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g for me(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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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실로 돌아온 박 이사는 책상 앞에 앉아 서류를 뒤적거렸다. 그리고 곧 찾아낸 서류를 다시 한번 정독하기 시작했다.
‘김단유···.’
성적 우수하고, 차분하고, 품행이 바르다는 기본적인 내용과 함께 그의 취향, 이를테면 자주 먹는 음식이라든가 좋아하는 패션 컬러와 같은 사소한 것들도 적혀 있었다. 특별히 외식을 많이 하는 스타일이 아니란 점에서 양식이나 일식 같은 음식보다 한식 위주로 선택했고, 특히 값비싼 한식을 선택해서 분위기를 잡았다.
고작 연습생 한 명을 데리고 오는데 이런 사소한 것들까지 조사해야 하나 싶겠지만, 사실 단유는 말처럼 평범하지만은 않았다.
“연재훈이라.”
김단유의 후원자로 이름을 올린 이가 바로 연재훈이었고, 연재훈은 국내 굴지 그룹 연성그룹 연회장의 손자였다. 비록 상속 서열에서 밀린 이라 해도 충분히 주목할 만한 인물이었다. 들리는 말로는 연회장이 가장 아끼는 손자라는 말도 있고, 연성그룹에서 운영하는 연성 재단에도 한 발 걸치고 있다는 말이 있었다.
다른 건 다 떠나서 연재훈―연회장으로 이어지는 커넥션에 김단유도 있다고 봐야 했고, 그런 이유에서 충분히 주목할 만한 인물이었고 라인을 잡을 이유가 있는 아이였다.
서류를 내려놓은 박 이사는 의자를 돌려 어두컴컴한 하늘을 바라보았다. 어두운 하늘과 대조적으로 지상에는 화려한 불빛들이 별들을 대신해 빛나고 있었다.
‘하늘의 별만 별인가?’
사람들은 굳이 하늘을 바라보고 별을 찾지 않는다. TV 속에도 별들이 반짝 빛나고 있으니까. 박 이사의 역할은 그렇게 빛날 별들을 찾아서 빛이 나도록 해 주면 된다. 별을 찾고, 만들고, 빛나게 해주는 역할. 그 별들이 자신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한다. 고맙다고.
엔터테인먼트. 지상의 사람들에게 별과 희망을 보여주는 직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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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갈 거야?”
“가야죠. 이제.”
단유는 다른 멤버들에게도 인사하고 몸을 돌렸다.
“아, 나윤이한테도 인사하고 가.”
수련이 웃으면서 나윤이 연습하고 있는 연습실을 알려주었다. 단유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수련이 친하게 지내라며 ‘혹시 모르잖아’라고 덧붙였다.
단유가 연습실을 나간 뒤, 예영이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뭐?”
“나윤이랑 혹시 모른다니?”
“아, 그냥 농담이야.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몰라도, 인사하고 지내면 좋잖아.”
라고 둘러대는 수련이었다.
한편, 단유는 연습실을 나와서 복도를 거슬러 올라가다 수련이 알려준 보컬 연습실에 있는 나윤을 보았다. 문을 두드리니, 나윤이 돌아보고 문을 열어주었다.
“어? 단유네? 오랜만이야?”
갈색으로 염색한 머리를 풀어헤친 나윤은 오른손을 살짝 들어 반가움을 표시했다.
“예, 안녕하세요.”
“박 이사님이랑 이야기한다고 왔다면서? 이야기는 잘했고?”
“네.”
“계약하는 거야?”
단유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직은 제가 결정을 내리지 못했어요?”
“그래? 뭐, 자기 선택이 중요한 법이니까. 그래도 같이 일할 수 있으면 좋을 거 같은데. 우리 뮤직비디오에도 출연해주면 좋고.”
“뮤직비디오 찍어요?”
“아, 아니. 아직 계획은 없는데, 그래도 곡이 나왔으니까, 뮤직비디오도 찍지 않을까 해서 말이야.”
당황하는 나윤을 바라보던 단유는 귓가에 흐르는 낯선 멜로디를 감지했다.
“이 노래가 새로 나온 노래인가요?”
“어. 이거 연습 중이었어. 그런데 아직 발표 전이라 들려줘도 되나 모르겠네.”
“그래요? 연습하시는 데 방해하면 안 되니까, 그만 가 볼게요.”
“어, 그래?”
단유는 고개를 꾸벅 숙여 보이고는 뒤돌아서는데 나윤이 다시 불렀다.
“단유야?”
“네?”
“저기, 노래 한 번 들어볼래? 그냥 듣기만 하는 거면 별 상관없을 거 같긴 한데.”
“그래도 돼요?”
굳이 불편을 느끼지 않는다면 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다. 단유는 나윤의 의사를 재차 물었고, 나윤은 뭐 대수겠어, 라고 호기롭게 답한 뒤 단유를 연습실 안으로 불러들였다.
“밖에 들리면 안 되니까···.”
나윤은 연습실 문을 닫았다. 1평도 되지 않는 좁은 연습실 안에 두 사람이 있으니, 조금 비좁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 앉아.”
“누나가 앉으셔야죠.”
“아니, 난 서서 부르는게 더 낫거든.”
직접 불러주려는 거였어? 단유는 녹음된 음악을 듣기만 하는 것이 아니란 사실에 살짝 당황했다. 사실 나윤 역시 당황하긴 마찬가지였는데, 플레이어 안에는 AR과 MR이 같이 있었기 때문이다. 굳이 노래를 들려주려고 했다면 AR만 들려줘도 되는데, 자기도 모르게 MR을 틀어서 노래를 부르겠다고 말한 것이다. 핑계를 대자면, 계속 MR로 노래 연습을 하고 있었던 탓에 미처 AR로 들려주면 된다는 사실을 떠올리지 못했기 때문이고, AR은 가이드 녹음된 버전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럼 잠시만 실례할게요.”
단유가 먼저 자리에 앉자, 나윤은 에라 모르겠다, 라는 심정으로 MR을 틀기 위해 플레이어 앞으로 다가갔다. 작은 책상 위에 놓인 플레이어를 조작하기 위해 몸을 숙였을 때, 단유는 나윤의 머리카락이 흩날리며 나는 향기를 맡았다. 살짝 꽃향기 같기도 한 샴푸 냄새가 나윤의 머리에서 나고 있었다.
“됐다, 잠시만.”
전주가 나오고 곧 나윤이 나직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살짝 눈을 감고 목소리에만 집중하는 나윤의 모습은 프로의 그것과 다를 바가 없어 보였다. 게다가 지난번에 나윤이 레슨을 받을 때 들었던 것보다 훨씬 감정을 많이 쏟고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집중하고 있었다.
노래는 대략 3분 정도였고, 미디엄 템포의 팝댄스 장르였지만, 멜로디 라인은 마이너 조성(調性)의 서정적인 분위기를 연출해서 듣기에 부담이 없었다. 특히 음역대가 넓은 나윤의 허스키한 보이스가 잘 어울려서 듀엣인 줄 모르고 들었다면, 그대로 나윤의 솔로곡이라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로 잘 맞는 곡이었다.
“어때?”
싸비 부분에서 자연스럽게 고음을 처리하고 다시 감정을 추슬러 마무리를 지은 뒤, 나윤은 이마에 땀이 흐르는지도 모른 채 단유에게 감상을 물었다.
“좋네요.”
단답형의 대답에 나윤이 어이가 없다는 듯, 눈을 살짝 찡긋거렸다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지난번에도 그러더니, 너 너무 대충 듣는 거 아냐?”
‘진심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어떻게 들으면 혹평 중의 혹평일 수 있는 감상을 꺼내놓았던 단유였기에 살짝 긴장하고 있었건만, 단유는 유난스럽게 감동을 받은 표정을 짓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심각한 얼굴로 난색을 보이지도 않았다. 그래서 나윤은 별거 아닌 것처럼 넘어가려고 웃음을 지었다.
“멜로디 라인은 대중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37···, 그러니까 좋은 멜로디라고 생각해요. 음··· 이런 멜로디 라인에 리듬감을 주는 화성 악기들의 받침이 꽤 감상에 도움을 준다는 생각이 들어요.”
단유가 사뭇 진지한 태도로 손가락을 살짝 까닥거리면서 평을 늘어놓자, 나윤이 둥그레진 눈으로 바라보았다.
“곡의 전반에 흐르는 리듬은 확실히 최근의 유행과 유사한 진행을 보이네요. 솔직히 이런 리듬의 곡들이 요즘 많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멜로디 라인이 평범하게 구성되었다면, 다소 평이하게 들릴 수 있었을 텐데, 두 가지 요소가 곡의 분위기를 살리고 개성적인 곡으로 들리게끔 해주고 있어요.”
얼마 전에 보았던 단유와 지금의 단유가 다른 사람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하나는 멜로디인데요. 멜로디는 흔한 장르적 멜로디를 차용하는 대신 변주가 심한 마이너 조성의 멜로디를 이용해서 곡의 개성을 잡았다고 생각해요. 아마도 작곡가 분께서 이를 굉장히 염두에 두고 작곡하신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요. 그리고 멜로디가 너무 처지게 들리지 않게끔, 베이스와 드럼의 비트를 잘게 쪼개서 넣은 전략도 나쁘지 않고요.”
단유가 마치 전문 음악 평론가에 빙의라도 한 것처럼 보였다. 아니, 어쩌면 원래 음악을 잘 아는 아이였을 수도 있다.
‘그럼 진심이 담겨있지 않다는 말도 사실이라는 거잖아?’
새삼 단유의 지난 직설(直說)이 뒤늦게 가슴을 후벼 파는 느낌이었다.
“또 하나는, 누나의 노래에요. 목소리가 또 하나의 악기라는 말은 들었지만, 이렇게 잘 어울릴 거란 생각은 못 했네요. 확실히 누나는 빠른 템포의 노래보다는 다소 느린 템포의 노래에 더 잘 어울리긴 하네요. 누나의 호흡이 조금 길다 보니까, 느린 템포에서는 오히려 장점이 되는 것 같아요.”
호흡이 길다는 말은 선생님에게 가끔 듣긴 했다. 그게 자신의 ‘쪼(습관)’라고 지적받긴 했는데, 그걸 단유가 알 리가 없으니, 아마도 이번에 노래 부를 때도 그런 ‘쪼’가 나왔고, 그걸 단유가 캐치한 것이리라.
“그런데 이게 듀엣곡이라서 수련 누나도 같이 부를 거잖아요? 지금처럼 한 곡을 누나 혼자 부를 리는 없으니까. 그러면 또 어떻게 들릴지는 알 수가 없네요. 하지만 누나랑 수련 누나의 노래가 잘 어울리는 편이었으니까, 아마 같이 이 노래를 부른다면 더 좋은 결과가 나올 거라고 예상하네요.”
단유는 굳이 예상 가능한 차트 순위가 40위권 내, 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우와, 너 정말 대단하다? 원래 노래 잘 안 듣는다고 하지 않았어?”
“조금 관심을 두다 보니 그렇게 됐네요.”
사실은 듣는 동안 나름의 알고리즘으로 분석을 했다. 그리고 그 결괏값을 그대로 이야기해주는 게 가장 편하겠지만, 또 태호 때와 같은 반응이 나올까 봐 둘러 표현하느라고 공부한 지식을 모두 쏟아낸 단유였다.
나윤이 원했던 감상도 말했고, 더 길게 꺼낼 이야기도 없었던 단유는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할 말도 없는데 좁은 연습실에 둘이 있을 이유도 없었고, 계속해서 코를 자극하는 향기도 부담스러운 단유였다.
“어, 왜?”
갑자기 일어나는 단유의 반응에 살짝 당황한 나윤은, 손가락으로 문을 가리키며 ‘가려고요’라고 대답하는 단유의 반응에 얼굴을 붉혔다. 나윤은 대신 문을 열어주겠다고 손을 뻗었다가 단유와 부딪치자 얼른 손을 뺐다. 그런데 그 동작이 너무 격했던 나머지 팔꿈치가 벽에 세게 부딪혔다.
“아야!”
저도 모르게 나온 비명에 단유의 시선이 내려갔다.
“괜찮으세요?”
팔꿈치를 부여잡은 채, 민망한 웃음을 지어 보이는 나윤이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어, 괜찮아, 괜찮아.”
단유는 나윤을 바라보다가 손을 뻗었다. 그리고 땀에 젖어 얼굴에 찰싹 달라붙은 머리를 조심스럽게 귀 옆으로 넘겨주었다.
“무리하지 마세요.”
단유는 살짝 고개를 숙여 보인 뒤, 문을 열고 연습실을 빠져나갔다. 문이 닫히고, 연습실에 홀로 남은 나윤은 음악 소리보다 더 크게 울리는 심장 소리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왜 이러지?’
“아야.”
통증이 느껴져서 바라보니, 그새 팔꿈치에 파랗게 멍이 들고 있었다.
“아프네.”
나윤은 팔꿈치를 문지르며 잠시 그렇게 서 있다가 중얼거렸다.
“무리하지 말라니, 무슨 말이지?”
나윤은 붉어진 얼굴로, 잠시 단유의 목소리를 떠올리며 자리에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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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온 단유에게 명수가 들러붙었다.
“뭐 먹었어?”
“응?”
“저녁 먹고 온다고 했잖아? 너 높은 사람 만났다며? 그럼 맛있는 거 먹었을 거 아냐?”
“그게 그렇게 해석되나?”
“스테이크? 1등급 한우 꽃등심? 뭔데? 뭔데?”
단유는 잠깐 자신이 뭐 먹었더라, 고민하는 척을 하다가 답했다.
“밥.”
“밥? 야, 밥은 당연히 먹었겠지.”
“진짜, 그냥 밥 먹었어. 밥이랑 반찬 나오는 한식이었어.”
“진짜? 나가서 외식한 거 아냐?”
“외식으로 한식을 먹었지.”
“뭐야, 그게.”
김빠진 얼굴로 돌아서는 명수였다.
“야, 넌 궁금한 게 그게 전부야?”
“그럼 뭐가 더 궁금해?”
명수의 말에 단유는 볼을 긁적였다.
“예를 들면, 계약을 한다거나 뭐 그런 거?”
“안 했잖아?”
“···어떻게 알아?”
“계약했으면, 먼저 나한테 할 말 있다고 이야기를 해줬겠지. 말없이 방으로 들어가려는 걸 붙잡은 사람이 나다.”
“···가끔 말이야, 예전의 명수가 그리워져.”
“무슨 소리야?”
“예전의 명수는 이렇게 똑똑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말이야.”
“나도 예전의 석고가 그립다.”
“넌 또 무슨 소린데?”
“예전의 석고는 날 이렇게 놀리지 않았을 테니까!”
명수는 단유의 목에 헤드락을 걸고 흔들었다. 단유도 웃음을 터뜨리며, 목이 붙잡힌 채 명수를 들어 올렸다.
“어, 야야!”
명수가 화들짝 놀라 손을 풀자, 그제야 바닥에 내려놓았다.
“얘들아, 밤에 조용히 해야지! 아래층 사람들에게 피해가잖니?”
“네!”
두 사람은 히죽 웃으며 방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