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멤버 더 네임-301화 (301/956)

Defuser(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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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유는 핸드폰을 손에 들었다. 그리고 핸드폰을 앞뒤로 둘러보다가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는 ‘도마뱀’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오른손 검지를 들어, 핸드폰의 지문인식 버튼에 가져다 대었더니 핸드폰의 잠김이 풀렸다.

마침 이 남자의 핸드폰이 병수가 쓰던 핸드폰과 같은 모양이길래 혹시나 했는데 역시 그 방법이 맞았다. 최근 주변의 사람들에게 관심을 쏟고 있던 터라 가능했던 거지, 만약 여름 전이었다면 이런 걸 알지도 못했을 단유였다.

통화목록에서 번호를 확인한 단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

“이 새끼들 믿어도 돼?”

“그놈들 원래 오늘만 사는 놈들이라 뵈는 게 없긴 한데, 그래도 시킨 일은 잘한다고 하더라.”

“그런 놈들이 이렇게 건방지게 굴어? 전화도 지가 먼저 끊잖아.”

“지금 막 작업 끝나서 아마 신경이 날카롭겠지. 당신이 이해해.”

숙희는 짜증 난 얼굴로 들고 있던 핸드폰을 소파 위에 던져 놓았다. 그리고 손톱 아래의 살을 뜯기 시작했다.

“네일 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다면서?”

“뭐? 아, 그냥 긴장돼서 그런 거야. 그리고 나중에 또 받으면 되지.”

어차피 일이 잘 마무리만 된다면, 이깟 살 조금 뜯겨 나가는 것쯤이야 아무것도 아니니까. 게다가 손에 쥐어질 돈을 생각한다면 네일 따위 1년 매일 바꿔도 무방하리라.

“당신은 집 좀 알아봤어?”

“이미 예전에 알아놔 뒀으니까, 신경 쓰지 마.”

문득 시선을 내려 손가락을 살피니, 손톱 아래 굳은살이 깊게 뜯겨 나가면서 아릿한 통증과 함께 붉은 피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어? 피?”

“호들갑 떨지 마. 별거 아니야.”

맞은 편에서 말동무를 해주던 젊은 남자가 얼른 탁자로 달려가 티슈 몇 장을 뽑아왔다.

“···고마워.”

“잘 될 거야.”

숙희는 고개를 끄덕이고 남자를 보다가 살짝 눈웃음을 지었다. 눈가의 깊게 새겨진 주름이 남자의 눈에 들어왔다. 남자는 선한 웃음을 지으며 숙희의 머리를 살며시 쓰다듬어 주었다.

그때였다. 숙희의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숙희가 화들짝 놀랐다가 핸드폰을 바라보니 망할 녀석들의 전화번호가 찍혀 있었다.

“뭐야?”

그런데 핸드폰에서는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여보세요?”

잠시 후, 핸드폰이 끊어졌다. 붉은 얼굴의 숙희가 벌떡 일어나자, 순박해 보이던 남자 역시 얼른 따라 일어나며 물었다.

“뭔데?”

“몰라. 그런데 이상해. 뭔가 불길해.”

숙희가 다시 전화를 걸었지만, 상대편에서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15초 정도가 울린 후, 통화를 연결할 수 없다는 음성이 나왔다. 숙희가 흔들리는 눈빛을 감추지 못하고 남자를 바라보자, 남자 역시 입술을 살짝 깨물며 숙희를 바라보았다.

****

“이거 누구예요?”

물어보는 단유의 눈은 여전히 침착했다.

“몰라, 난. 통화는 다 ‘도마뱀’이 했어.”

사라질 때와 마찬가지로 갑자기 보이지 않는 사각에서 소리 없이 나타난 단유가 핸드폰을 들고 와서 물었다. ‘쭈꾸미’는 정말 잘못 걸렸다는 생각에 입이 바싹 말라, 대답도 쉽지 않았다. ‘도마뱀’은 보이지도 않는데, 귀신 같은 꼬마는 ‘도마뱀’의 핸드폰을 들고 와서 통화목록을 들이밀고 있었다. 게다가 조금 전까지 옆에서 무슨 일이냐고 어리둥절해서 멍청하게 굴던 ‘꼬마놈’은 또 어느 사이엔가 사라져서 보이지 않았다. 정말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린데, 웃어넘길 수 없는 소리라는 현실에 ‘쭈꾸미’는 미칠 것 같았다.

“아실 것 같은데요?”

“···진짜 몰라.”

“아시는 내용을 말씀해 주신다면, 아저씨 발은 풀어드릴게요.”

“···진짜 모른다니까.”

“팔도 풀어드릴게요.”

“···진짜?”

“다리 먼저 풀어드릴까요?”

‘쭈꾸미’는 눈치를 보다가 몸을 움직여 묶인 다리를 단유 쪽으로 밀었다. 단유가 스스럼없이 다리에 묶인 밧줄을 풀어주자, ‘쭈꾸미’의 얼굴빛이 변했다. 희망이 생긴 것이다.

“이제 말해주세요. 말해주시면 팔도 풀어드릴게요.”

“···그 여자, 성은 모르겠고 이름은 숙희라고 하는데, 그 여자가 정보를 줬어. 우리한테 너희들 정보를 주면서 납치를 해 달라고 했어. 그리고 성공하면 50% 보수 주기로 했고.”

“숙희요?”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단유가 의아해하자, ‘쭈꾸미’는 자신이 아는 정보를 털어놓았다. 어차피 일은 그르쳤다. 어차피 그르친 거, 자신은 도망가더라도 깽판이나 놓자는 심정이었다. 애초에 그쪽에서 제대로 된 정보를 주지 않아서 이 사달이 난 것이니까.

“내가 알기로는 너희 집에 같이 사는 ‘선생님’인가 하는 사람 친군가 보더라고. 그 사람한테서 정보를 얻었대.”

“정보요?”

“그래. 니가 연성 그룹 연회장 막내 손자의 숨겨진 아들이라고.”

“제가요?”

‘쭈꾸미’는 너무 놀란 표정을 짓는 단유를 보며, 잠깐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다.

“연성 그룹 회장의 증손자, 아냐?”

“전 김씨잖아요?”

“숨겨진 아들이니까, 니네 어머니 성을 붙인 거 아냐?”

“저 부모님 안 계신대요?”

“···웃기시네?”

아닐 거라고, 부정해보려 했지만, ‘쭈꾸미’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그 년이 진짜 헛소리한 거 아냐?’

단유의 표정만 봐서는 진짜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초부터 제대로 된 정보를 줄 의도가 없었다고 봐야 하는 걸까? 마찬가지로 단유 역시 ‘쭈꾸미’와의 대화에서 자신이 왜 납치되었던 것인지를 알 수는 있었지만, 그래도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그 부분은 이 사람에게 물어서 해결할 수 없을 것 같고, ‘숙희’란 사람을 만나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고개를 들어보니 어둠이 매우 짙어진 상태였다. 조금 빨리 움직여야 할 것 같았다.

단유가 자리에서 일어서자, ‘쭈꾸미’가 황급히 외쳤다.

“이거 풀어줘야지!”

단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쭈꾸미’의 손을 풀어주었다. 그는 손이 자유로워지자 손목을 쓰다듬으며 단유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일단 손발이 자유로워지니 당장 고를 수 있는 선택지가 많아졌다. 욕심이 조금씩 올라오는 것도 같았고.

‘진짜 연회장 증손자인데 연기하는 것일 수도?’

단유와 ‘쭈꾸미’의 눈이 마주치자, 단유가 피식 웃음을 지었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입술을 가리켰다.

“응?”

“거기 흐르는 침이나 닦으시라고요.”

‘쭈꾸미’는 얼른 손을 들어 입 주위를 훔쳤다. 아무것도 없는데, 라는 생각이 들 무렵, 정신을 잃었다.

단유는 ‘쭈꾸미’를 다른 두 사람이 있는 곳으로 옮겨 놓은 뒤, 집으로 ‘이동’했다.

****

“너 왜 이렇게 늦었어? 옷도 되게 더럽고?”

단유의 위아래를 살피던 명수가 말했다. 단유는 명수에게 그럴 일이 있었다고 대충 대답한 뒤, 선생님을 찾았다.

“선생님.”

“응?”

단유는 선생님의 반응을 살피다가 물었다.

“숙희···라는 분 아시나요?”

“숙희? 강숙희? 니가 걜 알아?”

“잘은 모르고요. 이름만 들었어요.”

“어디서?”

“아시는 분이신 건 맞고요?”

“알긴 알지. 오늘도 만났는데?”

“오늘요?”

“응, 아까 점심 무렵에 나가서 잠깐 봤었지.”

단유는 ‘숙희’라는 이름을 듣고 놀라는 선생님의 반응을 관찰하며 말을 이었다.

“우연히 그분 이름을 들었는데, 그분이 저에 대해서 이야기를 조금 이상한 이야기를 하셨나 봐요.”

“응? 걔가?”

“연성 그룹 연 회장님의 증손자라고.”

“에이, 설마.”

선생님은 단유에게 그런 소문이 돌긴 했고, 오늘 오전에 숙희를 만났을 때도 그 이야기가 나왔지만, 자신이 정정해주었다는 이야기를 해주며 혀를 찼다.

“혹시 그 때문에 학교에서 무슨 문제라도 있었던 거니?”

“아니요. 그런 건 아니에요.”

하지만 선생님의 눈초리는 쉽게 풀릴 생각을 하지 않았고, 단유 답지 않게 더러운 옷차림을 하고 있는 상태를 살피며 미간을 좁혔다.

“학교에서는 문제없었어요.”

라고 말한 단유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물었다.

“그 숙희라는 분이요, 혹시 자기 물건을 잘 잃어버리시나요?”

뜬금없이 왜 그런 걸 묻지, 라고 생각하며 선생님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렇지는 않은 것 같은데. 오히려 자기 주변 정리가 깨끗하기로 유명했지. 예전에 같이 일할 때도 보면 애들 한명 한명을 잘 챙기기도 했고, 반 관리 상태도 우수해서 원장님한테 칭찬도 받을 정도였거든.”

단유는 말이 길어지기 전에, ‘알겠습니다’라고 대답한 후 몸을 돌렸다.

“밥은 먹었니?”

“나중에 먹을게요.”

라고 대답하며 다시 현관으로 가는 단유였다.

“어디 가니?”

“아, 하던 연구가 있었는데 마저 하려고요.”

“무슨 일인데 지금 이 시간에 하는 거니?”

“금방 끝내고 올게요. 다녀오겠습니다.”

문이 닫히고 명수가 방 안에 있다가 튀어나왔다.

“얘 나갔어요?”

“응. 이상하네. 오늘 뭔가 평소랑 다른데?”

선생님은 현관을 보며 중얼거렸다.

****

단유는 다시 산 중턱의 쉼터로 돌아갔다. 창고의 문을 열고, 그 안에서 잠든 것처럼 정신을 잃고 있는 세 남자를 확인한 뒤, 그중에서 ‘도마뱀’을 데리고 옆의 집으로 이동했다.

낡은 식탁 근처에 있던 의자에 ‘도마뱀’을 앉힌 뒤, 그를 깨웠다.

“뭐야?”

‘도마뱀’은 정신을 차리자마자 주위를 둘러보았다. 역시나 ‘도마뱀’은 문제를 인식함에 있어 늘 주변의 상황을 먼저 확인한 후에 그에 맞게 행동하는 습성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지금도 그랬다. 의자에 묶어놓은 것도 아닌데, 섣불리 움직이는 대신 주위를 살며 사람이 없다는 것을 먼저 확인하는 ‘도마뱀’이었다. 사람이 없다는 확신과 움직여도 되겠다는 가능성을 철저하게 따진 이후에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나던 ‘도마뱀’은 식탁 위에 놓인 핸드폰을 찾아내었다.

“뭐야!”

잠겨있던 화면을 풀자, ‘숙희’의 연락처 화면이 가장 먼저 튀어나왔다. 마치 이 사람에게 당장 전화 걸라고 지시하는 것처럼.

이것은 단유의 마지막 실험이었다. 지금까지가 일종의 관찰 실험이었다면, 이번에는 조작 실험이었다. 몇 가지 변수를 주고 변수에 맞게 행동하는지, 그리고 자신의 조작이 실험에 어떠한 영향을 끼칠 것인지를 알아보는 실험이었다.

****

“야, 뭐야! 갑자기! 얼마나 걱정했는 줄 알아!”

코트를 걸친 채 집안을 돌아다니던 숙희는 걸려온 전화에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야, 이 미친년아! 너 때문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

수화기를 통해 이어지는 욕설에 숙희는 순간 멍해지는 느낌이었다. 욕에서 욕으로 이어지는 소리 중간중간, ‘정보가 잘못되었다’느니 ‘애가 애가 아니라는’ 둥, 이해하기 힘든 말들이 섞여 있었지만, 거의 대부분이 욕이라서 제대로 이해하고 듣기 힘든 지경이었다.

“이리 줘봐요.”

숙희가 핸드폰을 든 채 멍 때리고 있는 모습에 남자가 손을 내밀었다.

“아냐, 괜찮아. 내가 이야기할게.”

숙희는 자기가 상황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조금 전까지 나긋나긋하게 웃고 있던 남자가 짐짓 무거운 얼굴을 하고 손을 내밀자, 조금 흔들리는 기분도 들었다.

“자기는 저기 가서 잠깐 쉬어요. 제가 할게요.”

그러고는 빼앗듯이 핸드폰을 건네받은 뒤, 돌아서서 통화를 시작했다.

“나야.”

그러자 잠시 욕이 끊기는가 싶더니, 또 새로운 욕들이 이어지면서 핸드폰에서 괴성이 새어 나왔다. ‘기둥서방’이라든가 ‘작전’이라든가 ‘공갈’이라는 단어들이 섞여서 온갖 추잡한 욕지거리는 다 나오고 있었다.

“···그래서 애는? 애는 어디 있는 데?”

그 말에 상대의 목소리가 잠잠해졌다. 잠시 후, 들릴 듯 말 듯 한 소리로 통화가 이루어지는지 더는 핸드폰에서는 괴성은 나오지 않았고 남자는 간간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짤막한 대답만 하면서 대화가 이어지고 있어, 숙희는 그저 궁금증을 참으며 기다릴 뿐이었다.

“알았어. 그럼 일단 거기서 기다려. 내가 곧 갈게.”

남자는 핸드폰을 끊었다. 그리고 숙희에게로 돌아섰다.

“뭐래?”

“가서 봐야겠는데요. 상황을 봐야 판단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남자는 싱긋 웃으며 숙희에게 핸드폰을 건넸다.

“같이 가실래요?”

“···그래.”

숙희는 그렇지 않아도 나가려는 참이었다는 듯, 얼른 일어섰다. 남자는 숙희를 향해 선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걱정하지 말아요. 다 잘 될 거예요.”

****

느긋해 보이던 남자였지만, 운전은 꽤 격해서 가는 동안 몇 번의 경적이 울렸는지 셀 수 없을 지경이었다. 아마 카메라에도 몇 번 찍혔으리라. 하지만, 지금은 그런 사소한 것을 걱정할 때가 아니었다. 남자는 능숙하게 차를 몰아서, 사내들이 숨어있던 곳으로 진입했고, 곧 집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집 앞에는 ‘도마뱀’이 핸드폰을 든 채 서성거리고 있다가 차의 불빛을 발견하고 몸을 숨겼다가 나타났다.

“어떻게 된 거야?”

차에서 내린 숙희가 ‘도마뱀’을 향해 달려가 물었다. ‘도마뱀’이 쌍심지를 켜고 입술을 달싹거리다가, 입을 다물고 대신 뒤의 눈치를 보았다. ‘도마뱀’의 시선을 따라 돌아보니 남자가 차 문을 닫고 천천히 다가오는 중이었다.

“다른 애들은?”

남자의 질문에 ‘도마뱀’이 손가락으로 창고를 가리켰다. 창고 안에는 정신을 잃은 두 남자가 맨바닥에 누워 있었다.

“깨워도 일어나질 않아.”

“죽은 건 아니고?”

“숨은 쉬고 있어.”

남자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애는?”

‘도마뱀’이 고개를 저었다. 숙희가 얼굴을 붉히고 침을 튀기며 ‘도마뱀’의 얼굴 앞에 대고 외쳤다.

“어쩌려고···.”

그러나 말은 이어지지 않았다. ‘도마뱀’이 힘껏 뿌린 손길에 숙희는 비명을 내지르며 바닥에 쓰러졌다.

“씨발년이···.”

숙희는 통증보다 더한 충격에 말을 잇지 못했다. 저놈이 물주를 알아보지 못하고 행패를 부리다니!

“됐어, 그만해. 나와.”

뒤의 선 남자가 천천히 창고 밖으로 빠져나갔다. 그 뒤를 ‘도마뱀’이 뒤따라 나가자, 숙희가 얼른 일어나려고 했다. 그러다 다시 ‘도마뱀’의 발길질에 배를 얻어맞고 바닥에 나뒹굴어야 했다. 이번에는 아까와 다른 통증이 온몸을 강타해서 숨을 쉬기 힘들었다.

“잠가놔.”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고, 뒤이어 창고의 문이 닫히고 바깥에서 자물쇠가 채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숙희는 정신이 아득히 멀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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