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하(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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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널목을 건너던 채윤이 걸음을 멈춘 것을 확인한 단유가 차로 시선을 돌렸을 때, 중앙선을 넘었던 차가 1차선으로 돌아오기 위해 비스듬히 주행하는 것을 보았다. 어쩌면 저대로 빠르게 지나갈 수도 있겠지만 잘못하면 인명 사고가 날 가능성도 있었다.
거기까지 생각한 단유는 생각 대신 ‘의지’를 품었다.
검은 승용차가 건널목에 다다를 때쯤, 사람들은 신기한 현상을 목격했다. 순간적으로 차가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가속을 한 것이었다. 얼마나 빠른 가속이었는지, 진짜 눈에 보이지 않았다.
또 다른 의미로 ‘어?’ 하며 차를 쫓던 시선들이 잠깐 방황하는 사이, 검은 승용차는 건널목을 지나 텅 빈 도로 위를 질주하고 있었다.
“와, 미쳤다.”
지켜보던 지태가 중얼거릴 때였다. 검은 승용차가 갑자기 비틀거리더니 귀가 먹먹할 정도로 타이어가 도로에 끌리는 소리와 함께 하얀 연기를 뿜으며 승용차는 인도로 향했다. 그리고 인도에 서 있던 가로수와 들이받고는 뒤집힐 듯 한쪽이 들렸다가 쿵 소리를 내며 도로에 주저앉아 흰 연기를 뿜어내는 승용차였다.
“사고다, 사고.”
그 사이 건널목을 빠르게 건너온 채윤도 사고현장을 바라보며 놀라움을 표시했다.
“와, 개학 첫날 죽을 뻔했네.”
“아침에 일찍 나오니까 이런 것도 보네.”
사람들이 웅성대는 가운데 몇몇 갈길 바쁜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건널목 반대편에 서서 그 장면을 목격했다. 건널목을 지나갔던 이들 중에 몇 사람이 사고현장으로 다가가는 모습이 보였다.
“도와주려고 그러나 봐.”
“돕긴 뭘 도와. 내 그렇게 달릴 때 알아봤다.”
“난 사람 치는 줄 알았다니까.”
“그런데 갑자기 차가 사라진 것 같이 보이던데.”
“저도 그랬어요.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
“너무 빨라서 순간적으로 놓친 거 아닐까요?”
“난 다 봤는데. 갑자기 건널목에 사람이 있으니까 속력을 높인 거 같던데?”
“아냐, 갑자기 사라진 거 맞아. 내 앞에서 차가 사라졌는데?”
“너무 당황해서 그랬겠지.”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커지는 가운데, 단유가 명수의 팔을 붙잡았다.
“가자.”
“저기 어떻게 되는지 보고 가면 안 될까?”
“시간 없어.”
지태도 명수의 말에 따르기를 원했다.
“조금만 보다 가자. 아직 시간 많이 남았잖아.”
채윤은 여전히 놀란 마음이 가라앉지 않았는지, 더듬거리듯 천천히 말했다.
“난 조금 있다 갈래. 다리가 안 움직이는 거 같아.”
그 말대로 채윤의 다리가 덜덜 떨리는 게 눈에 선명히 보일 정도였다. 몇 사람이 다가가 차 안을 보다가 물러서는 모습이 보였다.
“죽었을까요?”
“가 볼까?”
“됐어요. 그냥 가요. 이러다 늦겠어요.”
어떤 사람은 빨리 회사에 가서 자신이 목격하고 체험한 사고를 전파하기 위해 몸을 돌렸고, 어떤 사람은 개인적 호기심과 인간적 동정심 사이를 오가며 상황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단유네는 더는 시간을 지체할 수 없어 빨리 걸음을 돌려야 하는 쪽에 속했다.
사건 현장이 보이지 않는 곳까지 오자, 단유는 내심 한숨을 내쉬었다. 사람들이 많이 있는 곳에서는 능력을 쓰지 않겠다고 생각했는데, 무심코 쓰고 말았다. 그 와중에도 건널목 사이를 건너뛸 공간만큼만 움직이게 했던지라, 어떤 사람들은 차가 갑자기 속도를 올린 게 아니냐고 착각하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차가 사라지는 모습을 보았을 것이다. 그래서 되도록 현장에서 벗어나고픈 생각이었다.
“단유도 많이 놀랐나보다. 얼굴이 하얗게 질린 거 같아.”
저렇게 큰 물체를, 게다가 빠르게 위치가 변하는 물체를 옮긴다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사실을 경험했기 때문이지만, 그것을 말할 수는 없었다.
“채윤이가 사고당하는 줄 알고 놀랐던 거 아냐? 나도 순간적으로 얼마나 놀랐었는데?”
지태의 말에 명수도 자기도 엄청 놀랐다며, 과장되게 손뼉을 마주치며 맞장구를 쳤다.
“야, 지켜보는 사람보다 당하는 사람이 더 놀라는 법인 거 몰라? 난 진짜 오늘이 내 제삿날인 줄 알았어. 요단강 건넌다는 게 이런 느낌이구나, 생각이 들었다니까. 검은색이 눈앞으로 다가오면서 막 옛날 기억들이 쏟아지는데, 아, 이게 주마등이라는 거구나, 라는 생각이 들면서 막 눈물도 쏟아지려고 그러고.”
채윤이 보기 드물게 말을 길게 늘어놓자, 지태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우리 채윤이 많이 놀라긴 놀랐나 보다. 갑자기 이렇게 말이 많아지냐. 그런데 채윤아. 너 뻥이 너무 심한 거 아냐? 그 차랑 너랑 거리가 얼마나 떨어져 있었는데.”
“아냐, 얼마 안 떨어져 있었어. 너희야 멀리서 지켜보니까 그렇게 느꼈을 수도 있지만, 눈앞에서 차가 달려드는 모습을 지켜보는 내가 정확하지, 니가 정확하겠어?”
“으구으구, 그러셨어요?”
“정말이야! 차가 이만큼 달려들었을 때, 순간적으로 시간이 느려지는 느낌이 들면서 머릿속에 온갖 생각이 다 드는데, 중학교 입학식 생각도 나고, 초등학교 때 외갓집 갔던 생각도 나고, 유치원 때 생각도 나고 그러는 거야. 지금 생각하니까 완전 신기하네.”
이번에는 명수도 웃음을 터뜨렸다.
“유치원 때 생각나는 건 좀 심하다.”
“뭐가 심해? 진짜라니까?”
“왜, 갓 태어났을 때 기억도 난다고 하지그래.”
“와, 진짜 못 믿네. 사람들이 주마등, 주마등 하는데 그게 뭘까 했더니 오늘 내가 그걸 체험했네.”
지태는 명수를 보며 말했다.
“사람이 사고를 겪고 정신이 이상해지는 경우도 있다고 하잖아. 얘가 그런 거 같지 않아?”
“그런 거 같다. 채윤이가 저렇게 수다스럽고 과장하는 스타일은 아닌데 말이야.”
“내 말이.”
“야! 사람이 죽을 뻔했는데, 그걸 가지고 놀리냐?”
채윤이 열을 올리며 주먹을 쥐어 보이자, 키득거리던 지태와 명수가 주먹을 피해 달리기 시작했다.
“니들이 친구냐, 새끼들아!”
“우와, 죽다 살아난 좀비가 화났다!”
단유는 장난을 치며 달리는 친구들을 바라보다, 무심코 뒤를 돌아보았다. 이미 사고현장이 보이지 않는 곳까지 걸어온 탓에 아무것도 알 수는 없었지만, 단유는 좀 더 조심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여기며 학교로 발걸음을 돌렸다.
운전자의 생사여부? 그런 건 단유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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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학식을 마치고 찾아간 교실은 2학년 3반이었다.
“이번에도 너랑은 같은 반이 아니네.”
“그러게.”
명수는 아쉬움 가득한 목소리로 한탄하며 2반 교실로 들어갔다. 그 모습을 보며 교실로 들어갔더니 아이들의 시선이 모두 단유에게로 몰려드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오오, 전교 1등.”
어느새 같은 학년에게 전교 1등으로 유명해진 단유였다.
“쟤야?”
“응.”
“세상 너무 불공평한 거 아냐? 공부도 잘하고, 노래도 잘하고, 싸움도 잘하고.”
“현실이 그렇다, 친구야.”
전교 1등이자 한때 신드롬이었던, 대세 걸그룹 가디스R의 커버곡을 발표하기도 했던, 준연예인급 대 스타의 왕림에 아이들의 입이 쉴 새 없이 움직였다.
단유는 그런 아이들의 시선을 덤덤히 받아넘기며 뒷자리로 향했다. 하지만 가장 뒷자리 8개가 이미 가득 차 있어서 단유는 뒤에서 바로 한 칸 앞자리에 앉아야 했다. 겨울방학 동안 또 한 번 쑥쑥 자란 탓에 덩치가 작지 않은 단유였기에 뒷자리 아이들은 아무래도 자리를 양보해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선생님이 오시기 전까지는 누구도 먼저 일어서려는 모습이 보이지 않았고, 게다가.
“쟤냐?”
단유를 향해 곱지 않은 시선을 던지는 무리가 뒷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탓이기도 했다.
“쟤가 작년에 학교를 발칵 뒤집었던 그놈이구나. 그런데 어떻게 한 번도 못 봤지?”
“교실 밖을 잘 안 나간대.”
“왜?”
“책보는 걸 좋아해서 교실 밖에 잘 안 나간다더라. 점심때도 교실에만 있는다던데?”
“완전 범생이네. ···근데 싸움을 잘해?”
“일단 동영상만 보면 그렇긴 한데, 정확하진 않아. 솔직히 광종이 그 새끼 좀 허접이잖아.”
단유를 응시하는 시선에 불쾌감이 깃들어있었다. 잘난 새끼.
수군대는 소리가 작지 않았지만, 단유는 아무렇지 않게,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는 듯, 자연스럽게 책상을 정리하고 최근에 보던 책을 꺼내 읽기 시작했다.
“별난 새끼네.”
보통 첫날이면 주위에 누가 있는지 살피거나 혹은 같은 반이었던 아이들과 모여서 무리를 짓는데 단유는 주위 분위기와 상관없이 ‘고고한 자태’로 책을 읽는 것이다. 그 ‘꼴’이 보기 싫었다.
“존나 잘난 척할 거 같은데.”
“애들이랑 말 잘 안 한대.”
“어떤 스타일인지 알겠다.”
제 잘난 맛에 사는 놈이리라. 한 번도 본 적은 없지만, 들려온 소문에 따르면 그런 놈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모습을 봐도 그렇고.
“야, 언제 한번 까자.”
“언제?”
“그거야 분위기 봐서 까야지.”
무식하게 아무 때나 성질부리는 것은 자신과 맞지 않았다. 거리낄 것 없이 행동하고픈 청춘이라도 눈치껏 살아야 하는 세상이니까.
그들의 대화는 담임 선생님의 등장으로 멈췄다.
“자, 반갑다. 아까 강당에서 소개했지만, 다시 소개한다. 나는 정강구라고 한다. 이름 가지고 선생님 놀리면 안 되지만, 만약 놀리고 싶어도 선생님 귀에 들어오지 않게 해라. 만약 선생님 귀에 들리면 가만두지 않겠다.”
다소 익살스러운 선생님의 소개에 아이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일단 개학 첫날이고, 다들 서먹할 테니까 간단하게 자기소개하고 시작하자. 아, 그리고 지금 앉아 있는 자리는 일단 오늘 오후까지 계속 앉도록 하고, 오후에 자리 바꾸자. 오케이?”
“네!”
아이들은 앞자리에서부터 한 사람씩 일어나 자기소개를 했다. 단유의 차례가 되었을 때, ‘김단유’란 이름이 나오고 아이들이 유난스런 반응을 보였을 때는 선생님도 관심을 보였다.
“어이, 김단유 학생?”
“네.”
“이름 많이 들었다.”
“네.”
“잘 부탁한다?”
무엇을 부탁하는지 모르겠지만, 단유는 얌전하게 대답했다. 그때 한 아이가, 혹은 두 사람인지 모르겠지만, ‘노래해’ 라는 연호가 나오기 시작하더니 곧 반 전체가 ‘노래해’를 외치기 시작했다. 단유가 아무 반응 없이 멀뚱거리는 표정으로 선생님만을 바라보며, ‘다음 사람’이라는 말을 기다릴 뿐이었다.
“말 나온 김에 노래 한 번 하지그래? 시간도 많은데.”
“오오!”
아이들의 환호 속에서 단유는 선생님의 손짓에 따라 교실 앞으로 나갔다.
“어떤 노래요?”
“그건 니가 정해야지. 아니면 아이들이 불러달라는 거 다 불러 줄 수 있어?”
“아뇨.”
역시 이번에도 아이들은 ‘리모트’를 외쳤다. 그 모습이 초빙 가수에게 앵콜을 요청하는 것과 같은 모습인지라 선생님도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단유는 고개를 살짝 끄덕여 보인 뒤,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조용해지기 전에 갑자기 시작된 노래에 아이들은 살짝 뭔가, 하는 표정으로 바라보다가 노래가 이어지면서 점점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노래가 끝난 뒤, 아이들의 박수를 받으며 단유는 제자리로 돌아갔다.
“자, 그 다음.”
다시 아이들이 일어나 자기소개를 하기 시작했고, 마침내 가장 뒷자리에 있던 아이들의 순서가 되었다. 그 중 단유를 아니꼽게 여기던 덩치가 일어났다.
“진도하입니다.”
이름만 말하고 자리에 털썩 앉는 껄렁한 소년을 보며 선생님은 보일 듯 말 듯 눈가를 살짝 찌푸렸다.
“이름 말고 다른 건 없어? 취미나 특기나 그런 거.”
앞의 아이들이 한 것처럼, 이라는 선생님의 말에 도하는 입술을 씰룩이다 책상을 툭 쳐서 앞으로 살짝 밀어낸 뒤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누가 봐도 ‘나 불량해요’라는 자세였지만, 선생님은 딱히 지적하진 않았다.
“취미 없고요, 특기는···격투기입니다.”
“격투기?”
“네.”
“어디 도장 같은 데서 배우나?”
“아니요.”
“그럼.”
“그냥, 할 줄 압니다.”
이번에는 선생님도 혀를 차며 눈가를 좁힐 수밖에 없었다.
“그 이야기는 내가 널 주의 깊게 지켜봐야 한다는 소리 같네. 맞아?”
“···아닌데요.”
“됐다. 다음.”
도하는 역시 입술을 씰룩이더니 자리에 풀썩 앉았다. 그리고는 다리를 꼬며 턱을 치켜들어 보였다. 그러다 단유에게로 시선을 옮겼는데, 단유는 자신을 보지 않고 있었다. 마치 아무 관심도 없다는 듯, 창밖을 향해 시선을 던질 뿐이었다.
‘저 새끼.’
도하는 왠지 단유라는 놈과 사이좋게 지내긴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