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멤버 더 네임-319화 (319/956)

지금 이 순간(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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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근은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게, 충동적으로 단유에게 달려들었던 것뿐이지만, 아이들의 시선에서 성근은 변태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아저씨, 뭐예요?”

명수가 먼저 나서서 성근을 노려보았다. 게임 센터에서 처음 만났을 때도, 땀을 잔뜩 흘리는―단유의 노래를 듣고 흥분한 직후, 직접 말을 걸어 보려는 생각에 긴장해서 흘린 땀이지만―모양새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거기다 갑자기 달려와서는 ‘노래방’에 같이 가자며 붙잡는 남자가 정상으로 보이지 않으니, 명수는 단유를 ‘지키기’ 위해 앞으로 나선 뒤, 여차하면 걷어찰 생각으로 오른발을 살짝 뒤로 뺐다.

명수의 면박에, 그제야 자신의 진짜 추태를 깨달은 성근은 얼른 손을 내저으며 변명했다.

“나 이상한 사람 아니고, 아까 말했듯이 갤럭시즈 팬인데, 얘가 아는 얼굴이고, 노래도 잘 불러서, 제대로 노래 듣고 싶어서, 노래방에서 노래 들을 수 있으니까, 노래 들으면 기분도 좋을 것, 아니 그런 게 아니고 표현이 이상하긴 한데, 얘 노래가 좋으니까 그런 거 있잖아, 가수의 노래를 가까이서 듣는 거, 그래 라이브! 라이브 듣는 느낌을 느껴보고 싶어서.”

당황한 나머지 아무 말이나 주워 담은 성근은 그 와중에도 나름 자신을 변명하기 위해 급히 핑계를 댔다.

“아저씨 랩 하면 잘하겠네요.”

지태가 속없이 뱉은 말에 명수가 홱 고개를 돌려 눈치를 줬다. 그리고 다시 성근에게로 시선을 던졌다. 어린 명수라도 눈에서 느껴지는 기운이 심상치 않아, 성근은 잔뜩 긴장해야 했다.

“아저씨 말은 우리 단유 노래를 듣고 싶다는 거네요?”

“이름이 단유야?”

성근의 말에 명수가 아차, 하는 표정을 지었다. 지태가 ‘자기도 실수하면서 째려보고 난리야’ 라며 명수의 어깨를 툭 밀었다. 이때, 단유가 나서며 말했다.

“싫어요.”

“응?”

“제가 왜 아저씨를 위해서 노랠 불러야 하죠? 제가 그래야 할 이유를 모르겠네요.”

당황하는 성근을 보며 단유는 차분하게 설명했다.

“처음 뵙는 분이라 이렇게 말하는 게 실례인지는 모르겠지만, 전 가수도 아니고 광대도 아니에요. 그리고 설령 가수라고 해도, 이렇게 무턱대고 붙잡고서는 노래를 불러달라고 하는 건 실례겠지요. 아니면 제가 가수가 아니고, 아저씨보다 어리기 때문에 아저씨가 아무렇지 않게 부탁해도 들어줘야 하는 상대라고 생각했기 때문인 건 아닌지 의심스럽네요.”

“아니, 그건 아닌데···.”

단유의 매몰찬 거절에 성근이 당황한 것은 물론, 단유의 친구들 역시 살짝 당황한 눈치를 보였다.

“어쨌든, 전 지금 제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려고 하고 있어요. 그런데 그 시간을 아저씨를 위해 써야 할 필요성도 근거도 찾을 수가 없네요. 아저씨도 본인의 여가를 빼서 부탁하셨다는 건 이해를 하지만, 제 친구들의 시간 역시 소중하기 때문에 저로서는 제 친구들 쪽의 손을 들어줘야 해요.”

애초에 이런 대화를 상정하지 못해, 당황하기도 했고 거리에서 매몰찬 거절을 받다 보니 주변 사람들의 힐끔거리는 시선이 느껴져 창피함에 몸 둘 바를 몰랐다.

“아, 알았다.”

성근이 돌아서는데, 태후가 얼른 성근에게 붙었다.

“얼른 가요.”

태후가 센터로 가자고 재촉할 때였다.

“잠시만요.”

이번에 성근을 부른 것은 지태였다.

****

“야, 너무 심한 거 아냐?”

“심하긴. 맞는 말이지.”

“그래도 저 아저씨 불쌍한데.”

“불쌍한 거 좋아하시네.”

단유가 거절의 말을 읊으며 변태스러운 아저씨의 면상에 불을 지르고 있을 때, 지태와 명수가 속삭이듯 대화를 나눴다.

“어차피 우리도 딱히 할 건 없잖아?”

“없긴, 왜 없어. 집에 가서 게임 하면 되지.”

하지만 단유네 집에 가서 게임을 한들, 게임기의 한계로 모두가 함께 즐기기엔 무리가 있었고, 솔직히 명수가 패드를 붙잡으면 웬만해서는 패드를 넘겨줄 생각을 하지 않았기에 할 기회도 많지 않았다. 게다가 명수가 즐기는 게임이 주로 명수의 취향인 터라, 딱히 끌리는 게임은 아니었다는 것도 지태의 속마음이었다.

또 지태의 마음을 흔든 것은, 적어도 저 아저씨가 나쁜 사람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것, 길거리에서 면박을 당하면서도 화를 내기는커녕 미안해하는 모습을 보인다는 것, 그리고 자신 역시 단유의 노래를 듣는 게 더 재미있을 것 같다는 점이었다.

지태는 돌아서는 성근을 불렀다.

“아저씨!”

명수가 뭐하는 짓이냐는 눈으로 지태를 쳐다볼 때, 지태가 씩 입꼬리를 올리며 물었다.

“노래방 가면 음료수도 사주시나요?”

“응?”

“아, 우리 아직 밥 안 먹었는데. 혹시 뭐 먹을 것도 사주실래요? 그러면 저희 시간을 ‘빌려’ 드릴게요. 대여료는 식비 및 노래방 비용으로 대체하면 되고.”

단유가 가끔 생각하던 것인데, 명수 이상 가는 ‘악동’이 있다면 바로 저기, 익살맞은 표정을 지으며 감히 ‘낯선’ ‘어른’에게 겁도 없이 ‘딜’을 거는 지태라는 놈이었다. 저런 모습을 보면, 학기 초에 할아버지에게서 각종 고서를 배웠다며 진중하게 말하던 모습 사이에 괴리감이 느껴졌다.

지킬 선은 지킨다는 지태 본인의 말과는 달리, 가끔은 너무 허물없이 다가오는 통에 당황스러울 때도 있었는데, 지금도 처음 보는 아저씨에게 저렇게 스스럼없이 다가가는 행동은 단유나 명수로서는 도저히 시도해볼 수 없는 태도였다.

“야, 단유가 싫다잖아?”

“단유가 그랬잖아. 우리랑 시간을 보내는 게 중요하다고. 우리가 저 아저씨랑 같이 시간을 보내면 되는 거잖아. 그리고 잘됐지 뭐. 밥도 먹고 노래도 부르고.”

저렇게 말하는 지태가 만약 여자였다면, 성근과 태후는 일찌감치 도망가고도 남았으리라.

“단유야, 나도 니 노래 좀 많이 들어보고 싶은데, 어때? 채윤아, 너도 단유 노래 듣고 싶지?”

지태는 자신만만한 웃음을 지으며 채윤에게 동의를 구했다. 그리고 그런 자신감이 통했는지 채윤도 얼떨떨해하다가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거 봐. 채윤이도 괜찮다잖아. 아저씨, 어떡하실래요? 빨리 말해 주세요. 아니면 저희 그냥 가요.”

지태는 팔을 들어 손목시계를 보인 뒤, 좌우로 흔들어 보이며 ‘시간 가요’라는 시늉을 해 보였다.

태후가 성근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잘못 걸린 것 같아요. 그냥 가죠?”

성근이 태후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돈 있냐?”

태후가 인상을 쓰며 성근을 바라보았다.

****

“이야, 좋네, 여기!”

지태가 함박웃음을 지으며 먼저 분위기를 이끌었다. 코인 노래방의 좁은 부스 안에서 복닥거리며 노래를 부르다, 넓은 룸과 테이블이 완비된 진짜 노래방에 오니 근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한쪽 구석에 비치된 마이크 스탠드를 발견한 지태가 붙잡고 흔들자, 조금은 어색한 분위기가 사라졌다.

그 사이, 명수가 단유를 옆에 두고 그사이에 채윤을 끼워 넣은 뒤 물었다.

“너 왜 아까 지태 말에 오케이 했어?”

채윤이 지태 말에 동의한 이후는 두 가지였다. 한 가지는 지태처럼 단유네 집에 가더라도 같이 놀만한 게 없다는 것이었다. 지태가 명수의 게임기 독점에 대해 품은 생각은 지태만의 생각이 아니라 지태와 채윤이 종종 나누던 대화의 소재 중 하나였다. 그래서 지태가 자신만만하게 채윤에게 물었던 것이기도 했다.

또 하나는, 딱히 변태스러운 아저씨가 걱정스럽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그 아저씨보다 자신의 친구들이 더 든든했고, 이들과 있으면 별문제가 없을 거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 때문이었다.

“그냥, 괜찮을 거 같아서.”

“···에휴, 너도 참. 지태 뒤 봐주는 것도 적당히 해라. 니가 계속 그러니까 쟤가 저렇게 설치는 거야. 쟤 저러다 나중에 큰일 날 수 있어.”

채윤은 단유를 쳐다보며 그렇게 생각하냐고 물었다. 단유는 대답 없이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말하지 않아도 알지 않느냐는 미소였다.

‘하긴··· 지태나 명수나.’

핸드폰을 꺼내 테이블에 올려두고, 손을 비비는 성근에게 태후가 다가와 물었다.

“진짜 오늘 형 이상하네.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예요?”

“태후야. 형이 사실 취업도 제대로 못 하고 방구석 폐인 형편이긴 하다만, 오랜 시간 여러 아이돌들을 연구하며 쌓아온 감이라는 게 있거든. 이게 말로는 설명을 못하겠는데, 이 감에 따르면 지금 이 순간 반드시 저 아이의 노래를 들어야 해.”

“왜요?”

“들어보면 알 거야. 그리고 너도 핸드폰 꺼내서 녹화시켜 놔.”

“···혹시 애들이 사고 치면 증거자료라도 쓰게요?”

“아니. 이거 분명히 나중에 돈 된다.”

이 형이 지금 제정신인가, 하는 의심이 든 태후는 인상을 쓰며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까불거리는 지태와 여전히 못마땅해서 투덜대는 명수,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따라오는 얌전한 채윤과, 이 모든 일의 중심에 있지만 자신은 관심이 없다는 듯 그저 물 흐르는 대로, 같은 표정으로 주변을 살피는 단유. 어찌 보면 평범한 중학생 아이들의 모습이고, 어찌 보면 희대의 꼬마 꽃뱀 사기단의 모습이었다.

「최근 들어서 여자들을 ‘등쳐먹는’ 남자 꽃뱀들도 상당수 있다는 것이 유흥가 관계자들의 증언이다···남자 꽃뱀에게 당한 여자들은 가정파괴의 위기에까지 몰리고,···자신들의 사연을 쉽게 하소연하지 못해 피해 사례가 늘고 있다.」

마침 그런 기사의 글을 본 기억이 떠오른 태후는 저들이 그런 꽃뱀과가 아닌가 의심이 들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봐서 그런지, 단유라는 저 아이는 얼굴도 잘생겼고, 노래도 잘 부르니 전도유망한 ‘꽃뱀’이 될지도 모르겠다. 지태라는 저 아이는 ‘삐끼’, 그리고 명수는 ‘바람잡이’, 채윤은 ‘부채꾼’ 정도?

“형, 우리 당한 거 같아요.”

라는 말이 입 밖에 나오려 할 때, 지태가 먼저 마이크를 붙잡았다.

“우선 이렇게 저희를 후원해주시고, 시간 내주신 두 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태후의 머릿속에 빨간 비상등이 요란한 알람과 함께 번쩍였다.

“아무쪼록 즐거운 시간 되시길 바라며, 혹시 흥이 나신다면 같이 노래 불러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우선 이 책 받으시고, 아저씨도 이 책 받으시고. 네. 자, 그럼 우선 아저씨가 먼저 요청하셨던 우리 김단유 군의 노래를 먼저 감상하는 시간을 가져보겠습니다. 박수!”

채윤이 박수를 쳐 주었다. 지태가 씩 웃으며 기계에 직접 번호를 눌러 입력했다. 그리고 마이크를 단유에게 건네려다가 다시 붙잡았다.

“아, 아저씨?”

건네준 책을 받고 목록을 살피던 성근이 고개를 들었다.

“마실 거 먼저 주문하면 안 돼요?”

성근은 검지와 엄지를 동그랗게 말아서 사인을 보냈다. 지태는 마이크를 단유에게 건네고, 명수에게 말했다.

“야, 마실 거 가져와.”

“내가 왜?”

지태는 몸을 살짝 돌려 성근에게 표정이 보이지 않도록 했다.

“너 지금 얼굴이 아주, 막, 이래. 그런 얼굴로 무슨 즐거운 노래를 부르냐? 잠깐 나가서 얼굴에 열 좀 식히고 오라고. 그리고 니가 마실 거 니가 고르는데, 뭐가 불만이야? 아니면 같이 가줄까?”

“됐다.”

명수는 입술을 삐죽이며 방을 나갔고, 그 사이 전주가 끝나면서 단유가 입을 열었다. 성근과 태후가 핸드폰을 들어 올렸음은 물론이다.

****

“새끼, 처음에는 되게 시큰둥하더니, 나중에는 잘 놀더라?”

지태의 말에 명수가 괜히 역정을 내는 척을 하며 입술을 삐죽였다.

“놀 때는 놀아야지, 그러면 나 혼자 가만히 있을까?”

“어이구? 아까 너 춤 출 때, 노래방 지진 나는 줄 알았다?”

“오버하지 마, 새꺄.”

키득거리는 두 사람은 동시에 콜록거리며 목을 붙잡았다.

“목 많이 쉬었다.”

“소리를 많이 질러서 그래.”

“그 아저씨들도 목 많이 쉬었더라.”

“근데 조금 웃겼다. 나중에 헤어질 때 아저씨라 부르지 말고, 형이라고 부르라고 할 때.”

“외모 가지고 사람 평가하면 안 돼.”

“안 되지. 외모만 가지고 생각했으면 그 아저, 아니 그 형들 지금 감옥 가야 돼.”

정작 자신들이 ‘꽃뱀’으로 몰린 줄 모르고 농담 따먹기나 하는 지태와 명수였다.

“근데 단유 넌 목 괜찮아?”

단유는 노래방에서부터 가지고 있던 음료수를 손에 든 채 고개를 끄덕였다.

“야, 근데 그거 왜 들고 있어?”

“버릴 데가 없어서.”

“노래방에 그냥 두고 오지.”

“그때는 조금 남았었어.”

“그럼 좀 전에 식당에서 버리던가.”

“식당 쓰레기가 아닌데, 거기 버리면 미안하잖아.”

지태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명수의 어깨에 팔을 걸쳤다.

“저런 애랑 같이 살면 피곤하겠다.”

“나 말이야?”

“응.”

“난 적응돼서 괜찮아. 그리고 단유가 깔끔해서 청소도 잘해서 난 좋던데?”

“그런 이야기가 아니잖아?”

“아니야?”

또 별거 아닌 이야기로 옥신각신하던 중, 핸드폰에서 수신 알람음이 울렸다. 지태가 핸드폰을 꺼내 메시지를 보더니 웃음을 터뜨렸다.

“야, 이거 봐봐.”

“벌써 올렸네?”

아까 그 ‘형’들이 찍은 영상이 인터넷에 업로드된 뒤, 그 영상이 게시된 주소가 지태의 핸드폰으로 전송되었다. 주소 끝에 ‘다음에 또 한번 보자.’는 성근의 메시지는 가볍게 무시하며 영상을 재생시켜 보았다.

채윤도 호기심에 달려가 함께 보기 시작했다. 단유만 자신의 모습을 그런 식으로 모니터링한다는 게 이상하게 여겨져 그냥 지나갔다.

며칠 뒤, 그 영상은 SNS 화제의 영상이 되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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