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멤버 더 네임-326화 (326/956)

적자생존(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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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이 깊게 내려앉은 사무실 복도에서 쭈그려 앉아 있던 수련을 발견한 것은 강 부장이었다.

“어? 수련아?”

사무실 안에서 넋을 놓고 있던 태호가 그 소리에 움찔 놀라더니 허겁지겁 뛰쳐나왔다.

“니가 왜 여기 있어?”

“우리 진짜 해체해요?”

머리를 덜 말렸는지 축축하게 젖은 머리끝이 어깨에 드리워져 있던 수련이 고개를 들었다. 태호는 글썽거리는 수련의 눈을 보며 가슴이 덜컹하는 심정이었다.

“···그래.”

강 부장이 대신 대답을 해 주었다.

“왜요? 우리 잘 할 수 있어요. 언니들 열심히 한 거 아시잖아요?”

수련의 애절한 목소리에 강 부장은 머쓱해하며 한 다리를 빼는 모양새를 취했다.

“그렇게 말해도 내가 결정하는 게 아니라서···.”

하지만 수련은 당장이라도 통곡을 할 것 같은, 그런 울림을 가진 목소리로 하소연했다.

“지난 3년동안 우리가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아시잖아요? 활동을 하든 안하든 밤을 새가면서 연습하고 무릎에 멍이 들고 발톱이 빠지는 일이 있어도 우리, 계속 연습했다고요. 명지 언니도 얼마나 열심히 노래 연습했는지 아시잖아요?”

“그런 이야기, 나한테 해도 소용없다는 거 잘 알잖아.”

“그래도, 그래도···.”

이쯤에서 태호가 나섰다. 여기서 이런 이야기를 계속 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수련의 컨디션도 조절해야 하는 매니저로서, 이런 대화는 좋지 않다고 판단했다.

“수련아, 일단 나가자. 오늘 많이 피곤했잖아. 내일도 스케줄 있는데, 여기서 이러면 안 돼.”

“오빠, 우리 성공하면 갤럭시즈 컴백할 수 있다고 했잖아요? 그래서 우리 더 열심히 했던 거 아시잖아요?”

“수련아···.”

그때였다.

“그럼, 만약 갤럭시즈가 컴백할 수 없다고 했다면 이렇게 열심히 활동하지는 않았을 거란 말이냐?”

“강 부장님!”

눈살을 찌푸린 채 수련을 바라보던 강부장의 물음에 태호가 기겁을 하며 말리려 했다. 하지만 박 이사와 태호에 이어 수련에게까지 붙잡혀 불편한 이야기를 꺼내야 하다보니 속이 말이 아니었던 강 부장은 풍성하지 못한 머리를 길게 쓸어올리며 불편한 속내를 드러냈다.

“애 같은 소리 하지 마. 너도 이 바닥에 갓 들어온 애 아니잖아? 이제 어느 정도 분위기는 알잖아? 3년 이상을 활동하면서 이렇게 대중의 반응이 없는 아이돌 그룹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그래?”

“강 부장님, 그만 하세요. 제가 수련이 잘 다독일 테니까···.”

강부장의 말이 수련의 인내심을 자극했던 모양인지, 한동안 잠잠하던 직구 본능이 터져나왔다.

“너무 매정한 거 아니세요?”

“수련아!”

“알아요, 저도 안다고요. 그래서 불안했고요. 그래서 더 열심히 연습하고 불평 안 하려고 했어요. 그래도 이건···너무 하잖아요? 우리가 아직 기회가 안 돼서 그렇지, 기회만 닿는다면 얼마든지 대중들의 호감을 끌어낼 수 있는 팀이라는 거 아시잖아요.”

그 기회를 회사에서 제대로 주지 않았잖아요, 라고 말하려는 수련의 말은 강 부장의 대답에 가로막혔다.

“몰라.”

“네?”

“모른다고. 대중들이 지난 3년간 너희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었는지는 알지. 마치 길가에 세워진 공중전화 박스 보듯 했지. 언제 철거될지 궁금한 전화 박스. 가끔 비를 피하기 위한 용도로나, 쓰레기를 버리는 용도로나 쓰던 전화 박스였지, 너희들은.”

“부장님!”

수련이 말실수 할까 봐 조마조마하던 태호는 오히려 독설을 날리는 강 부장 때문에 더 미칠 것 같았다. 평소 이런 양반인 줄 모르고 있었기에 태호도 놀람이 컸지만, 수련만 할까.

“내가 이렇게 심하게 말은 하고 싶지 않았는데, 그래도 너니까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거야. 너라도 살아야 하지 않겠니? 지금 가디스R로 활동하니까 어때? 공중파 방송에 나가면 팬들이 몰려들어서 사진찍고 이름 연호하고, 녹화하면 응원 해주잖아? 과거에 비하면 성공했지. 그런데 그것도 아직은 반쪽 자리야. 반쪽이긴 한데, 고지가 얼마 안 남았어. 이제 진짜 성공을 눈 앞에 두고 있는데, 고작 과거에 발이 묶인 채로 물러날래? 니 꿈이 원래 그거야? 인기 없는 걸그룹의 메인보컬이라는 이름을 평생 안고 사는 거? 가수로서 성공하고 싶다는 욕심이 없어? 있다면 이렇게 철부지처럼 행동하지 마.”

말이 나온 김에 아주 다 털어버려야겠다고 생각했는지 강 부장의 직설(直說)에 주저함이 없었다.

“회사 입장에서는 상품성이 떨어지는 갤럭시즈가 해체되어야 또 다른 상품을 기획, 전시 할 수 있어. 그런데 단지 회사의 이익 때문일까? 갤럭시즈가 해체 되어야 너도 가디스R에 좀 더 집중할 수 있다는 거, 모두가 아는 사실이야.”

그래, 이게 다 너희들을 위한 거고, 너를 위한 거야, 라는 듯 목소리를 조금 누그러뜨린 강 부장은 마침 생각이 났다는 듯, 코트 안쪽으로 손을 넣었다.

“그리고 회사에서 이미 기사 띄우기로 했고, 아마···.”

핸드폰을 꺼내서 몇 번 조작을 하더니,

“지금쯤··· 나왔네.”

핸드폰을 돌려 액정을 보여주었다. 어두운 복도라서 더 밝게 보이는 액정 속에는 한 인터넷 신문 기사가 큼지막한 제목을 기사 윗머리에 박은 채 게시되어 있었다.

「갤럭시즈, 활동 중단 선언.」

수련과 태호의 눈이 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

“성공이란 목표를 달성하는 것을 말한다. 가령 내가 이 업계에서 최고가 되겠다는 목표를 설정했을 때, 그 목표를 달성하는 순간이 바로 성공의 순간이겠지. 그러니 난 아직 성공을 하지 못한 거고, 성공을 위해 남들이 편히 쉬는 이 시간에도 회사에 남아 일을 하는 거지. 누가 뭐라고 하든 말이야. 너도 지하에 있는 연습실에 가봤으니 알겠지만, 지금 이 시간에도 구슬땀을 흘리며 연습에 매진하는 연습생들이 있다는 걸 알 것이다. 그 아이들도 자신의 목표가 있어. 최고의 가수, 최고의 아이돌이 되겠다는 꿈이 바로 그 목표일 것이다. 그 목표가 달성되는 순간이 바로 성공인 거지.”

홍차를 손에 들고, 한쪽 다리를 꼰 채로 정신적, 물질적 여유를 즐기는 ‘위너Winner’의 이미지를 상상하며 단유에게 교훈을 ‘내렸다’.

“성공은 자신만의 기준에 따라 결정된다는 거군요.”

“···물론 자신의 뜻이 중요하지. 하지만, 목표의 성격에 따라 성공의 척도가 달라지기도 하겠구나. 만약 어떤 아이가 난 데뷔가 목표야, 라고 하면 과연 데뷔를 했을 때 성공이라고 할 수 있느냐, 라고 물을 수 있겠지. 하지만 그건 성공이 아니지. 왜냐하면 목표가 바르게 설정된 것이 아니거든. 데뷔는 시작일 뿐인데, 그걸 목표라고 할 수는 없잖느냐.”

박 이사는 다시 홍차를 한 입 마시며 생각을 정리했다. ‘인생의 성공’에 대한 성공론을 어린아이 앞에서 그럴싸하게 늘어놓으려니 뭔가 잘 안 통하는 느낌이었다.

“사람마다 성공의 기준이 다르다는 건 차치하고, 이 사회에서 통념적으로 사용되는 ‘성공’의 기준을 보렴. 대기업에 입사한 신입사원에게 ‘성공’이란 딱지를 붙일까? 박사 학위를 딴 대학원생에게 ‘성공’의 딱지를 붙일까? 아무도 그렇게 안 부르지. 반대로 자수성가한 젊은 사업가에게 ‘성공’이란 딱지를 붙이고, 대통령이나 장관직을 맡은 이들에게 ‘성공’한 인생이란 직함을 부여한다.”

박 이사는 단유, 저 아이가 자신의 말에 큰 매력을 느끼고 자신도 눈앞에 앉은 ‘자신’처럼 성공하고 싶다는 욕망을 품게끔, 그런 이미지가 연출되도록 노력했다.

“즉, 성공은 힘이다. 이 사회가 말하는 성공은 바로 ‘힘’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무시당하지 않는 힘, 누구에게도 비굴하지 않고 홀로 우뚝 설 수 있는 힘. 그 힘을 가질 때, ‘성공’이란 직함이 주어질 수 있다. 당연히 우리는 그런 ‘힘’을 목표로 해야 진정한 ‘성공’의 댓가를 누릴 수 있을 거야. 가수도 마찬가지. 모두의 선망을 받는 직업, 누구도 그 사람의 실력, 재능을 무시하지 못할 단계에 오른 가수가 되는 것이 바로 ‘힘’이고 ‘성공’이다.”

힘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누구나 추구하는 절대 가치 중 하나. 특히 중학생이라면 ‘힘’이라는 단어의 마력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이다.

“우린 널 그렇게 만들어 줄 거야.”

아마 메피스토펠레스가 파우스트에게 모든 종류의 쾌락을 제공하겠노라 약속했을 때, 이와 비슷하지 않았을까. 박 이사는 씁쓸해지려는 표정을 의지로 버티며 계속 여유로움을 가장했다.

“가끔 사람들은 복잡한 설명을 어려워할 때가 있어요. 복잡한 것도 간단하게 설명해주길 바라는 사람이 많아요. 그런데 그게 가능한 경우도 있지만, 어떤 경우는 그게 되지 않는 경우도 있단 말이에요.”

단유의 말에 박 이사는 의아해 할 때, 단유는 앞에 놓인 홍차의 컵 위로 손을 가져갔다.

“홍차에서 따뜻한 증기가 올라오는 거 보이시죠? 이 증기가 왜 보일까요?”

뚱딴지 같은 물음에 박 이사가 대답을 머뭇거릴 때, 단유는 자기도 굳이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는 듯, 자연스럽게 말을 이어나갔다.

“증기가 만들어지고 올라오는 다양한 물리학적 법칙과 화학적 변화를 설명하면 사람들은 대부분 그런 설명이 왜 필요하냐는 눈으로 바라보더라고요. 그냥 ‘하얀 연기’가 난다고 표현해도 될 일을 굳이 어렵게 설명하냐고요. 그 연장선에서 사람들은 복잡한 것보다 간단하게 현상과 법칙을 설명하길 즐겨하는 것 같습니다. 사과가 떨어지고, 사람들이 땅을 밟고 다니는 현상들에 대해 ‘만유 인력’이라는 이름으로 간단하게 설명하는 것처럼요.”

김 단유, 이거 조금 꼴통이다, 라는 생각이 박 이사의 뇌리를 스쳐 지나갈 때, 단유가 박 이사를 바라보았다.

“성공에 대해서도 간단하게 ‘힘’이라는 설명으로 축약하신 바에 대해서 모르지는 않지만, 과연 그게 그렇게 간단하게 설명될 부분인가 싶네요.”

하마터면 홍차를 든 컵을 떨어뜨릴 뻔 했다. 박 이사는 여유로운 표정을 지으며 천천히 컵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강해지는 것이 성공이다···. 약육강식이나 적자생존과 같은 말이 떠오르네요. 다윈의 진화론은 사회적 현상과 법칙을 설명하는데 매우 유용한 설명법을 제시하죠. 자연 선택에 의한 진화를 진리로 받아들이면서, 다양한 선택의 결과들을 모두 진화론적으로 설명하는 방식으로 말이죠.”

단유는 컵에서 손을 떼고 몸을 바로 세웠다.

“살아남는 자가 강하다거나, 성공한 사람이 성공한다는 둥의 동어반복적인 해석들이 ‘진화론’에 기대어 설득력을 얻지만, 실상을 살펴보면 사회적 성공과 진화론은 맥락의 연결 없이는 해석되기 힘든 점이 있어요.”

손에 가로 막혔던 홍차의 향이 다시금 올라와 코를 간지럽혔다.

“진화론적 설명으로 이것저것 합리화시키려는 설명들에 반감이 생기는 이유죠. 맥락이 없으니까요.”

박 이사는 등을 소파에 깊게 묻으며 단유를 노려보았다. 심기가 불편했던 박 이사의 눈빛은 어둠 속 포식자의 눈으로 변해있었다.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냐. 난 말을 길게 늘이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용건만 간단히 해.”

“이사님의 성공담은 흥미롭지만, 저는 그 성공론에 동의하고 싶은 마음이 없어요.”

박 이사는 소파의 팔걸이를 움켜쥐었다. 가죽이 우그러지며 비명을 질렀다.

“그래서 계약을 하지 않겠다고?”

“네.”

박 이사는 한숨을 쉬었다.

“혹시 우리가 작은 회사라서 그러냐? 그렇다면 니 말도 우습다. 만약 큰 회사라면, 그래서 데뷔하자마자 빵빵하게 밀어주는 회사라면 이리 거절하지 않았겠지? 결국 너도 우리 회사가 작으니까, 힘이 없으니까 거절한 것일 뿐이지 않느냐? 현학적인 표현으로 가장해도 결국 니 속내는 뻔하구나.”

박 이사의 냉소에도 단유는 담담한 표정을 유지하며 말했다.

“호기심에 대한 정당하고 합리적 해석이 복잡하다는 이유로, 혹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사람들은 간편하고 이해하기 쉬운, 다른 말로 범용적인 해석을 끌어와 자신의 이해를 돕죠. 전 결코 이 회사가 힘이 작아서 계약을 하지 않겠다는 말은 뱉은 적이 없는데도, 이사님은 그런 식으로 제 말을 이해할 뿐이네요.” “내가 니 속을 모를 줄 알아?”

“저도 이사님이 저에게 감추고 있는 게 있다는 걸 알아요.”

박 이사의 눈이 꿈틀거렸다.

“하지만, 이사님이 직접 말씀하시기 전까지는 대화의 주제로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아서 말을 하지 않을 뿐이에요. 하지만, 그렇게 속내를 감추고 저에게 ‘성공’이라는 간편한 해석으로 미래를 결정지으라 하시니, 저는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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