우성까지 시비를 걸고 있었다. 단유는 그들의 표현대로 ‘같잖은’ 악의에 신경질이 났다.
그러다 문득 자신이 평소의 자신과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이 정도 도발에 말려드는 거지?’
너무 쉽게 화를 내고, 도발에 신경질을 내는 모습은 자기답지 않다, 고 단유는 생각했다.
‘고작해야 어린애들 장난 수준이지 않은가.’
돌아보니 최근 충동적으로 행동한 게 적지 않았다. 당장 어제 능력을 발휘했던 것도 그랬고, 그전에는 나윤에게 오지랖을 부렸던 것도 그랬다.
‘왜 그랬을까.’
계기가 있다면 아마도 ‘재훈’의 일 때문일 것으로 생각하는데, 정확히 그 일이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가끔 하은이 수건을 개면서 중얼거리던 노래가 생각났다.
“내가 나를 모르는데, 넌들 나를 어찌 알겠느냐.”
단유는 좀 더 스스로에 대해 집중해서 분석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전에 옆에 있는 도하 녀석을 어떻게 해야 할 것 같다. 어디서 또 누구를 괴롭히고 온 모양인지, 누군가를 패는 시늉을 하며 낄낄대고 있었다. 제일 뒷자리까지 선생님들이 잘 오지 않는다는 사실 때문인지, 아니면 선생님이 알아도 상관없다는 것인지 수업시간임에도 거리낌이 없었다.
마침 도하는 누군가로부터 강탈한 것이 분명한 지갑 한 개를 가방 뒷주머니에 넣고 있었다. 그 모습을 흘깃 본 단유는 고개를 돌려 창밖을 보았다. 2층 교실에서 내다보는 창밖은 작년보다 훨씬 먼 곳까지 보였다. 학교 밖 단층 건물 옥상에 녹색의 방수 페인트가 칠해져 있는 것도 잘 보였다. 단유는 적당한 위치라 생각했다.
다시 또 한 시간이 지나고, 눈을 게슴츠레 뜬 도하가 우성과 함께 교실을 나가기 위해 가방 뒷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었다.
“어? 어디 갔지?”
도하는 가방 이곳저곳을 뒤졌지만, 숨겨둔 지갑은 전혀 보이질 않았다.
“왜?”
“아까 삥 뜯은 거 없어졌다.”
“딴 데 둔 거 아냐?”
“아냐, 씨발. 여기 넣어뒀는데.”
우성은 자기 걸 줄 테니까 일단 갔다 오자고 도화를 꾀었다. 도하는 자리에서 일어나다 슬쩍 단유를 쳐다보았다. 단유는 아무런 동요 없이 책을 읽는 중이었다.
“아, 씨발. 볼 때마다 성질나네.”
“빨리 가자.”
“알았어, 새끼야.”
도하가 우성과 함께 나가는 모습을 보던 단유는 볼을 긁적였다. 아무래도 우성이 저놈의 것도 같이 처리해야 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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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네. 우리 처음 보제? 내 아는 사람?”
몇몇 아이들이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가 내렸다.
“그래, 그래. 됐다. 내 이름은 김승민이라고 한다. 오늘부터 내랑 1년 동안 이 교과서를 탈탈 털어 먹을기다. 알긋제?”
선생님이 수학 교과서를 들고 흔들어 보이자, 몇몇 학생들이 ‘어우’하는 탄식을 내뱉었다.
“그래, 이 정도 리액션이 나와야 내도 재밌게 수업을 하지. 아, 그리고 여기 이 반에 전교 1등 있다며?”
아이들의 시선이 모두 한쪽으로 쏠렸다.
“니가?”
“1학년 때 성적은 그랬습니다.”
단유의 말에 선생님이 히죽 웃음을 지었다.
“니 쪼매 유명하대? 연예인이가? 연습생?”
“아무것도 아닌데요?”
“그렇나? 근데 니 노래도 냈담서? 마, 됐다. 니가 뭘 하든 믄 상관이고? 학생이 공부 잘하면 장땡이지. 맞제?”
아이들이 ‘에이’하고 야유를 하자, 선생님은 키득거리며 교탁을 몇 번 쳤다.
“야들이 왜이리 호들갑이고. 됐고, 니 수학 잘하제? 어디 학원 다녔나?”
“학원 안 다녔는데요?”
“그럼 니 혼자 공부했나?”
“···공부 도와주시는 선생님이 계십니다.”
“과외하네? 그래서 잘하나? 어디까지 했는데?”
갑자기 수업은 안 하고 웬 호구조사인가 싶었지만, 일단 단유는 성실히 대답했다.
“중학교 수학 과정은 다 배웠습니다.”
굳이 고등학교까지라고 이야기하는 건 너무 자신을 드러내는 것 같아 말을 바꿨지만, 그 정도로 이미 아이들의 야유를 받기에 충분했다.
“맞나? 그럼 내 시간에 되게 지루하겠네?”
“네?”
“지루해도 내 시간에 졸거나 딴짓하면 전교 1등이라도 안 봐준대이. 알겠나?”
“네.”
“딴 놈들도 단디 기억해라. 내 시간에 뭐하면 안 된다고?”
“딴짓이요.”
“그래. 딴짓하다 걸리면 가만 안 둔다. 알긋제? 몇몇 놈들이 선행학습이라고 학원 가서 배웠다고 잘난 척하면서 수업시간에 딴짓하는 놈들 있던데, 내는 그런 놈들 절대 그냥 안 봐줬다. 알긋나?”
“네!”
“그럼 수업 시작하자.”
유쾌한 듯 웃으며 말씀하시는 것과 달리 눈초리는 매우 살벌해서 아이들도 더는 웃음이나 야유를 내지 않았고, 진중한 가운데 수업이 시작되었다.
“아, 씨발. 뭐야.”
도하의 중얼거림을 무시하고 단유는 몸을 꼿꼿이 하고 수업을 들었다. 선생님의 과장된 사투리 억양과 독특한 표현법으로 나름 재미있게 수업이 진행되었고, 덕택에 아이들은 어렵게 생각될 법한 수학 시간을 즐거운 마음을 집중할 수 있었다.
“어이, 거기 고개 안 드나? 선생님 목이 이리 쉬도록 설명하는 데 집중 안 하면 어찌한다고 안 그랬나? 고개 들어, 알았지?”
도하 역시 이번 시간에는 전혀 잘 수 없었다. 일단 처음 만나는 선생님인 데다 만만하게 보기 힘든 아우라가 있어, 고개를 들고는 있지만 뭔갈 알아듣고 있다는 느낌은 전혀 없었다. 그야말로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기색이 역력했다.
누군가에겐 즐겁고, 누군가에겐 고통스러웠던 수학 시간이 지나자, 도하는 신경질적으로 의자를 뒤로 밀며 일어났다.
“왜?”
우성이 묻자, 가방을 뒤집어 탈탈 터는 도하였다.
“진짜 좆 같네.”
“없어?”
“···씨발.”
결국 제 화를 못 이기고 가방을 집어 던지는 도하였다. 그 행동에 주변 아이들이 눈치를 봤다. 단유는 고작 그런 이유로 저렇게 요란스럽게 행동할 이유가 있을까 싶지만, 본인이 아닌 이상 저 속을 어찌 알까? 괜히 ‘나 화났어’를 자랑하듯 행동하는 도하에게서 신경을 끊는 게 마음이 편하리라.
“어?”
“왜?”
“여기 넣어 놨는데, 없다.”
“아, 씨발! 뭐야!”
도하는 발을 구르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흘끔거리던 아이들은 눈을 마주치지 않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누구야! 씨발!”
화를 내던 도하는 고개를 홱 돌렸다. 얌전하게 책을 읽는 단유를 본 도하는 이를 갈다가 물었다.
“야, 김단유.”
그러나 단유는 듣지 못한 듯, 책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와, 이 새끼, 또 씹네.”
도하는 단유의 뒤통수를 밀치며 단유의 시선을 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뭐야?”
“새끼야, 사람이 부르면 봐야 할 거 아냐? 새끼가 어디서 쌩 까고 지랄이야!”
“···뭔데?”
차분하기만 한 단유의 눈빛에 더 화가 났는지, 눈을 부라리는 도하였다.
“니가 그랬냐?”
“뭘?”
“지갑 뽀린 게 너냐고!”
“내가 왜?”
“아우, 씨발.”
하긴 단유는 계속 자기 옆에 앉아 있었다. 심지어 2시간 동안, 쉬는 시간에도 자리에서 벗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아는 도하는 단유를 윽박지를 핑계가 없었다.
“아, 미치겠네.···야, 눈깔아, 새끼야.”
단유는 얌전히 시선을 돌려 다시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러나 딱히 도하의 말을 듣고 시선을 내렸다 보기 어려운 분위기인지라, 더 열이 받은 도하는 단유의 뒤통수를 때리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다. 만약 진태가 그 순간에 교실로 들어오지 않았다면 말이다.
“야, 뭐해?”
“야, 너 시간 있어?”
“있지.”
“수금이나 하러 가자.”
도하와 우성은 일단 씩씩거리면서 교실을 나갔다. 아이들은 그 모습을 못 본 척하면서 각자의 일을 봤다. 모두가 시선을 돌릴 때, 단유만 그 뒷모습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끝이 없네, 끝이.’
단순히 뺏은 물건을 되찾아오는 것만으로는 해결이 되지 않았다. 근본적인 문제가 처리되지 않는 이상, 이 불편한 관계는 계속되리라.
‘결국 문제는 도하니까, 도하를···.’
단유는 순간적으로 품은 생각에 흠칫 놀랐다.
‘왜 이러지? 나···.’
단유는 문득 자신이 힘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너무 쉽게 일을 해결하려는 것이 아닌가, 라는 반성을 했다. 고작 자기 편하자고 한 사람의 생명을 손쉽게 저울질하는 자신의 모습에서 이질감이 느껴졌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저런 녀석 따위 없는 게 이 세상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 지금껏 봐왔잖아? 저런 애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가깝게는 ‘광종’이란 케이스가 있고, 멀게는 보육원에서 자신에게 악의를 드러냈던 ‘동인’의 경우가 떠올랐다.
‘저런 애 하나 없어진다고 세상이 달라지진 않겠지만, 적어도 교실에 평화는 오지 않을까?’
모두를 위한 평화를 추구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자신에게 아무런 이득이 되지 못할 테니까. 단지 편하게, 불필요한 곳에 신경을 쓰면서 공부에 집중하지 못하는 환경을 ‘개선’하고 싶은 마음이 들 뿐이었다.
‘덕지불수, 학지불강···(德之不修 學之不講 聞義不能徙 不善不能改 是吾憂也)’
공자가 말했듯, 덕을 닦고 학문을 익히고 의로움을 따르고 선하지 못한 것을 고치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을 누구나 알지만 실천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못하는 이유야 여러 가지겠지만, 지금의 경우는 과연 지키지 못하는 경우인가, 아니면 방법이 잘못된 것인가.
공자는 말씀하셨다. 지혜로운 사람은 미혹되지 않는다고(知者不惑).
‘나는 지금 어떤 유혹을 받고 있는 걸까?’
단유는 결국 책을 덮었다. 「지능의 탄생」이란 책의 표지가 문득 허망하게 느껴졌다. 당장의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는 마당에 이런 책을 읽어봐야 무슨 소용일까 싶었다. 책을 읽다가 ‘부질없다’라는 느낌을 받은 것은 처음이었다.
“나중에 갚을게. 들어가라.”
우성과 도하가 시끌벅적하게 교실로 돌아왔다. 단유는 시빗거리를 만들지 않기 위해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새끼, 밖에 UFO라도 있냐?”
도하는 물론이고 우성까지 시비를 걸고 싶은가보다. 인내심이라면 누구 못지않게 길렀다고 생각했는데, 단유는 조금 전 고뇌하던 문제는 싹 잊어버렸다.
마침 종이 울리고 사회과를 맡은 여 선생님이 들어오시자, 도하는 바로 자리에 엎드렸다.
‘그래, 한 시간 정도라면.’
단유는 한 시간 동안 도하가 일어나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 사이에 문제가 생기면, 그건 도하의 문제일 뿐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넘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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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씨발. 무슨 꿈이 이따위야.”
도하는 주변을 둘러보면서 말했지만 외친 말의 의미와 달리, 꿈이 아닐 수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벌거벗은 채인 자신의 처지는 둘째치고 휑한 산골에 홀로 떨어진 도하는 도대체 이곳이 어딘가 싶어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이곳에 도하의 의문을 풀어줄 이는 없었다.
“아, 씨발.”
아랫도리를 덜렁거리며 추위를 피할 곳을 찾던 도하는 강한 통증에 주저앉고 말았다. 작은 조약돌을 밟으면서 통증을 느낀 도하는 평소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신발의 중요성을 되새겼다.
“여기가 어디야!”
괜히 신경질적으로 소리를 질렀지만, 메아리도 없이 허망하게 사라지는 목소리였다. 누군가 자신도 모르게 납치를 한 것일까,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무리 바보라도 그게 말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쯤은 알 수 있었다.
문득, 먼 곳 어디서 모골이 송연하게 만드는 짐승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안전’하지 않은 곳, 이라는 직감은 도하를 두렵게 만들었고, 도하는 벌떡 일어나 움직이기 시작했다. 발바닥이 아파서 뛰지는 못해도 이곳에서 벗어나겠다는 생각에 걸음을 멈추지는 않았다.
금방이라도 뒤에서 날카로운 이를 가진 짐승이, 자신을 노리고 달려들 것 같다는 공포심에 도하는 추위와 상관없이 진땀을 흘려야 했다.
“아, 씨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