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멤버 더 네임-286화 (286/956)

서바이벌(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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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번의 테스트를 통해 단유의 신기한 능력을 체험한 상미가 놀란 눈으로 비법을 물었다.

“비법 같은 거 아냐. 그냥 공식에 맞게 계산하면 나오는 거야.”

“더하기 빼기 같은 거야?”

“뭐, 그것보다는 조금 복잡하지만 크게 다르진 않아. 별로 대단한 것도 아니고.”

단유의 시큰둥한 반응에 상미가 참지 못하고 단유가 앉아 있던 소파로 뛰어가 앉았다.

“그래도 이렇게 정확하게 맞출 수 있는 거라면 대단한 거 아냐?”

상미의 큰 눈이 반짝 빛나는 것이 여간 부담스러운 것이 아니어서 단유는 저도 모르게 몸을 뒤로 뺐다.

“정확하지 않아. 대충만 맞출 수 있고, 또 전혀 안 맞는 곡도 있어.”

드물게 결괏값이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단유는 그 부분을 점차 줄여나갈 수 있게 좀 더 다양한 변수를 고려하고 계산에 포함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의욕이 다소 사라진 상태라 어떻게 할지 모르겠다.

“그래도 이 정도면 대단한 거지? 진짜 여기 있는 거 다 외워서 맞춘 건 아니지?”

단유는 상미에게 대답하는 대신, 명수에게 방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왜 그래?”

상미가 괜히 자기가 뭘 잘못했나 싶어서 물었다. 단유는 그냥 기분이 별로라서 그렇노라 대답해 주고 방으로 돌아왔다.

상미나 명수가 대단하다고 이야기해도 기분이 나아지지 않았다.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그다지 대단한 것은 아니었으니까. 자신은 그저 예전의 체험을 토대로 수작업(?)을 했을 뿐이었다. 그때는 그냥 절로 보이던 것이었는데, 그걸 억지로(?) 재현해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완벽하지 않아서, 정밀도가 떨어졌다. 그래서 단유는 계속적인 연구를 통해 정밀도를 보충할 생각이었다.

어제까지는 그랬다. 그러나 어제 태호와의 대화 이후, 단유는 조금 의기소침해졌다. 하지만 단순히 이 알고리즘을 인정받지 못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

“니가 얼마나 노력하고 고민했는지는 이 노트만 봐도 알 수 있어. 그 마음이 정말 고맙다. 하지만 말이야, 가수가 대중적인 노래만 가지고 대중들에게 어필할 수 있을까? 그건 아니라고 본다. 이를테면 원 힛트 원더(One-hit wonder)라는 게 있어. 뭔지 알아?”

단유는 고개를 저었다.

“우리나라의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집계하는 차트의 원조는 바로 미국의 빌보드라는 잡지의 차트일 거야. 보통 미국, 혹은 전 세계의 음반 시장에서 어느 정도의 위치에 있는가를 이야기할 때 거론되곤 하지. 보통은 대게 유명한 가수나 혹은 정말 뛰어난 음악들이 상위권을 차지하곤 해. 그런데 가끔 단 한 곡만 크게 흥행을 거두며 이 빌보드 차트의 상위권에 기록을 남기는 가수가 있어. 그런 가수들을 ‘원 히트 원더’라고 표현하지. 단 하나의 싱글만 대성공을 거둘 뿐, 나머지는 대중에게 외면받는 가수가 있다는 거야. 왜 그럴까? 이유는 여러 가지겠지만, 보통은 ‘대중의 변덕’이라고 하지.”

태호는 단유의 덤덤한 얼굴을 바라보며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물론 좋은 노래로 대중의 호감을 얻는 것이 좋지만, 때로는 그것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반응도 있다는 것이야. 그리고 한 가지 더 이야기하자면, 예전에도 어떤 곡이 대중의 선택을 받을 수 있을지를 예측하는 모델이 없었던 건 아냐. 너도 알다시피 요즘 시대가 어떤 시대냐? 날씨를 예측하고, 행성의 진로를 예측하는 시대가 아니니? 그리고 핵물리학의 연쇄반응도 예측하는 시대가 요즘 시대야. 그런데도 어떤 곡이 성공할 수 있을지를 예측하려는 시도가 없었을까? 그런데 그 많은 시도가 결국에는 모두 실패로 끝났어. 다양한 변수들을 고려해야 한다는 점도 있지만, 가장 큰 문제는 대중의 기호와 취향에 대해서는 정확히 측정할 방법이 없다는 거지.”

태호는 비어버린 잔을 쥐었다가 다시 놓았다.

“고작 매니저에 불과한 나도 이 정도는 아는데, 나보다 더 오랫동안 이 업계에 몸담았던 박 이사님이 이 정도를 모를까? 아마 니가 이걸 들고 박 이사님에게 갔다가는 좋은 소리는커녕 바로 쫓겨나고 말 일이라서 하는 이야기야.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외국의 수많은 학자들이 도전했고 실패했던 일이니까.”

결국 아까 이야기했던 ‘곡을 분석한다는 거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라는 주장의 연속이었다. 단유는 고개를 숙였고, 태호는 잠시 일어나 카운터에서 따뜻한 커피를 한 잔 더 주문했다. 쌀쌀한 날씨에 차가운 홍차를 들이켰더니 속이 너무 냉한 느낌이었다.

커피를 들고 돌아온 태호에게 단유가 말했다.

“알겠어요. 사실 저도 이 알고리즘이 아직 완벽하게 정리된 게 아니라서 이대로는 보여드릴 생각이 아니었으니까, 좀 더 보완하도록 할게요.”

그런 말이 아닌데. ‘보완’한다고 해서 계측될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걸 강조하려다 태호는 다음에 이어지는 단유의 말에 입을 다물었다.

“그런데, 누나들이 하고 싶은 음악이 없다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태호는 머리를 긁적였다.

“조금 난감한 문제이긴 한데, 그 부분에 대해서는 회사와의 타협이 필요한 부분이긴 해. 사실 제일 좋은 건, 애들이 원하는 음악과 회사가 지향하는 음악이 같으면 좋겠지. 하지만, 이 부분에 있어서는 회사가 양보하기 어려운 점이 있는 게 사실이야. 우리는 솔로 아티스트를 키우는 게 아니라, 대중에 먹힐 만한 걸그룹을 키우는 것이니까. 걸그룹은 이런 노래를 해야 한다, 고 정해진 것은 없지만 그래도 걸그룹이 지향해야 할 음악의 성질이란 건 있다고 보거든. 걸그룹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면 자신의 음악적 성향을 잠시 접어두는 게 맞다고 봐. 예를 들어서 어떤 멤버가 자기는 거친 락을 하고 싶다고 해도, 락을 하는 걸그룹은 만들기 어려운 게 사실이거든.”

“하지만, 여기 표를 보시면···, 아니 이건 안 보시더라도 일단 제가 분석한 바에 따르면 너무 세 싱글이 너무 달라요. 특히 세 싱글 모두가 차트에서 뚜렷한 성적을 내지 않은 상태라 대중의 평가를 짐작하기도 어렵다는 게 문제지만, 제가 보기에는 대중성을 떠나서 누나들의 음색이나 보컬 성향이 곡과 안 맞는 부분이 많아서 곡 자체의 특징을 잘 살리지 못하고 있다고 보거든요.”

“뭐, 그 점은 잘 지적했네. 회사에서도 그 점에 대해서는 인지하고 있는 모양이더라고. 그래서 듀엣이 결정된 거니까.”

단유는 태호를 바라보다가, 마지막으로 물었다.

“그럼, 지적한 문제점들을 회사에서는 대부분 인지하고 있다는 사실이네요.”

“뭐, 그런가?”

“그런데 왜 그런 사실을 가수들과 공유를 하지 않는 거죠? 만약 그런 사실이 있다면 서로 이야기를 나눠서 형의 말대로 ‘타협’을 한다면 다음에 더 좋은 기회를 만들 수도 있는 것 아니었나요?”

태호는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마른세수를 하며 잠시 숨을 골랐다.

“갤럭시즈가 회사가 계약한 연습생들 중 고르고 고른 멤버라는 사실은 분명해. 하지만 그렇다고 갤럭시즈가 최고의 멤버들이냐고 묻는다면, 회사는 솔직히 말할 거야. 아니라고. 왜냐하면, 연습생들 중에 더 좋은 기량을 보이는 연습생들이 있으니까. 또 그런 연습생들을 꾸준히 찾고 발굴하고 있으니까. 물론 개인적으로 갤럭시즈는 내게 가장 소중한 새끼들이야. 누가 내 새끼 욕하면 못 참거든. 그런데 회사 입장은 조금 다르지. 갤럭시즈는 회사가 만든 브랜드야. 회사의 지향점이 반영된 브랜드지, 멤버들을 위해서 회사가 만들어준 게 아니란 거지.”

“말하자면, 멤버들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회사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그래. 예를 들어서 LG가 만든 TV가 좋다고 해서 삼성이 LG의 TV를 가져다 팔지는 않잖아? 삼성은 삼성만의 브랜드를 드러낼 TV를 만드는 거지. 유사하게 만들 수도 있고, 차이가 나게 만들 수도 있지만, 성능과 상관없이 삼성은 삼성만의 TV를 만드는 거야. 갤럭시즈도 그런 상품인 거지.”

“그래도 소속 가수잖아요? 노래를 직접 부르는 가창자들이고, 갤럭시즈를 대표하는 얼굴들이잖아요? 그럼 그들의 의사도 중요한 거 아닌가요?”

“중요하지. 중요하니까 계속 함께 가려고 하는 거지. 하지만 회사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부분도 있다는 거야. 그게 회사가 지향하는 음악이고.”

단유는 잠시 태호의 말을 되뇌어보다 물었다.

“다른 회사도 그런가요?”

태호는 씁쓸한 미소를 입에 담으며 혀를 찼다.

“안 그런 회사도 있겠지만, 내가 아는 대부분 회사들은 그런 식으로 운용을 해. 그룹이 지향하는 음악이 보통 멤버들의 지향점과 달라서, 가끔 멤버들이 탈퇴하는 경우도 있지.”

태호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신 후, 나직이 말했다.

“그게 현실이야.”

****

같은 공간, 같은 시간을 지낸다고 해서 모든 것을 알 수는 없는 법이다. 단유는 어제 그 점을 깊이 깨달았다. 자신이 뭔가를 잘 못 생각하고 있었던가를 반성해 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어제의 대화는 유의미했지만, 그 반성이 이토록 길어지는 것은 그다지 즐거운 일이 아니었다.

사실 단유는 또래들과 다른 경험과 시간을 소비하며 지냈다. 남들이 3일을 살 때, 단유는 숲에서 5년 동안 명상을 하며 지냈고, 남들이 평범하게 직장생활, 학교생활을 보낼 때, 단유는 늑대에 쫓기고 몬스터와 범죄자들에게 죽음의 위협을 받았고, 칼을 든 상대와 맞서 싸우기도 했다.

그런데 단유는 여전히 이 사회에 적응하는 것이 어렵고 두려웠다. 남들은 공부도 잘하고 교우관계도 좋다고 말하지만, 단유 본인은 여전히 자기 안에서 벽을 쌓고 주위를 경계하며 지낼 뿐이었다.

두려운 것? 돌이켜보면 결국, 사람이었다. 엄청나게 많은 독서량을 자랑한들, 단유는 결국 사람을 모른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사람을 제대로 모르니 ‘현실을 모른다’는 이야기나 듣는 것이리라.

‘지식이 아무리 많아도, 현실을 모르면 바보 소리나 듣지.’

태호와의 대화에서 느낀 점은 바로 그것이었다.

단유는 자신이 바보라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난 바보야.”

단유의 말에 같이 길을 걷던 이들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다들 걸음을 멈추고 단유를 바라보았다. 단유가 뒤를 돌아보자, 지태가 채윤에게 물었다.

“방금 지가 지 입으로 바보라고 그랬지?”

“응.”

“우리보고 들으라고 한 소리지?”

채윤은 잠깐 생각해보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건 아닌 거 같은데.”

채윤의 생각에 단유는 혼잣말을 했던 것 같았다. 하지만, 지태는 자기한테 한 말이었다고 생각했던지, 놀란 표정을 지으며 덤덤한 표정의 단유를 손가락질했다.

“야, 전교 1등 하는 녀석이 자신을 바보라고 하면, 우린 뭐가 되냐? 나는 뭐, 바보 천치야?”

“난 원래 바보니까 괜찮아.”

명수의 말에 지태가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쳤다.

“야 이 바보야! 아니지. 지가 바보라니까, 이건 욕도 아니네. 아무튼, 이 멍청아! 기분 좋게 대화를 나누다가 왜 갑자기 그런 어마무시한 발언을 한 건데! 그 저의가 무엇이냐!”

채윤은 분명 지태가 심심해서 꼬투리를 잡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솔직히 장계중학교 축구부의 추계대회 1차전 승리가 별로 재미있는 대화 주제는 아니었으니까.

“저의 같은 거 아니고, 그냥 내가 바보 같다고 생각돼서 중얼거린 건데, 그게 들렸나 보다.”

“들렸나보다? 야, 바로 옆에 붙어 있는데 그게 안 들릴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그리고 니 말은 너 혼자 딴생각하고 있었다는 거잖아? 도대체 무슨 생각을 했길래, 그런 말도 안 되는 결론이 나오는 거냐?”

단유는 호주머니에 손을 찔러놓고 심드렁하게 말했다.

“그냥. 요즘 내가 얼마나 바보같이 살았는지를 깨닫다 보니까, 그런 생각이 드네.”

지태는 채윤에게 속삭였다. 속삭였지만, 다들 들을 수 있을 정도의 목소리였다.

“쟤 사춘기 온 거야?”

“그럴지도 모르겠네. 갑자기 자기 삶을 반성한다느니, 뭐 그런 거 사춘기의 특징이라고 한 거 같은데.”

도덕 시간에 배운 내용을 떠올려보는 채윤에게 지태가 새로운 관점을 제시했다.

“어쩌면 사춘기가 아니라 병일지도 몰라.”

채윤은 바로 눈치챘다.

“중2병?”

지태가 손을 팅기며 말했다.

“그래! 쟤는 머리가 좋으니까, 이미 정신연령이 중 2수준으로 올라가 있는 거야. 그래서 미리 중2병에 걸린 거지.”

단유는 지태와 채윤의 ‘아무말 대잔치’를 보고 있을 이유가 없어, 그냥 등을 돌렸다. 명수가 얼른 달려가 단유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

“야, 같이 가. 바보들아!”

지태가 얼른 달려왔고, 뒤따라 채윤이 못 말리겠다는 듯 혀를 내두르며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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