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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멤버 더 네임-283화 (283/956)

서바이벌(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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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계 중학교 축구부는 예선 1차전에서 2:1로 승리를 따냈다. 같은 학교의 학생으로서 축하해야 마땅할 일이지만, 마냥 신나지는 않은 일이었다. 승리의 주역으로 명수가 저 자리에서 손을 치켜들고 있었다면 모를까, 지금으로써는 그저 담담하게 박수를 보내주는 것으로 감상을 끝낸 단유였다.

“잘하네.”

“잘하지. 솔직히 나 없어도 저 정도는 충분히 이겨야지.”

명수는 뿌듯하다는 얼굴을 하고 열렬하게 박수를 보내고, 환호성을 질렀다.

“들렀다 갈까?”

“그래.”

감독은 명수의 어깨를 한 번 두드려주고 다음번에는 같이 뛰자고, 그러니까 열심히 재활에 신경 쓰라고 응원해주었다. 명수의 친구들, 선배들은 뛰지 못한 명수의 어깨를 두드려주었고, 명수는 그들과 어울려서 소리를 질렀다.

단유는 한발 물러서서 그들을 바라보다가 슬쩍 자릴 피했다.

‘논어든 뭐든, 다 무소용이구나.’

이성적으로는 승리를 거둔 이들의 편에서 감동을 맛보는 게 당연하다고 여기면서, 실제로는 썩 즐겁지만 않은 자신의 마음 상태가 불편하게 여겨졌다.

‘이런 것도 프라이밍 효과라는 걸까?’

자신의 불편한 마음을 분석해보면, 아무래도 최근의 갤럭시즈가 관련된 것 같았다. 대중에게 인정받는 가수가 되고 싶어서 그토록 열심히 노래하고 춤을 연습했지만, 정작 무대 위의 스포트라이트는 다른 사람에게로 향하고 그들은 스포트라이트의 그늘 속에서 박수만 치다가 내려왔다. 아무도 그들의 꿈을 막지도 않았고, 그들의 꿈을 비판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꿈을 향해 전진하던 그들은 무대에서 내려와야 했다.

그 상황이 명수에게로 대입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도 명수가 축구를 하지 못하도록 방해한 것도 아니었고, 그저 중요한 경기를 앞두고 발목을 다쳤을 뿐이지만, 그 일로 명수는 경기장에서 환호성을 받는 선수들의 대열에서 빠졌다.

두 가지 일 모두 이성적으로, 정말 냉철하게 따지면 별거 아닐 수 있는 일이었다. 갤럭시즈는 굳이 지금이 아니더라도 1년 뒤, 혹은 2년 뒤에라도 사람들의 인정을 받아 성공한 가수의 반열에 설 수도 있는 것이고, 명수는 다음 경기부터라도 인정을 받아서 승승장구할 수도 있는 일이었으니까.

그런 미래를 낙관할 수 있는 머리와 달리 마음은 현재 벌어진 일에 불편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단유야, 가자. 어? 너 왜 그래?”

명수가 선수 탈의실에서 빠져나와 밖에서 기다리던 단유를 보고 물었다.

“뭐가?”

“뭐 안 좋은 일이라도 있었어?”

그러면서 괜히 주위를 두리번거려 보는 명수였다.

“아무 일 없었다. 가자, 집에.”

명수는 단유 옆에서 천천히 걸음을 옮겼고, 단유는 명수의 걸음에 맞춰 보폭을 조절했다.

“표정이 너무 안 좋은데?”

단유는 잠깐 고민하다가 자신의 감정에 대해 털어놓았다.

“저 자리에 니가 없다는 게 아쉬워서 그랬어.”

“아, 난 또 뭐라고. 괜찮아, 난. 다음에 뛰면 되는데 뭘.”

“나도 알아. 다음에 뛰면 되고, 다음에 뛰면 다른 누구보다 더 주목받을 수 있는 실력이라는 걸 알아. 하지만 그런 실력을 오늘은 보여주지 못했잖아. 그냥 그게 찝찝하달까, 뭐 그런 기분이 들어서 그랬어.”

명수는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무슨 말인지 알 거 같아. 나도 게임 할 때, 보스전에서 죽으면 화가 나거든.”

단유는 무슨 소리냐는 듯 명수를 바라보았다.

“원래 보스전이 조금 힘들긴 하지만, 그래도 공략법만 알면 이길 수 있어. 이길 수 있게 만든 게 보스전이고. 그런데도 실수를 해서 보스전에 지면 고작 게임에서 한번 죽은 것뿐인데도 온몸에 힘이 빠지고 욕이 나온단 말이지.”

“···내가 말한 거랑 다른 상황인 거 같은데?”

“같은 거야. 왜 같은 줄 알아? 비디오 게임이나 이 경기나 결국 지나고 나면 별거 아닌 거 거든. 게임에서 죽어도, 다시 리스타트 눌러서 보스전에 도전하면 되고, 계속하다 보면 깰 수 있잖아? 이것도 마찬가지야. 고작 한 경기이고, 아쉽긴 해도 그렇게 표정 굳힐 정도의 경기는 아니란 말이야. 나중에 국가대표 선발전 같은 거라면 모를까, 고작 중학교 추계 예선 1차전에 불과한데, 이 정도는 체력관리 겸해서 잠깐 쉰다고 생각하면 그만이야.”

어쩌면 명수가 자신보다 더 마음공부가 제대로 된 친구인지도 모르겠다. 아니, 모르는 게 아니라 그게 사실이었다. 자신은 골방에 처박혀서 책이나 보고 있을 때, 명수는 다른 사람들과 부딪치는 걸 즐겼고, 그런 가운데서 몸으로 체득한 경험이 자신의 수 배는 될 것이니까.

단유는 명수의 머리를 문질렀다.

“뭐야?”

“대견해서.”

“뭐? 웃기고 있네. 대견하긴 니가 더 대견해, 임마.”

단유는 자신을 가리키며 물었다.

“내가 왜?”

“난 고작 공만 찰 뿐이지만, 넌 전교 1등만 죽어라 하잖아? 모든 선생님과 어른들의 관심을 독차지하는 주제에 누굴 보고 대견하대?”

“그거야, 내가 책을 좋아해서 책을 많이 읽다 보니까 그렇게 된 거지?”

“우와, 너 그 말 다른 데 가서 하지 마라. 돌 맞는다.”

너 빼고 다른 300여 명의 아이들은 책도 읽지 않는다는 소리냐며 명수가 장난스럽게 단유의 어깨에 매달려 단유를 흔들어댔다. 피식 웃으며 단유도 명수의 어깨에 손을 걸고, 명수를 부축해서 집으로 향했다.

그러면서도 단유는 마음의 작용에 대해 좀 더 고민해보기로 했다. 노래를 들어도 감흥이 없는 모습이나, 사소하다는 걸 알면서도 쉽게 토라지거나 울적해지는 등, 제대로 통제가 되지 않는 자신의 마음에 대해서.

****

“주예영, 일어나.”

예영은 힘겹게 눈을 뜨고, 얼굴을 가린 이불을 내렸다. 환해진 방 안에 명지와 수영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 언니? 무슨 일이에요?”

“너, 일어나 봐.”

예영은 꾸물거리면서 이불 밖으로 나왔다. 만사가 귀찮다는 게 손끝, 발끝에서 느껴지는 움직임이었다.

“너 왜 오늘 안 나왔어?”

명지의 말에 예영은 아차, 싶은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아침에 일어날 때부터 기분이 울적하더니 도저히 몸을 움직이기가 싫었다. 심지어는 밥을 먹으러 주방에 가는 일까지도 귀찮았던 나머지, 지금까지도 밥을 먹지 않고 있었다.

‘지금’이라는 것에 생각이 미치자, 몇 시인지 궁금했다. 벽에 걸린 시계를 보니, 어느새 11시를 가리키는 시계였다. 젖은 머리의 명지가 눈앞에 있으니, 아마도 연습이 끝나고 난 후의 11시일 것이다.

‘하루 종일 아무것도 안 먹었네.’

그 생각이 먼저 들었다.

“주예영, 너 무슨 생각해? 언니 말 안 들려?”

명지가 톤을 높여서 예영을 꾸짖자, 다시 정신이 돌아온 예영이 흐린 눈으로 명지를 바라보았다.

“···죄송해요. 잘 못 들었어요.”

명지는 기가 찬다는 얼굴로 예영을 바라보다가, 자신의 어깨를 잡는 수영의 손에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수영이 앞으로 나서며 예영을 불렀다.

“너 어디 아프니?”

“···아니요.”

“그럼 왜 오늘 레슨 안 받았어?”

예영은 딱히 대꾸할 말이 없었다. 무슨 말도 변명 같았고, 실제로 변명에 불과했다.

“대답도 하기 싫어?”

말없이 고개만 숙이고 있는 예영이 답답했던지, 명지가 수영의 뒤에서 목소리를 높였다. 예영은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그냥요.”

“뭐?”

“그냥 나가기 싫어서 안 나갔어요, 됐어요?”

예영의 말에 명지가 씩씩거리며 나서려는데 수영이 말렸다.

“예영아, 진짜 너 무슨 일 있어? 얼굴도 정말 말이 아니다.”

아무래도 오늘 아무것도 먹지 않아서 수척해 보이는 탓이겠지. 예영은 오늘처럼 지낸다면 다이어트는 걱정 안 해도 되겠다는 생각을 잠시 했다. 그리고 ‘다이어트’를 떠올렸더니, 이제는 다이어트도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게 아닐까 하는 데로 생각이 이어졌다.

“너 포기 한 거야?”

물끄러미 예영의 낯빛을 살피던 수영이 직접적으로 물었다.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모를 수 없었다. 예영은 입을 열려고 했다. ‘아니요, 포기는 안 했어요. 제가 언제 포기한다고 한 적 있어요?’ 라고 말하려고 했다. ‘포기는 배추 셀 때나 하는 거죠.’ 라는 농담으로 받아치려고 했다. ‘제가 언니들보다 인내심이 강하다는 거 아시잖아요?’ 라고 되물으려 했다.

“네.”

그런데 정작 입이 열리면서 나온 말은 자기 생각과 다른 말이었다. 예영은 스스로 말해놓고도 머릿속이 헝클어지는 기분이었다.

“포기한다고?”

“네, 이제 그만할래요. 지긋지긋해요. 레슨도, 다이어트도, 다 지긋지긋해요. 이름도 모르고, 얼굴도 못 알아봐 주는 가수가 무슨 가수에요. 회사도 가망이 없다는 걸 알고 그만둔 거잖아요. 그런 마당에 제가 뭘 할 수 있어요. 안 되는 거 그만 포기해야죠.”

“주예영!”

명지가 씩씩거렸다. 예영은 명지의 눈을 힐끔 바라보았다가 얼른 시선을 돌렸다. 시선이 살짝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따귀를 100대는 맞은 느낌이었다.

머릿속은 하얗게 질려가는데 입에서 나오는 말은 청산유수였다.

“누구는 음원 차트에서 순위가 오르내리는 걸 보면서 마음을 졸인다지만, 우리는 음원을 내도 차트에 오르지도 못하잖아요? 우리 가족들 빼고는 다운받는 사람도 없잖아요? 정식으로 CD 앨범으로 낸 적도 없으니, 남는 것도 없고. 어떤 가수는 시즌 그리팅이라도 내는데, 우리는 화보 한 장 제대로 찍은 것도 없잖아요? 인터넷 방송을 한들 하트 수가 오르지도 않고, 보는 사람도 호기심에 잠깐 들어왔다가 죄다 나가버리고, 채팅창에는 이상한 글들만 올라오고.”

수영의 눈에는 그동안 막내로서 밝게 웃으며 언니들에게 ‘화이팅’을 외치던 예영과 지금의 예영이 겹쳐졌다가 흩어지기를 반복했다.

“우리 가족들은 예전부터 저보고 그만하라고 그랬어요. 이대로 시간 보내는 게 아깝지 않냐고? 허송세월 보낼 거냐고. 정 하고 싶으면 다른 회사로 가라고.”

“야, 주예영! 너 언니 앞에서 그게 무슨 소리야!”

명지는 예영의 말에 살짝 당황했다. ‘회사를 옮긴다’는 얘기는 사실 이전에도 둘이서 살짝 한 적이 있었다. 회사를 같이 옮기자고 논의를 한 것이 아니라, 가족들에게서 그런 이야기가 나와서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내용이었지만, 두 사람은 다른 멤버들이 있는 자리에서는 하지 않기로 했다. 왜냐하면, 그 말이야말로 갤럭시즈를 먼저 깨자는 소리나 다름없었으니까.

명지가 당황한 것은 그 내용도 내용이지만, 점점 예영의 말에 수위가 높아지는 기분이 들어서였다.

“회사도, 팬들도 가망 없다고 버린 게 갤럭시즈에요. 뭐 때문에 레슨을 받고, 연습을 해요? 차라리 그만두는 게 나아요.”

명지는 화가 났다. 화가 나는데 눈앞은 눈물로 흐려져서 잘 보이지 않아, 고개를 숙였다. 그래서 예영의 눈에도 자기처럼 뜨거운 눈물이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보지 못했다.

예영은 머리만 하얗게 변한 게 아니라, 눈앞도 하얗게 변해서 자신이 바라보고 있는 게, 수영인지 명지인지, 아니면 그냥 벽을 바라보고 있는 것인지 분간을 할 수 없었다.

“언니들도 관둬요. 이런 거, 아무 의미 없잖아요.”

예영의 말이 끊어졌을 때, 명지의 눈에 흐르던 눈물도 멈췄다. 명지가 고개를 들어보자, 수영의 등이 움직이고 있었다.

수영은 예영의 마음이 자기 안으로 급류처럼 걷잡을 수 없이 흘러들어오는 것을 느꼈다. 예영의 차갑고 따가운 말보다, 더 절절하고 가슴 아픈 감정이 먼저 자기 안으로 들어와 수영의 몸을 떨게 만들었다.

그리고 예영이 ‘관둬요’라고 말했을 때, 수영은 한 걸음을 디뎠다.

예영은 자신을 감싸 안는 손길을 느꼈다.

“미안해.”

그리고 자신의 귓가에 들리는 축축한 목소리를 들었다.

“언니가 몰라줘서, 미안해.”

하얗게 변했던 머리와 눈이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자신이 했던 말들이 메아리처럼 다시 자신에게 돌아와, ‘니가 했던 말이 이런 거였어’라고 알려주었다.

“많이 힘들었을 텐데, 언니가 내 생각만 하느라고 너를 챙겨주지 못해서 미안해.”

입술을 꽉 깨물었지만, 그 사이를 비집고 울음이 터져 나왔다.

“언니, 죄송해요.”

라는 말을 하고 싶은데, 울음소리가 말을 집어삼켜 버린 바람에 정작 입에서는 짐승의 울음소리 같은 기성(奇聲)만 흘렀다.

어느새, 두 사람은 바닥에 무릎을 꿇고 부둥켜안은 채로 눈물과 통곡을 했고, 명지와 뒤늦게 들어온 지수, 수련도 문가에서 서로 눈물을 닦아주며 흐느꼈다.

갤럭시즈에게 무기한 컴백 연기가 선고되고 일주일. 처음으로 멤버들은 다 같이 눈물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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