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멤버 더 네임-313화 (313/956)

Make-up(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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샵을 들러 치장을 마치고 방송국으로 향한 밴이 곧 목적지에 도달할 무렵, 단유도 잠에서 깨어났다.

“가자.”

명수도 졸린 눈을 비비며 단유를 따라 집을 나섰다. 인근 공원에 도착하여 몸을 풀기 시작할 때, 명수가 하품하다가 생각났다는 듯 손뼉을 쳤다.

“오늘 맞지?”

“···응.”

“내일이었으면 같이 가서 응원도 했을 텐데, 아쉽다.”

“내일도 촬영 있을걸?”

“아, 그래? 그럼 같이 갈래?”

단유는 머리를 긁적이며 생각하다 결정을 미루기로 했다.

“정신없을 텐데, 우리가 가서 괜히 방해만 하면 어떡해? 일단 태호 형한테 물어보고 결정하자.”

“오키.”

단유는 언제나 해왔던 익숙한 운동으로 몸을 풀기 시작했다. 하지만 덤덤해 보이는 표정과 달리, 평소와는 조금 다르게 신경이 쓰이는 것도 부정할 순 없었다.

이번 활동에 사활을 걸었다는 회사나 태호형의 태도도 그렇지만, 특히나 사명감을 느끼며 무리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 만큼 필사적인 수련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들의 성공이 단유에게 어떤 물질적 이익을 주는 것도, 가시적 혜택이 주어지는 것도 아니었지만, 이렇게 신경이 쓰인다는 것은 그만큼 수련과 갤럭시즈라는 그룹의 멤버들 모두가 단유에게 가까워졌다는 방증이었다.

알게 모르게 이만큼이나 가까워졌다는 것이 스스로도 신기하고, 또 겁이 나는 단유였다.

운동을 마치고 아침을 먹은 뒤, 다시 등교하는 동안 명수가 태호형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

“첫날이니까 바쁘겠지.”

단유는 적당한 거리를 둬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자기 일상에 방해가 되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런 결심에도 좀처럼 수업에 집중이 잘되지 않아 애를 먹던 단유는 1교시가 끝날 무렵에야 겨우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학교에서는 공부해야지. 집중하자.’

어차피 시험도 끝난 마당이라 느슨한 수업이긴 했지만.

“단유야.”

명수가 핸드폰을 들고 와서 화면을 보여줄 때, 단유는 저도 모르게 피식 웃고 말았다.

“신인 걸그룹이래. 그래도 출근 사진이 이렇게 찍힌 거 보면 별로 문제는 없는 것 같지?”

“그렇네.”

새벽에 방송국으로 ‘출근’하는 가수들을 찍어, 그것을 기사화 시킬 줄은 상상도 못 했던 단유는 그 화면이 신기하기만 했다. ‘출근 중인 신인 걸그룹 「가디스R」, 팬들에게 90도 인사.’ 라고 적힌 기사 제목도 유치하고, 찍힌 사진도 썩 잘 나온 사진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환하게 웃고 있는 두 사람을 보니 한결 마음이 놓이는 기분이었다.

“야, 노래 괜찮던데?”

어느새 옆에 와서 단유와 함께 명수의 핸드폰을 보던 지태가 말했다.

“너 들었어?”

“당연히 들었지. 모르는 사람도 아니고 말이야. 호기심에 듣긴 했는데 나쁘지 않던데?”

“스트리밍은 계속했냐?”

“아니, 뭐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 않냐?”

“야, 오늘부터 스트리밍해. 아니 지금부터 해.”

명수는 자기가 직접 해주겠다며 지태의 핸드폰을 뺏으려 들었고, 지태는 놀란 얼굴로 명수의 손을 피해 달아났다. 두 사람이 복도를 뛰어다니며 놀고 있을 때, 채윤도 듣기 좋았다며, 이번 노래는 성공할 것 같다, 고 말해 단유의 기분이 한결 좋아지도록 한몫을 했다.

“잘 될 거야.”

딱히 채윤에게 하는 말은 아니었지만, 채윤은 단유의 말에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

사전녹화를 마치고 다시 대기실로 돌아온 수련과 나윤은 함께 대기실을 쓰던 이들에게 인사를 한 뒤, 구석 쪽 자리로 이동했다.

“수고했어, 나윤아.”

“언니도요. 실수할까 봐 죽는 줄 알았어요.”

“이 정도로 죽긴 왜 죽어. 실수 좀 하면 어때? 다음에 더 잘하면 되지.”

“그래도 첫 무대잖아요.”

쇼케이스도 없이 방송으로 데뷔무대를 가진 듀엣 ‘가디스R’의 나윤은 비록 시작은 초라하지만, 끝은 창대하겠지, 라고 중얼거렸다.

“수고했다.”

스태프들에게 인사를 마치고 돌아온 태호가 두 사람을 다독였다.

“조금 있다가 모니터를 하겠지만, 두 사람 다 실수 없이 잘했다. 솔직히 라이브라서 걱정을 했는데, 두 사람 다 잘했어.”

“저 중간에 음정 나갔던 것 같은데, 아녜요?”

“티 안 났어. 걱정하지 마. 그리고 안무 중에 음정 조금 나가는 건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일단은 쉬고 있어. 이제 오후 생방 때까지 대기해야 하니까.”

만약 두 곡을 들고 나왔다면, 사전녹화로 한 곡을 부르고 이후 생방에서 한 곡을 더 부를 수도 있었겠지만, 가난하고 자비 없는 기획사의 전략 덕택에 단 한 곡의 싱글로 승부를 보는 가디스R은 그런 혜택을 누릴 수 없었다.

“그리고 조금 전에 수영이한테서 전화 왔었다.”

“언제요?”

“녹화 들어가기 전에. 긴장할까 봐 말은 안 했는데 열심히 하라고 응원하더라. 다른 멤버들도 다 같이 모여서 생방 기다리고 있나 본데, 나중에··· 아니다. 지금 전화해 봐.”

“네!”

수련은 태호에게 핸드폰을 받아 멤버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멤버들이 전화를 받자 눈에 눈물이 고여, 얼른 고개를 치켜든 수련은 나윤에게 핸드폰은 건넸다. 나윤이 대신 인사를 하면서 대화를 했고, 잠시 후 수련이 겨우 마음을 진정시키고 대화를 이어갔다.

「울지마, 바보야.」

명지의 장난스런 대꾸에 피식 웃음을 터뜨린 수련은 억지로 눈물을 참아내며 멤버들의 응원에 감사를 전했다. 긴 통화가 끝난 뒤 나윤에게도 통화를 하라며 핸드폰을 건넸다. 나윤은 오래 망설이다가 겨우 통화버튼을 누를 수 있었다.

“···엄마.”

이름만 뱉어도 목이 메는지, 나윤은 말을 잇지 못했고, 겨우 목에 힘을 주고 문장을 맺지 못하는 대화가 이어지면서 나윤의 눈물샘도 폭포수처럼 터져버렸다.

그리고 그때 태호는 아이들에게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앉아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이제 시작이다. 나윤아.’

두 사람이 똑같이 눈물을 흘려도 그 눈물의 의미는 판이하였다. 수련의 경우, 앞으로 닥칠 힘겨운 싸움에 대한 부담감과 멤버들에 대한 그리움, 소명, 사명감이 눈물샘을 자극했을 터이고, 반대로 나윤은 데뷔에 대한 기쁨, 첫 무대를 무사히 마친 것에 대한 안도가 눈물로 드러났을 터였다.

하지만 그런 눈물의 의미를 헤아려봐야 무슨 소용인가. 저들이 앞으로 고통과 좌절의 시간을 겪지 않게끔, 팬들 앞에서 밝은 웃음을 지을 수 있게끔 도울 방법을 찾기에도 바쁜데 말이다.

‘이번에는 꼭 성공하자.’

소속 가수가 대박 나서 음원차트에서 1위 하는 것도 성공이지만, 태호는 목표를 조금 낮추기로 했다.

‘부디 웃으면서 활동을 마무리할 수 있기를.’

태호는 수첩을 꺼내 들고, 당장 오늘 저녁 스케줄과 내일 아침 스케줄을 점검했다.

“여기요.”

나윤이 토끼처럼 빨간 눈을 하고 태호에게 핸드폰을 내밀었다. 태호는 손짓으로 스타일리스트를 불러 나윤의 얼굴을 가리켜 보였다.

“근데요.”

다시 수첩으로 시선을 돌리려는 태호를 붙잡은 나윤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우리 몇 등 했어요?”

레슨을 받느라 바빴던 것도 있지만, 일부러 첫방송 끝날 때까지 음원 순위는 보지 말라고 말해뒀던 탓에 수련과 나윤은 아직 음원의 순위를 알지 못했다. 보지 말라 한 것은 행여 첫 방송 준비에 차질이 생길까 걱정했던 마음 때문이었고, 첫 무대를 마치고 나니 3일 밤낮을 물 없이 살았던 사람처럼 목마른 사람 얼굴을 하고 순위를 물어보는 나윤이었다.

“생방 끝나고 말해줄게. 생방도 방송이야. 특히 표정 연기가 잘 안 되면 그대로 전파를 타고 전국에 얼굴이 팔려야 하는데, 괜찮겠어?”

“···그렇게 안 좋아요?”

좋으면 당장 말해줄 일인데, 저렇게 말하기를 꺼리는 모습을 보니 어쩐지 결과가 좋지 않은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태호는 머리를 긁적이다가 핸드폰으로 음원사이트에 들어가 차트를 열어 나윤의 눈에 들이밀었다.

“됐어?”

나윤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한참을 액정만 바라보더니, 수련을 향해 뒤돌아서며 외쳤다.

“언니!”

수련은 나윤의 반응에 혹시 하는 기대감과 설마, 하는 의혹이 동시에 들었다. 수련 역시 궁금하긴 마찬가지.

“왜 그러는데?”

“언니! 언니!”

수련에게 다가와 폴짝 뛰는 나윤의 반응이 마치 실시간검색 1위, 아니 음원 1위를 찍은 가수처럼 보일 정도였다.

“1등이라도 했어?”

“네? 아, 아니요. 그래도 그것만큼 좋아요!”

“무슨 말이야, 그게.”

“우리 이름이, 저기 있단 말이에요.”

한참 후에야 음원 차트에 자신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는 그 사실 자체가 좋아 방방 뛰었다는 나윤의 설명에 수련이 혀를 차며 딱밤을 때렸다. 이마를 문지르면서도 좋다고 실실대는 나윤의 표정에 수련도 어이없다는 듯 웃어버리고 말았지만, 사실 음원 성적도 나쁘지는 않았다. 아니, 조금 애매하지만 적어도 갤럭시즈보다는 괜찮았다.

하지만 이런 이들과 달리 애매한 표정으로 순위 차트를 바라보는 사람도 있었다.

“59위?”

명수는 팔짱을 끼고 책상 위에 올려진 핸드폰을 보며 끙, 앓는 소리를 냈다.

“이거 좋은 거야, 나쁜 거야?”

“글쎄. 아직은 잘 모르지만 좀 더 시간이 지나면 정확히 알 수 있지 않을까?”

단유의 대답을 다 듣기도 전에 명수는 핸드폰을 조작해서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진구냐? 아까 아침에 이야기했던 거, 그래. 가디스R, 리모트,···스트리밍 하고 있지? 그거 계속해라. 오늘 계속해야 돼. 끊는다. ···여보세요? 나다. 아침에 이야기한 거 있잖아.···하고 있어? 역시! 오늘 계속해야 순위 올라가니까, 열심히 해라. 그래, 수고.”

명수는 열심히 전화를 돌려 영업(?)을 했고, 단유는 뒤돌아서 방으로 돌아갔다. 저럴까 봐 거리를 둬야 한다고 했던 것이다. 단유는 고개를 저으며 책장에서 책을 꺼내 펼치고는 천천히, 꼼꼼하게 책을 읽어나갔다. 그리고 10분 후, 단유는 책을 덮었다.

“선생님.”

“응?”

“뭐 하세요?”

하은은 핸드폰을 들어 흔들어 보였다. 무음으로 해놓긴 했지만, ‘리모트’가 열심히 스트리밍되는 중이었다.

“명수가 이래놓고 갔다. 끄면 반항할 거라고 협박하길래.”

짓궂은 웃음을 지으면서 핸드폰을 소파에 던져둔 하은은 단유에게 용건을 물었다. 단유는 솔직하게 이 일 때문에 집중이 잘 안 된다고 말했다.

“그래서 선생님이랑 같이 공부하면 괜찮지 않을까 싶어서요.”

“비슷할 거 같은데?”

“···그렇죠?”

“가족, 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너랑 명수, 그리고 그쪽 분들이 가까운 사이긴 하잖아. 니가 그렇게 마음 쓰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야.”

하은은 단유를 옆에 앉히고 어깨동무를 했다.

“내가 공부할 때 말이야, 그런 경우가 있었어. 다른 사람과 함께 하는 것을 되게 쑥스러워하고 앞에 나서는 걸 불편해하는 아이들. 또 다른 사람의 시선이 겁이 나서 고개를 숙이고 다니는 아이들도 있었고, 심하면 사람을 무서워하면서 사람을 만나는 걸 꺼리는 아이들도 있더라고. 그런 아이들을 만나서 상담할 때 말이야, 중요한 건 같은 편이라는 생각을 심어주는 일이었어. 우리는 함께야. 같이 살고 같은 밥을 먹으면서 같은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상대의 생각을 존중하고, 상대의 미래를 걱정해주고 도와준다는 걸 느끼게 하는 것이지.”

단유는 하은의 말을 진지하게 경청했다.

“상대에 대해 편하게 느끼고, 따뜻한 감정을 받으며, 호의를 주고받는 관계라면 같은 편이야. 그리고 같은 편에게는 더 아껴주고, 더 신경 쓰게 되는 거야. 때로는 자기 자신에 대한 걱정보다 더 많이, 더 깊게 걱정해주고 안타까워하고 위로해주는 거지. 마치, 니가 명수를 생각하는 것처럼? 그리고 내가 너희들을 생각하는 것처럼 말이야. 그리고 지금 니가 신경 쓰는 것도 그분들이 너의 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야. 그럼 그게 시간 낭비일까? 감정의 불필요한 소비일까? 그건 아니야. 그 사람에 대해 신경 쓰고 걱정해주는 그 마음은 반드시 자기에게로 돌아오게 돼 있어. 니가 신경 쓰는 만큼 너의 마음도 자라고 튼튼해지고 따뜻해지지.”

단유는 하은을 눈과 코, 입술과 미소를 지켜보았다.

“선생님.”

“응?”

“심심하셨죠?”

하은은 단유의 어깨에 걸친 팔에 힘을 주고 단유를 흔들었다.

“이 쪼꼬만 놈이 이제는 선생님을 가지고 놀려고 그래!”

단유는 웃음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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