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멤버 더 네임-288화 (288/956)

Sing for m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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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저 도서관 좀 다녀올게요.”

학교에서 돌아온 단유는 오자마자, 교복을 벗어 던지고 도서관으로 향했다. 도서관까지 거리가 조금 되지만, 그래도 자유롭게 갈 수 있는 거리에 있다는 게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버스를 타고 30분을 가면 나오는 도서관에 도착한 단유는 곧바로 열람실로 향했다. 그리고 미리 검색해놓은 책들을 찾아 뽑아 든 뒤, 책상 위에 올려놓고 탐독하기 시작했다. 「인간행동과 심리학」 같은 책이나 「합리적 행동이론과 계획행동이론 비교」와 같은 학술지 기사를 찾아 펼쳐놓고, 보는 동안 틈틈이 노트에 기록을 해 나갔다.

“저기요?”

두어 번을 불린 뒤에야 정신을 차린 단유가 고개를 들어보니 도서관의 사서가 퇴실 시간이 되었음을 알렸다.

“아, 저기 혹시 이거 대출 가능한가요?”

“회원 등록 하셨어요?”

“아니요.”

“회원 등록 하시고 대출하시면 될 거예요.”

단유는 들고 간 가방에 책들을 담아서 집으로 돌아왔고, 집에 와서도 책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책을 보는 시간만큼 노트의 페이지도 빼곡히 채워져서, 3일이 지날 때쯤 노트 한 권이 다 채워졌다.

“너 완전 열심이다?”

밥숟가락을 뜨던 명수의 말에 단유가 시선을 들어 올렸다. 그간의 노고를 눈 밑의 다크 서클로 드러내 보이는 단유였다.

“그냥 조금.”

조금이 아닌데. 명수는 깍두기 김치를 하나 집어 입안에 넣으며 물었다.

“그런데 그거 학교 공부는 아니잖아? 중간고사 준비 안 해?”

그러고 보니 중간고사가 바로 다음 주 월요일부터였다.

“어. 이번엔 그냥 평소 실력대로 하려고.”

“선생님, 들으셨죠? 쟤가 저렇게 재수 없어요.”

선생님은 물 한잔을 따라 명수에게 건네며, 웃음을 지어 보였다.

“단유라면 평소 실력대로 해도 상관없지. 꼭 1등 해야겠다는 것도 아니잖아. 그렇지?”

물론, 단유 실력이라면 1등을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네.”

“그래. 지금은 자기 하고 싶은 공부 하면서 지내도 돼.”

아직은 중학생이니까, 라는 마음이 반, 단유니까 형편없지는 않겠지, 라는 마음이 반이었다. 명수는 두 사람의 대화를 듣다가 선생님이 건넨 컵의 물을 모두 마셔버렸다.

“우와. 정말, 다른 사람이 없으니 망정이지.”

명수는 자기니까 이런 재수 없는 말도 받아주는 거라며 능청을 떨며 밥을 떴다.

“그렇게 말하는 명수 넌 중간고사 준비는 하고 있니?”

“저요? 에이, 잘 아시면서.”

갑자기 넉살을 떠는 명수의 태도에 선생님은 눈을 가늘게 뜨고 바라보았다.

“안 하니?”

“예.”

“왜?”

“다리 다쳤잖아요?”

“다리 다친 거랑 공부랑 무슨 상관이길래?”

“글쎄, 저는 몸 한 군데가 안 좋으면 공부가 안되더라고요.”

“다리가 성할 때도 공부를 잘 안 했던 것 같은데?”

명수가 갑자기 손가락으로 단유를 가리켰다.

“이번에 단유가 공부를 안 도와줘서 그래요.”

시험 기간이면 단유가 예상 문제들을 뽑아줘서 명수를 도왔다. 그런데 이번에는 단유가 다른 공부에 빠져서 예상 문제를 뽑아주지 않았고 그 때문에 덩달아 휴업에 들어간 명수였다.

선생님은 혀를 차며 명수의 머리를 살짝 쥐어박았다.

“웬만하면 이제 스스로 공부 좀 해라. 너 그러다 진짜 바보 된다.”

“천천히 하면 되죠.”

“공부에 ‘천천히’가 어딨어?”

명수는 히죽 웃으며 다시 밥을 떠서 입안 가득히 집어넣고 볼을 잔뜩 부풀린 채 오물거렸다.

“아, 그리고 이제 물리치료 끝났지?”

“네. 그런데 다음 주가 중간고사라서 다다음주부터 축구부 훈련에 참여할 거예요.”

선생님은 이맛살을 찌푸렸다.

“다 먹고 얘기해. 밥풀 다 튀잖니?”

“네.”

명수가 히죽 웃으며 부푼 입안으로 붉은 황태구이 한 조각을 집어넣었다. 그 모습이 어이가 없어 선생님은 풋 하고 웃음을 지었다.

****

2학기가 시작된 이후 첫 번째로 치러지는 시험이었다. 어느 시험이든 마찬가지지만, 교실에는 긴장과 스트레스가 흘러넘치고 있었다.

단유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교실에 들어오자마자, 가방을 내려놓고 가방에서 책을 꺼내어 펼친 뒤, 노트에 필기하면서 책을 읽어갔다.

“시험준비 안 해?”

병수가 단유를 보더니 물었다. 단유는 펜을 잡은 손으로 머리를 몇 번 긁적였다.

“지금은 여기에 꽂혀서 손을 떼기가 힘드네.”

“그러다 전교 1등 놓치는 거 아냐?”

‘다들 그 소리네.’

괜히 민망해져 숨을 깊게 들이켜는 시늉을 해 보던 단유는 집에서처럼 ‘평소 실력대로 하는 거지’라는 말 대신 ‘1등에 연연하지 않는다’고 대답하고는 다시 책에 시선을 주려다가 문득 생각이 나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평소 같으면 지태나 채윤이 수업 종이 울리기 전에 다가와서 수다를 떨 시간이지만, 시험을 앞둔 터라 그들도 각자 노트를 보면서 시험공부에 열중하고 있었다.

1학기 때 약간의 다툼(?)이 있었던 철규도 멀지 않은 자리에서 그 뒷모습이 보였다. 여전히 돈을 잘 쓰고 다니는지, 무리를 끌며 다니는 모습이 보였지만 철규가 단유에게 시선 한 번 던지지 않고 조용히 지내던 터라 같은 반임에도 같은 반이 아닌 것처럼, 말 한마디 나누지 않고 지내는 중이었다. 아니, 어쩌면 단유가 조용히 지내서 서로 부딪칠 일이 없었던 것이리라. 생각해보면, 철규는 큰 계기가 없는 한 크게 변화된 모습을 보일 일은 없을 것 같았다.

지난 학기에 단유의 바로 앞에 앉았던 태훈은 멀리 떨어졌다. 지금도 노트를 보면서 귀에는 이어폰이 꽂혀 있었다. 아마 그가 좋아한다던 락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1학기 때와는 다르게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권하는 모습은 보기 어려워졌다. 그 일이 태훈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그 이후로 교실에서 태훈의 음악을 스피커로 듣게 되는 일은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 같았다.

단유의 기준에서 명수만큼이나 축구를 잘하던 경준이도 지금은 열심히 노트를 보며 시험준비를 하고 있었다. 사실 경준이 역시 명수 못지않게 공부를 좋아하지 않는 아이였고, 수업 시간에 제대로 집중하는 모습을 잘 보이지 않았다. 경준이 집중하는 때는 오직 체육 시간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그리고 체육 시간에만 경쟁심을 불태우며 수업 시간에 과묵하던 그 입에서 온갖 욕들이 쏟아냈다.

단유는 그 외에도 아이들을 둘러보며 그 아이들이 평소에 보이던 모습을 떠올려보았다. 같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모두가 개성이 넘치는 아이들이었고, 각자의 개성에 맞게 말하고 행동했다. 하지만 개성이 넘친다고 해서 그 아이들의 행동 양식을 전혀 알 수 없는 것도 아니었다. 어떤 아이가 어떤 환경에서 어떤 조건에 따라 어떤 행동을 할 것인지 유추할 수도 있다는 것. 그것이 단유에게 의미가 있었다.

‘다양한 변수들을 고려하여 연립방정식을 세우고 각각의 교점들을 연결하면 다음 교점을 유추하는 게 불가능하지 않다는 것.’

그것이 단유가 지금 하는 작업의 기본 주제였다. 즉, 아무리 다양한 양식을 가진 사람들이라 해도, 구체적이고 분명한 조건들만 주어진다면 다음 행동이나 말을 유추하는 게 불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경준이 체육 시간이 되면 가장 먼저 옷을 갈아입고 운동장으로 나간다거나, 점심이 끝나면 철규가 자신과 친한 아이들을 데리고 매점으로 간다거나, 쉬는 시간이 되면 태훈이 귀에 이어폰을 꽂고 책상에 엎드린다거나, 학교가 끝나는 시간이면 지태가 채윤의 팔목을 잡고 단유에게 온다거나 하는 행동들이 예측 가능하다는 것이다.

‘규칙.’

모든 선택이 열려 있고, 모든 가능성이 존재함에도 확률적으로 가장 높은 행동을 유추할 수 있는 이유는 규칙이 존재하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이러한 규칙들을 찾는 일련의 작업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만 된다면, 다른 상황에서도 규칙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보았다. 그리고 그러한 규칙성이 불확실성의 확률을 넘어 예측 가능한 미래를 보여주리란 믿음이 있었다.

솔직히 학과공부가 조금 답답해지고 있던 차여서 지금의 작업은 단유에게 신선한 자극이 되고 있었다. 학교의 수업이 예전에 비해 많이 바뀌어서 학생들의 사고력을 증진시키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는 선생님이나 어른들의 말씀은 예전의 것과 비교해볼 수 없었기에 비판하기 어려웠지만, 현재 수업을 받는 단유의 입장에서는 결국 암기식에 반복 학습에 불과했던 터라 공부에 흥미가 떨어지는 중이었다.

그런 와중에 이런 재미난 공부가 있으니 어찌 시험공부 따위가 손에 잡힐까.

‘사람의 행동을 서술형 문장 대신 숫자로 치환해서 공식에 집어넣게 되면 좀 더 보기 편하고 빠르게 계산할 수 있을 거야.’

단유는 점점 주위를 잊고 노트 위의 공식에 빠져들었다.

****

“와, 끝났다!”

종례가 끝나자 아이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교실 밖으로 뛰쳐나가기 시작했다. 선생님도 그 정도는 봐주겠다는 듯, 미소를 살짝 머금은 채 교무실로 향했다.

“야, 시험도 끝났는데 놀러 가자.”

지태도 그런 분위기에 편승하여 들뜬 목소리로 단유에게 제안을 했다. 하지만 단유 대신 채윤이 그 질문을 받아 되물었다.

“어디 가자고?”

“그냥 아무 데나. 놀만 한 데가 없을까?”

1학기 때의 시험과 다르게 엄청 힘이 들었다는 개인적인 소감을 늘어놓았던 지태가 해방감을 표출할 창구가 필요하다고 피력했다. 하지만 평소에도 다 같이 어딜 놀러 가거나 해 본 적이 없는, 소위 말하는 ‘범생이파’여서 막상 어딜 가고 싶다고 해도 갈 곳이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아, 상미도 시험 끝났겠지?”

지태가 손가락을 퉁기며 묻자, 단유는 고개를 저었다.

“상미는 다음 주부터 시험이래.”

“아, 정말?”

턱을 문지르던 지태가 채윤을 바라보았다.

“너 어디 생각나는 곳 없어?”

“어, 피시방?”

“야, 피시방 가서 뭐하냐? 무슨 게임하는 것도 아니고.”

확실히 학급에서 돌연변이 취급을 받는 이들답게, 요즘 아이들이 즐기는 게임 같은 건 전혀 하지 않는 세 사람이었다. 명수 역시 이들과 비슷한데, 게임을 좋아하지만, 온라인 게임은 즐기지 않았다.

“노래방?”

“어? 노래방 갈까?”

가족들끼리 노래방은 몇 번 가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친구들끼리 가본 적은 없던 지태는 채윤과 단유를 번갈아 보며 물었다.

“노래방 가볼까?”

“너 노래 잘해?”

채윤이 묻자, 지태가 채윤의 등을 팡팡 두드렸다.

“야, 그냥 스트레스 풀러 가는 건데 노래 잘하고 못하고가 어딨어? 안 그래?”

“나 아는 노래 별로 없는데?”

채윤이 슬쩍 발을 빼는 모습을 보이자 지태가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었다.

“그냥 소리나 지르고 마는 거지, 뭘 빼고 그러나? 단유 넌 어때? 괜찮아?”

“난 한 번도 가본 적 없어?”

“진짜? 명수랑도?”

“응.”

“그럼 명수랑 이번에 같이 가보면 되겠네.”

좀 많이 업이 된 지태의 주도로 친구들은 노래방으로 놀러 가기로 했다. 명수도 노래방은 처음이라서, 지태의 제안을 듣자마자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생각해보니 단유는 노래방을 가본 적이 있긴 했다. 물론 노래를 부르러 갔던 것은 아니었지만, 담배 연기로 자욱하던 노래방의 풍경이 생각나 조금 꺼려지는 게 사실이었다. 하지만, 지태가 이들을 끌고 간 노래방은 그런 노래방이 아니었다.

“와, 좁다?”

“그래도 네 사람 충분히 놀 공간은 되니까 괜찮지 않아?”

만약 친구들 중에 철규처럼 돈이 많은 애가 있었다면, 룸으로 이루어진 노래방을 찾았을 테지만, 푼돈을 모아 놀아보자고 모인 이 네 사람은 그런 곳을 갈 여력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찾은 곳이 오락실에 붙어 있는 코인 노래방이었다.

“야, 빨리 노래나 골라.”

지태가 책을 펼치고 채윤과 함께 목록을 살폈다. 명수도 남은 책 한 권을 집어 펼쳐 들고는 단유에게 말했다.

“너 부를 노래 있어?”

명수가 물을 만도 한 게, 단유는 아는 노래가 없었다. 그리고 명수가 기억하기로 단유가 노래를 흥얼거리는 모습 자체를 본 적이 없었다.

“아니, 난 일단 구경만 할게.”

“구경만 하는 게 어딨어? 너도 골라.”

지태가 단유의 말에 딴지를 걸고 나서며 자신이 보던 책을 단유에게 던져 주었다. 그리고 자신은 곧바로 번호를 눌렀다. 이윽고 조명이 어두워지고 스피커에서 반주 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여자 노래 아냐?”

“요즘 이 노래가 좋더라고.”

대세 걸그룹 ‘플루토’의 노래를 부르겠다고 마이크를 잡은 지태의 표정이 사뭇 진지해 보였다.

“댄스곡을 그렇게 진지한 얼굴로 부르는 사람이 어딨냐!”

라는 명수의 지적에 지태가 어색한 미소를 띠며 긴장된 듯, 입술에 침을 발랐다. 그리고 명수에게 말했다.

“노래 알면 같이 부르자.”

명수가 마이크를 잡고 서자, 지태가 기분 좋게 웃음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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