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ke-up(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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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도 겪어본 일이긴 했지만, 촬영장은 언제나 분주했다. 좁은 장소에 많은 사람들이 북적대는 탓에 분주해 보이기도 하지만, 사람이 빠지더라도 수없이 많은 조명과, 촬영장비들, 정리되지 않은 채 바닥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전선들과 정리를 기다리는 소품들, 세트 수리용 망치와 목이 콱 멜 것 같은 먼지들이 돌아다니는 탓에 분주해 보이는 것도 있었다.
분주해 보인다는 것은 활기 차다는 것과 일맥상통할까? 하지만 풀풀 날리는 먼지들을 휘휘 젓는 대본들과 고성과 아우성 속에서 검은 그림자를 드리우며 흐느적거리는 스태프들을 보면 활기 차다는 인상보다 안타까움을 느끼는 게 옳을 것 같았다.
주인공은 두 사람 혹은 세 사람. 몇 안 되는 출연진들이 보다 화려한 이미지 속에서 살아날 수 있게끔 돕는 그들의 노고를 잊어선 안 되겠지만, 그리고 그들 역시 그들의 피땀 서린 노력의 결과물이 화려하게 세상에 선보일 때의 희열을 희망하고 있겠지만, 당장은 시간에 쫓겨 신경질을 부리거나 잠을 쫓기 위해 악을 쓰거나 이도 저도 아닌 이유로 지적받는 것에 화가 나 발을 구르는 ‘약자들’이었다.
“수고하십니다.”
그리고 그 ‘약자들’을 살살 달래며 부디 무사히 촬영이 마쳐질 수 있도록 신경 써야 할 사람은 바로 태호였다. 차에 싣고 왔던 음료수 박스들을 꺼내서―수련과 나윤을 데리고 왔던 로드 매니저가 눈치 빠르게 다가와 태호를 도왔다―스태프들에게 하나씩 건네며 인사를 했다.
“잘 부탁드립니다. 감독님.”
“저희가 할 말이죠, 매니저님.”
부디 애들이 긴 시간에 녹초가 되어 얼굴을 찡그리거나, 계속된 NG 컷에 늘어지는 모습이 보이지 않도록 잘 다독여달라는 뜻을 함축하여 전달하는 감독이었다. 태호는 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여 보인 뒤, 다른 스태프들에게도 음료수를 돌렸다.
그리고 그 시간, 스타일리스트가 수련과 나윤, 단유를 데리고 임시로 꾸며진 대기실로 데리고 가 정성껏 매만지기 시작했다. 수련과 나윤의 경우는 오기 전에 샵에 들러서 꾸며놓은 터라 간단하게 정리만 하면 되는 수준이었지만, 단유의 경우는 집에서 바로 왔기 때문에 얼굴부터 머리까지 모두 손을 봐야 했다.
“도경아, 옷은?”
“저기요.”
태호의 물음에 스타일리스트는 단유의 머리를 만지던 중에도 손을 떼지 않고 대신 턱짓으로 구석을 가리켜 보였다. 태호는 의상들을 확인한 뒤, 수고하라는 짤막한 말을 남기고 대기실을 나갔다.
수련이 살짝 지친 얼굴의 나윤을 보며 장난을 치려다, 자신도 조금 지치는지 소파에 기대서 숨을 길게 토해냈다. 그 낌새를 눈치챈 나윤이 얼른 일어나 화장대 위에 놓여 있던 음료수 하나를 꺼내 건넸다.
“마셔요, 언니.”
“고마워.”
사실 수련도 긴장하긴 마찬가지였다. 어쩌면 나윤보다 더 긴장했을 수도 있지만, 오랜 경력과 선배로서의 자존심이 긴장감을 감추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갤럭시즈로서 세 번의 활동이 모두 망했었고, 다시 새롭게 출발할 기회를 얻은 유일한 멤버로서 이번 활동에 갤럭시즈의 향후 활동 방향이 정해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비록 ‘가디스R’로 나서긴 해도, 수련의 고향은 ‘갤럭시즈’였고 수련은 멤버들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눈 좀 붙여요.”
“괜찮아.”
“새벽까지 연습하느라고 피곤하실 텐데.”
“야, 넌 같이 안 했니? 너야말로 눈 좀 붙여. 나중에 졸려서 실수하면 큰일 나.”
“전 아직 어리잖아요?”
“야, 너랑 나랑 몇 살 차이 난다고 그러니? 웃긴다?”
장난스러운 수련의 말에 나윤이 배시시 웃으며 수련의 팔에 매달렸다.
“어리다고 놀리지 말아요~.”
나윤의 선창에 수련이 따라 부르며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만들어질 때, 스타일리스트가 한마디 했다.
“자더라도 머리 눕히지 말고 자.”
“네.”
단유는 여전히 거울 속 자신의 모습만 쳐다보면서 자신의 변신과정을 머릿속에 새겨넣고 있었다. 별달리 하는 것도 없는 것 같은데, 스타일리스트가 몇 번 매만지면 평소 보던 자신과 전혀 다른 얼굴과 인상을 가진 사람이 나타났다.
“괜찮지?”
스타일리스트는 머리를 끝내고 단유에게 물었다.
“괜찮은데요?”
“전의 뮤직비디오 찍을 때도 미래가 했었나?”
미래는 이전 갤럭시즈 때의 스타일리스트였다.
“예. 그 누나는 그만둔 거예요?”
대답은 수련에게서 나왔다.
“미래 언니는 다른 팀에 붙었어.”
갤럭시즈가 활동을 쉬는 동안, 놀고 있을 수만은 없었기에 다른 팀에서 활동하는 모양이었다.
“그 전 뮤직비디오 나온 거 봤을 때는 꽤 어리게 봤었는데, 실물은 좀 다르네.”
“요즘 아이들은 금방 쑥쑥 자라서 그래요. 단유 쟤는 더 그렇고요. 일주일만 있다가 봐도 몰라보게 커져 있다니깐.”
수련은 눈을 감은 채 중얼거리듯 대답했다.
“그럼 이제 누나가 계속하시는 거예요?”
스타일리스트는 단유의 얼굴에 프라이머를 콕콕 찍어 펴 바르기 시작했다.
“아니, 일단은 오늘만. 입 열지 말고. ···나중에 어떻게 계약이 잘 되면 계속하겠지만, 아직 회사랑 계약은 안 했거든.”
“언니, 계속했으면 좋겠어요.”
나윤의 말에 스타일리스트가 호방한 웃음을 터뜨렸다.
“말만이라도 고맙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언니 정말 실력이 좋은 거 같아요.”
“그 말 나중에 미래한테 해도 돼?”
“에이, 언니. 잘 알면서 그런다.”
소소한 대화가 살짝이나마 긴장감을 떨어뜨려 주는지 아까보다 훨씬 편안한 웃음소리처럼 들렸다.
“그런데 넌 어쩜 피부가 이래? 여자 피부보다 더 고운 거 같아.”
“걔 피부 좋죠? 가만 보니까 해를 안 봐서 그런 거 같아.”
“해를 왜 안 봐?”
“걔 공부 되게 잘하는 애예요. 맨날 공부만 한다고 학교랑 집에서 책만 보고 있을 걸요?”
“공부 잘하니?”
단유의 피부가 아무리 하얗다 한들, 조명 앞에서 균일한 피부색이 드러나도록 하기 위해서는 파운데이션이 필요했다. 스타일리스트는 쿠션에 잔뜩 파운데이션을 묻힌 후, 단유의 얼굴에 찍어 바르려다 수련의 말에 궁금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이번에도 대답은 수련에게서 나왔다.
“전교 1등이래요.”
“진짜? 이거 보통 사람이 아니었구나? 잘생기고 공부도 잘하고. 혹시 노래도 잘하는 거 아니야? 그러면 완전 사기 캐릭터겠는데?”
“어, 그러고 보니 단유 노래는 들어본 적이 없네? 단유야, 노래 한 번 불러봐라. 나윤아, 박수!”
나윤이 실눈을 뜨며 손뼉을 마주쳤다. 수련이 그 모습을 보고 피식 웃으며 나윤의 눈을 살짝 덮어주었다. 나윤은 다시 눈을 감고, 조용히 숨을 들이쉬었다 내쉬기 시작했다.
“저런 거 보면 얘네들도 참 고생은 고생이다.”
“이게 무슨 고생이라고. 그렇게 따지면 언니도 고생이죠. 우리가 새벽에 일어나면, 언니도 같이 새벽에 일어나야 하는 인생인데.”
“그래, 그 말도 맞다. 이 업계에 들어온 이상 다 거기서 거기지. 거기서 거긴데, 그래도 너네는 대박만 나면 그야말로 우상이 되는 거잖니? 반면에 우리는 그런 성공이 없다는 게 차이지.”
“가끔 TV에 유명한 스타일리스트 나오는 분들 있잖아요?”
“우리나라에 수많은 스타일리스트 중에서 단 몇 사람이지. 대부분은 다 배 쫄쫄 굶으면서 화장품 챙기고, 의상 챙기고 야단법석을 떨어야 먹고 산다. 나도 그렇고.”
너 다크 서클이 좀 있네, 라고 중얼거리며 단유의 눈 밑을 중점적으로 가리기 시작했다.
“우리도 마찬가지죠. 그래도 언니는 먹고 살 기술이라도 있지만, 우린 뭐예요. 성공 못 하면 밤무대 가수도 못하는 아이돌이라고요. 쫄쫄 굶는 정도가 아니라 미래가 달린 일인걸요.”
“에휴, 내가 말을 잘 못 꺼냈네.”
아이라이너를 들고 단유의 눈 주위를 섬세하게 그려나가던 스타일리스트는 수련을 흘깃 쳐다보았다.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 있어. 어떤 여자 아이돌 그룹이 연말 시상식에서 무대를 꾸미고 있을 때, 어떤 그룹은 연습실 바닥에서 치킨 먹으면서 그 장면을 TV로 보며 눈물 흘렸다고. 생각해보면 정말 냉정한 세계야. 여긴.”
노력이 성공을 결정짓지 못해, 라는 말은 속으로 삼키는 스타일리스트였다. 그들이 늘 외치는 말이 ‘열심히 하겠습니다’, ‘노력하겠습니다’ 라는 말이 아니던가. 하지만 얼마 안 되는 경력이지만 이 바닥에서 몇 년을 굴렀더니, ‘노력’이란 단어가, ‘최선’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허망하고 슬픈 의미인지를 깊이 체감할 수 있었다.
수련의 말대로 자신은 기술이라도 있지만, 저들은 그저 춤추고 노래하는 기술밖에는 없었다. 그리고 이 바닥에서 그 기술이 먹히지 않으면, 대중들에게 인정받지 않으면 그대로 낙오하고 만다.
“혹시 너 그거 들었니?”
“뭐요?”
잠시 눈을 감았던 수련이 눈을 뜨고 스타일리스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옆에서 나윤의 규칙적인 숨소리가 솔깃하게 들렸다.
“하이튠 엔터테인먼트의 연습생 한 명이 자살한 거.”
“아.”
수련은 보일 듯 말 듯 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보지 못했지만, 수련의 분위기에 스타일리스트는 대답을 들은 셈 쳤다.
걸그룹이 되기 위해 오래 시간에 걸쳐 연습하는 연습생들이 넘쳐나는 시대였지만, 그 모두가 데뷔의 길을 걷는 것은 아니었다. 어떤 이는 스스로 포기하고 다른 길을 선택하지만, 또 어떤 이는 오로지 꿈을 위해서 묵묵히 정진하기도 한다.
그 연습생도 묵묵히 정진하던 연습생들 중 하나였다. 무려 8년을 연습했고, 그 사이 몇 번의 데뷔 기회가 있었지만 여러 가지 사정으로 데뷔가 엎어지면서 연습 기간이 길어졌다. 8년을 연습한 끝에 그녀에게 날아온 것은 회사의 계약 해지 통보였다. 더 이상 걸그룹으로 데뷔할 기회가 없음을 확인한 연습생은 그날 짐을 싸서 숙소를 나섰고, 지방의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날 밤, 13층 아파트에서 창문을 열고 뛰어내렸다.
뉴스에서는 짤막한 단신으로만 났던 일이지만, 연습생들 사이에서는, 그리고 걸그룹들 사이에서는 사건이 터지자마자 널리 알려진 일이었다.
“부탁이니까, 제발 너희들의 성공을 그런 기준으로 잡지 말았으면 좋겠어. 나도 처음부터 스타일리스트를 꿈꿨던 것은 아니고 어쩌다 보니 이 일을 하게 되면서 지금 벌써 7년째 일하고 있긴 하다만, 사람의 운명이란 게 한 가지만 있는 건 아닌 것 같더라. 한 가지 길이 무너졌다고, 인생이 무너지는 건 아니야. 또 다른 인생의 길이 열렸고, 그 길을 향해 다시 도전하는 것 또한 인생 아니겠니? 에구, 내가 지금 정신이 오락가락해서 무슨 말 하는지도 모르겠다.”
스타일리스트는 단유의 입술에 립밤을 바르는 것을 메이크업을 마무리했다.
“사람이 꿈을 꾸는 건 좋지만, 그 꿈에만 매달리는 건 아니라고 봐. 삶에 대한 고민도 꽤 중요하다고. 알겠니, 꼬마야?”
스타일리스트는 단유의 입꼬리를 엄지로 살짝 훔쳐내며 윙크를 했다.
“준비 다 됐어?”
그리고 때마침 태호가 대기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어? 분위기 왜 이래?”
태호는 이질적인 대기실 분위기를 알아챘다.
“죄송해요. 제가 이상한 소리를 해서···.”
스타일리스트의 사과는 수련에게 막혔다.
“아니에요. 조금 피곤해서 그래요. 카메라 앞에 서면 또 다를 거예요. 프로잖아요, 우린.”
수련은 맑은 웃음을 지어 보인 뒤, 나윤의 어깨를 흔들어 깨웠다.
“어, 언니?”
잠이 덜 깬 목소리에 수련이 나윤의 귀에 속삭였다.
“단유가 너 침 흘리며 자는 거 봤어.”
나윤은 깜짝 놀란 얼굴을 하고는 즉시 몸을 틀었다. 수련을 바라보는 나윤의 얼굴이 울상이 되었다.
“진짜요? 어떻게? 많이 흘렸어요?”
수련은 피식 웃으며 잠 다 깼으면 일어나, 라고 말을 건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언니, 잠깐만요, 언니! 언니!”
덩달아 대기실을 나서던 나윤이 흘깃 단유를 쳐다보았다가 재빨리 고개를 돌리고 대기실을 나갔다.
“저는요?”
“너는 좀 더 대기해도 돼. 쟤들 뷰티 컷부터 찍어보자고 해서 말이야.”
태호가 다시 나가고, 외부의 분주함이 다시 차단되자 하얀 조명이 비치는 화장대 거울에 낯선 얼굴이 단유를 바라보고 있었다.
“공부 잘한다고 했지? 너도 공부 열심히 해.”
낯선 얼굴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혹자는 꿈을 이루기 위해 새벽잠도 줄이고 연습을 하고 무대에 오르는데, 또 어떤 사람은 꿈이 좌절되었다는 이유로 죽음을 선택했다. 도대체 ‘꿈’이 뭐길래?
‘내 꿈은 뭘까?’
참 쉽게 답이 나오지 않는 질문이었다. 이제는 속 시원하게 나왔으면 좋으련만. 거울 속 얼굴의 낯설음 만큼이나 거리감이 느껴지는, ‘꿈의 정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