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멤버 더 네임-289화 (289/956)

Sing for me(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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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단유가 아는 노래가 많지는 않아도, 최근의 일들도 있었던 데다가 명수가 집에서 자주 듣던 노래였던지라, 지태가 선곡한 노래에 대해서는 아는 편이라 할 수 있었다. 게다가 갤럭시즈의 회사에서 보컬 레슨을 청강하기도 했던 단유는 지태의 노래를 조금 기대하기도 했다.

어느 유명한 심사위원은 그렇게 말하기도 했다.

“평소 말하는 목소리로 노래를 불러야 한다.”

그게 유행이었던지, 청강했을 때도 보컬 트레이너는 나윤의 노래에 그렇게 지적해주면서 목소리 음색이 바뀌지 않게 주의를 시켰다. 평소 지태의 목소리를 잘 아는 단유였기에, 그런 목소리로 어떤 노래가 나올지를 기다리는데, 지태가 첫 소절을 불렀다.

“어디 가면 안 돼, 날 두고 가면 안 돼.”

지태의 첫 소절에 단유는 물론이고, 명수와 채윤도 얼어붙었다.

“···끊어진 전화, 다시 시작된 밀당.”

플루토의 노래는 최근 유행하는 곡답게 리드미컬한 곡의 구성도 구성이지만, 걸그룹 특유의 톡톡 튀는 발랄함이 주가 되는 노래였다. 그 때문에 지태의 노래가 기대되기도 했지만, 이런 노래가 나올 줄은 누구도 몰랐다.

친구들의 반응을 챙기지 못한 지태는 후렴부까지 부른 뒤에 명수에게 다음을 부르라고 마이크로 신호를 줬지만, 명수는 손을 저으며 자리에 앉아버렸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지태가 2절까지 마저 부른 뒤에야 마이크를 내려놓았다.

“야, 니들 왜 그래?”

노래가 끝난 뒤에도 어색한 반응을 보이는 친구들이 이상해 보였던지 지태가 물었다. 명수와 채윤이 눈치를 보다가, 명수가 먼저 입을 열었다.

“와. 난 무슨 할아버지가 부르는 줄 알았다.”

“뭐?”

“무슨 댄스곡을 트로트 부르듯이 부르냐?”

구성진 가락에 어깨춤을 추며 불러야 할 것 같은 곡조로 자체 편곡을 해서 불렀던 지태였다. 다만 지태 본인은 친구들의 반응에 어리둥절한 모습을 보였다.

“이상했어?”

“어, 완전.”

지태의 반응에 그만 웃음을 터뜨리는 명수와 채윤이었다. 명수는 다른 노래도 그렇게 부르는지 궁금하다며, 다른 노래를 골랐고 채윤은 그 사이 지태에게 노래를 누구한테 배웠길래 그러냐고 물었다.

“난 이상한 줄 모르겠던데.”

고민하던 지태가 슬쩍 털어놓기를,

“할아버지 때문에 그런가?”

라고 했다. 말인즉슨, 집에서 할아버지랑 오래 있다 보니, 할아버지가 노래를 틀어 놓고 부르는 모습을 자주 봐서 그런지도 모르겠다는 설명이었다. 명수가 다시 최신곡을 골라서 시작 버튼을 누른 뒤 지태에게 마이크를 넘겼다.

다시 지태가 노래를 부르고, 두 친구는 배를 잡고 웃으면서 지태의 노래를 편하게 감상했다.

“야, 차라리 트로트를 불러라.”

이어진 트로트 선곡은 그야말로 지태의 곡이었다. 나이답지 않게 구수한 창법과 완벽한 꺾기로 좌중을 압도했다. 명수와 채윤이 기립박수로 지태의 노래를 칭찬했다.

한바탕 웃음 폭탄을 터진 코인 노래방은 덕분에 처음의 낯설음은 많이 가셨다. 이어진 주자는 명수였고, 명수는 뜻밖의 노래 실력을 뽐냈다.

“배에 힘주고, 목에는 힘을 빼고! 필요한 부분에서만 힘을 줘야 노래가 듣기 편하지.”

라고 했던 보컬 트레이너의 교습법을 떠올려보면, 명수는 평소 운동으로 체력과 힘을 기른 상태여서 목소리에도 힘이 있었다. 그래서 노래 자체가 듣기 좋을 정도로 정확하고, 음정의 흔들림이 적었다. 고음도 듣기 좋을 정도로 자연스럽게 올라가서 지태와 채윤의 환호를 받을 수 있었다. 다만, 노래를 많이 불러보지 않은 탓인지 기술적으로 능수능란한 모습을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래서 더 노래가 깨끗하고 순수하다는 느낌이었다.

“명수 노래 잘하네?”

“야, 여기서는 마음대로 소리를 크게 내도 상관이 없으니까 기분이 좋다야. 자주 와야겠어?”

코인 노래방의 매력에 푹 빠진 명수가 마이크를 채윤에게 넘기고 다시 선곡 책을 집어 들었다.

“너도 어서 골라봐?”

“난 아는 노래가 없잖아?”

“없긴. 여기 있네. 이거.”

명수가 가리킨 노래는 바로 갤럭시즈의 노래 중 두 번째 싱글의 곡이었다. 아무리 인기 없는 걸그룹의 노래라도 노래방에는 있구나, 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한 번 불러봐. 소리 지르면서 부르니까 스트레스가 확 풀린다.”

이미 채윤의 노래가 시작된 참이어서 반주 소리가 귀를 먹먹하게 만들었다.

“스트레스는 무슨.”

“야, 너 요즘 스트레스 받는 거 내가 모를 거 같아? 아침마다 너 다크서클 자랑하고 있는 거 몰라?”

내가 그랬나, 라고 속으로 생각하며 단유는 고개를 끄덕였다. 명수는 곧바로 그 노래를 예약하고 한참 열창을 하던 채윤의 노래에 맞춰 손뼉을 쳐 주었다.

“야, 박수 치지 마. 발라드에 무슨 박수야!”

“그럼 탬버린이라도 칠까?”

말 만이 아니라 진짜 치려는 듯 명수가 벽에 걸린 탬버린을 집어들자, 지태가 엉덩이를 들고 일어나 명수를 말리는 시늉을 했다. 그 와중에도 채윤은 모니터에 뜬 가사에만 집중해서 노래를 불렀다. 그렇게 아웅다웅하는 소란마저도 흥을 돋웠고, 단유마저 웃음을 터뜨리며 낯설었던 분위기를 털어냈다. 아이들은 그렇게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어느새 여러 개의 곡을 예약해놓게 된 반면에 네 사람이 가진 돈은 점점 바닥을 보였다.

“야, 몇 곡 못 부르겠는데?”

반주기 위에 쌓아둔 동전이 줄어드는 것을 보며 걱정하는 아이들이었다.

“야, 그래도 단유 노래는 듣고 끝내야지.”

“어? 맞네! 단유 노래 들어야지?”

그들의 기대감이 사뭇 부담스러워, 마이크를 들고 싶지 않았지만, 명수가 끝내 손에서 마이크를 떼지 못하게 붙잡아 주는 통에, 그리고 억지로 자리에서 세운 통에, 단유는 답지 않게 쭈뼛대며 일어섰다.

명수와 지태, 채윤은 잔뜩 기대감을 안고 단유를 바라보았다. 모범생 중의 모범생. 평소에 목소리 한 번 높인 적 없는, 차분함의 대명사. 매일 책만 들여다보는 책벌레가 부르는 걸그룹의 댄스곡이 기대가 되지 않을 리 있나. 설령 단유가 음치라고 해도, 그건 그것대로 재미가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15초 정도의 짧은 반주가 끝나고 첫 소절이 시작되었다.

“나에게 다가와 속삭이던 당신의 눈동자에/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오직 하나였어요.”

변성기가 찾아온 단유의 목소리는 다소 거친 느낌이 있었다. 하지만 짧은 호흡 속에서 박자를 쪼개며 들어가는 노래의 흐름을 정확히 지켜가며 부르는 단유의 노래는 듣기에 나쁘지 않았다. 나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잘 부르네?”

“잘 불러.”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의견을 교환하던 이들은 단유가 생각 외로 노래를 잘 부른다는 걸 알게 되었다.

“얘 노래 못 부른다며?”

채윤의 말에 명수가 고개를 저었다.

“노래를 못 부르는 게 아니라, 부르는 모습을 못 봤다는 거지.”

“근데 저렇게 잘해?”

지태는 낯선 노래임에도 썩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하며 단유의 노래를 들었다.

“야, 이거 노래 괜찮은데?”

“그치? 나도 단유가 부르니까 괜찮은 것 같다.”

진작에 이 노래를 알던 명수도 색다르다는 생각을 가지며 단유의 노래를 감상했다.

몸을 전혀 움직이지 않고, 꼿꼿하게 서서 입만 열어서 노래를 부르는 단유였지만, 신기하게도 노래는 꽤 듣기가 좋아서 마치 남성 솔로의 댄스곡인 것 같았다.

“여자 노래인데도 남자 노래 같다야.”

그러고 보니, 노래의 음정이 원곡에 맞춰져 있었다.

“확실히 단유가 운동을 많이 해서 힘이 좋은가보다.”

고음부가 아님에도 여자의 음역대라 꽤 고음인데 단유는 표정 변화 없이 노래를 불렀다.

단유도 자신이 이 정도로 부를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아무래도 보컬 트레이너의 레슨을 청강한 도움이 컸다고 생각해보는 단유였다. 두 번밖에 되지 않는 청강이었지만, 수련이라는 확실한 모범 답안을 보며 배운 탓인지, 그럭저럭 흉내는 낼 수 있구나, 라고 생각하며 노래를 마친 단유였다.

“우와! 대박!”

아이들이 환호를 보내자, 그제야 얼굴을 붉히며 얼른 자리에 앉은 단유였다.

“민망하네.”

“야, 너 못하는 게 뭐냐? 노래까지 잘해? 완전 사기 캐릭터네.”

“잘하긴, 그냥 흉내 낸 거야.”

“흉내는 무슨? 야, 그 정도면 가수 해도 되겠다.”

마침 노래방 기계에서 ‘가수 해도 되겠어요’라는 음성이 들려왔다.

“야, 기계가 인정했다. 김단유, 너 가수 해라.”

“그만해라.”

단유는 마이크를 명수에게 쥐여주고 얼굴을 굳혔다. 그 모습이 기분 나빠서가 아니라 쑥스러워서 그러는 것임을 아는 친구들은 더더욱 신이 나서 단유를 놀렸다.

몇 곡의 노래를 더 부른 후, 아이들은 코인 노래방에서 나왔다.

“와, 시원하다. 저기 안이 덥긴 덥네.”

“겨울에 오면 딱 좋겠다.”

“그럼 기말고사 끝나고 또 올까?”

“콜!”

“야, 그 전에도 한 번 더 오지, 뭘 기말고사 때까지 기다려? 가끔 놀러 오고 싶을 때 오면 되지 뭐.”

“다음에는 올 때, 과자라도 사 들고 올까?”

“과자가 아니라, 음료수를 사서 와야겠다. 목이 칼칼해.”

“야, 돈 없지?”

“응.”

채윤이 호주머니에서 100원짜리 동전 몇 개를 집어 보였다.

“에이, 그럼 그냥 가자.”

네 사람은 기분 좋은 웃음을 지으며 집으로 돌아갔다.

****

“여보세요?”

단유는 저녁 늦게 걸려온 전화에 겨우 책에서 눈을 뗄 수 있었다.

―나 태호형이다.

“예, 형. 어쩐 일이세요?”

―아, 저기···요즘은 회사에 안 오더라?

“아, 학교에 시험도 있었고요, 제가 따로 공부하는 것도 있고 해서 시간이 잘 나지 않아서요.”

잠시 수화기에서 목소리가 끊겼다가 다시 이어졌다.

―혹시 내가 저번에 한 이야기 때문에 마음 상해서 그러는 건 아니지?

“에이, 아니에요. 그런 거로 무슨 마음이 상해요. 형이 없는 말을 한 것도 아닌데요. 그렇지 않아도 형이 그렇게 이야기해주신 덕분에 지금 그 공부도 하는데요.”

―응? 뭔데?

“그때 말씀드렸던 알고리즘이요. 좀 더 보완해서 정확도를 높여볼까 하고요.”

태호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역시 단유는 그 정도로 의기소침해질 아이는 아니었다. 단유가 준비해온 그 ‘방식’에 대해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일침을 놨음에도 포기하지 않고 오히려 더 보완하겠다고 공부를 한다고 하니, 역시 단유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너무 거기만 매달리지 말고, 학교 공부도 하고 그래야 한다. 물론 니가 어련히 알아서 하겠느냐마는.

“네, 알겠어요. 그 때문에 전화주신 거예요?”

태호는 다시 머뭇거렸다. 별거 아닌 이야기인데도, 조금 꺼내기가 어려운 이유가 뭘까?

“저기 다름이 아니고. 우리 회사의 박 이사님이 있잖아? 널 조금 보고 싶다고 하시네.”

―박 이사님이요?

“응. 내가 너에 대해서 조금 바람을 잡았거든.”

―무슨 바람이요?

태호는 쑥스러워하면서 박 이사에게 이야기했던 내용을 설명했다.

―유승호가 누군데요?

태호는 윗머리를 마구 긁은 뒤, 차분하게 머리를 정리하며 유승호라는 배우에 대해 설명을 했다.

“아직도 계약에 부담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말이야, 일단 박 이사님이랑 이야기해보고 결정하는 건 어떻겠어? 물론 이야기한다고 당장 계약을 하자는 것도 아니고, 또 너도 박 이사님이랑 이야기해보고 싶다고 했잖아? 분위기 봐서 네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도 나눌 수 있을 테고 말이야.”

되도록 그때의 이야기는 안 했으면 좋겠다는 게 태호의 개인적인 소견이었지만, 그 부분은 말하지 않았다. 괜히 그 이야기를 꺼내서 박 이사가 단유를 ‘실없는 아이’ 혹은 ‘망상에 빠진 아이’라는 판단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지만, 또 단유가 보통 아이가 아니라는 것은 몇 마디 대화를 나누면 자연히 알 수 있는 일이기에 사람 잘 보기로 유명한 박 이사라면 충분히 단유의 재능을 알아보고 인정해 줄 것이라는 판단도 들었다.

“그래서 시간을 맞출 수 있다면, 한 번 회사로 나와보지 않겠냐고 물어보려고 전화를 한 거야.”

단유는 태호의 제안에 대해 잠시 생각을 해 보았다. 물론 아직도 계약을 거절했던 당시의 이유, 여전히 공부하고 싶은 것이 많다는 이유는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이유에도 불구하고 박 이사와 이야기를 나눠본다는 것은 현재의 단유에게 나름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지금은 뭐든 경험해보는 게 중요하니까.’

‘현실’을 산다는 것을 ‘체험’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기에, 단유는 곧 태호에게 제안을 받아들이겠노라 답했다.

그리고 며칠 뒤, 단유는 회사 앞에서 태호를 만났다.

“왔어?”

태호 옆에는 수련도 같이 자리하고 있었다.

“우리 이사님 만난다며?”

“네.”

“이사님이 시간을 내주셨다니 대단하네? 우리 이사님 보통 바쁜 분이 아니시거든.”

단유는 볼을 긁적였다. 바쁘기로 따지면, 자신도 바쁘기는 매한가지라고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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