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멤버 더 네임-315화 (315/956)

Make-up(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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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악재로, 그리고 골칫거리로 전락했던 뮤직비디오가 뒤늦게 공개되었음에도 화제가 되면서 한순간에 ‘가디스R’의 날개가 되었다. 인터넷에서든, 학교에서든 화제가 되기 시작했고, 가디스R의 이름이 커뮤니티에서 자주 거론되기 시작했다.

- 왜 이제 나온 거냐?

- 인사해라. 내 여자친구다.

- 완벽하다. 이보다 완벽할 순 없다.

- 나윤이 장면만 계속 돌려봤다.

- 노래랑 너무 잘 어울리는 거. 노래도 좋다.

- 겨울 감성 저격했음. 겨울 여신 나윤이를 숭배하라.

- 나윤이라니! 나윤님이라고 해라.

뮤직비디오는 어느새 공개 일주일째에 4백만 회에 가까워지는 기록을 세우는 중이었다. 뮤직비디오 시청 횟수와 비례하여 음원 순위도 상승하더니 어느새 차트 35위에까지 이르렀다.

“지금 인터넷에 화제가 되는 신인 그룹, 가디스R입니다.”

“안녕하세요, 가디스R입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저도 뮤직비디오를 봤습니다.”

“정말요? 고맙습니다.”

“뮤직비디오 보니까 두 분의 미모가 눈이 부실 지경이더군요. 그런데 청취자 여러분, 그거 아세요? 실물은 훨씬 더 합니다. 그래서 방송 들어오기 전에 급히 매니저한테 선글라스를 가져다 달라고 부탁까지 했어요.”

수련과 나윤이 진행자의 말에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그럼 우선 화제의 신곡, ‘리모트’에 대해 소개 부탁드립니다.”

수련의 소개가 끝난 뒤, 라디오에서는 ‘리모트’가 흘러나왔다.

“노래 잘 들었습니다. 두 분도 대단하시지만, 뮤직비디오에 나오는 상대역에게도 많은 관심이 몰리고 있는데, 아시나요?”

“네, 사람들이 많이 궁금해한다고 들었어요.”

“그럼 혹시 그분에 대해 설명해 주시겠어요? 누구, 수련씨?”

수련이 살짝 손을 들어 대답하겠다고 신호를 보냈다.

“그 친구는 이제 중학교 1학년인 친군데, 연예인은 아니고요. 저랑 개인적인 친분이 있어서 뮤비 출연을 부탁했던 거였어요.”

“중학교 1학년이라고요? 동안이라고 생각하긴 했는데, 진짜 어린 친구였네요?”

“네. 예전에 갤럭시즈로 활동할 때, 갤럭시즈의 두 번째 싱글 곡 뮤직비디오에도 참여한 적이 있었어요.”

“아, 그렇군요.”

진행자는 모니터에 뜬 작가의 메시지에 살짝 고갯짓을 했다.

“그럼 말이 나온 김에 갤럭시즈에 대해 이야기를 해볼까요? 솔직히 수련씨는 예전에 갤럭시즈라는 걸그룹의 메인보컬로 활동하셨잖아요? 그러면 갤럭시즈는 해체를 한 건가요?”

“아니요, 해체는 아니고요. 지금도 저희 멤버들은 열심히 연습하고 있어요. 가디스R은 이를테면 프로젝트 듀엣이라고 할 수 있어요.”

“아, 그러면 혹시 이번 활동이 마지막이라거나 그런 건가요?”

“아니요. 그건 아니고요. 팬분들에게 다양한 음악을 들려주고 싶다는 저희 멤버들과 회사의 의견에 따라 그에 맞는 활동 방향을 정한 거라고 봐주시면 좋겠어요. 갤럭시즈는 걸그룹답게 활달하고 밝은 음악으로 팬들에게 보답할 예정이고, 가디스R은 좀 더 보컬과 감성에 집중해서 팬들과 소통하려는 의도로 나선 것이라고 봐주시면 좋겠어요.”

부스 바깥에서 대기중이던 태호는 수련의 대답에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작가에게 미리 부탁해서 준비한 질문과 대답이었는데, 아마 방송을 통해 나가면 꽤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했다.

“그렇군요. 그런데 사실 갤럭시즈라는 걸그룹이 인지도가 많이 약한 그룹이잖아요? 많이 힘들지 않으셨어요?”

“솔직히 힘들지 않았다고 말하면 거짓말이고요. 그래도 저희끼리는 즐겁게 연습하고 무대 준비를 하고 활동을 했었거든요. 언젠가는 저희의 노력을 팬분들께서 알아주실 거라고 믿으면서요.”

“그런 노력이 아마 이번 가디스R의 신곡으로 드러난 것이라고 봐도 되겠군요.”

“네. 그렇죠. 그래서 저희 멤버들도 마치 자기 일인 것처럼 좋아해 주셨어요.”

“그럼 나윤씨, 나윤씨는 갤럭시즈 멤버가 아니었죠?”

“네. 저는 이번이 첫 데뷔입니다.”

“하하, 그렇군요. 그런데 나윤씨 조금 긴장하신 거 같은데?”

“예, 사실 라디오 방송이 아직 익숙하지 않아서요. 이렇게 말하는 것도 신기하고 그래요.”

“그래요?”

“예전에 연습생 시절 때 이 방송 자주 들었거든요. 그리고 그때는 저도 이런 라디오 나오고 싶다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나오니까 너무 긴장돼서 말이 잘 안 나오고 그래요.”

“뭘요? 잘하시는데요? 준비 많이 하셨나 봐요?”

대답 대신 웃음으로 화답하는 나윤에게 진행자는 최근의 화제가 된 미모부터 시작해서, 인터넷에서 ‘여신’으로 추앙받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지, 그에 대한 감상은 어떤지 등을 물으며 쇼를 진행했다.

사실 나름의 준비를 해서 내보낸 방송이긴 해도, 라디오가 익숙하지 않은 나윤이 걱정돼서 좀처럼 앉아서 기다릴 수 없었던 태호는 무사히 3부가 끝나고 4부를 준비하는 아이들을 끝까지 지켜보았다. 그 사이 작가가 휴지를 건넸다. 무슨 의미인지 몰라 쳐다보고 있으니 핑크색 후드 티셔츠를 입은 작가는 태호의 이마를 가리켰다.

“땀을 많이 흘리시네요.”

“아하, 네. 추운 데 있다가 들어와서 그런지 몸에서 열이 좀 나네요.”

태호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작가에게서 휴지를 받아 이마를 찍어 눌렀다. 그러고 보니 애들보다 더 긴장한 것이었던 모양이었는지, 휴지는 금세 축축하게 젖어 들었다. 젖은 휴지를 돌돌 굴려보다가 잠시 양해를 구하고 라디오 부스 안으로 들어갔다.

“괜찮아?”

“네, 괜찮아요.”

특별히 뭐가 괜찮은지 묻지 않았고, 뭐가 괜찮은 건지 말하지 않았지만, 수련과 태호는 그 정도 문답으로도 충분했다.

“아까 잘 대답했어. 그리고 너무 긴장하지 말고, 편안하게 해.”

“네. 오빠.”

“나윤아, 너도 잘했어. 이제 20분 남았으니까, 마무리 잘하자. 알았지?”

“네.”

“자, 이거.”

태호는 뒷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서 나윤에게 건넸다.

“혹시 긴장 때문에 손에 땀이 많이 나면 닦으라고.”

“오빠, 저는요?”

“넌 긴장 잘 안 하잖아?”

“편애하시는 거 아니에요?”

“씁, 쓸데없는 소리. ···잘해.”

“네.”

수련은 웃음으로 태호에게 대답했고, 나윤은 손수건을 받자마자 손바닥에 배어난 땀을 훔쳐냈다. 태호는 잘하라고 속삭이듯 응원한 뒤, 부스 바깥으로 나왔다. 콘솔 쪽에 있던 작가가 슬쩍 보더니 웃음을 지었다.

“매니저님, 되게 자상하시네요?”

“뭘, 이 정도 가지고요.”

태호는 웃음을 지은 뒤, 잠깐 화장실 좀 다녀오겠노라 말하고는 스튜디오를 빠져나왔다.

“장 매니저님!”

스튜디오를 나오자마자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예전 갤럭시즈 때부터 얼굴을 익혀 온 다른 기획사의 매니저였다. 아니, 이제는 실장이라고 해야 하나?

“양 실장님, 오랜만에 뵙네요.”

“저도 오랜만이네요. 요즘 잘 나가신다고요?”

“잘 나가긴요? 그냥 조금 반짝인기에 편승한 거죠.”

“반짝이라도 그게 어디에요. 예전에는 그 ‘반짝’이라는 거 어디서 사야 하냐고 농담까지 해 놓고선.”

“그러게요. 그래도 오랜 노력이 빛을 보는 것 같아 기쁩니다.”

“장 매니저님 웃는 모습 보니까 저도 좋네요.”

“아, 오면서 보니까 유리아도 이번에 성적 좋던데요? 10위권이죠?”

“저희도 운이 좋았죠. 마침 대형가수들이 다 빠진 틈이라서. 사실 이 시기 아니면 이런 성적 얻기 어디 쉬운가요?”

“그렇죠.”

태호는 애써 웃으며 말을 아꼈다. 딱히 악의를 가지고 말한 것은 아니겠지만, 대형가수도 없고 성적 올리기도 쉬운 타이밍에 신곡을 내고도 누구는 10위인데 누구는 30위권 언저리다 보니 비교가 되어서였다.

“방송 때문에 오신 건가요?”

이것도 삐딱하게 보면 기분 나쁠 수 있는 질문이었다. 하지만 태호는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저기 3 스튜디오에서 방송 중이에요.”

“아, 그래요. 마침 저희가 올 때 라디오를 켜지 않아서 몰랐어요. 반응은 당연히 좋겠지요?”

“다행히도 좋은 거 같더라고요.”

“잘됐네요. 앞으로도 승승장구하시길 바랄게요.”

“양 실장님도요.”

태호는 고개를 숙여 양 실장에게 공손하게 인사를 했다. 양실장도 마주 고개를 숙여 보인 뒤, 바쁜 걸음으로 복도를 가로질렀다. 그 모습을 보던 태호는 몸을 돌려 화장실로 향하려다, 그대로 바깥으로 나갔다. 현관을 나와 주차장을 가로질러 구석에 마련된 흡연실로 향했다. 쌀쌀하다 못해 뺨을 매섭게 후려치는 겨울바람에 절로 어깨가 움츠려졌다. 흡연실로 들어간 태호는 담배를 꺼냈다.

‘되도록 안 피려고 했는데.’

하지만 생각과 달리, 손가락은 담배를 집고, 다른 손은 부지런히 움직여 라이터를 꺼내고 불을 붙였다. 의지한 바와 달리 입술에 붙은 담배로부터 흡입한 연기가 목을 타고 폐에까지 침입하여 구석구석에 타르를 비롯한 온갖 유해물질들을 뿌려댄 뒤, 정화된 하얀 연기가 다시 목을 타고 혀를 넘어 입술을 비집고 나와 공기 중으로 흩날렸다.

담배 한 모금에 찝찝했던 기분이 날아가길 바랐던 것은 사치라는 듯 다시 입술은 담배를 물었고, 그렇게 몇 번의 흡입과 배출을 반복했더니 팽창한 실린더처럼 가슴속에서 폭발하던 감정이 옅어지는 기분이었다.

분명 성공은 성공이었다. 계속 과거와 비교해서 그렇지, 지금 현재를 두고 봐도 가디스R의 성공은 분명 유의미한 업적이었다. 다른 기획사에서도 이런 순위를 얻기 위해 엄청난 돈과 시간을 투자하는 곳이 많을 것이니, 그런 치열한 싸움판에서 이 정도 성적이라면 충분히 뻐길만한 것이리라.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답답한 마음이 드는 것은 역시 ‘갤럭시즈’ 때문이었다. 지금 당장은 가디스R에 집중을 해야 하지만, 갤럭시즈라는 꼬리표를 떼어낼 수는 없었다. 조금 전 라디오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도 ‘갤럭시즈’가 나온 이유였다.

‘가디스R이 성공하면, 그 성공을 그대로 갤럭시즈에게로 잇는다.’

라는 게 회사의 기본 방침이라고 믿고 싶었다. 애초에 그런 의도로 듀엣을 만들었던 것이고. 하지만 가디스R의 성공이 과연 최초의 기획대로 갤럭시즈에게로 이어질 수 있을까?

방금 만났던 양 실장이 관리하는 유리아도 처음에는 걸그룹의 멤버였다. 데뷔 때부터 시장을 선도하는 대세 걸그룹으로 떴던 그 그룹은 이후 후속곡들이 데뷔곡만큼의 인기를 얻지 못하면서 점점 컴백 주기가 늦춰졌고, 그러다 보니 여유 시간이 많아졌다. 여유 시간이 많다고 해서 아이들을 놀릴 수 없는 일. 개별 활동을 시작했고, 뜻밖에 유리아가 연기에 재능을 보이면서, 연기와 가수를 겸업하게 되었다.

그리고 유리아가 점점 인기를 얻으면서, 반대로 그룹의 활동은 부진해져 갔다. 의도적이었든, 아니든 유리아의 본진은 정체를 벗어나지 못했고, 유리아의 성공이 이어질수록 더욱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지금, 해체를 언급하진 않았지만, 비활동기간이 무려 3년을 넘어가고 있었다.

가디스R도 어쩌면 비슷한 길을 갈지 모르겠다. 가디스R이 성공할수록 그 성공에 더욱 집착하여 회사는 더 많은 인력과 예산을 투자할 것이고, 더 큰 성공을 누리리라. 굳이 세 번이나 실패했던 걸그룹에 투자하느니, 투자 대비 성과의 효율에도 우수한 듀엣 그룹에 투자하는 게 더 좋다는 계산서가 눈앞에 있는데, 누가 그 계산서를 찢고 새로운 계산서를 발행해달라고 발버둥을 치겠는가.

태호는 이왕 나온 김에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며, 한 개비를 더 집어 들었다.

가디스R의 성공은 태호 본인도 바라던 바였다. 하지만 그럼 갤럭시즈는? 3년, 아니 그 이상의 시간을 연습실에서 구르며 땀을 흘렸던 수영, 지수, 명지, 예영이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어쩌면 자신이 고작 ‘매니저’인 탓에 정에 이끌려 계산을 잘못한 것일 수도 있었다. 엔터테인먼트도 산업이고 사업이었다. 그렇다면 당연히 이윤을 추구해야 마땅한 일이고, 그렇다면 갤럭시즈의 멤버들에겐 미안하지만, 가디스R에 더욱 집중하는 게 옳을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그녀들은?

‘그녀들에게는 누가 지난 세월을 보상해 줄 수 있을까?’

태호는 담배 꽁초를 재떨이에 비벼 끈 뒤, 다시 찬 바람 몰아치는 주차장으로 나왔다. 이 주차장에 자신들의 차는 없었다. 인기 없는 연예인의 차량은 방송국 주차장에 주차할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방송국 근처의 유료 주차장이 그렇게 장사가 잘된다고 한다.

‘돈 모아서 주차장이나 하나 만들어서 먹고 살면 좋을 텐데.’

몇억짜리 고급 승용차를 관리하는 게, 사람을 관리하는 것보다는 마음이 편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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