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멤버 더 네임-314화 (314/956)

Make-up(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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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과 나윤은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콩닥거리는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오빠! 우리 순위 올랐어!”

“이제 50위야!”

나윤이야 말할 것도 없고, 수련에게도 이 정도로 높은(?) 순위의 성적표를 받아본 적이 없었던 터라 얼굴에서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

“알아, 알아. 나도 봤어. 그만 좀 쉬고, 다시 연습해.”

태호는 그녀들의 손에 들린 핸드폰을 빼앗은 뒤, 연습실을 나가려다 다시 두 사람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두 사람의 볼이 빨갛게 물든 것은 단순히 기뻐서만은 아니었다. 지금 현재 시각은 새벽 1시. 내일 오전과 오후에도 스케줄이 있지만, 그렇다고 레슨과 연습을 빼먹을 순 없었다. 그렇게 시작한 연습이 벌써 두 시간째였다.

하지만 이들은 아직도 가수로서 성장해야 할 부분들이 많았고, 지금의 땀과 노력이 팬들의 사랑과 응원으로 보답하리란 것을 알기에 늦은 시간까지 밤잠을 줄여가며 연습에 매진하는 것이었다.

“30분만 더 하고 자러 가자. 알았지?”

“네.”

두 사람은 짧은 휴식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윤이 입은 하얀 티셔츠의 앙증맞은 캐릭터가 땀에 젖어 꾸깃꾸깃해졌지만, 그녀의 표정은 더없이 밝아있었다.

“셋, 둘.”

반주에 맞춰 수련이 카운트를 세고, 정박자에 정확히 안무를 맞춰나가는 두 사람을 보며 태호는 연습실을 나왔다. 사실 태호도 기쁜 마음이긴 했다. 일단 순위가 떨어지지 않고 오른다는 것이 어딘가? 대형 기획사 소속의 걸그룹도 아니고, 예능에서 종횡무진 활약하며 인지도를 쌓은 걸그룹도 아니고, 그야말로 신인 중의 신인이라 할 수 있는 이 아이들의 음악이 대중에게 버림받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뻤다.

그러나 모두가 그런 소소한 행복에 만족하고 안주하는 것은 아니었으니, 당장 회사에서는 연일 기획 회의가 열리는 중이었다. 박 이사를 중심으로 지금의 순위를 유지 혹은 상승시키는 방안을 모색하는 중이었고, 태호뿐만 아니라 부장급에서도 방송 스케줄을 하나라도 더 잡기 위해 인맥을 최대한 활용하는 중이었다.

“아, 뮤비.”

그러고 보니 오늘이 뮤직비디오 공개일이었다. 뮤직비디오만 생각하면 또 속이 쓰렸다.

원래 뮤직비디오는 첫 무대를 갖기 전, 그러니까 보통 음원 발매일과 함께 공개되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래야 사람들이 더 관심을 가지고 음원 구매로도 이어지기 때문인데, 이번에 ‘가디스R’의 뮤직비디오는 제날짜에 공개가 되지 못했다. 들어본 바로는 뮤직비디오 편집본이 담긴 컴퓨터가 갑자기 고장이 나면서 새로 편집을 하게 되었다는 말을 들었다. 백업 본이라도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백업 본마저 모종의 이유로 쓰지 못하게 되었다는 말에 회사가 발칵 뒤집혔었다. 이 과정에서 해당 프로덕션의 조연출과 연출팀의 몇몇 사람들이 시말서를 쓰거나 퇴사를 했다는 이야기를 듣긴 했는데, 그건 태호에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으니, 부디 하루라도 빨리 뮤직비디오가 나올 수 있게만 해달라고 감독을 찾아가 빌기까지 했었다.

한편 에이바운스 엔터테인먼트에서도 이 일로 인해 여러 가지 말들이 나돌기 시작했다. 어떤 이들은 이번 그룹 활동 역시 밝지 않을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을 하기도 했고, 그와 반대로 악재(惡材)를 발판 삼아 도약하자는 말도 안 되는 낙관론을 펼치기도 했다.

그리고 뮤직비디오를 연출했던 감독은 그날부터 지금까지 밤을 새워가면서 재편집을 해야 했고, 일주일 넘게 집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씻지도 못해 악취를 풍기던 감독은 며칠 전 겨우 재편집본을 완성했다고 회사에 통보했다. 부랴부랴 유통사에 연락해서 뮤직비디오 공개 일자를 새로이 잡고, 그 외 다양한 매체를 통해 뮤직비디오가 나올 수 있도록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여야 했다.

그리하여, 자정에 뮤직비디오가 동영상 사이트들을 비롯해 음원 사이트에도 공개가 되었으니, 이미 한 시간 전에 뮤직비디오가 나왔을 것이다. 자기도 일이 많아 깜빡하고 있었으니, 음원차트 순위도 파악할 시간이 없던 두 사람이야 당연히 모른 채로 있었으리라.

어차피 시간도 1시를 넘었고, 무작정 연습만 계속하는 것도 아이들 컨디션에 좋지만은 않을 테니 오늘만은 잠시 걱정은 접어두고, 연습을 끝내게 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얘들아.”

음악에 맞춰 안무를 맞추고 있던 두 사람이 고개를 돌려 태호를 바라보았다.

“이리와 봐.”

“왜요?”

“보여줄 게 있어서.”

영문도 모른 채, 수건으로 이마를 훔치며 태호를 따라간 두 사람은 컴퓨터가 놓인 곳으로 향했다. 태호가 동영상 사이트를 열어 ‘리모트’라고 타이핑하자, 수련이 설마, 하며 태호의 어깨를 붙잡았다. 그리고 잠시 후, 모니터 화면으로 ‘리모트’의 뮤직비디오가 나오기 시작했다.

****

이제 2학기의 남은 날도 겨우 4일, 이번 주 금요일이면 방학을 맞이하는 학생들은 비록 몸은 교실에 있지만, 마음만은 따뜻한 방구석과 요란한 피시방에 가 있었다.

선생님들도 그런 마음을 모르지 않아, 고지식한 선생님들만 아니면 대부분 학생들을 통제하려 하기보다는 적당히 ‘지킬 것만 지키자’는 주의로 학생들을 풀어주었다.

수업 종이 울리고 선생님이 나가신 뒤의 교실은 난장판이 따로 없었다. 누구누구 목소리가 더 큰가 내기라도 하는 양, 왁자지껄 떠들어대니 책에 집중하기가 쉽지 않았다.

“단유야, 대박!”

차라리 운동장 근처 벤치로 가서 책을 보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심각하게 고민하던 단유는 지태의 호들갑에 무슨 일이냐는 눈으로 쳐다보았다.

“갤럭시즈 뮤비 대박이더라?”

“갤럭시즈 아니고 가디스R.”

“그래, 그거나 그거나. 아무튼 완전 멋지더라. 특히 나윤이라던가? 새 멤버 있잖아? 완전 여신!”

채윤도 동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봤는데, 완전 예쁘더라? 수련 누나는 원래 예뻤으니까 그러려니 했는데, 나윤이는 거기, 나무에 기대서 노래하는 장면 있잖아?”

“아, 그래, 거기!”

“완전 인형인 줄 알았다니까.”

“야, 하이파이브! 인정, 진짜 인정!”

병수까지 끼어들어서 지태와 손뼉을 맞추며 난리를 떨었다.

“그래?”

나윤이 그렇게 예쁜가, 라고 생각하던 단유는 이내 고개를 휘젓고 대신 지태에게 왜 수련은 ‘누나’고, 나윤은 그냥 ‘나윤’이라고 부르는지 물었다.

“보통은 그냥 이름만 부르지, 누가 누나, 형 이런 걸 붙여? 솔직히 수련 누나야 이 노래 나오기 전부터 알고 있었고, 또 너 때문에라도 자주 이야기를 듣다 보니 그냥 ‘누나’같은 이미지라서 그렇게 부르는 거지. 안 그래?”

“응. 그런데 단유야. 나윤 ‘누나’ 직접 봤지?”

채윤의 물음에 단유가 그렇다, 고 대답하니 배시시 웃으며 단유의 손을 잡았다.

“싸인 좀.”

채윤의 말에 마치 선착순 경쟁이 붙은 사람 모양으로 지태랑 병수가 동시에 단유에게 들러붙어 ‘나도, 나도’를 외쳤다.

“노래는 어때?”

단유는 받아주겠노라 약속한 후에야 궁금했던 질문을 던질 수 있었다.

“좋다고 했잖아? 계속 들어도 질리지 않고 좋더라. 특히 여신님의 이미지가 딱 그려지니까 더 좋은 거 있지? 나윤‘님’의 목소리에 완전 반했어!”

“그 정도로 좋아?”

“아, 그런데 스트리밍으로 들을 때랑 뮤직비디오랑 조금 다른 게 있던데, 뮤직비디오 처음에 들어가는 목소리는 뭐야? 그거 되게 분위기 있던데?”

병수의 질문에 단유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단유는 아직 뮤직비디오를 보지 않은 탓에 병수의 질문이 가리키는 부분을 알지 못했다. 그 사실을 이야기했더니, 어떻게 지가 출연하면서도 보지 않았냐고 타박하는 지태 옆에서 채윤이 재빨리 핸드폰으로 검색해서 단유 앞에 들이밀었다. 주위가 여간 소란스러운 게 아니어서, 채윤은 볼륨을 최대로 올린 후 영상을 재생시켰다.

영상의 시작은 암전에서 불이 밝혀지며 시작되었다. 작은 전구에 들어온 불은 마치 촛불처럼, 혹은 별빛처럼 은은하게 그러나 어둡지 않게 빛났고,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앉은 단유가 기도하는 자세로 손을 모으고 있었다. 그리고 단유의 등장과 동시에 무반주로 허밍이 시작되었다. 나직하지만 청명하게 들리는 허밍이 아련한 감성을 자극하다가 여러 악기가 겹쳐지고 이어 허밍 대신 ‘리모트’의 전주가 이어지면서 노래가 시작되는 뮤직비디오였다.

“내가 이거 듣자마자 탁 알아챘지.”

“뭘?”

“이거 단유, 니가 부른 거지? 노래방에서 들었던 목소리가 딱 이거더라고. 그래서 금방 알았지.”

“진짜 너야?”

병수가 놀란 얼굴로 물었다. 여전히 영상을 바라보는 단유는 가볍게 고갯짓으로 그 사실을 인정했다.

“얘 노래 잘해?”

“잘하더라? 변성기라고 하는데 변성기 같지도 않고 듣기 껄끄럽지도 않고.”

병수는 단유가 정식으로 불렀을 때의 노래 실력에 대해 호기심을 품으며 지태와 대화를 나눴고, 단유는 뮤직비디오의 끝까지 눈을 떼지 않고 지켜보았다. 단유가 시선을 들었을 때, 채윤이 감상을 물었다.

“좋은 것 같다.”

“좋은 게 아니라, 이 정도면 히트지.”

“그건 모를 일이지.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고 선호도가 다른데 모두가 이런 스토리의 뮤직비디오를 좋아할 거라고는 장담할 수 없지.”

채윤이 손가락을 좌우로 흔들었다.

“그것도 맞는 말이긴 한데, 그보다 더 분명하게 장담할 수 있는 건 있지.”

“뭐?”

“남자는 예쁜 여자를 좋아하고, 나윤누나랑 수련누나는 예쁜 여자이고, 따라서 남자들은 이 뮤비를 좋아할 거란 사실.”

단유는 피식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

수련과 나윤은 새벽에 일어나 샵에 들렀다가 오전 스케줄을 소화하고, 다시 오후 스케줄을 위해 이동을 하느라 많이 피곤했다. 잠깐의 시간도 빼기 힘들어 점심은 차 안에서 김밥을 먹는 것으로 대체하고 이동 중이었다.

“그만 보고 다 먹었으면 눈이라도 붙여.”

“좀만 더 보고요.”

수련과 나윤은 연신 새로 고침 버튼을 눌러 뮤직비디오 밑에 달린 댓글들을 읽어나가느라 정신이 없었다. 특히 나윤은 생애 처음으로 사람들로부터 ‘칭송’이라 할 만큼 과한 칭찬을 받은 탓에 피곤함도 무릅쓰고 샵에서부터 댓글 정독(精讀) 중이었다.

“오빠, 근데 단유 나래이션은 언제 녹음했대요?”

“나도 나중에 들었는데, 감독이 그냥 호기심에 시켜보았다가 괜찮아서 집어넣은 거래.”

“그냥요?”

“즉흥적으로.”

“대박이네. 단유도 나중에 노래 시켜야 하는 거 아냐?”

수련과 태호의 대화를 듣던 나윤이 자기가 읽던 부분을 들이밀며 외쳤다.

“사람들도 단유 목소리 분위기 있다고 좋다는데요?”

“알았으니까, 적당히 좀 보고 눈 좀 붙여, 이것들아! 니들 지금 눈이 시뻘겋다고!”

“약 넣으면 돼요.”

시크하게 답하면서 수련 역시 나윤처럼 댓글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노래에 대한 것보다 뮤비 자체에 대한 감상평이 대부분이었지만, 그래도 ‘나윤 여신’, ‘수련 미모 역대급’ 같은 댓글들을 읽는 게 즐겁지 않을 수 없었다.

태호도 즐겁긴 마찬가지였다. 뮤직비디오 공개 이후 뜻밖에 반응이 뜨거웠고, 덩달아 음원 순위도 상승해서 현재 42위까지 상승한 상태였다. 쟁쟁한 음원 강자들이 포진한 차트에서 42위라는 성적을 거둔 것만으로도 이미 회사에서는 난리가 난 상황. 하지만 박 이사가 거드름을 피우며 ‘돈값은 해야지’라는 말에 다시 열혈 모드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무튼, 비록 시작은 초라했지만 끝은 창대할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싹을 틔우긴 했다. 이제 태호 자신의 역할은 그 싹이 비바람에 꺾이지 않고 계속 잘 자랄 수 있게 지키고 보호하고 가꾸는 일이었다.

“야, 이 싹···아니, 이것들아! 핸드폰 뺏기 전에 빨리 닫고 자.”

태호가 버럭, 하자 그제야 핸드폰을 허리 뒤로 감추며 눈을 감는 두 사람, 가디스R이었다.

****

하지만 모두가 마냥 즐거운 것만은 아니었으니, 수영은 보고 있던 모니터를 꺼버리고 연습실 벽에 붙은 소파에 드러누웠다. 아직 다른 사람은 연습실로 오지 않은 상태. 그리고 지수는 아르바이트 때문에 늦거나 오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러지는 않겠지만, 지수는 거의 반쯤은 가수를 포기한 사람처럼 보였다. 일전 멤버간의 갈등이 있었을 때, 그리고 그 갈등이 해결되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현실의 벽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는 않았다.

청개구리같은 성격이라고 자부하는 자신도 이제는 더 이상 고집부리지 말고, 어머니의 말씀을 따라야 하는 게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니, 가정 형편이 좋지 않은 지수는 어지간할까 싶었다.

가디스R의 성공은 갤럭시즈의 차기작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는 말에 희망을 품었던 것이 바로 엊그제였는데, 지금은 가디스R 때문에라도 갤럭시즈를 해체하려 들지 않을까 걱정이 들었다.

‘만약 갤럭시즈가 해체한다면?’

갤럭시즈에는 수영의 자리가 있지만, 다른 곳에는 자리가 없었다. 새로 걸그룹이 생긴다고 해도 자신의 자리가 있을지는 미지수였고, 확률로 따져도 굉장히 낮은 확률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걸그룹의 평균연령이 점점 낮아지고 있는 현실에서 갤럭시즈 외의 걸그룹이 만들어질 경우, 자신은 내침을 당할 확률이 높았기 때문이다.

양(陽)이 있으면 음(陰)이 있다던가? 가디스R의 성공을, 아끼는 동생의 승승장구를 진심으로 축하해주지 못한다는 사실에 수영은 눈을 감았다. 긴 눈썹 끝에 촉촉함이 배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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