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멤버 더 네임-317화 (317/956)

지금 이 순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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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니아란 어떤 특정한 관심 사항에 대해 ‘열광’하는 이들을 일컫는다. ‘마니아’란 단어의 쓰임을 보자면, 과거에는 ‘건담 마니아’나 ‘축구 마니아’같이 특정 스포츠 혹은 특정 영상물에 대해 광적인 집착과 애정을 보이는 이들에게 사용되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마니아’란 말 대신 ‘덕후’라는 시쳇말이 이용되면서 ‘치킨 덕후’, ‘애니 덕후’, ‘게임 덕후’ 등 범용적으로 사용되기에 이르렀다.

‘덕후’든 ‘마니아’든 관심 사항에 대해서만큼은 일반인들보다 월등히 전문적이고, 전문가들과 비교해서도 꿇리지 않는 전문 지식과 애정을 보인다는 사실은 분명해 보인다.

그런데 이런 경향에 새로운 변화가 있으니, 단 하나에만 관심을 두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것들에 관심을 두고 집착하는 이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과거보다 훨씬 소통이 편리한 인터넷과 다양한 매체들을 주위에 두다 보니 생긴 경향이 아닐까 싶은데, 이런 경향을 반영한 사람들의 등장에 따라 이에 맞는 용어가 등장하였으니 ‘잡덕’이라 부른다.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다는 뜻인데, 아무래도 과거 ‘마니아’라는 본래의 의미와는 조금 멀어진 측면이 있었다. 하지만, ‘잡덕’ 역시 좋아하고 열광한다는 순수한 의미에서 접근하자면 ‘덕후’이며 ‘마니아’라고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오성근은 ‘잡덕’이었다. 잡덕이긴 한데, 취향이 조금 독특해서, 직접 하는 것보다 구경하고 관람하는 것을 즐기는 덕후였다.

성근은 어렸을 때 ‘오락실’에 가는 것을 즐기는 아이가 아니었다. 친구 따라 오락실에 갔다가, 동네 형들의 시비에 겁을 먹고 두 번 다시 찾아가지 않았다는 사실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트라우마가 될 정도는 아니었으니까. 단지 성근은 남들이 100원 넣고 게임을 할 때, 자신은 1,000원을 넣고도 금방 죽어버려서 게임에 재능이 없음을 확인했던 것뿐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성근은 돈이 떨어졌다고 오락실을 나가지 않았다. 자신이 직접 하는 건 재미없지만, 뒤에서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기 때문이었다.

“야, 저기서 뛰어야지.”

“불! 불 날려!”

“점프!”

왁자지껄한 오락실에서 조용히 팔짱을 끼고 다른 사람의 플레이를 보며 즐기는 여유가 좋았던 오성근은 ‘게임은 안 하고 어슬렁거리면서 기분 나쁘게 한다’는 동네 선배들의 충고(?)를 받아들여 집 근처 오락실에 가지 않게 되기 전까지, 즐겁게 구경하며 다녔다.

나이를 먹으면서 스포츠를 알게 되었고, 특히 야구를 좋아하게 되었는데, 야구 역시 하는 것보다 보는 즐거움이 많은 스포츠였다. 특히 자신과 이름이 비슷한 감독님의 야구를 보며 속을 태우기도 했고, 가슴 벅찬 희열을 느끼기도 하면서 야구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었다.

그러다가 취업할 시기가 되었고, 불행히도 취업이 쉽게 되지 않아 우울한 날들을 보내며 방에 틀어박혀 있을 때였다. 인터넷을 하다가 문득 동호회라도 가입해서 활동하면 삶이 즐거워지지 않을까 하는 충동적인 마음으로 가입하게 된 것이 ‘아케이드 게임 동호회’였다.

대부분은 게임을 하는 것을 즐겼지만, 몇몇 사람들은 자신처럼 게임을 보는 것을 즐기는 이들이 있었고, 그런 이들이 모이니 정모도 할 만했다. 게임 잘하는 이들의 뒤에 서서 ‘직관’하는 재미가 있었다.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했던가? 관람 인생 30년, 게임 해설자 수준으로 평가할 수 있는 정도에 오른 성근은 오늘도 한 격투 게임 현장의 옆에서 주변 사람들에게 열심히 해설을 하면서 경기를 관람하는 중이었다.

“잠시만요.”

교복을 입은 아이 한 명이 사과하며 자신의 뒤로 지나갔다. 몸을 조금 앞으로 기울여 뒤에서 지나가는 사람과 부딪치지 않게 움직였던 성근은 뒤따라 지나가는 세 아이 때문에 살짝 불편함을 느꼈다. 뭔가 싶어 바라보니 아이들은 센터 안쪽의 코인 노래방으로 가는 중이었다.

‘혹시 우리 때문에 게임을 못 해서 자리를 피한 건가?’

라는 생각이 들어서 살짝 미안해하려는 그때, 노래방으로 들어가는 마지막 아이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성근의 잡덕 성향은 바로 아이돌 그룹에 대한 편애에서도 나타났다. 특히 성근은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는 아이돌 그룹을 애써 찾아보는 스타일이었는데, 언젠가 그들이 성공하게 될 때의 기쁨과 희열을 함께 맛볼 수 있다는―물론 자신만 느끼는―장점이 있었다. 그리고 좋아하는 아이돌 중의 하나가 바로 갤럭시즈였다.

갤럭시즈가 첫 번째 싱글을 내고 단 2주간 활동을 할 때, 우연히 그 모습을 보게 된 성근은 한눈에 자신이 ‘평생을 두고 덕질을 하게 될’ 그룹임을 직감하였다. 그리하여 두 번째 싱글이 나왔을 때는 그들이 직접 노래 부르는 모습을 보기 위해 방송국을 찾아갈 정도였다.

갤럭시즈가 간간이 인터넷 방송을 할 때도, 핸드폰으로 알림이 오면 그 즉시 하던 일을 멈추고 핸드폰으로 갤럭시즈의 방송을 즐기며 채팅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던 열성팬이었다.

「여러분, 되게 잘생겼죠?」

라고 물으며 수련이 한 소년을 소개했던 방송을 기억하던 그는 이후 갤럭시즈의 뮤직비디오에 출연했던 소년이 바로 이전 인터넷 방송에 함께 나왔던 소년임을 바로 알 수 있었고, 최근에 그 소년이 가디스R이라는 듀엣 그룹의 뮤직비디오에 다시 나왔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소년이 지금 저 코인 노래방에 들어가는 소년과 인상착의가 일치한다는 사실에까지 생각이 미쳤다.

‘에이, 설마.’

연예인이 아니란 사실은 들었다. 하지만, 이런 자리에서 이렇게 보게 될 인물이라고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어쩐지, 갤럭시즈와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게 분명한 소년이, 아무리 연예인이 아니라고 해도 자신에게는 연예인에 준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확신을 얻기 위해 성근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태후야. 방금 지나간 중학생 봤어?”

“방금요? 아, 아까 교복. 그런데 그게 중학생이에요?”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마지막에 지나간 애 혹시 본 적 없어?”

“아뇨. 제가 이 동네에 사는 것도 아니라서요. 왜요? 유명한 사람이에요?”

“너 혹시 가디스R이라고 알아?”

“알죠. 요즘 되게 핫하잖아요?”

“그럼 그 가디스R에 나온 남자애도 기억나?”

태후는 동그란 눈으로 시선을 돌려 코인 노래방 쪽을 보다가 성근에게 물었다.

“방금 지나간 남자애가 그 애예요?”

“나도 확실치 않아서 물어본 거야.”

“와, 진짜면 대박인데? 연예인이잖아요? ···모델인가?”

성근은 주변 사람들에게도 물었고, 누구 하나 분명하게 대답하는 이는 없었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다들 긴박감 넘치는 경기에 열중하고 있었던 탓에 교복 입은 남자아이 따위에게 관심을 쏟을 리 없었다.

“가서 물어봐요.”

태후는 정확히 모르면서도, 연예인 실물로 처음 본다며 들뜬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그 소년이 연예인이 아니란 사실을 아는 성근은―갤럭시즈가 속한 연예 기획사 ‘에이 바운스’의 홈페이지에서도 그 소년의 사진이나 프로필 등은 나오지 않았다―쉽게 다가갈 생각을 못 했다.

“니가 물어봐.”

“제가요?”

태후가 슬쩍 노래방을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애들 나올 때 한 번 물어보죠.”

성근은 그게 좋겠다며 태후의 의견에 동의했고, 다시 게임으로 화제가 돌아가는 듯했다.

“아, 근데 쟤 방금 노래방 간 거잖아요? 그럼 혹시 노래도 직접 들어볼 수 있는 찬스 아니에요?”

태후의 말은 오락실 코인 노래방이 그렇게 방음이 좋은 편도 아니니 근처에서 노래를 들어볼 수 있지 않겠냐는 제안이었다. 하지만 성근은 태후의 말에서 소년의 정체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보지 못했지만, 노래방에서 노래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음치는 아닐 것이다. 어쩌면 연습생일 수 있어. 외모가 되는 연습생인데, 얼굴을 알리자는 차원에서 이번 뮤직비디오에 출연했던 것일지도···. 그리고 이제 곧 출격하는 남자 아이돌 그룹의 멤버인 거지. 그렇다면 데뷔를 준비하는 연습생의 노래를 현장에서 미리 들어볼 수 있는 건가?’

성근의 ‘잡덕’ 본능이 깨어났다.

“옆에 가보자.”

두 사람은 인파를 헤치고 나와 노래방 쪽으로 다가갔다. 마침 옆 칸이 비어 있어서 두 사람이 들어가기 적당했다.

“여기 있으면 들릴까?”

라고 중얼거렸던 것이 무색하게, 음악을 틀지 않아서 그런지 옆 칸의 노랫소리가 바깥에 있을 때보다 더 잘 들리는 것 같았다. 에코가 많이 묻어서 울리는 감이 없잖아 있었지만, 듣기에 불편함은 없었다. 다만,

“이러면 누가 부르는지 모르잖아?”

들어간 사람이 네 사람이었는데, 그중 누구의 목소리가 그 아이의 목소리인지 알 수 없었다.

“코인가왕이네요.”

복면가왕이나 코인가왕이나 정체를 모르기는 마찬가지라는 걸까?

아케이드 게임 동호회 정모 때문에 왔다가 갑자기 이렇게 상황이 변해버린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노래 한 번 몰래 들어보겠다고 이러고 있는 꼴이 우습기도 했다. 하지만 혼자라면 모를까, 같이 장단을 맞춰주는 사람이 있으니까 즐겁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 아까 들어간 애들 얼굴 기억나?”

“정확히는 모르죠.”

“아쉽네. 얼굴이라도 알고 있었으면 누가 무슨 곡을 불렀는지 알아맞히는 재미라도 있었을 텐데.”

“얼굴만 보고 어떻게 그걸 맞혀요.”

“왜 못해? 그거 있잖아? 너의 목소리가 ‘들려’ 였던가 ‘보여’ 였던가, 아무튼 그 프로 있잖아.”

태후는 성근의 말에 재밌다고 무릎을 치며 웃으려다, 성근이 황급히 손가락으로 입술을 가리는 동작에 웃음을 억지로 참아야 했다.

“들린다.”

반주가 나오고 노래가 들리기 시작했다.

“잘 부르는 것 같지는 않은데요?”

“그럼 걔 말고 다른 애겠지.”

“혹시 다른 애들도 가수나 연습생, 뭐 이런 건 아니겠죠?”

“모르지. 요즘은 노래 못해도 가수하고 아이돌하고 다 하니까. 댄스 담당일 수도 있고.”

두 세곡이 지난 뒤, 잠깐 반주가 멈췄다. 아이들이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가 들렸는데 정확히 무슨 말을 하는 건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다. 방음 공간인 탓도 있었고, 오디오가 물린(?) 탓이기도 했다. 간간이 가디스R의 이름이 거론되는 것 같기도 하고, 순위 이야기가 나오는 것 같기도 했다.

“형, 저기 어떤 애가 가디스R 음원 순위를 맞췄나 본데요?”

“그게 들려?”

“제가 이게 좀 좋아요.”

자신의 귀를 가리키며 씩 입꼬리를 올리는 태후는 리듬 게임을 좋아해서 음악을 많이 듣다 보니, 듣는 귀가 좀 있다고 자랑을 덧붙였다. 자랑은 곧 옆 칸에서 시작된 반주에 중단이 되었고, 성근은 곧 그 음악이 가디스R의 신곡 ‘리모트’임을 알 수 있었다.

“어, 이거 그 곡이네요?”

태후 역시 최근 화제가 되는 곡을 모를 리 없었다. 곧 남자아이의 목소리로 부르는 ‘리모트’가 들리기 시작했다.

3분 10여 초가 지난 뒤, 두 사람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대박.”

“남자가 불러도 괜찮네요?”

“남자가 불러도 괜찮은 게 아니라, 쟤가 잘 부른 거야.”

성근은 방금의 노래가 그 소년이 부른 것이라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방금의 노래를 부른 소년이 예사 실력이 아니란 것은 장담할 수 있었다.

“목소리가 완전 커.”

“원 키 그대로 부른 거 같은데.”

“그런가? 그건 잘 모르겠네.”

성근은 태후만큼 듣는 귀가 좋지는 않아서, 아이돌 그룹을 좋아하긴 해도 음악을 잘 안다고 표현할 정도는 아니었다.

“사인받아 놓아야 하는 거 아니에요? 얘 데뷔하면 완전 대박이겠는데? 생긴 것도 잘생겼고.”

이제는 성근보다 태후가 더 들뜬 모습을 보였다.

“아까 걔랑 지금 노래 부른 애랑 같은 애인지는 모르잖아.”

“그냥 제 느낌이긴 하지만, 분명히 같은 사람일 거예요.”

두 사람이 가수의 정체를 두고 이야기를 나눌 때, 옆 칸에서는 아이들이 가방을 챙겨 들고 부스를 빠져나오고 있었다.

“항상 마지막은 단유 노래로 끝을 내야 하나 보다.”

“솔직히 대박이었다, 이번 거는.”

“100% 진심인데, 너 가수 해라. 해도 되겠더라.”

“야, 네가 가수 하라고 하면 얘가 가수 해야 하냐?”

“말이 그렇다는 거지, 뭘 또 그렇게 죽자고 달려드냐? 왜? 너도 그런 말 듣고 싶어? 그럼 너도 그 정도 실력이면 프로 해도 되겠다. 프로축구선수나 되라.”

“뭐야!”

명수와 지태가 서로의 어깨, 팔, 머리를 두드려대며 장난을 칠 때였다. 옆의 부스가 열리더니 건장한 남자 둘이 나왔다.

‘어, 옆에 사람이 있었네.’

라고 단유가 생각했고,

‘어, 우리가 떠들어서 방해했나?’

라고 채윤이 생각했고,

‘어, 무섭게 생겼는데?’

라고 지태가 생각했고, 명수는 슬쩍 눈길만 줬다가 한눈파는 지태의 머리를 한 대 더 때리고는 아무 생각 없이 호탕한 웃음을 터뜨렸다.

“까불지 말라고.”

그때 서로의 눈치를 보던 태후와 성근, 둘 중 나이가 어린 태후가 나서는 게 보기 좋다는 생각에 성근이 눈을 부라렸고, 태후가 다부지게 나서서 아이들에게 말을 걸었다.

“저기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자기보다 한 참 어린 애들한테 ‘저기요’가 뭐냐, 며 성근이 속으로만 혀를 찰 때, 붉어진 볼을 애써 감추지 않는 태후가 말을 끝까지 뱉어냈다.

“방금 마지막에 부른 노래, 누가 불렀어요?”

아이들은 서로 쳐다보며, 무슨 일인지 상황을 파악하려 할 때, 명수가 단유를 가리켰다.

“얘요.”

지태는 잘 알지도 못하는 수상한 사람에게 함부로 정보를 주는 명수가 못마땅해서 명수의 옆구리를 쿡 찔렀고, 단유는 굳이 감출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 명수의 말에 긍정을 표했다.

“전데요. 왜 그러시죠?”

태후가 더듬거리며 노래가 좋았다, 요즘 이 노래를 자주 듣는다, 원래 노래를 잘하냐는 등의 말들이 두서없이 뱉어댈 때, 성근이 용기를 내서 태후의 말을 잘랐다.

“너, 갤럭시즈 뮤직비디오에 나왔었지?”

단유는 가디스R이 아닌, ‘갤럭시즈’의 이름이 언급된 사실에 신기하다는 듯 성근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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