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바이벌(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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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럭시즈의 컴백이 불투명해지고 듀엣이 결성되었다고 해서 단유의 계획이 무산된 것은 아니었다. 애초에 단유가 계획했던 것은 갤럭시즈가 인기를 얻지 못하는 이유를 찾아보는 것이었고, 이 과정에서 혹시라도 자신이 얻을 수 있는 것이 있지 않을까 기대했을 뿐이었다.
그래서 가장 먼저 관심을 기울였던 것이 노래. 하지만 단유 본인이 음악에 감성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인정한 뒤, 학술적(?)으로 접근하고자 했다. 보컬 트레이너의 입을 통해 단서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했지만, 그녀의 대답은 갤럭시즈가 보컬 실력이 다른 그룹에 비해 떨어지지 않는다는 편애적인 수준에 그쳤다.
‘편애’라고 판단한 것은, 보컬 트레이너가 보컬의 수준을 점수 매기듯 하기 어려운 것이라고 전제를 두고 설명한 탓이었다.
“수련은 걸그룹계에서 가장 뛰어난 보컬 실력을 갖춘 아이 중 한 명이야. 솔직히 좋은 노래만 만나면 금방 대중의 귀를 사로잡을 수 있다고.”
다른 멤버들도 수련만큼은 아니더라도 다른 걸그룹의 수준에 뒤지지 않는다는 모호한 표현으로 칭찬할 뿐이어서 단유는 객관적으로 파악하기 어려웠다.
‘생각해보면 결국 대중의 기호에 맞게 활동해야 할 운명인 걸그룹인 이상, 대중들의 평가가 전문가의 평가보다 더 중요할 수도 있겠어.’
하지만 대중이란 표현하지만, 그 대상이 너무나 광범위하고 모호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태호에게 물었더니, 태호 역시 단유의 말에 공감을 하며 몇 가지를 덧붙였다.
“보통 회사에서 걸그룹이든 아니면 가수를 데뷔시킬 때, 전 연령층을 대상으로 하는 경우는 거의 없어. 사람들의 기호와 취향이 다양해진 요즘에 그런 노래를 만들 수도 없고, 오히려 거기에 맞추려다가는 오히려 어중간해질 뿐이니까. 솔직히 말해서, 갤럭시즈의 노래도 살짝 어중간한 느낌이 있긴 해. 내가 만약 곡을 선택할 수 있는 입장이었다면, 이런 노래를 고르지 않았겠지. 그래서 내 개인적인 생각은 그래. 갤럭시즈의 타겟층이 불분명하다는 거. 10대에서 20대의 남성을 대상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30대 이상의 남성 혹은 여성에게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것도 아니고, 그냥 어중되게 90년대식 팝댄스를 지향하고 있다고 할까? 아, 이런 이야기는 다른 사람들한테 하면 안 된다. 특히 갤럭시즈에게는.”
아직 권한이 없는 매니저가 소속 가수들의 노래에 대해 이렇게 비판적인 태도를 보이는 게 윗분들에게 좋지 않게 보일 수 있다는 말이었는데, 단유는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태호의 부탁을 거절하지 않았다.
“우리도 요즘 나오는 곡들처럼 발랄하게 가고 싶기도 한데, 사실 우리 이미지가 그런 발랄함이랑은 어울리지 않잖아. 예영이나 수련이 같은 애들만 있다면 모를까, 지수나 나는 그런 이미지 하고 싶어도 못해. 생각해보니 말이야, 역시 이미지가 정해지지 않은 게 문제가 아닐까 싶어.”
이미지 혹은 컨셉의 문제가 클 수도 있겠다고 자아비판을 하는 수영이었다. 보통 이런 미묘한 컨셉이 문제가 될 때, 보통은 섹시 컨셉으로 전환하는 수를 쓰기도 한다고 수영은 덧붙였다. 하지만 갤럭시즈는 ‘섹시’가 전혀 어울리지 않는 그룹이라서 회사 내부에서 포기했다고 했다.
“원래 세 번째 싱글이 살짝 섹시 컨셉이었거든? 그런데 연습실에서 복장 갖추고 안무를 쳤더니 사람들이 전부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젓는 거야. 결국 섹시를 버리고 레트로 컨셉의 락으로 장르를 바꾼 게 ‘미챠’였지.”
‘레트로’와 ‘락’을 결합 시킬 생각을 한 윗분들의 아이디어에 무릎을 탁 쳤다고. 붓과 색연필을 하나로 묶어서 쓰자는 것과 다를 바가 없지 않은가?
“보다시피 망했잖아? 다른 걸 떠나서 그 곡은 컨셉 자체가 아주 엉망이었어.”
자기가 좀 더 소신 있게, 리더답게 회사에 강하게 요구할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라고 중얼거리는 수영에게 인사를 하고 연습실을 빠져나온 단유는 지수가 보이지 않아 보컬 연습실에서 연습하고 나오는 명지에게 물었다.
“지수 언니, 아르바이트 중일걸?”
가수가 아르바이트도 하냐고 놀란 얼굴로 물었더니, 씁쓸한 얼굴로 답하는 명지였다.
“지수 언니는 가정 형편이 좋은 편이 아니어서, 생활비를 직접 벌어서 쓰거든.”
이전에도 회사 몰래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했다는데, 지금은 대놓고 하는 중이라고. 회사에서도 굳이 말릴 생각을 하지 않는다며 슬픈 눈을 드러내 보이는 명지였다.
“어차피 낮에 할 거도 없는데, 아르바이트라도 하는 게 낫지.”
단유는 더 캐묻지 않고 명지에게 인사를 하고 회사를 나왔다. 함박눈이 내리는 무대 위에서 화려한 조명을 받으며 춤을 추던 갤럭시즈를 기억하는 단유에게 지금의 갤럭시즈는 안타깝기만 했다.
대략적인 조사를 끝내고 집에 돌아온 단유에게 명수가 들러붙었다.
“역시 단유네.”
“뭐가?”
“며칠 하다가 말 줄 알았더니, 계속 갤럭시즈 도우려고 하는 거 아냐?”
꼭 돕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개인적인 호기심이 더 컸다.
“어쨌든 돕는 거 아냐? 결과만 좋으면 다 좋은 거지.”
“동기가 다른 이유인데, 결과가 좋다고 동기까지 포장될 이유는 없어. 그리고 아직 결과가 나온 것도 아니고.”
명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그래서 뭐 좀 도울 방법은 생겼어?”
단유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래도 갤럭시즈의 문제점은 몇 가지 발견했어.”
“문제점? 뭔데? 노래?”
“아니.”
“그럼 춤?”
“아니.”
노래도 아니고 춤도 아니면 뭐가 문제지?“
“얼굴이 문젠가?”
단유가 눈썹을 긁으며 말했다.
“누나들 외모가 인기에 큰 문제가 돼?”
“되지! 당연히 되고도 남지! TV에 나오는 사람들인데, 외모가 안 되면 사람들이 쳐다볼 생각을 안 할 거 아냐? 게다가 걸그룹이라면 당연히 외모는 탑을 찍어야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걸?”
“넌 외모를 많이 보는구나.”
“나? ···아니지. 나 같은 사람은 이미 외모에 꾸준히 단련된 터라, 외모 정도로 걸그룹을 평가하는 단계는 지났지. 음악적으로 수준 높은 음악을 하는 가수를 좋아한다고, 난.”
명수의 대답이 미심쩍게 들려 눈을 가늘게 뜨고 바라보니, 명수가 시선을 돌렸다.
“그럼 음악적으로 수준 높은 음악을 하는 가수가 누군데?”
명수는 잠시 고민을 하다가 씩 웃었다.
“플루토?”
현재 차트에서 1위를 달리고 있는 걸그룹이었다.
“어련하시려고.”
단유는 명수가 게임을 하다가도 시간만 되면 게임을 끄고, TV 가요프로그램에 채널을 맞추고, 플루토가 나오기를 기다리다, 눈도 못 떼도 입을 헤 벌린 채, 그녀들의 안무를 감상하던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다.
다음 단유가 한 일은 ‘팬 카페’를 찾는 일이었다. 갤럭시즈 역시 팬 카페가 있었다. 비공식적인 팬 카페였지만, 그래도 ‘갤럭시즈’라는 걸그룹을 좋아해서 모인 사람들의 모임이 있다는 것이 고무적이라 생각했다.
비록 팬 카페 가입 인원이 400명도 채 되지 않았지만, 존재 자체가 신기했다. 카페의 글을 보기 위해서는 가입을 해야 한다는 사실에 단유는 명수의 도움을 받아 카페에 가입해 보았다.
“우리 또래 중에 이런 거 혼자 가입 못 하는 애는 너밖에 없을 거다.”
“나만 그럴 거라는 편견을 버려. 우리 나잇대 애들이 전국에 얼마나 많은데. 그중에 나 같은 애가 하나 없을라고.”
“없을걸?”
단유는 명수와 입씨름을 하는 대신 팬 카페를 둘러보기로 했다. 몇 번의 클릭으로 게시판을 찾아 들어간 단유는 같은 제목의 글들이 한 페이지를 도배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여기도 망했네.”
뒤에서 지켜보던 명수가 중얼거리며 말했다. 그 말처럼 게시판은 온갖 광고들로 가득 차 있었고, 갤럭시즈에 대해서 쓴 글들은 거의 없었다. 굳이 찾기 위해 뒤적이다 보니, 카페 생성기 때쯤에나 겨우 찾을 수 있었다.
글들은 평범했다. 평범하게, 갤럭시즈의 미래가 기대된다거나, 어떤 멤버가 좋다거나, 하는 편향적인 애정표현이 대세였다. 하지만 그런 분위기가 오래 지속되지 않아서, 지금은 광고글로 가득 찬 게시판이 되어버렸다.
단유는 팔짱을 끼고 게시판을 들여다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갤럭시즈의 문제점은 소통이야.”
“응?”
“소통이 전혀 없어. 외부의 팬들과 소통이 없을 뿐만 아니라, 내부에서도 소통이 전혀 없어. 회사와 가수 간에도 소통이 없고, 회사가 조율하지 않으니까 가수와 팬들 사이에도 소통이 없어. 태호 형 말로는 갤럭시즈가 인터넷 방송을 하는 것도 회사에서 막았대.”
“왜?”
“이미지 안 좋아진다고.”
회사와 가수가 서로 생각하는 이미지가 일치되지 않았다. 회사는 오랜 시간 기획해서 만든 컨셉을 밀고 나가려 하는데, 가수들이 그 컨셉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오히려 이미지를 망친다고 생각했다고. 이미지가 흐려진 탓에 갤럭시즈의 곡이 제대로 어필되지 못했다는 설명이었다. 특히, 수련과 같은 멤버가 방송에서 솔직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못마땅하게 여겨졌다는 부연설명이 있었다.
“회사는 회사 나름의 입장이 있지. 오랜 시간과 많은 돈을 들여서 투자한 걸그룹이 망하길 바라는 회사가 어디 있겠어. 그런데 가수들이 그 컨셉을 제대로 소화해내지 못해서 좋은 곡을 받고도 뜨지 못했다는 평이야.”
태호와의 비밀스런 이야기에서 나온 말이었다. 갤럭시즈 멤버들에게는 결코 해줄 수 없는 말이기도 했다. 그들의 사기를 꺾을 염려도 있고, 회사와의 갈등을 부추기는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사실 여부를 떠나서, 회사와 가수들이 서로 소통을 하지 않으니까 문제가 생겼어. 회사가 일방적으로 컨셉을 밀어붙이려 한다고 가수들은 생각하고 있고, 반대로 회사에서는 가수들이 제대로 소화해내지 못하고 오히려 곡을 망치려 든다고 생각하지.”
처음에는 다양한 색깔의 멤버들을 조합해서 내놓는 전략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시행착오’라고 판단한 회사의 운영진이 내놓은 카드가 바로 듀엣.
“다양성을 줄이고 대신 확실한 컨셉과 이미지로 대중에게 어필하겠다는 전략이래.”
그럴듯하게 들리는 전략에 명수가 수긍한다는 의미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태티서나 오카 같은 유닛들도 그런 비슷한 전략이긴 하지.”
명수가 말하는 유닛이 누구를 말하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그 전략이 기존에도 쓰던 전략이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단유는 귀밑을 긁적이며 입을 열었다.
“아무튼 갤럭시즈의 문제점은 ‘소통’이라는 생각이 들어. 서로를 배려했던지, 아니면 서로를 믿지 않아서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대로라면 갤럭시즈는 아무런 지원을 받을 수 없을 거야.”
명수가 단유를 돌아보았다.
“그래서?”
“원래 사람들 사이의 문제는 대화로 풀어야 하는 법이야.”
대원칙 중 하나는 대화였다.
“그리고 원활한 대화를 하기 위해서는 서로 간의 이해가 필요한 법이지.”
이해는 서로를 알아야 이해할 수 있는 법이다.
“서로가 서로를 알 수 있게 준비를 해야겠지.”
물론 단유가 대화의 장을 열어줄 필요는 없다. 하지만 궁금했다. 과연 자신이 생각한 문제점과 그 해결책이 실제로 적용될 수 있는지.
단유의 머릿속에서는 여러 가지 상황들이 고려되고 결과들이 예측되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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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간에 무슨 일이야?”
퇴근 준비를 하던 태호는 핸드폰을 어깨에 낀 채, 책상 위의 서류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형한테 도움받을 일도 있고, 부탁하고 싶은 일도 있고 해서요.
“뭔데?”
―형네 회사 이사님, 뵐 수 있을까요?
“뭐?”
태호는 놀란 눈으로 핸드폰을 들었다.
“왜?”
―전에 그러셨잖아요? 박 이사님인가 하는 분이 갤럭시즈의 운영 총괄을 맡고 있다고.
“그런데?”
―그분께 직접 여쭙고 싶은 것도 있고 해서요.
태호는 머리를 긁었다.
“그건 좀 무린데?”
―역시 그런가요?
아무렴, 박이사가 이제 겨우 중학교 1학년인 애랑 이야기를 나눌 짬밥은 아니었다. 그렇게 한가한 사람도 아니고.
“갤럭시즈 때문이지?”
―그렇죠.
“모르는 사람이 보면, 니가 무슨 팀장인 줄 알겠다.”
요즘 단유가 회사에 자주 나와서 갤럭시즈 멤버들과 만났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과도 깊이 있는 내용까지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어떻게 하다가 그런 이야기까지 하게 되었는지, 자신도 모를 정도였다.
그런 모습을 통해, 단유가 갤럭시즈의 성공을 간절히 바란다는 것은 알 수 있었지만, 그래 봐야 회사의 시선에서 단유는 그저 한 명의 팬에 불과했다. 관계자도 아니고 그저 갤럭시즈와 개인적 친분을 나눈 ‘팬’이라는 게 단유의 위치였다. 그런데 단유와 박이사가 이야기를 나눈다?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그럼 그 전에 형이랑 먼저 이야기하면 괜찮을까요?
“뭘?”
―갤럭시즈의 문제점이요.
다른 사람도 아니고, 단유가 말하는 ‘문제점’이라니 솔직히 궁금해졌다.
“어딘데? 집이지? 내가 갈까?”
집에 조금 늦게 들어가면 어때? 잠깐 시간 내서 이야기 좀 나누는 건데. 태호는 시계를 흘깃 바라보며 단유의 대답을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