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멤버 더 네임-291화 (291/956)

Sing for me(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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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자네는 왜 자신인지 궁금할 거야, 그렇지?”

단유는 신중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자네에 대해서 조금 조사를 했네. 너무 불쾌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장 매니저가 자네랑 계약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데, 장 매니저의 말만 믿고 아무렇게나 덜컥 계약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물론 자네가 반대했다는 건 들었지만, 그래도 회사 입장이란 게 있어서 말이야.”

박 이사는 옆에 두었던 태블릿을 들어서 살짝 흔들어 보였다.

“요즘은 확실히 세상이 바뀌었어. 그렇지?”

박 이사는 익숙하게 태블릿을 조작하며 말을 이었다.

“우리 회사는, 아니 나는 말이야, 아무나 회사에 들여서는 안 된다고 보네. 과거의 방식대로 그저 잘생기고 노래 잘 부르는, 혹은 끼가 많은 이들을 데리고 와서 연습만 시킨다고 될 문제가 아니라고 보거든. 어쨌든 회사인데, 회사에 영입할 대상이 인성에 문제가 있다고 하면 문제가 있지 않겠는가?”

태블릿을 조작하던 도중 살짝 눈동자만 올려 단유를 바라보는 박 이사였다.

“자네의 구설수가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건 이미 밝혀졌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는 일이니까 말이야.”

곧 화면 조작을 멈추고, 화면에 뜬 글들을 읽어내려가는 박 이사의 입에서는 단유의 과거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7살 경에 아네스 보육원이란 곳에 입소를 했는데, 그 전의 기억은 없다고?”

어떻게 알았을까? 단유의 표정이 드러났는지, 박 이사가 슬쩍 미소를 지었다.

“지역 도서관 모델도 했었고··· 갤럭시즈와의 방송 이전에 이미 SNS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었군. 공중파에도 잠깐 출연한 적 있고, 성적은···들었던 것보다 훨씬 좋네.”

단유는 자신의 과거를 간추려 이야기하는 박 이사의 말을 조용히 듣기만 했다.

“보육원 생활은 했지만, 특별히 문제가 있어 보이지는 않고, 학교에서도 특별히 문제가 될 만한 부분은 없다고 보고가 되어 있어. 그렇지만, 그런 한계가 있었기 때문인지 경력으로 인정받을 만한 기록은 없었나 보군.”

박 이사는 태블릿을 내려놓고 단유를 바라보았다.

“이 보고서를 통해 알 수 있었던 사실은 자네가 꽤 평범한 학창시절을 보내는, 평범한 중학생이란 사실이야. 성적이 전교 1등이라지만, 그건 전국에 있는 중학교 수만큼의 학생들도 가진 성적이지. 그 외에는 특별히 눈여겨볼 점이 없지. 아까도 말했지만, 자네 외모나 성적은 우리가 계약을 위해 참고해야 할 필수 고려사항은 아니란 말이야.”

“······.”

“그런데 왜 내가 이런 말을 늘어놓을까? 그건 자네가 다른 아이들과 다른 한 가지가 있기 때문이고, 그 점이 내가 자네를 눈여겨보게 된 이유거든.”

태호의 추천이 그 이유가 아니란 것은 알 수 있었다. 박 이사는 입술 끝을 살짝 올렸다.

“하나는 자기 관리가 철저한 사람이라는 점이야. 듣기로 자네, 단 하루도 빼놓지 않고 매일 아침마다 일어나서 운동한다지? 그렇지 않아도 외견이 중학교 1학년이라고 보기 힘들 정도로 좋다고 여기던 참이었는데, 그런 보고가 있더군. 이런 건 경력에도 남지 않지만, 분명 회사 차원에서는 그 사람이 얼마나 인내심과 성실함을 갖추고 있는지를 짐작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지.”

고작 그런 이유로? 그게 뭐 대수라고?

“두 번째는, 자네가 이야기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이라고 보여서야.”

“이야기를 만든다고요?”

“하나는 예전에 갤럭시즈와 인터넷 방송을 했을 때지. 솔직히 난 그 방송을 보지 못했어. 하지만 뒤에 이야기를 들었고, 이번에 찾아봤어. 자네가 갤럭시즈의 얼굴을 가지고 말한 이야기들의 신뢰성에 대해서는 솔직히 점수를 주기가 어렵지만, 이야기의 참신함과 재미만을 따지자면 높은 점수를 줄 수 있을 거야. 특히 낯선 카메라 앞에서 차분하게 이야기를 한다는 게 쉽지 않은데도, 자네는 꽤 차분하더란 말이지. 또 하나는 얼마 전 장 매니저에게 들은 이야기 때문이야. 수학을 이용해서 어떤 노래가 성공을 할 수 있을지를 분석했다고 하더군. 맞나?”

“네.”

“그때는 재밌다고 생각했어. 이쪽 업계의 마케팅 전공자도 아닌, 중학교 1학년생이 그런 발상을 가지고 직접 공식을 만들 궁리를 했다는 게 말이야. 그래서 그때는 재밌는 친구라고 생각했지. 그런데 앞서 이야기한 것과 연결하니까, 재밌다는 정도가 아니더라 이 말이지.”

“그런가요?”

“그래서 생각했지. 아, 김단유라는 아이는 콘텐츠를 만들 줄 아는 아이구나, 라고. 물론 지금은 어설프고 설익었지만, 그 부분은 내가 케어해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네. 그리고 지금 당장이 아니더라도, 좀 더 훈련된다면 충분히 대한민국 탑 클래스 크리에이터가 될 거라고 생각하네.”

단유는 머리를 긁적였다. 자기가 그 정도로 거창한 호칭으로 불릴만한 일을 하지도 않았고, 그런 호칭으로 불리길 바랐던 적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자네 혹시 노래는 할 줄 아는가?”

“노래요?”

단유는 뜬금없이 이어진 물음에 당혹한 표정을 지었다.

“사실 노래는 별로 관심이 없어서··· 아는 노래가 없는데요.”

“자네 목소리를 들어보니 변성기가 온 것 같긴 한데, 그런데도 목소리에 힘이 있단 말이지. 아무래도 오랜 시간 운동으로 다져진 덕분이 아닐까 추측은 되는데, 뭐 그건 천천히 확인해 보면 될 일이고.”

짧은 문답 사이에 그런 것까지도 생각했단 말인가? 단유가 속으로 혀를 내두를 때, 박 이사는 다시 깍지를 끼고 단유와 눈높이를 맞췄다.

“내 생각은 그렇네. 아직은 검증도 되지 않았고, 훈련도 되지 않았기 때문에 자네의 성공 가능성을 점쳐 볼 단계는 아니라고 생각하네. 하지만 만약 이 업계에서 일해볼 마음을 가지고 훈련을 받는다면 빠른 시일 내에 이쪽에서 두각을 드러낼 수 있을 거라고.”

단유는 긴 열변 끝에 불도저처럼 밀고 들어오는 박 이사의 언변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아직까지는 생각이 없습니다.”

“아직까지는?”

“사실··· 태호 형과 얘기할 때는 그랬어요. 연예인이 되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다고. 실제로도 그랬고요. 그런데 요즘은 조금 바뀐 것도 사실이에요. 만약 연예계에서도 제가 하고 싶은, 혹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해보고 싶다고요. 그래도 그건 연예계에 종사하는, 이를테면 태호형 같은 일이지, 제가 직접 연예인이 되는 것은 아직도 자신이 없네요.”

“자신이 없다라··· 뭐 내 칭찬 같지만, 난 자네가 충분히 성공할 가능성이 있다고 봤고, 그래서 자네에게 이런 제안을 하는 것이지만, 만약 자네가 자신감이 없다면, 그리고 할 마음이 없다면 억지로 제안하지는 않을 거야. 자신감이 부족한 사람은 다른 모든 재능을 가지고 있어도 제대로 발휘할 수 없을 테니까.”

단유 역시 그 말에는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우리와 계약을 하고 연습생 생활을 시작해보는 것은 자네가 연예인을 하지 않는다고 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왜요?”

“연습생이 된다고 해서 꼭 연예인이 된다는 법은 없네. 물론 회사는 데뷔를 시켜서 성공시키려고 하지만, 연습생 본인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다른 곳에서 쉽게 받기 힘든 레슨을 받으면서 자신의 잠재력을 끄집어낼 기회가 될 수도 있으니까. 내 생각이지만, 자네가 자신감이 없는 이유는 자네 스스로의 잠재력을 자네가 제대로 판단하지 못해서라고 생각하네. 연습생으로 있는 동안 자네의 잠재력을 발견하게 된다면, 그래서 자네가 이 길을 가게 된다면 아마도 내게 고마워하지 않을까, 하는 욕심도 들고 말이야.”

너무 오랫동안 말을 많이 한 탓인지 목이 말랐던 박 이사는 잠시 이야기를 끊고 차를 주문했다. 식탁이 정리되고 차가 나온 뒤, 박 이사는 다시 말을 이었다.

“우리 회사는 연습생이던, 소속 연기자에게든 가혹하게 대하지 않네. 항간에 떠도는 노예계약 같은 건 없을뿐더러, 불공정한 대우를 하지도 않네. 그러니 자네가 연습생으로 들어와 꿈을 키우다가도 만약 자네의 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서로 납득할 수 있는 방식으로 계약을 해지할 수도 있네.”

그때 단유는 문득 궁금증이 생겼다. 하지만 물음을 던지기 전에 박 이사의 말이 이어졌다.

“그리고 지금 든 생각인데 말이야, 설령 자네가 가수나 배우 쪽으로 가지 않더라도 말이야, 자네랑은 계약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드는군. 어쩌면 국내 기획사들 중 최초로 유명대학 교수를 배출해낸 기획사가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드는걸?”

마지막 말은 반쯤은 농담인지, 눈에 가득 웃음기가 담겨 있었다.

“그런데 이사님. 질문이 있어요.”

“어, 뭔가?”

“‘대우’를 말씀하셔서 생각이 난 건데요, 갤럭시즈는 왜 복귀가 어렵다고 하는 거죠? 그리고 제가 듣기로는 회사와 소속 가수가 ‘소통’이 안된다고 들었거든요? 그건 꽤 불공평하고 불공정한 대우, 아닌가요?”

박 이사의 눈에 웃음기가 사라졌다. 하지만 화가 난 것 같지는 않았다. 다시 아까 열변을 토하던 때의 진지함으로 돌아온 박 이사는 잠시 입술을 꽉 다물고 생각을 정리하는가 싶더니, 손가락을 내밀었다.

“갤럭시즈는 내게 손가락이야.”

“예?”

“그런 말 있지?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있냐고. 갤럭시즈가 그래. 내게 갤럭시즈는 손가락이야.”

박 이사는 손가락을 천천히 거둬들이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이야, 갤럭시즈는 아까 내가 얘기했던 콘텐츠 크리에이터로서 평가하자면 실패작이야.”

단유는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내가 말한 콘텐츠 크리에이터의 정의를 기억하나? 그 정의에 따라 갤럭시즈를 보게. 그들에게 과연 자신만의 것이 있는가. 안타깝지만 그들은 레슨받은 것, 원래 가진 것 이상의 것을 만들어내는 데 실패한 셈이야. 개성이 없으니, 다른 여타의 걸그룹과의 차별점이 없고, 차별점을 만들어내지 못하니 여타의 그룹들처럼 진흙에 묻혀도 빛을 내지 못하는 거야. 내가 ‘진흙’이라고 표현했나? 흠··· 맞아, 여기는 진흙탕이야. 스스로 빛을 내지 못하면, 결국 묻혀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진흙탕. 스스로 빛을 내고 대중의 손에 들려 올려진 것들이 바로 ‘스타’라고 부르는 것들이지.”

박 이사는 술을 마시듯 차를 마셨다. 단유는 그런 박 이사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와 대화를 나누는 동안, 가장 솔직하게 자신의 감정을 드러낸 순간이 있다면, 바로 마지막 ‘진흙탕’ 부분이었다고 단유는 생각했다.

****

“이야기는 잘했어?”

박 이사와 함께 회사로 돌아온 단유는 홀로 지하 연습실로 내려왔다. 태호는 보이지 않았지만, 수련을 비롯한 갤럭시즈 멤버들이 모두 연습실에 있었다. 다들 반가운 얼굴로 단유와 인사를 나눴고, 마침 단유의 사정을 알던 수련이 물었다.

“무슨 이야기?”

명지가 묻자, 단유가 대답했다.

“좀 전에 박 이사님이랑 이야기를 했어요.”

“박 이사님이랑? 설마?”

“계약 문제이긴 했는데, 일단 나중에 결정하기로 했어요.”

예영이 손뼉을 치며 놀라움을 표시했다.

“우와, 박 이사님이 직접 너랑 이야기했다고? 박 이사님이 진짜 너 마음에 둔 거 아냐?”

“표현이 이상하다? 마음에 두다니?”

“언니? 왜 그래? 일상 생활 가능해?”

명지와 예영이 아웅다웅하는 사이, 수련이 단유에게 물었다.

“나중에 결정한다면, 너도 생각이 있긴 한가 보네?”

“아니, 전혀 없지는 않은데, 솔직히 오늘 박 이사님이랑 이야기하면서 호기심이 생기기도 했어요.”

“그래? 그럼 진짜 한 식구 되는 거 아냐?”

지수가 끼어들어서 단유의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가만 보면 지수는 매번 단유의 머리를 헝클어뜨리는 걸 좋아했다.

“그건 아직 모르고요. 그리고요···.”

“뭐?”

단유는 잠깐 뜸을 들이다가 피식 웃었다.

“누나들이 아픈 손가락이래요.”

“아픈 손가락?”

수영이 무슨 뜻이냐고 묻는 듯 눈썹을 올렸다.

“누나들 다섯 명이 손가락 같아서, 깨물면 아프다고요.”

“아, 그 말.”

수영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다른 말은 없었어?”

지수가 단유에게 물었지만, 단유는 말없이 싱긋 웃었다. 차마 ‘실패’한 손가락이라는 박 이사의 말은 전하기 어려웠던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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