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멤버 더 네임-318화 (318/956)

지금 이 순간(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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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영, 다들 어디 갔어?”

갑자기 연습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온 태호의 말에 수영은 적절한 대답을 찾지 못해 입만 뻥긋거렸다. 요즘 가디스R의 스케줄이 너무 많아서 새벽에나 회사에 잠시 들리는 정도라고 알고 있었는데, 해가 중천에 뜬 이 시간에 나타날 줄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한편, 스케줄이 붕 떠서 저녁에 협력 회사의 행사만 챙겨도 되는 날이라 모처럼 낮에 회사를 찾았던 태호는 열이 확 받치는 느낌이었다. 누구는 바쁜 와중에도 갤럭시즈를 어떻게 컴백시킬가를 고민하는데, 정작 당사자들은 컴백에 관심이 없는지 연습을 무단으로 빠진다?

“이것들이, 진짜···.”

태호는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통화 신호가 가는 동안에 태호의 이가 으드득 갈렸다.

“···이것 봐라?”

전화를 받지 않는 사람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태호는 종료 버튼을 누르고 다시 다른 멤버에게 전화를 걸었고, 수영은 침을 꿀꺽 삼키며 그 모습을 훔쳐봤다. 일어선 자세에서 1㎜도 움직일 수 없었다.

“···너 어디야?”

나직한 태호의 목소리는 분명 화가 났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신호였다. 전화 너머의 목소리도 그것을 짐작한 것이 분명했다.

“빨리 튀어와!”

버럭 소리를 지르는 태호의 얼굴은 그야말로 분기탱천이라 하겠다.

다른 멤버들이 올 때까지 연습실에는 태호와 수영만 있었지만, 두 사람 사이에는 대화가 한 마디도 오가지 않았다. 10분이 지나도 나타나지 않으니 태호는 연습실을 나갔다. 손을 등 뒤로 모으고 있던 수영은 그제야 어깨에 힘을 풀며 숨을 몰아쉬었다.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서.’

정작 자신은 방관하고 말았다. 아니 솔직히 고백하자면, 자신도 다른 멤버들처럼 출근을 하고 싶지 않았다. 더 솔직히, 본심을 꺼내본다면 더 이상 희망을 꿈꾸지 않게 되었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그럼에도 연습실에 출근한 이유는 그저 습관 때문이라고 밖에는 달리 설명할 말이 없었다.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 다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 수영은 반사적으로 벌떡 튀어 올랐다.

“언니? 태호 오빠는?”

명지가 문을 슬그머니 열었다가 수영만 있는 모습을 보고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작게 옅은 숨을 뱉은 수영은 명지를 타박하는 대신 손짓으로 들어오라는 뜻을 전했다. 깨금발로 달려온 명지에게 수영이 덩달아 목소리를 낮추고 물었다.

“잠깐, 밖에 나갔는데 못 봤어? 2층에 갔나?”

명지는 조심스럽게 복도 밖을 둘러본 뒤, 다시 연습실 안으로 들어왔다.

“화 많이 났어?”

“응.”

명지는 그저 한숨으로 심정을 대변했다. 그때, 벌컥 문이 열리며 태호가 들어왔다. 태호가 다가오자, 짙은 담배 냄새가 확 풍겼다.

“···예영이는?”

입을 꾹 닫고 모르쇠로 일관하는 수영과 달리, 명지는 눈치를 보다가 태호에게 예영의 행적을 고자질했다.

“시내에 잠깐···.”

“시내? 이 시간에?”

오후 3시. 한참 연습으로 인해 땀이 범벅되고도 남을 시간, 이라고 기억하던 태호는 가디스R을 맡는 동안 자기도 모르게 시간표가 변경이 되었던 것인지 물었다.

“그건 아닌데요···.”

수영이 명지의 말을 가로챘다.

“오빠, 예영이도 나름 힘들어서 그래요.”

“힘들어? 누가? 예영이가? 왜?”

저건 분명히 시비조였다. 하지만 태호에게 사정을 이야기하며 불만을 털어놓아 봐야 무슨 소용일까. 수영은 그저 오랜 시간 함께했던 태호가 이해해주길 바랐다. 하지만 태호는 ‘나태한’ 모습을 보이는 멤버들이 이해되지 않았다.

“지금이 니들 힘들다고 투정부리고 놀 시간이야? 지금이 얼마나 중요한지 몰라? 니들 컴백 안 할 거야?”

수영과 명지는 열중 쉬엇 자세로 태호의 잔소리를 묵묵히 감내했다.

“수련이가 왜 저렇게 발악을 하는데? 니들이랑 같이 하고 싶다고 저러고 있잖아? 근데 니들은 활동 안 한다고, 스케줄 없고 시간 남아돈다고 그렇게 놀아서 어쩌겠다는 거야? 왜 그렇게 니들 생각만 하는 건데? 응? 언제는 계속 같이 가자고 해 놓고선, 이게 뭐냐고? 아무런 준비도 안 되어 있는데 회사에서 어떻게 너희들을 컴백시키겠냐고? 나는 무슨 낯짝으로 회사에다 말을 하겠어? 애들이 시간이 많이 남아돌아서 주체를 못 하는데, 할 거 없으면 컴백이나 시킬까요, 이래? 응? ···지금이 얼마나 중요한지 몰라서 그러냐고?”

명지가 움찔하는 게 느껴졌을 때, 수영이 얼른 팔꿈치로 명지를 쳐서 나서지 못하게 말렸다. 하지만 그 모습을 눈뜬장님도 아니고, 태호가 못 봤을 리 없었다.

“뭔데? 왜? 그냥 말해 봐. 나 모르게 니들 뭐 하는 거 있냐? 지수처럼 아르바이트라도 한다고? 솔직히 지수 걔도 말이야, 지금이 아르바이트나 하고 있을 때냐? 하도 간청을 하길래, 허락은 해 줬지만 말이야, 이건 아니잖아?”

태호는 이들이 이렇게 기가 빠지고 해이한 모습을 보이는 이유가 자신이 자리를 지키지 않아서,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보면 열심히 하고, 안 보면 농땡이나 부리는 거야? 그래? 니들이 애야? 하기 싫다고 출근도 안 하고 지 편할 대로 행동하고 그래? 하기 싫으면 하지 마. 그냥 나가! 괜히 연예인이나 하겠다고 팀에 민폐 부리지 말고 나가라고! 내가 직접 계약서 찢어줄 테니까 나가라고!”

태호는 자신이나 수련이나 잠 못 자고 새벽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빽빽한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는 이유가 갤럭시즈 때문임을 알아주길 원했다. 그런 노고를 알아주고, 반성하며 다시는 나태한 모습을 보이지 않겠다고 약속하는 모습을 보길 원했다. 그리고 이전처럼, 악바리같이, 온몸에서 증기를 뿜어내며 연습실이 뿌옇게 보일 때까지 연습하는 모습을 보여주길 원했다.

“저거 보십시오. 저 아이들, 저렇게 열심히 연습하고 있습니다! 저 아이들, 준비 끝났습니다! 당장 컴백해도 됩니다. 이번에는 분명 팬들이, 대중들이 저 땀을 알아봐 줄 겁니다!”

라고 회사에, 박 이사에게 외치는 모습을 상상했다.

쉴 틈 없이 빡빡한 스케줄에 몸이 부서질 것 같지만, 그래도 갤럭시즈 아이들의 다음 스케줄을 관리하며, 밴에서 쪽잠을 자는 아이들을 보며 웃음 짓는 자신을 상상했다.

너무 오랜 시간을 붙어 있다 보니 서로를 편하게 생각했던 것은 아닌가, 그래서 자신도 느슨하게 아이들을 관리했고, 아이들도 자신을 너무 만만하게 봤던 것은 아닌가, 그래서 지금과 같은 일이 벌어진 게 아닐까, 그러니 좀 더 강하게, 좀 더 모질게 채찍을 가해야 할 때가 아닌가, 라는 계산을 했다. 하지만 계산 이전에 울컥한 감정과 이성이 통제하지 못한 분노가 먼저 단어와 문장을 입 밖으로 뱉어냈고, 그다음에야 ‘이 정도는 아이들에게 쓴 약이 될 거야’라고 합리화 과정이 이루어지며, 계산에 의한 핑계가 자기 위로가 되어주었다.

명지의 눈이 붉어질 때, 수영이 명지의 손을 붙잡아 주었다. 태호도 그 모습을 보았고, 자신의 말이 심했다는 자책과 아이들에 대한 미안함이 계산을 헝클어뜨리며 어떤 말로 이 사태를 잘 무마할 것인가를 생각하기 시작할 때였다.

“찢어주세요.”

“뭐?”

태호는 둥그래진 눈으로 수영을 바라보았다.

“저 나갈게요.”

“장수영!”

“언니!”

수영은 야무지게 입술에 힘을 주고 태호를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오빠도 아시잖아요? 지금 회사 분위기. 갤럭시즈가 컴백을 해요? 아무나 붙잡고 물어봐요. 갤럭시즈가 컴백할 거 같냐고.”

태호는 며칠 전 자신이 고민했던 그 순간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지금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냐고 하셨죠? 잘 알죠. 특히 저요, 이제 25살이에요.”

태호는 눈을 감고 고개를 돌리고 싶었다. 하지만 젖은 눈망울로 자신을 직시하는 수영에게서 시선을 돌릴 수 없었다.

“가수가 되겠다는 꿈으로 서울로 왔던 게 벌써 10년이에요. 여기서도 연습생으로 몇 년을 보냈는데요. 겨우 갤럭시즈로 데뷔하나 싶었는데, 지금 이렇게 됐어요. 제가 이 바닥 사정을 모르겠어요? 저도 알 만큼은 안다고요.”

입장이 뒤바뀌었다. 이제 태호가 열중 쉬엇을 하고 수영의 말을 들어야 할 것 같았다. 다만 수영은 태호처럼 소리를 지르는 대신, 나직하게 읊조리듯 말하는 것이, 마치 소나기 내리는 8월의 눅눅한 지하실이 연상될 정도로 젖어 있다는 것이 달랐다.

“명지도 알고, 예영이도 알아요. 지수도 알아요. 아르바이트요? 솔직히 저도 아르바이트를 해야 돼요. 안 그러면 먹고 살 일이 막막하니까요. 차라리 엄마 말처럼 기술이라도 배워서 공장에라도 나가야 하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고요. 그런데 제가 여기 있는 이유가 뭔지 아세요? 멍청해서예요. 멍청해서 할 줄 아는 게 없어서, 어디 갈 데도 없어서 출근한 거예요. 그런데 명지나 예영이는 저랑 달라요. 똑똑해요. 똑똑하니까, 자기 앞가림 하려고 준비하는 거예요. 이대로 시간만 보내면 죽도 밥도 안 될 걸 아니까. 저처럼 멍청하게 연습실에서 시간만 낭비하고 싶지 않으니까.”

태호는 어찌나 주먹을 꽉 쥐었던지, 새끼 손가락이 펴지질 않았다. 하얗게 변한 주먹을 내려다보다가 고개를 들어 수영의 얼굴을 보았다.

‘하긴 내가 생각한 걸 이 아이들이 생각하지 못할 리 없는데.’

“그냥, 계약서 찢어주세요. 그래야 저도 편하게 마음을 접을 수 있을 거 같아요.”

용기가 안 나서 미련하게 여기까지 왔다고 고백하는 수영의 말을 더 들을 수 없었다. 조금 전처럼 버럭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아니라고, 네 말은 틀렸다고, 내일 당장이라도 컴백할 수 있게 해주겠노라고,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목구멍에 커다란 찹쌀떡이라도 걸린 것처럼, 입술은 강력접착제로 붙여놓은 것처럼 아무 소리도 내지 못했다. 그래서 미안하다는 말도 하지 못했다.

끝내 명지가 눈물을 흘리며 수영을 안아주었고, 수영은, 독하게도 끝까지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그렁그렁한 눈으로 천장을 바라보는 수영을 바라보는 태호였다.

****

“너 예전에, 2년 전인가? 갤럭시즈 인터넷 방송할 때 나온 적 있었지?”

“네.”

“그때 나도 그 방송 봤었거든? 니가 막 애들 얼굴을 이상하게 분석하고 그랬잖아?”

‘이상하게?’

단유의 표정이 묘하게 변하는 것을 보며 성근은 얼른 말을 이었다.

“아무튼, 내가 갤럭시즈 팬이어서 니 얼굴을 알고 있었거든. 이번에 가디스R 뮤직비디오도 찍었지?”

“알아봐 주셔서 감사합니다만, 무슨 일이신지?”

단유는 이유를 물었다.

딱히 이유를 물어도 대답이 궁색했던 나머지, 성근은 다른 질문을 던졌다.

“어? 그냥, 저기···. 혹시 연습생이야?”

“아니요.”

“연습생 아니야? 그럼 데뷔조?”

“저, 계약 같은 거 안 했어요.”

말인즉슨, ‘일반인’이라는 건데, 그러면 더 이상하다고 여긴 성근은 뮤직비디오 출연 계기를 물었다. 그냥 친해서, 라는 답변에 잠시 멍을 때리던 성근은 태후의 질문으로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너 노래 되게 잘하던데, 가수 될 생각 있었던 거 아냐? 그래서 뮤직비디오에도 출연하고, 그···가수들이랑 친하게 지내고 그랬던 거 아냐?”

단유는 두 아저씨(?)의 호기심을 이런 식으로 채워줘야 할 필요성이 있는지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가졌다.

“친한 건 그냥 우연히 알게 되면서 친해진 거고요, 지금은 제가 친구들이랑 같이 가야 해서요, 이만 실례할게요.”

단유는 두 사람에게 살짝 고개를 숙이고, 등을 돌렸다. 딱히 단유를 붙잡을 이유가 없던 두 사람은 그렇게 단유를 돌려보냈다.

“와, 쟤 한 성격 하는데요?”

성근은 근처의 빈 의자에 앉으며 답했다.

“성격도 성격이지만, 우리가 갑자기 말을 걸어서 당황한 것일지도 모르지.”

“당황했다기에는 너무 침착해 보이던데.”

“그리고 계약도 안 하고, 연습생도 아니면, 그냥 우리랑 같은 거잖아. 연예인이 아니니까, 그럴 수도 있지.”

듣고 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연예인이라면 반드시 가져야 할 ‘팬 서비스’ 마인드가 저 아이에게는 무의미한 것이니까.

“아, 맞다. 아까 그 노래 녹음해서 페북에 올렸으면, 대박이었을 건데. 그쵸?”

확실히 오랜 잡덕으로 나름 노래를 평가할 수준의 청력은 보유하고 있다고 생각하던 성근에게 단유의 노래는, 비록 바로 옆에서 깨끗한 소리로 듣지 못했음에도, 여느 아이돌 가수들과 비교해도 꿇리지 않는 수준이었다.

그리고 성근은 지금 태후의 말을 들으며 어떤 직감이 자신을 후려치는 느낌을 받았다.

‘저 아이의 노래를 꼭 들어야 한다.’

부스 안에서 건너편 부스의 노래를 들으며 가슴이 간질거리던 그 느낌을 제대로 확인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근은 사람들을 밀치며 센터를 나갔다. 멀지 않은 곳에 아이가 친구들과 무리를 지어 걸어가고 있었다.

“형!”

뒤에서 쫓아 온 태후가 무슨 일이냐며 물으려는데, 성근은 돌아보지도 않고 아이에게 달려갔다.

“자, 잠깐만.”

중학생 4명이 한꺼번에 고개를 돌려 자신을 바라보자, 괜히 무섭다는 생각과 괜한 짓을 벌이는 것이 아닐까 하는 후회가 들었다. 하지만 아직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덕후들 사이에 그런 말이 있었다. 갈까 말까 할 때는 가라. 할까 말까 고민할 때는 해라.

“저기, 부탁이 있는데.”

말을 꺼내던 성근은 불현듯 재킷 안쪽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내가 돈을 많이 가지고 왔던가?’

애들이 보는 앞에서 추접스럽게 지갑을 열어 돈을 확인할 수는 없는 일. 없으면 태후에게라도 빌려야지, 라고 생각하며 성근은 단유를 바라보았다.

“같이 노래방, 안 갈래?”

아이들의 표정이 묘하게 일그러지는 것을 성근은 눈치채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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