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자생존(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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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같은 소리! 밖에 나가서 아무나 붙잡고 물어봐라. 돈 없이 살 수 있냐고! 돈이 중요하지 않냐고! 정신 나간 놈들 빼고, 대부분이 돈이 중요하다고 할 거다.”
“이제는 성공 대신 돈인가요? 한계효용의 체감 법칙과 같은 경제학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돈이 전부가 되지 않는다는 건 아실 것 같은데요? 저는 그렇게 많은 돈이 필요한 게 아니거든요. 그렇다면 돈이 목적인 삶을 살 필요가 없죠?”
“돈 없이 살아봐야 정신을 차리겠구나.”
“아시겠지만, 저 고아예요. 고작해야 용돈 받아 사는 수준이에요.”
“웃기는군. 내가 네 뒤에 누가 있는지 모를 것 같으냐?”
단유는 박 이사의 표정 변화를 감지했다. 하지만 일단 모른 척하기로 했다.
“제 뒤에 누가 있든, 그건 저의 경제활동이나 가치관과는 별로 상관이 없는 것 같은데요?”
박 이사도 애써 그 화제를 들먹이지 않으려 했다.
“그럼 너는··· 가난해도 행복하면 그만이다, 뭐 그런 논리로 말하는 것이냐? 그런 거라면 정말 현실을 모르는, 억지에 지나지 않는다.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로 부탄이 꼽혔던 적이 있었지. 하지만 그건 부탄의 사람들이 제대로 문명의 혜택을 즐기지 못하기 때문이다. 발달된 문명의 이기와 혜택을 누리지 못한 채, 그저 자족하며 사는 사람들의 미소를 행복이라 부르는 게 정당하다고 생각하느냐? 진짜 행복은 사회 최상위권, 먹는 것에 고민이 없고, 무엇이든 살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의 얼굴에 떠오른 미소가 진짜 행복이다.”
“이사님은 행복하세요?”
“행복하냐고? 당연히 행복하다. 비록 회사는 작아도 어디 가서 비굴해질 필요 없고, 내가 원하는 집에서 내가 꿈꾸던 가정을 꾸리고 사는데 내가 불행할 것 같으냐? 많은 사람들이 내가 사는 집을 부러워하고, 내가 입은 옷을 보며 감탄한다. 사치냐고? 없는 사람들에게나 사치지, 나에게는 적당한 수준에 불과하다. 그게 여유다. 그러니 난 성공한 삶을 사는 것이고, 행복한 것이다.”
단유는 빙그레 웃었다.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애써 이사님의 행복을 깨뜨리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네요.”
단유는 자리에서 일어나자 박 이사의 입에서 호통이 튀어나왔다.
“누구 마음대로 일어나!”
“이미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나요? 전 분명히 계약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왜 하지 않겠다는 것이냐!”
단유는 고개를 저었다.
“이사님. 이럴까 봐, 제가 처음에 이유를 말씀드리지 않았나요?”
“저 혼자 장황하게 늘어놓고 그따위를 이유라고 말하는 것이냐?”
“이사님. 다시 말씀드리지만, 이 세상 모든 일을 간단하게 이해하려 하지 마세요. 세상의 복잡함 만큼이나 복잡한 이유와 사연이 얽혀 있습니다. 만약 진심으로 이해하고 싶으시다면, 그 이유들을 찬찬히 읽어보시고 공감을 해보세요. 자기식으로 해석하고 자기 마음대로 이유를 짚어가는 행위는 서로의 오해만 쌓을 뿐입니다.”
단유는 한 마디를 덧붙였다.
“진화론에 대한 반감이 생기는 이유죠. 복잡한 자연 현상과 사유들을 진화론으로 치환시켜 이해하려는 습성을 만드니까요.”
“앉아! 말 안 끝났어!”
이제 계약은 어떻게 돼도 상관이 없었다. 박 이사는 맹랑한 꼬마가 감히 자신의 심기를 어지럽히고, 안하무인으로 행동하는 꼴이 보기 싫었다.
‘감히 내가 누군데!’
단유는 박 이사를 보다가 다시 소파에 앉았다. 바지에 잡힌 주름을 펴 단정한 모습을 갖춘 뒤, 고개를 들어 박 이사에게 시선을 던졌다.
“말씀하세요.”
“이런 건방진···. 니가 지금 니 뒤에 선 이들의 권세에 빌어 이렇게 안하무인으로 지내고 있지만, 그게 언제까지 이어질 거 같으냐! 니가 만약 진짜 그들의 핏줄이라도 된다면 모를까, 언제라도 내쳐질 수 있음을 몰라? 그때가 되면 니가 어떻게 될 거 같아? 응? 가진 것도 없고, 권력도 없는 이들이 어떻게 되는지 모르지?
이유도 없이 서류에서 탈락하는 좌절을 맛보는 사람들. 수도 없이 면접장을 들락거리며 온갖 질문을 빙자한 폭력에 멍이 들면서도 취업이 되지 않는 사람들. 어렵게 취업을 한 뒤에는 그동안의 배움이 다 무소용이었다는 듯, 전혀 관련 없는 업무를 맡아 꾸중과 눈칫밥을 먹으며 업무를 배워야만 하고, 때로는 상사의 폭언에도 고개를 조아리며 죄송합니다를 연발해야 하는 사람들. 쥐꼬리만 한 월급에 감사해 하다가도 각종 카드값, 공과금 등으로 흔적만 남은 텅 빈 통장의 숫자들.
그런데도 현실을 깨닫지 못하고 좌충우돌하다 결국 퇴직하고 자영업으로 돌아선 이들은 또 다른 현실의 벽에 좌절하고, 값싼 소주를 마시며 신세를 한탄하고, 시대를 탓하며, 나라를 욕한다.
“너 역시 그렇게 살 것이다. 현실을 깨닫지 못하면 말이야.”
“그래서 그들이 불행하다고요?”
“그럼! 불행하지. 그들 스스로도 불행하다고 할 거다. 자기 성장, 자기 계발 같은 허영덩어리 책을 부여잡고 있다고 한들, 그들이 그 삶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 같으냐? 그러니 그들은 실패자들이다. 성공의 맛을 보지도 못했고, 볼 수도 없으니, 그들은 영원히 실패자들인 것이야.”
“이사님, 정말···.”
박 이사는 말을 쉽게 잇지 못하는 단유를 보며 피식 비웃음을 지었다.
“왜? 내가 모질게 보이냐? 악당처럼 보여? 그런데 어떡하냐, 그게 현실···.”
“아니요.”
“응?”
“이사님, 정말 단순한 사람이네요.”
어쩐지 ‘악당’이라고 불리는 것보다 더한 모욕을 받은 느낌이었다.
“조금만 생각해도 그것 이상으로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을 건데 말이죠. 한 사람의 삶이 그렇게 단순하게 표현될 수 없다는 것을 앞서 지적했음에도 여전히 깨닫지 못하시네요. 취업을 못 한 사람이 있다고 가정해보죠. ‘취업을 못 한’이라는 수식어에 한정해서 그 사람의 사회적 맥락을 모두 끊을 필요가 있나요? 그 사람을 걱정해주는 가족들은요? 그 사람을 사랑하는 연인은요? 그 사람과 오랜 시간에 우정을 쌓은 친구들은요? 또, 그 사람의 취미는요? 그 사람이 여가 시간에 즐기는 것들은요? 그 사람이 살아가면서 만나는 수많은 사람과 수많은 사건들을 모두 잘라내고 오직 ‘취업 못한’이라는 맥락에서만 설명하면 결국 그 사람을 제대로 보지 못한 셈이잖아요?”
“처음부터 궤변이나 늘어놓는구나!”
“그럼 이해하기 쉽게 이사님의 경우로 옮겨드리죠.”
아무래도 오늘이 지나면 이사실의 소파는 가죽을 모두 갈던지, 혹은 소파를 바꿔야 할 거 같았다. 늘어난 가죽의 흐물거림이 손에 느껴질 때, 단유가 입을 열었다.
“이사님의 직급상 위에 누군가 계시겠죠?”
박 이사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지는 게 보였다.
“이사님은 그분이랑 있을 때 행복하세요?”
“아, 씨···.”
하마터면 육성으로 욕을 하는 추태를 보일 뻔했다. 행복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 질문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였다.
“이사님은 가족분들이랑 계실 때, 언제나 행복하신가요? 그래서 24시간 늘 함께하고 싶으신가요?”
진심으로 욕할 뻔했다. 눈앞에 앉은 꼬마의 얼굴이 점점 악마로 보이기 시작했다. 개구쟁이 악마 새끼.
악마 새끼가 고개를 돌려 주위를 보더니, 입을 열었다. 그 시선의 끝에 골프장에서 받은 트로피가 있었다.
“가족분들이랑 골프 치러 가신 적 있으세요?”
“그게 무슨 소리야! 말도 안 되는···.”
단유는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박 이사가 골프를 치러 가는 경우는 대부분 접대였고, 접대의 끝은 지저분한 거래가 있었다. 때문에 단유가 일부러 ‘골프’를 화제로 가족과 연결지었다고 생각해 화를 벌컥 낸 박 이사였다. 물론 화를 낸 뒤에야, 그렇게 화를 낼 문제가 아니었다는 걸 깨달았다.
“겨우 몇 가지 상황에서 박 이사님이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발견되네요. 게다가 가족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말씀하신 것처럼 원만하지 않으신 것 같고요. 가족이라는 맥락을 끌고 왔더니, 이사님의 ‘성공’은 빛이 바래졌네요. 이사님의 행복이 그러하듯, 다른 사람의 불행도 그럴 겁니다. 온전히 불행한 경우는 없어요. 불행을 느끼다가도 행복을 느끼는 게 사람이니까요.”
“가게가 망해서, 사업이 망해서 주저앉은 사람에게 가서 말해 봐라. 당신은 불행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아마 돌이나 주먹이 날아들 거다!”
“정말···.”
단유는 고개를 휘휘 저으며, 숨을 짧게 토해냈다.
“손으로 셀 수도 없는 돈을 벌고, 궁전 같은 집에서 살면서, 사람들을 아래로 내려다보는 삶이 성공이라고 머릿속에 틀어박아 놓으셨으니, 다른 사람의 삶에는 관심이 없으시군요. 이사님, 어쩌면 이사님의 말처럼 돈 잘 버는 직업 얻어서 돈 잘 벌고 잘 먹는 게 성공한 삶일지도 모르겠지만, 그게 진짜 삶의 목적이 될 수 있는지는 모르겠네요. 제가 어려서, 라는 이유로 깎아내리셔도 할 말은 없지만, 적어도 전 제 삶에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지금 이 삶을 살아가는 이유 말이에요.”
“이제는 운명론자 행세냐?”
“단지 잘 먹고 잘사는 게 이유인 사람도 있을 겁니다. 다른 모든 생명체가 그러하듯이요. 초원에서 살아가는 야생동물들이나, 도시의 뒷골목을 전전하는 도둑고양이나 모두 잘 먹고 잘살아서 오래 사는 게 이유인 것처럼요. 그건 아마 지구 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의 제1과제일지도 몰라요. 하지만, 인간이라는 이유로, 그리고 생각을 할 수 있다는 이유로, 게다가 제가 ‘이곳’에서 다양한 지식들을 습득하게 된 까닭에 단순히 삶을 지속하는 것 이상의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그 때문에 여태 남들이 말하는 ‘꿈’이라는 걸 갖지 못했지만 말이죠.”
박 이사는 열이 올라서 단유의 덤덤한 목소리가 듣기 싫었다. 놈이 무슨 말을 하든, 귀에는 모기가 앵앵대는 소리로만 들렸다.
“비유를 하면 전 여행 중이에요. 꿈을 찾는 여행이요. 이사님이 말씀하신 가수, 연예인이라는 직업도 어쩌면 제 꿈이 될지도 몰라요. 하지만, 지금은 아니에요. 여전히 전 확신이 없고, 게다가 이사님 같은 분과 일하는 건 어쩐지 답답할 거 같네요.”
“이 녀석이!”
“이사님. 그런 독단적이고 이기적인 고집은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할 거예요. 좀 더 주변 사람들을 돌아보고 포용하려 해 보세요. 그럼, ‘갤럭시즈’처럼 실패하는 경우는 적어질 겁니다.”
“미친놈! 아무 곳에나 다 갖다 붙이면 다 말이 되는 줄 알아! 니가 뭘 안다고 그런 소리를 지껄여! 감히!”
부들대는 박 이사의 볼살을 지켜보며 단유는 말을 끝냈다.
“갤럭시즈는 ‘소통’이 되지 않아서였어요. 대중과의 소통보다 회사 내부에서 소통이 되지 않아서, 실패했다고 봐요. 만약 이사님이 갤럭시즈라는 그룹, 그들 개인의 삶과 생각들에 관심이 있으셨다면 그들에게 더 잘 어울리는 음악, 노래를 찾을 수 있으셨을 거예요. 그랬다면 더 좋은 음악이 만들어졌을 것이고, 그 노력이 대중들에게 충분히 어필되었을 겁니다. 분명히.”
단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할 말은 마쳤다.
“앉아!”
더 이상은 서로 했던 말을 반복하는 대화뿐이고, 그런 대화는 시간 낭비였다. 당장은 박 이사를 설득할 수 없었지만, 굳이 설득할 생각도 들지 않았다. 때론 저렇게 귀를 막고 사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경험해보지 않았던가?
그저 단유 본인이 그런 사람들과 가까워지지 않으면 된다. 지금은 그런 정도가 딱 좋다.
“수고하세요.”
박 이사는 벌떡 일어나서 등을 돌린 단유의 뒷덜미를 붙잡으려 했는데, 헛손질했다.
‘어?’
잠깐 어지럽더니, 정신을 차리니 소파 위에 주저앉아 있었다. 이미 단유는 사무실을 나가고 없었다. 악마 새끼 때문에 열이 올라서 흥분하다가 혈압에 문제가 있었던 모양이라 생각하며, 테이블 위의 컵을 집어 들었다. 식은 홍차라도 마시려 했는데, 홍차도 깔끔히 비어 있었다.
“에이, 씨발 새끼가.”
분을 삭히기 위해 박 이사는 창가로 가, 창문을 열었다. 차가운 겨울 바람에 눈 알갱이가 섞여 들어왔다. 눈의 불순물이 몸에 해롭더라는 말을 들은 기억이 나서, 이내 창을 닫고 말았지만 잠깐이라도 쐰 바람이 열기를 식혀 준 것 같았다.
‘최악이군.’
박 이사는 입술을 잘근잘근 씹다가 코트를 걸치고 밖으로 나왔다. 일단 오늘은 독한 술로 귀를 씻어내야 할 것 같았다. 꼬마 놈한테 훈계 비슷한 이야기를 들은 까닭에 기분이 더럽기도 했고. 꼬마에 대한 ‘처분’은 내일 다시 생각해봐야 할 것 같았다.
1층으로 나온 단유가 두리번거리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지하로 내려갔다. 그리고 불이 켜진 연습실에서 태호를 찾을 수 있었다.
‘어, 누나도 있었네?’
단유는 수련에게 인사를 하려다 멈칫했다. 수련의 얼굴이 엉망으로 물들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