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바이벌(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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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 젠장.”
욕으로 시작하는 아침이 기분 좋을 리 없었다. 하지만 절로 나오는 걸 어떡하겠는가. 태호는 온몸을 꽁꽁 싸매고 있던 이불을 옆으로 치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빨리 이사를 가던지 해야지.”
낡은 집이라서 그런지, 가을인데도 웃풍에 몸이 얼어붙는 느낌이었다. 찌뿌둥한 몸을 억지로 굽혀 허리 스트레칭을 해보는 태호는 시계를 본 뒤, 곧 욕실로 들어갔다.
갤럭시즈가 휴업상태인지라 바쁜 일은 없었지만, 회사에 소속된 일인으로서 일이 없지는 않았다. 설령 일이 없더라도 정상적인 출근 시간에 맞춰 출근해야 하는 일상이 태호는 별로 반갑지 않았다. 갤럭시즈의 스케줄이 있을 때는 새벽 3시에 일어나서 회사로 출근했다가 로드매니저와 함께 숙소에서 갤럭시즈 멤버들을 픽업한 뒤, 미용실로 가는 일과에 질린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차라리 그때가 좋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녕하세요!”
태호는 일부러 큰 소리로 아침 인사를 던진 뒤, 인사를 받아주는 몇몇 사람들과 눈인사를 나누며 자신의 자리로 향했다. 책상에 앉은 뒤, 컴퓨터를 켜고 포털 사이트에 들어가 괜히 ‘갤럭시즈’를 한 번 검색해보고, 마지막 기사가 여전히 3개월 전임을 확인한 후, 오늘 자 연예뉴스를 훑었다. 전날 저녁 방영된 드라마에 관련된 ‘기사’를 가장한 ‘시청소감문’을 대충 보고, 열애설이라는 제목 뒤에 붙은 ‘물음표’를 보고 ‘어뷰징’이라 판단하여 클릭을 하지 않는 대신, 요즘 대세가 된 ‘플루토’의 2배속 안무 버전에 관한 기사를 클릭해서 별 내용이 없음을 확인한 후, 창을 껐다.
오전 일과가 10여 분만에 끝이 났다. 나머지 시간은 일부러 일을 찾아서 하지 않는 이상, 특별히 할 일이 없었다.
태호는 ‘에이 바운스’의 로고가 찍힌 바탕화면을 바라보다가, 다시 인터넷을 켜고 스트리밍 사이트를 찾아가 차트 순위를 확인했다.
‘요즘 이 노래가 많이 들린다 싶더니···.’
실시간 급상승한 곡들 중에는 최근 길에서 자주 들리던 노래가 순위에 올라와 있었다. 확실히 ‘계절송’이라는 게 분위기만 잘 타면 성공 가능성이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대중가요들의 유행이 워낙 빠르게 떴다가 빠르게 사그라드는지라 오랜 시간 차트에 머무르며 대중의 관심을 받는 곡이 드문데, 계절송과 같은 건 해당 계절만 되면 다시 사람들의 관심을 받게 되니 시쳇말로 ‘연금’이라 부를 만했다.
‘물론 노래가 좋아야겠지만.’
입맛을 다시듯 혀로 입술을 살짝 적신 태호는 다시 포털 사이트를 돌아갔다. 잠시 화면을 바라보다가 충동적으로 뉴스 페이지를 클릭했다. 연예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빠삭하게 알지만,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 사회에 어떤 사고가 있었고 어떤 이슈가 쟁점이 되고 있는지는 까막눈처럼 몰랐다. 어떤 정치인의 발언이 이슈가 돼서 사람들 사이에 논란이 있다고도 하고, 어떤 지역에선 공사 현장이 무너지면서 인명 피해가 있었다고도 했다. 전화 사기가 많아서 피해자들이 읍소한다는 내용도 있고, 새로운 핸드폰이 혁신적인 기능을 탑재하여 출시를 앞두고 있다는 내용도 있었다.
―···국내 판매는 10월 중 시작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현재 ○○전자는 ○○일 현재 4.05% 급등마감하여 기대를 모으고 있다.
태호는 자신의 핸드폰을 바라보고 ‘바꿀 때가 되었나’라고 중얼거려 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바꾸려면 핸드폰을 바꿀 게 아니라 집을 바꿔야지, 라고 생각하며 창을 끄려고 했다. 하지만 문득 생각나, 태호는 금융 페이지로 들어가 보았다. 붉은 그래프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남는 돈 좀 있으면 해볼 텐데···.’
주식하다 망한 사례는 연예계에도 수두룩하게 많았다. 하지만 반대로 주식으로 성공한 사례 역시 눈에 띄게 많았고, 그들을 부러워한 적도 많았다.
태호는 그래프를 보다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차라리 주식 예측이나 하지.”
전날 단유가 온갖 숫자로 뒤덮인 노트를 보여주던 기억이 떠올랐다. 갤럭시즈를 생각해 그 정도의 노력을 보여준 것은 진심으로 고마웠지만,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야 회사에 소속되어 있고, 갤럭시즈의 매니저로서, 갤럭시즈가 성공하면 자신도 성공할 수 있기 때문에 신경을 쓴다지만, 단유는 갤럭시즈가 성공한다 한들 아무런 이득이 없었다.
가끔 팬심으로 가수들에게 고가의 선물을 주는 팬들이 있었다. 물론 갤럭시즈에는 그런 팬들이 없었지만, 그래도 편지나 소소한 선물을 하는 팬들이 없지는 않았다. 말 그대로 ‘팬심’이었고 좋아하는 가수의 성공을 바라는 마음 역시 이해 못 할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단유는 전혀 그럴 것 같지 않았고, 심지어는 갤럭시즈의 노래를 잘 모르던 친구였다. 그런데도 갤럭시즈가 성공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대중성을 판독하는 방법’을 만들어오기까지 하니, 실현 여부를 떠나 그 마음이 참으로 기특하다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솔직히 태호는 단유의 그 ‘알고리즘’이라는 것이 ‘허황한’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도 그런 것을 들고 자신 있게 설명하던 모습을 떠올리니, 앞으로 뭐가 되도 될 친구라는 생각이 들었다.
‘외모도 받쳐주고, 머리도 뛰어나니까 꽤 괜찮은 재목이란 말이지.’
회사가 여유만 있다면, 당장 단유와 계약을 하는 게 좋을 것이라는 생각은 변함이 없었다. 어제와 같은 돌발행동? 아니, 조금 특이한 행동 정도는 자신이 잘 커버 한다면 대중에게 어필할 수 있는 요소가 훨씬 더 많다고 판단했다.
“유승호가 별건가? 단유도 잘만 키우면 훨씬 잘 될걸?”
“누구?”
뒤에서 들려온 소리에 화들짝 놀라 돌아보니, 박 이사가 안경을 고쳐 쓰며 태호의 모니터 화면을 훔쳐보고 있었다.
“아, 이사님.”
태호는 얼른 일어나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요즘 주식하나?”
“네? 아, 아니요. 그냥 궁금해서···. 주식 안 합니다. 할 돈도 없고요.”
“하지 마. 개미들이 괜히 개미인가? 큰 손 손가락에 쉽게 짓눌리니까 개미야. 애초에 생각도 하지 마.”
“안 합니다. 아시잖습니까? 저 돈 없는 거.”
“없는 돈으로 주식하려고 빚을 내는 인간들이 있으니까 걱정인게지.”
박 이사는 허리를 펴고, 태호를 바라보았다.
“일이 없지?”
태호는 당황해서 곧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일이 없는 건 박 이사도 잘 아는 사실이겠지만, 그렇다고 직장 상사 앞에서 ‘일없습니다’ 라고 말하는 건 또 예의가 아니지 않은가.
“일없으면, 논현동에 잠깐 갔다 와.”
“논현동이요?”
심부름인가, 생각하던 태호에게 박 이사의 말이 이어졌다.
“가서 곡 좀 받아와. 듀엣곡 완성됐다고 하니까.”
“아.”
대한민국은 인터넷 강국이다. 어지간한 블루레이 사이즈 영화도 인터넷으로 주고받아도 무리가 없을 만큼 인터넷이 빠르고 간편하다. 당연히 용량이 적은 노래 한 곡 정도는 인터넷 메신저로 주고받아도 되고, 메일로 받아도 별문제는 없다. 하지만, 작곡가에게 직접 가서 곡을 받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하나는 작곡가가 아주 대단한 이여서, 회사가 작곡가에게 성의를 보여야 할 때, 작곡비와 별도로 선물을 주고 파일을 받아오는 경우였다. 또 하나는 바로 그 자리에서 계약을 치러야 하는 경우였다. 보통은 먼저 곡을 확인받은 후, 수정지시를 보내서 수정하면, 그 뒤에 다시 제작된 곡을 확인받고 계약을 한다. 그런데 또 요즘은 퍼블리셔라는 새로운 중간 단계가 만들어져서, 작곡가와 계약을 하는 것이 아니라 퍼블리셔와 계약을 한다. 당연히 해당 퍼블리셔와 계약을 맺은 작곡가인 경우다.
그리고 이번의 경우는 바로 첫 번째 케이스였다. 태호가 알기로 이번 듀엣곡의 경우, 작곡가 이상섭에게 맡겼다고 들었다. 이상섭 씨는 한국 대중가요에서 꽤 이름난 작곡가 중 한 명으로 그가 작곡한 곡들 중에 대박 난 곡이 한두 곡이 아니었고, 저작권료도 순위권에 들 정도의 작곡가였다.
회사는 이번 듀엣에 사활을 걸었다시피 했는데, 이번 곡의 성공 여부가 갤럭시즈의 부활과도 연계될 가능성이 많았다.
“여기.”
박 이사는 태호에게 법인 카드와 쪽지를 하나 내밀었다. 쪽지를 슬쩍 보니, 어떤 제품의 이름과 모델넘버가 적혀 있었다.
“압구정에 가서 그거 사서 가면 될 거야.”
“네. 알겠습니다.”
박 이사가 철두철미하다는 것은 이런 의미였다. 나이에 맞지 않게 감각이 뛰어나다는 말도 있지만, 솔직히 갤럭시즈의 케이스를 보면 그렇게 감각이 뛰어난 건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에이 바운스에 오기 전에 대형 기획사에서 오래 일한 경험이 있어, 이쪽 업계에서 ‘제대로’ 일하는 법을 아는 사람이었고, 작곡가에게 선물 하나를 할 때도 받는 사람의 취향을 정확히 파악하여 선물을 지시할 만큼 꼼꼼한 면이 있었다.
‘조금 꼰대 성질이 있어서 문제지.’
속으로 살짝 불만 섞인 투정을 해보는 태호는 표정을 관리하며 카드를 받아들었다. 할 말을 끝낸 박 이사는 몸을 돌리려다가 잠시 멈칫하더니, 다시 태호에게로 시선을 주었다.
“그런데, 아까 누구 말한 건가?”
“네?”
“아까 유승호보다 더 잘 될 거라고 했던 거 말이야.”
“아.”
태호는 머리를 긁적이다가 ‘단유’의 이름을 말했다. 언급된 이름을 되뇌던 박 이사가 생각났다는 듯, 손가락을 흔들어댔다.
“들어본 거 같은데, 그 친구 아니야? 지난번에 폭력 사건으로 논란 일으켰던 친구?”
“맞습니다. 그리고···갤럭시즈 3번째 싱글 뮤직비디오에도 출연했었습니다.”
“맞아, 맞아. 그 아이, 기억나.”
태호는 살짝 입술을 깨물었다. 박 이사의 기억에 단유는 ‘폭력’이라는 스캔들로 기억된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정작 당시 그 문제로 갤럭시즈를 띄우려 했던 실장은 이후에 다른 이유로 회사를 옮겼다. 결국, 모두에게 상처만 되고 만 사건인데, 그 사건이 다시 언급되니 태호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 친구가 유승호보다 잘 될 거라고?”
유승호는 아역 배우로 시작해서 대세가 된 남자 배우의 표본이었다.
“제 생각엔, 그렇습니다.”
박 이사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확실히 외모는 괜찮은 편이었지.”
“네.”
“그런데 그 아이가 잘될 거라고 판단하는 이유가 있나?”
태호는 빠르게 박 이사의 의도를 추측해보았다. 갑자기 단유에 관해 묻는 이유가 뭘까? 그저 자신이 흘리듯 말한 걸 가지고 호기심이 생겼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어 보이는데.
“외모도 그렇지만, 머리가 굉장히 좋은 친구입니다. 지금 중학교 1학년인데 전교 1등이랍니다.”
“오호, 그래?”
놀란 표정을 지어 보이는 박 이사의 리액션이 사뭇 과장되게 보이는 기분이었다.
“중학생이라도 전교 1등이 쉬운 일은 아니니까, 머리는 조금 있는 모양이네. 그럼 그것 말고 다른 건 없나?”
“어···.”
태호는 지금 이 시점에서 단유에 대해 강하게 어필을 해야 좋을지, 아니면 별거 아닌 이야기였다고 흘려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대답을 기다리는 박 이사 앞에서 머뭇거리는 건 더 좋지 않았다.
“사실 요즘 단유라는 아이를 자주 만났는데요.”
최대한 간결하게, 단유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놓기로 마음먹은 태호는 최근 단유가 벌인 일련의 일들에 관해 이야기했다. 갤럭시즈에게 강한 팬심을 가진 아이로 해석하든, 아니면 연예계 업종에 관심을 둔 아이로 해석하든, 그것은 박 이사에게 맡기기로 하고.
“재밌는 친구네.”
결론은 ‘재밌다’로 나왔다. 박 이사는 눈가에 깊은 주름이 남겨질 만큼 웃더니 몸을 돌렸다.
“조만간 한 번 데리고 와봐.”
“네?”
“이야기해보면 재미있을 것 같아서 말이야.”
박 이사는 그렇게 이야기를 남기고, 사무실을 나갔다. 태호는 도대체 자신의 이야기 중 어떤 부분이 재밌었고, 어떤 부분이 그의 관심을 끌었는지 도통 알 수 없었다.
“장 매니저, 잠깐 비켜 줄래?”
등 뒤에서 들린 목소리에 놀라 얼른 몸을 비켰더니, 큰 몸으로 통로를 막고 있다고 투덜거리던 여사원이 서류철을 들고 태호를 지나갔다. 태호는 정신을 수습하여 여사원을 뒤따라 사무실을 나왔다. 생각은 가면서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우선은 박 이사가 지시한 일을 수행하는 것이 먼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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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너 계속 ‘그것’만 하는 것 같더라?”
병수가 단유를 보며 물었다. 바로 옆에서 단유의 작업을 바라보고는 있지만, 정확히 어떤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다양한 수와 수식들과 복잡한 선들이 오고 가는 노트 위의 그것들을 병수의 지식으로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어. 그냥 할 게 없어서.”
말을 뱉은 후에야 단유는 자신이 요즘 ‘그냥’이란 단어를 많이 쓰고 있다는 것에 생각이 미쳤다. 말 그대로 지금의 작업은 ‘그냥’ 하는 것이었다.
“뭔데?”
“음. 이건 어떤 노래를 구조적으로 풀어서 분석하고 그것을 수학적으로 치환해서 간략하게 이해해보려는 작업이야. 노래 그 자체가 과연 대중적으로 인기를 얻을 수 있는지 알아보는 건데, 다양한 변수들을 고려해야 하는 터라 조금 복잡하긴 해.”
한국말인데 알아듣지를 못하겠다. 노래를 어떻게 하겠다는 거 같은데 노트에는 콩나물 대가리 대신 숫자들만 빼곡했다.
“이 정도만으로도 대충 사람들의 관심을 얻을 수 있는지, 없는지를 추측할 수 있지만, 좀 더 다양한 변수들을 고려해서 정확도를 높이는 작업이야.”
이를테면, 대중의 취향과 변덕이란 부분을 계량화할 수 있는가의 문제에 대해서 고민 중인 단유였다. 태호의 말처럼, 사람의 감정은 예측하기 어렵다. 하지만 단유는 생각이 달랐다. 개인의 감정은 예측하기 어렵지만, 대중의 감정은 예측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고. 개별적 차이는 있어도 함께 모인 사람들의 감정은 대체로 통일되는 경향이 있었다. 단유는 토엔의 집 앞에서 그걸 ‘본’ 적이 있었다.
‘봤던 걸 재현하는 거뿐이니까.’
대중의 변덕도 다양한 변수만 고려한다면 얼마든지 예측할 수 있으리라. 갑자기 다리가 무너지고, 땅이 갈라지는 사고만 아니라면, 그런 돌발 변수를 제외한 일반적인 상황에서 고려 가능한 변수들을 계량화시켜 공식에 집어넣고 그 공식에 따라 방정식을 풀어낸다면, 충분히 정확도를 올릴 수 있으리라.
단유는 새로운 것을 하는 게 아니라, 봤던 것을 재현할 뿐이었다. 이건 단순히 알고리즘의 정확도를 올리는 것만이 목적은 아니었다. ‘사람’을 읽어내는 ‘단서’를 찾기 위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