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멤버 더 네임-295화 (295/956)

Defuser(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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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노래만 따지자면, 제 생각에는 충분히 차트 중위권 정도는 오를 정도의 수준이라고 생각해요.”

“중위권?”

애매한 얼굴이 된 태호가 눈을 껌뻑거리며 단유의 대답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보였다. 단유는 조금 더 보충해서 태호의 이해를 도왔다.

“제가 들은 건 나윤 누나가 부른 노래예요. 그래서 수련 누나와 같이 불렀을 때의 노래는 듣지를 못해서 정확하진 않아요. 더 오를 수도 있고요···.”

“그런데, 중위권이라는 게 무슨 말이야? 노래가 좋다는 거냐, 아니면 안 좋다는 거냐?”

역시나 태호는 다른 부차적인 설명은 차치하고 결론만 듣고 싶어 했다.

“좋아요.”

“좋아?”

“네.”

“그런데 왜 중위권이야?”

“좋은 노래가 모두 상위권을 차지하는 건 아니라는 말, 예전에 형이 직접 하신 이야기잖아요?”

“···그거는 다른 문제지. 아무튼, 니 말은 좋은 노래인데 상위권을 차지할 정도로 좋은 노래는 아니다?”

단유는 긍정도 부정도 표시하지 않았다.

“형이 원하시는 대로 답만 드리자면, 이 노래는 두 가지 조건에 따라 성적이 달라질 거예요.”

“그게 뭔데?”

“하나는 나윤 누나와 수련 누나의 조화예요. ‘케미’라고 하던가요? 두 사람의 시너지가 어느 정도로 발휘되느냐가 관건이겠죠.”

그건 두말하면 잔소리였다. 듀엣뿐만 아니라 걸그룹도 그런 식으로 설명할 수 있었다. 멤버들 간의 시너지가 어떻게 폭발하느냐에 따라 그 그룹의 흥망성쇠가 결정된다고도 하니까.

아기 동자의 말씀을 경청하던 태호의 등이 서서히 펴지면서, 단유와의 시선의 거리가 멀어지고 있었다. 그 행동은 태호가 단유의 말에서 흥미를 잃어가는 중이라는 뜻이었다.

“두 번째는···.”

“두 번째는?”

단유는 텅 빈 거실로 시선을 던졌다. 단유의 시선을 따라 움직인 태호는 특별한 무언가를 찾지 못해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단유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형이 가져온 저 게임이요. 사실 저는 저 게임을 몇 번 해보지 않았어요. 그런데, 저 게임 CD 한 장에도 수많은 사람의 노력이 들어간다는 사실을 얼마 전에 알았거든요? 어떤 회사는 게임 하나를 만들기 위해 수년을 투자하고 개발한다고 하고요, 어떤 사람들은 빚까지 지면서 게임을 만들기도 한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게임들이 매년 쏟아지고요. 그런데 그 게임 중에서 소비자의 선택을 받는 게임들은 소수라고 하더라고요. 저기 있는 저 게임도 요즘 가장 인기 있는 게임이라고 해요.”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그러는지 태호는 감이 오지 않았다. 단유는 답답함을 느끼는 태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눈 밑에 작은 떨림부터 시작해서 무의식적으로 턱 근육을 움직여 턱 아래가 울룩불룩해지는 모습, 긴장으로 꿀렁거리는 목울대의 움직임도 눈에 담았다.

“게임의 질을 높이는 것은 개발비이지만, 게임의 판매를 돕는 것은 마케팅 비용이라고 하더군요? 마케팅은 노래 외적인 영역에서도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저의 알고리즘에 마케팅은 포함되지 않아요. 왜냐하면, 아직 그 부분까지 확실하게 계산할 수 있는 제반 요건들이 계산되지 않아서요. 하지만 그것만은 인정해요. 마케팅 비용이 추가될수록 차트 순위가 올라간다고요.”

다만, 마케팅이 노래를 좋게 바꿔주는 것은 아니었다. 노래 자체는 대중들이 열광할 정도의 노래가 아니었다. 그리고 그걸 차트에 반영하게 되면, 계산상으로는 중위권, 정확히는 40위권과 30위권 사이까지 오를 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마케팅이라는 이름으로 투자되는 홍보 비용에 따라 해당 노래는 차트에서 위로 올라갈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홍보 비용이 노래의 질을 결정해주지 않는 것처럼, 오랫동안 차트에 머무르게 해주진 못했다. 그래서 오히려, 노래 자체의 질적 향상이 중요한 이유일 것이다.

“니 말은, 결국 회사가 홍보를 잘하면 순위가 올라갈 거란 뜻이잖아? 에이, 그런 건 나도 말하겠다.”

단유는 멋쩍은 웃음을 던졌다.

“그렇죠? 사실 별거 아니죠.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별거 아니고, 누구나 할 수 있는 그걸 형네 회사, 에이바운스는 안 했더라고요?”

태호는 어, 하고 입을 벌렸다.

“갤럭시즈 관련해서 제가 자료 조사 차원에서 인터넷을 뒤져봐도 특별한 홍보 활동이 거의 없더라고요? 굳이 비교하면, 지스탑 엔터테인먼트인가? 거기의 브룸레이디(Broom lady)라는 그룹과 거의 비슷한 정도랄까?”

태호는 브룸레이디라는 그룹이 있는 줄도 몰랐다. 같은 업계에 있는데도 모르는 이름의 걸그룹을 단유가 언급한 것도 황당한 일이지만, 그런 그룹과 비교될 정도로 회사의 지원이 적었던가를 떠올려보니 딱히 대꾸할 말이 없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다르겠죠. 나윤 누나가 유명한 작곡가님에게 곡을 받은 거라고 자랑을 워낙 해서요.”

유명 작곡가, 라는 타이틀이 이미 홍보 효과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니 에이바운스가 여타의 기획사들 정도의 홍보 활동을 한다고 가정한다면, 단유가 들은 노래 역시 계산에 맞게 30위권 정도까지는 오를 수 있으리라.

“아, 그런데 그 노래요. 제목이 뭐예요? 누나도 아직 결정이 안 됐다고 그러던데.”

“그거.”

태호는 정신을 수습한 뒤 대답해 주었다.

“리모트(remote)”

****

“뭐 하세요?”

“응? 기획서.”

“우와, 기획서 쓰는 모습 처음 보는데?”

“저기요, 저도 기획서 몇 번 썼었거든요? 저도 여기서 일하는 사람이거든요?”

“누가 뭐래요? 열심히 하세요.”

여직원이 웃음을 던지며 태호의 곁을 지나갔다. 하지만 저 여직원은 아직 모르리라. 자신이 쓰는 기획서가 통과만 된다면, 저렇게 웃으면서 여유롭게 걸어 다닐 시간이 없어질 것이란 걸.

“두고 봐라.”

차라리 잘 됐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참에 회사에서 놀고먹는 것들―물론 그들도 나름 자기 일을 하고 있겠지만, 태호의 성에 차는 모습은 아니었다―제대로 일할 수 있게 만들겠다는 다짐을 하며 기획서 작성에 박차를 가했다.

인터넷을 뒤져가며 기획서 양식부터 해서 기획서 쓰는 법을 수없이 검색한 뒤에야 겨우 쓰기 시작한 이 글이 언제 마무리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태호가 모처럼 일다운 일을 하겠다고 결심하고 이를 갈 때, 나윤과 수련 역시 이를 갈고 있었다.

“안 돼, 다시.”

두 사람은 온몸으로 땀을 쏟아내는 중이었다. 특히나 데뷔가 코앞으로 다가온 터라 나윤은 부쩍 수척해진 상태였다. 제대로 식사도 못 하고, 잠도 제대로 못 자는 나날이 계속되고 있었다. 그렇지만 성공적인 데뷔를 꿈꾸며 억지로 버티고 있는데, 불행하게도 두 사람이 맞춰야 할 안무는 지금 벌써 4번째 수정이 된 판국이었다.

“거기서 오른쪽으로 이동해야지. 정신 안 차릴래?”

안무 선생님은 나윤을 호되게 질책하며 다시 음악을 처음으로 돌렸다.

“수련이 너도 동작 크게 해야지? 두 사람이 무대를 책임져야 하는데, 그렇게 동작을 작게 하면 누구 눈에 보이겠어? 더 크게 뻗으란 말이야.”

“네, 선생님.”

다시 음악이 시작되고, 나윤은 무릎이 후들거리는 느낌을 무시한 채 격하게 손과 발을 움직였다. 서정적인 멜로디라인과 다르게 안무는 리듬에 맞춰서 조금 격하게 움직이도록 만들어졌다. 속으로 ‘이러면 라이브는 불가능한 거 아닐까’라고 생각했는데,

“라이브는 가수의 생명이지.”

라는 박 이사의 한 마디에 생고생을 다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이럴 때 수련이 정말 대단하다고 여긴 것은, 그런 격한 안무에도 라이브가 가능하다는 점이었다. 어지간히 단련되지 않고서는 불가능할 것 같은 모습이어서 더욱 수련을 존경하게 된 나윤이었다.

나윤의 존경을 받는 수련은, 수련 나름대로 고생 중이었다. 나윤은 본인이 워낙 훈련되지 않은 덕에 라이브로 노래하는 것이 어려워서 그렇다지만, 훈련된 수련도 억지로 노래를 부르는 실정이었다. 특히 고음 부분에서는 음정이 자꾸 플랫이 되는 게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분명히 이런 점을 고려해서 안무가 두 번째로 수정되었을 때는 노래를 부르기가 편했는데, 안무가 너무 평이하다는 지적 때문에 수정이 되면서 점점 노래하기가 벅차지고 있는 것이었다.

“안 되겠다. 10분간 휴식.”

레슨 선생님의 선언에 맞춰 동시에 바닥으로 풀썩 쓰러지는 두 사람은 마치 젖은 나뭇잎처럼 고동색 바닥에 붙어서 미동도 하지 않고 숨만 쉬었다.

“언니, 저만 힘든 거 아니죠?”

“나도 힘들어.”

“이러다가 데뷔하기 전에 병원부터 갈 거 같아요.”

수련이 슬쩍 눈동자를 돌려보니, 말만 그런 게 아니라 얼굴색이 창백한 게, 여간 위험해 보이는 것이 아니었다.

“너 얼굴 너무 안 좋다. 혹시 어디 아픈 데 있어?”

“···사실은요.”

수련은 혀를 찼다. 하지만 지금은 도울 방법이 없었다. 평소 생리통을 심하게 앓던 지수도 연습할 때는 다른 핑계 없이 연습에 몰두해야 했었다.

“진통제는 먹었어?”

“먹긴 했는데, 조금 힘드네요.”

생리통의 통증은 줄일 수 있을지 몰라도, 격한 안무 연습으로 인한 체력 저하가 가져오는 복합적인 통증은 약으로 극복하기 어려운 것이리라.

“이럴 때 남자 친구가 와서 위로해주면 좋을 텐데. 그치?”

“남자 친구요?”

“남자 친구 없어?”

“···없죠.”

“없구나. 그럼 단유 불러줄까?”

“네?”

창백했던 나윤의 얼굴에 붉은 기가 돌았다.

“갑자기, 왜 단유를 불러요?”

“글쎄다. 그런데 단유 생각만 하면 얼굴이 빨개져?”

“···놀리지 말아요. 힘없어요.”

나윤은 다시 바닥에 누워 가쁜 숨을 몰아쉬기 시작했다. 잠시 그러고 있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단유 걔요. 우리 뮤직비디오에 나온다면서요?”

“응, 출연하겠다고 태호 오빠한테 이야기했다던데?”

“···단유 걔요. 좀 남다른 면이 있는 것 같아요.”

“뭐가?”

“그냥, 타고난 연예인이랄까? 뭔가 저보다 어리게 느껴지지 않고요, 좀 우러러보게 하는 뭔가가 있는 것 같아요.”

“막 아우라가 느껴지고 그래?”

“비슷해요.”

수련은 연습실 천장을 바라보며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왜요?”

“나도 걔 처음에 만났을 때, 조금 비슷한 생각을 했어.”

“처음에요?”

수련은 두서없이 단유를 처음 만났을 때의 일을 꺼내놓았다.

“···로비에서 걔를 딱 보는데 주위 사람들과 상관없이 어떤 아우라 같은 게 뿜어져 나오는 느낌이 있는 거야.”

나윤은 어느새 몸을 돌려 수련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눈 속을 헤매던 이야기가 나올 때쯤, 안무 선생님이 손뼉을 치며 들어왔다.

“자자, 다시 연습하자.”

수련은 얼른 상체를 일으켜 세운 뒤, 수련에게 찡긋거려 보였다.

“나중에 숙소가서 다시 이야기하자.”

“네.”

나윤은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 일어섰다. 여전히 다리가 후들거리는 느낌이 있지만, 그래도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더니 무거웠던 기분만큼은 조금 가벼워진 느낌이 들었다.

“자, 이번에는 누군가가 자신을 조종한다는 설정으로, 이렇게 수련이가 이쪽으로 이렇게 손을 뻗으면, 나윤이 니가 안무팀이랑 같이 이렇게 동작을 하는 거야. 그리고···.”

레슨은 자정이 지나고, 새벽별이 떴다가, 새벽달이 질 때까지 계속되었다.

****

11월 중순이 되자, 성급한 사람들은 겨울철에나 입을 법한 두꺼운 코트를 꺼내 들 정도로 날이 추워졌다.

“이게 다 온난화 때문이야.”

라는 말을 누구나 한 번씩 입에 주워 담을 정도로 유행이 되었고, 유행에 맞춰 사람들의 복장도 두터워지고 겹겹이 쌓이기 시작했다.

“명수야!”

“저, 진짜 괜찮아요. 진짜로요.”

“안 돼. 추워.”

“그래도 이건 너무···갑갑해요.”

명수는 목에 머플러를 둘러주려고 하는 선생님의 손길을 피하기 바빴다. 속마음이야 겨울도 아닌 가을에 아줌마들이나 하는 머플러를 목에 두르는 게 창피하다는 것이었지만, 이를 직접적으로 표현할 수 없어 그저 갑갑하다고 둘러댈 뿐이었다.

반면 단유는 얌전하게 머플러를 두르고 명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명수야.”

“응?”

“포기하면 편해.”

“야!”

이후 두 사람은 정답게 머플러를 하고 등굣길에 올랐다.

“안 풀 거야?”

“응.”

“진짜?”

명수의 채근에도 단유는 고집스럽게 머플러를 하고 길을 걸었다. 명수는 풀까 말까를 심각하게 고민하면서도 풀지 못해 손만 왔다 갔다 하다,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안 했으면 모를까, 했으면 하고 가야지. 그게 선생님에 대한 예의지.”

명수의 말에 단유가 싱긋 웃었다.

“그런데 이거 말야. 난 예전부터 목도리 같은 게 하기 싫더라?”

“그러고보니, 넌 예전에도 목도리 잘 안 하고 다녔구나.”

단유의 말에 명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상하게 목도리 같은 걸로 목을 두르는 게, 마치 목을 조르는 기분 같고, 그런 느낌 있잖아. 뭔지 알겠지?”

“느낌은 잘 모르겠고, 그냥 니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는 알겠어.”

“이상하게 막 목이 졸리는 기분이야.”

명수는 머플러를 푸는 대신, 조금 느슨하게 목을 죄도록 하였다. 단유는 그런 명수를 바라보다가 앞으로 시선을 향했다. 신호등 건너편에서 손을 흔드는 지태와 채윤이 보였다.

“쟤는 뭐가 좋다고 저렇게 손을 흔들고 그래?”

“쟤네들 코트 입었다.”

“어, 그러네? 지태는 벌써 겨울이다, 겨울.”

두 사람은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렸다가 건넜다. 네 사람이 다정하게 등교를 하는, 평범한 하루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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