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멤버 더 네임-299화 (299/956)

Defuser(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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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유는 다가오는 장발의 남자가 여간 수상한 게 아니었다. 삐죽이 튀어나온 입술은 연신 욕을 뱉고 있었고, 머리카락에 가려졌지만, 사납게 노려보는 눈매가 영 심상치 않았다. 무엇보다 장발의 남자에게서 풍기는 악의(惡意)의 방향이 자신을 향해 있다고 느껴졌다. 이건 어떤 계산이나 관찰에 의해 알게 되는 것이 아닌, 몸이 저절로 반응하는 수준으로 깨닫는 것이었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남자가 풍기는 악의는 강해지고 있는데, 반대로 남자는 여전히 핸드폰을 들고 통화를 하는 중이었다. 남자의 시선이 왼쪽으로 향하는 것을 확인했을 때, 단유는 남자의 왼쪽, 자신에게는 오른쪽이 되는 곳에 누군가가 더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단유는 남자가 악의를 품는 원인을 궁리해보았으나 도저히 알 방법이 없었다. 일단 남자가 초면인 데다, 평소 인간관계가 넓지 않은 단유로서는 저 남자가 난데없이 드러낸 악의의 인과를 밝힐 단서들이 부족했다.

곧 두 사람이 지나치기 직전, 그러니까 서로 나란히 서게 됐을 때도 남자는 특별히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단유가 조금 전에 지태에게 말했듯, ‘겉만 보고 판단하지 말라’는 말처럼, 장발의 남자가 드러낸 긴장도는 최고조에 이르고 있었다.

단유는 남자를 지나치려다 걸음을 멈추고 남자를 돌아보았다. 남자는 단유보다 고작 머리 하나 정도의 차이밖에 나지 않았기에 얼추 눈높이가 맞았다.

“뭐죠?”

“응?”

남자의 반응은 다소 멍청했다. 친구들이 흔히 쓰는 표현으로 ‘얼빵하다’고 말하는 게 적절해 보일 정도였다.

“저한테 용건 있으신 거 아닌가요?”

“엉?”

남자는 분명 당황하고 있었는데, 악의의 강도가 옅어진 느낌이었다. 당황인지, 아니면 애초에 단유가 악의의 방향을 잘못 짚었던 것이 헷갈릴 정도였다.

혹시 자기 뒤에 다른 사람이 있는데 착각이라도 한 것일까, 라는 생각에 슬쩍 뒤로 돌아보았더니, 누군가 뛰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어?’

단유는 다시 고개를 돌렸다. 별안간 눈앞으로 시커먼 것이 달려들고 있었다.

****

“저 병신새끼!”

나직이 욕을 내뱉은 ‘도마뱀’은 차 핸들을 또 한 번 세차게 내리쳤다. 멍청한 ‘쭈꾸미’는 아이를 사로잡을 생각은 하지 않고, 서로 마주 보며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보였다.

“우리가 잠시 너를 데리고 어디로 모셔야 하니, 조용히 따라오지 않을래?”

따위의 말로 회유하는 것이 아니라면, 저런 상황이 연출될 필요가 있을까?

“병신 좆같은 새끼!”

남자는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기어에 손을 가져갔다. 그때 아이가 뒤를 돌아보는 모습이 보였고, 그 순간 각성을 했는지 ‘쭈꾸미’가 손을 뻗는 모습이 보였다. 아이가 피하려고 고개를 뒤로 빼는데, ‘쭈꾸미’는 한 손으로 아이의 뒷머리를 잡고 또 다른 손으로 아이의 입을 막아서 꽉 누르는 모습이 보였다.

‘도마뱀’은 거의 순간적으로 기어를 ‘D’에 두고 악셀을 거칠게 밟았다. 차가 순간적으로 토크가 올라가며 굉음을 냈고, 이어 차는 곧 두 사람 옆에 도착했다.

“밀어!”

창문을 내린 상태라 들렸는지 모르겠는데, 급한 마음에 그냥 소리치고만 ‘도마뱀’은 ‘쭈꾸미’ 뒤에 ‘꼬마놈’이 달려오는 것을 발견했다.

‘꼬마놈’은 핸드폰으로 열심히 떠들어댔다.

“개새끼야, 제기랄! 이 미친 새끼야, 지금 키 따위가 중···, 야 이 씹새야! 안 들리냐고! 개새끼야!”

속사포처럼 아는 욕이란 욕은 다 퍼부으며 빠른 걸음으로 뒤쫓던 ‘꼬마놈’은 ‘시작한다’는 말에 핸드폰을 집어넣고, 달리기 시작했다. 달리는 와중에도 시선은 진짜 ‘꼬마’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아이와 마주친 ‘쭈꾸미’가 금방 아이를 제압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제압은 하지 않고 대화를 하는 듯 서로 마주 보고 있었다.

‘뭐야, 저 새끼!’

열불이 나서 못 참겠다. 아이가 아니라 저 새끼 면상을 먼저 주먹으로 힘껏 때려야 할 것 같았다.

‘저런 새끼랑 같이 일을 하겠다고 했으니, 내가 병신이네.’

그때 상황이 변했다. 아이가 뒤를 돌아보며 자신을 볼 때, ‘쭈꾸미’가 정신을 차렸는지 아이를 제압하기 시작했다. 가끔 ‘헤라클레스’냐고 놀리기도 할 정도로, ‘쭈꾸미’는 힘이 좋았다. 그래서 일부러 사내가 눈꼴사납게 머리를 기른다고 해도 눈감아주던 형편이었다. 그런 ‘쭈꾸미’가 힘을 쓰니 아이는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모양새였다. 그리고 바로 그때, 차가 튀어나왔다.

“넣어!”

라고 들린 것 같은데 확실하진 않았다. 정황상 그런 말이었겠지. ‘쭈꾸미’가 아이와 몸싸움을 할 때, ‘꼬마놈’이 도착했고, ‘꼬마놈’은 차문을 먼저 연 뒤, ‘쭈꾸미’와 같이 아이를 차에 밀어 넣었다. 밀어 넣는 동시에 위에서 짓누르듯 아이 위로 올라탄 ‘쭈꾸미’가 외쳤다.

“씨발!”

그 말이 ‘출발!’이라는 단어로 들렸는지, ‘도마뱀’이 곧바로 악셀을 밟았고, 서둘러 조수석에 탄 ‘쭈꾸미’가 미처 차 문을 닫기도 전에 차가 튕기듯이 앞으로 뛰쳐나갔다. 그리고 곧 급하게 이어지는 우회전, 다시 우회전, 직진 후 좌회전에 이어 다시 우회전을 하면서 차는 큰 도로 위를 내달리기 시작했다.

****

단유는 황당했지만, 당황하지는 않았다. 아니 조금은 당황하기도 했다. 갑자기 손이 뻗어져서 자신의 입을 막을 때, 금방 뿌리칠 수 있을 거로 생각했던 것과 달리 남자의 손은 여간 억센 게 아니어서 조금 놀라긴 했다. 그리고 뒤이어 차가 바로 옆에 달려와 붙고, 달려오던 남자가 자신과 자신을 붙잡고 있던 남자를 동시에 차 안으로 밀어 넣는데, 정신이 없을 정도···는 솔직히 아니었지만, 그래도 황당한 경우라서 어이가 없다고 생각하는 중이었다. 차 안에서 자신을 붙잡은 남자가 자기 위로 올라타서 몸으로 짓누르는 상황도 황당하고, 도로 위를 질주하던 중에 자기들끼리 손바닥을 부딪쳐가며 낄낄대는 모습도 황당했다.

그래서 생각했다.

‘그래, 어디 뭐하려고 그러는지 구경이나 해보자.’

만약 칼을 들고 자신을 노려보는 근위대 정도였다면, 이미 사달을 냈겠지만, 어리숙하고 ‘얼빵’한 모습을 보이던 남자도 그렇고 전속력으로 달려와서는 한다는 게 두 사람을 억지로 차 안에 밀어 넣는 남자도 생각해보면, 웃겼다.

다만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왜 자신일까 하는 점이었다. 아마 이게 말로만 듣던, ‘납치’라는 거 같은데, 자신이 그 대상이 되었을 때의 이점(利點)이라는 게 있나, 의문이 들었다.

“저기요.”

“조용히 해, 새끼야!”

위에서 짓누르던 장발이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미세하게 떨리는 목소리로 보아서는 많이 당황한 듯 보였고, 또 많이 불안한 것 같았다. 그런 반응을 살피니 오히려 단유는 점점 더 침착해져 갔다.

“숨쉬기 힘드니까, 좀 내려오실래요?”

“새끼야, 어디서 수를 써!”

“야, 꼬마 놈아 단단히 붙잡고 있어라.”

“잔소리하지 마 새끼야. 니가 말 안 해도 꼼짝 못 하게 하고 있거든?”

자신을 부르는 줄 알았더니, 장발의 남자가 ‘꼬마놈’이란 것을 알게 된 단유는 웃음이 나오려는 걸 참았다. 앞의 두 남자는 ‘꼬마놈’이 지금 얼마나 불안해하는지 모르고 있었다. 지나치게 힘을 주다 보니 팔이 덜덜 떨리고 있는 ‘꼬마놈’이었는데, 정작 자신은 자기 팔이 그런 지경이 되었다는 것을 모르는 것처럼 보였다.

“제가 여기서 어떻게 도망가요? 달리는 차 안인데. 그리고 정 의심스러우면 그냥 ‘팔’이나 붙잡고 계세요. 다리는 아저씨 엉덩이로 누르고 있으니까, 움직이지 못할 거 아니에요?”

운전하던 ‘도마뱀’은 룸미러로 흘깃 뒤를 살핀 뒤,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중학생이라는 놈이 말하는 모양새가 보통이 아니라고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야, 꼬마놈. 절대 움직이지 마라. 저 새끼 보통 놈 아니다.”

‘쭈꾸미’도 그렇게 느꼈는지, 고개를 돌려 시선은 단유에게 둔 채 ‘꼬마놈’에게 말했다.

“알았다고! 새꺄! 너도 조용히 닥쳐, 새끼야!”

아마 이 차 안에서 가장 평정심을 잃은 사람을 꼽으라면, 아마 ‘꼬마놈’일 것이다. 단유는 애써 흥분한 남자를 자극할 필요가 없다고 여겨, 풀어달란 말은 하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꼬마놈’의 힘이 점점 빠지고 있어, 숨쉬기가 처음보다 나아진 상태기도 했으니까.

차는 열심히 달려, 한강 옆을 지나더니 어느새 빌딩 하나 보이지 않는 외진 곳까지 달려왔다. 마침내 차가 선 곳은 서울 주변에 이런 곳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산속의 허름한 쉼터 같은 곳이었다. 간이 시설로 만들어진 그곳은 오랫동안 청소를 하지 않았는지 오래 묵은 먼지가 바닥에 쌓여 한 발 걸을 때마다 풀풀 올라오는 진회색의 구름이 꽤 불쾌하게 여겨졌다. 만약 단유에게 언제가 제일 힘들었냐고 묻는다면 바로 이때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

차에서 내린 단유는 곧바로 ‘도마뱀’이 구해온 밧줄에 손이 묶이고 입속으로 정체를 알기 싫은 천 더미가 쑤셔 넣어졌다. 그리고 ‘쭈구미’와 ‘꼬마놈’에게 잡힌 채, 창고 같은 곳으로 밀어 넣어졌다.

“들어가, 새끼야.”

단유가 들어간 뒤, ‘도마뱀’이 가지고 온 자물쇠로 창고문을 걸어 잠갔다. 여기까지 일이 끝나고 ‘도마뱀’이 돌아서자, 그제야 마음을 놓은 듯 세 사람을 서로를 보며 피식 웃음을 지었다.

****

“야, 전화해야지.”

“일단 보고부터 해야 하지 않나?”

“보고는 무슨. 우리가 시다바리냐? 보고나 하고 앉았게?”

셋은 서로 으르렁거리며, 옥신각신하다가 ‘도마뱀’이 핸드폰을 잡은 뒤로는 입을 다물고 사태를 주시했다. ‘도마뱀’은 헛기침을 하고 상대방과 통화를 하기 시작했다.

“끝났어요.”

―수고했다.

“그런데 아이가 한 명이에요.”

―한 명? 왜? 두 명이라고 했잖아?

“한 명만 나왔다는데 어떻게 해요. 혼자 집에 가는 걸 겨우 붙잡았는데. 그리고 말이 나와서 말인데요.”

‘도마뱀’은 ‘꼬마놈’을 째려보며 말을 이었다.

“아니, 애가 덩치가 저렇게 크다는 이야기는 왜 안 했어요? 하마터면 놓칠 뻔 했잖아요?

―이놈들아. 고작 중1인 애인데, 덩치가 크고 작은 게 무슨 의미가 있어!

“씨발, 그러면 직접 해보시고 말씀을 하시든가?

―뭐?

“걔 때문에 우리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고 그런말이쇼? 아무리 ‘꼬마놈’이 힘이 좋기로서 혼자서는 힘들 뻔했단 말요.

‘도마뱀’의 엄살이 먹혔는지, 잠시 핸드폰에서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이때, 말빨을 잘 살려서 엎치고 뒤쳐야 손에 들어오는 게 커지는 법이리라.

“그러니 우리 수당 좀 올려야겠어.”

―···이 새끼들이 무슨 헛소리를.

“닥치고. 계속 말 그 따위로 할 거면 우리도 안 봐줘요? 엉? ···그러니까 빨리 영감한테든, 애비한테든 전화 걸어봐. 빨리 일 마무리 짓고 가게.”

‘도마뱀’은 전화를 끊고는 ‘쭈꾸미’를 쳐다보았다.

“쭈꾸미.”

“왜?”

“저기 밖에 가서 땅 좀 파.”

“내가 왜?”

“이 새끼야, 넌 저 새끼 이마에 땀 흐르는 거 안 보여? 저 새끼도 좀 쉬어야 일을 할 거 아냐? 혼자 안 시킬 테니까, 가서 땅 좀 파고 있어.”

“아우, 내가 진짜. 이번 일만 끝나면 봐라.”

‘쭈꾸미’는 투덜대면서 집 옆에서 발견했던 삽을 가지러 갔다.

“도마뱀.”

“왜?”

“오늘 끝내게?”

“야, 원래 저런 놈 오래 데리고 있는 거 아냐. 영화나 드라마에서 왜 범인들이 멍청하게 잡혀서 다 좆되는 줄 알아? 인질 따위를 놔두고 드라마나 찍고 있어서 그래. 저거? 안 필요해. 우리는 그냥 저놈이 납치되었다는 사실만 알려주면 그만이야. 사진 몇 장 찍어 두었다가, 필요할 때 한 장씩 보내서 살아있다는 것만 확인시켜주면 돼.”

‘도마뱀’은 혓바닥을 날름거리며 마른 입술을 적셨다.

“연성 쪽에다가는 저녁쯤에 전화해서 새벽까지 돈 가지고 오라고 하면 돼. 그리고 우리는 그 전에 여기서 자리를 이동해야 하고. 같은 자리에서 오래 있는 건 경찰보고 잡으러 오세요 하는 거나 마찬가지거든.”

‘도마뱀’은 오랜 시간 동안 연구한 결과라며 가슴을 내밀었고, ‘꼬마놈’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말 끝났으면, 너도 가서 쭈꾸미 새끼나 도와. 저 새끼 혼자 땅 파려면 한세월이니까.”

“넌?”

“새꺄, 난 머리를 써야지? 앞으로 탈출 루트랑 돈을 받고 나르는 동선도 짜야 하고, 할 일 많아 새끼야. 방해하지 말고, 가서 쭈꾸미나 도와.”

‘꼬마놈’은 팔뚝을 주무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깥으로 나오니 산속이라 그런지 어둠이 꽤 깊숙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 새끼 어디서 땅 파고 있는 거야?’

땅을 파는 소리가 들리지 않아, ‘꼬마놈’은 ‘쭈꾸미’를 찾으려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벌써 땅을 다 파진 않았을 테니, 아마도 자기가 나와서 도울 때까지 아무것도 안 하고 기다리고 있었음이리라.

“새끼, 존나 만만한 게 나지.”

‘꼬마놈’은 투덜거리면서, 집 뒤로 돌아가 보기로 했다. 집 뒤는 불이 없어서, 앞쪽보다 훨씬 어두웠다.

“쭈꾸미!”

대답이 들리지 않았다.

최근 단유가 관심을 두고 있는 ‘대중의 속성’이란 것이었다. 그리고 대중의 속성을 알기 위해서는, ‘개인의 습성’에도 관심을 두어야 했다. ‘개인의 습성’은 단순한 관찰로만 확인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상호작용 속에서 개인의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 습성이 발견되곤 했기 때문에, 단유는 단순한 관찰자에서 한발 더 나아가 상호작용을 발생시켜보는 중이었다. 예를 들면, 상대에게 말을 건다거나, 혹은 가볍게 스킨십과 같은 행동으로 주의를 끈다거나, 혹은.

―퍽.

때려본다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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