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멤버 더 네임-282화 (282/956)

서바이벌(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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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유는 돌아오는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올 때는 앉아서 올 수 있었던 반면, 가는 동안에는 주말이라 그런지 퇴근 시간이 아님에도 사람들이 가득해 서서 와야만 했다. 손잡이를 잡은 채인 단유는 지하철의 작은 진동을 두 발로 느끼면서, 슬쩍 앉은 이들을 구경했다.

남녀노소 다양한 사람들이 나란히 앉아 있는 모습이 색다르게 느껴졌다. 아마도 저기 앉은 사람들은 서로 일면식 하나 없는 사람들일 것이다. 누구 하나 옆 사람을 쳐다보는 이 없었고, 약속이라도 한 듯이 손에 핸드폰을 쥐고, 조그만 액정 속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을 뿐이었다. 나이든 이든, 젊은 이든 상관없이 모두 핸드폰만 바라보고 있었다. 더러 핸드폰을 쥐고 있지 않은 아주머니들은 눈을 감고 있거나, 눈을 떠도 딱히 초점이 잡히지 않은 눈으로 아래를 바라보고 있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저 사람들이 대중이구나.’

다른 얼굴, 다른 취향, 다른 삶을 사는 사람들이 지하철 한 칸에 모여서 엉덩이를 붙이고 나란히 같은 목적지를 향해 가는 사람들이 수련이나 다른 가수, 혹은 연예인들 대상으로 하는 대중이었다. 저 사람들이 모두 좋아할 만한 노래나 목소리가 있을까?

그러다 갑자기 단유는 앉아 있던 한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보려고 해서 본 건 아니었고, 서로가 눈 둘 데가 마땅치 않아 여기저기를 보다가 마주친 것이었지만, 어떤 이유에선지 시선이 곧바로 떨어지지 않았다. 1초도 안 될 시간이겠지만, 그 순간의 마주침이 너무나 길게 느껴졌다. 단유는 얼른 눈을 돌렸다. 그리고 머릿속으로 ‘사과를 해야 하나’, 라는 생각을 잠시 떠올렸다. 뭔가 민망하게 만든 것 같기도 하고, 훔쳐보고 있었다는 느낌을 준 것 같기도 했다. 의도와 달리 다른 사람에게 이상한 오해를 줄 수도 있겠구나, 라는 깨달음을 얻은 단유는 이후로는 창밖에 시선을 던진 채로 도착역까지 갔다. 그래 봐야 시커먼 터널의 어둠밖에 보이지 않는 터라, 거울 보듯 자기 얼굴을 보면서 시간을 보낸 단유였다.

“야, 나 오늘 지하철에서 잘생긴 애 봤거든?”

―또 지랄한다. 그 놈의 도끼병은 나이 먹어도 안 고쳐지냐?

“내가 무슨 말 할 줄 알고, 도끼병이래?”

―그래, 그럼 계속 말해봐라.

“안 할래.”

―하지 마라.

“너 계속 그럴래? 앞으로 영원히 안 보고 살래?”

―나는 상관없는데?

“야!”

―아이참, 왜 소릴 지르고 그래? 너 때문에 네일 튀었잖아?

“그러니까 얌전히 이야기나 들어.”

―알았다, 알았어. 뭔데, 얘기나 해봐.

“난 그냥 가만히 앉아 있었거든. 그런데 뭔가 시선이 느껴지는 거야. 내가 원래 감이 좋잖아?”

―개뿔.

“뭐라고?”

―아냐, 계속해. 아세톤 찾는 중이라서 혼잣말로 중얼거린 거야.

“···내가 감이 좋잖아? 그치? 그래서 누가 또 도촬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거야. 그래서 가만히 눈만 돌려서 주위를 보니까, 딱 하고 눈을 마주친 거야. 고등학생처럼 보이는데, 핸드폰을 들고 있지는 않았고, 그냥 쳐다보기만 하고 있더라고. 그래서 도촬은 아닌가 보다, 생각하는데 가만히 보니까 얼굴이 장난이 아닌 거 있지? 난 무슨 원빈 젊었을 때 보는 줄 알았다니까?”

―······.

“듣고 있어?”

―어.

“얼굴이 완전히 그림 같은데, 무슨 만찢남이 현실 출몰한 줄 알았다니까? 그런데 딱 시선 마주치니까, 애가 얼굴이 빨개지면서 고개를 푹 숙이는데, 완전 귀여운 거 있지? 눈 마주친 뒤로는 내 눈을 못 보고, 계속 창밖만 보는 거야. 그래서 계속 쳐다봤는데, 옆모습도, 이야, 이건 말로 설명할 수가 없어. 진짜 내가 도촬하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다니깐.

―그렇구나.

“뭐야, 그 심심한 반응은? 내가 진짜 사진을 찍었어야 하는데, 차마 옆에 눈치가 보여서 찍지를 못하겠더라고. 그런 거 보면, 지하철에서 도촬 찍는 애들은 간덩이가 엄청 부은 애들이 분명해. 난 내가 너무 소심하고 마음이 여려서 그러질 못하겠더라고. 진짜 내가 2살만 더 어렸어도, 가서 전화번호 물어봤을 거다. 너 알지? 나 눈 높은 거.”

―어.

“···너 계속 대답이 시원찮다.”

―어, 야, 밖에서 누가 부른다. 나가야 돼. 나중에 통화하자 안녕?

“야, 야!”

여자는 핸드폰을 핸드백에 집어넣고, 지상으로 올라왔다. 지나가는 남자들이 왜 이렇게 못 생겨 보이는지. 여자는 인상을 살짝 찌푸린 뒤, 선글라스를 꺼내 끼고는 당당하게 길을 걸어갔다. 턱 끝에 힘을 주고 도도한 이미지가 잘 드러나도록 허리를 곧게 펴는 것도 잊지 않았다.

****

나윤의 합류 이후에도 갤럭시즈의 스케줄은 그다지 변한 것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여전히 같은 시간 같은 곳에서 안무 연습과 보컬 연습을 병행하며 하루 하루를 지내고 있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하는 멤버들이었다.

“예영아, 안 나갈 거야?”

“나중에 레슨 시간 맞춰서 나갈게요.”

수영은 침대에서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는 예영을 잠시 바라보다가 등을 토닥거려 준 뒤, 방을 빠져나왔다. 갤럭시즈 멤버들 중 가장 나이가 어리지만, 그래서 더 많이 밝은 모습을 보이려고 노력하고 애를 쓰던 친구였는데, 지금은 가장 먼저 의욕을 잃어버렸다. 그나마 보컬과 안무 연습 시간에는 빠지지 않지만, 그 외 시간에는 숙소에서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평소 가까이 지내던 명지가 예영을 달래보기도 했지만, 명지 본인도 의욕이 다소 꺾인 상태여서 결국 이렇게 되고 말았다.

거실로 나온 수영이 가방을 메고 나오려다 주방 근처에서 얼쩡거리는 나윤을 발견했다.

“어, 너 아직 안 나갔니?”

“네. 저 빨래만 널고 나갈게요.”

“도와줄게.”

수영이 다가오자 나윤이 얼른 손사래를 치며 수영의 도움을 거절했다.

“괜찮아요, 언니. 제 일인데요. 제가 알아서 할게요.”

원래는 나윤과 예영이 같이 해야 할 일이었다.

“혼자 하기 힘들어. 도와줄게.”

이미 수영은 가방을 다시 내려놓고, 나윤에게로 다가온 참이었다. 결국, 나윤과 수영은 두 바구니에 가득 담긴 빨래를 건조대에 가지고 가 널기 시작했다.

“힘들지?”

말없이 빨래를 널던 중, 수영이 물었다. 이제 나윤이 들어온 지 일주일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처음보다는 긴장이 많이 풀린 것 같긴 하지만, 여전히 갤럭시즈 멤버들을 어려워하는 나윤이었다. 특히 나이 차가 많은 수영을 어려워하는 모습이 눈에 보였다.

“아뇨. 괜찮아요.”

웃음을 지어 보인 후, 다시 빨래를 널기 시작하는 나윤은 몰래 귀 옆으로 흐르는 땀을 닦아냈다. 솔직히 말해서 힘들지 않을 수 없었다. 숙소 생활을 하면서 안 하던 빨래를 맡아 하게 된 것도, 눈치 보지 않고 살다가 갑자기 5명의 무서운(?) 언니들과 함께 생활하게 된 것도 힘들지 않다고 한다면 거짓말이었다.

물론 나윤은 꿈이 있었고, 목표가 있었기에 이런 것쯤은 견뎌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더 열심히 웃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일주일을 함께 지내는 동안 알게 모르게 눈칫밥을 먹게 되고, 갤럭시즈라는 그룹의 미래가 마치 자기 때문에 불투명해진 것 같아 불편했다.

“다 끝났네?”

“네.”

“그럼 회사 갈 거지?”

“네.”

“가자. 가면서 언니가 커피 사줄게.”

“네, 고맙습니다.”

그나마 수영은 먼저 다가와서 말도 먼저 붙여주는 형편이라 고맙긴 했다. 고마운 건 고마운 거고, 불편한 건 불편한 거지만. 맏언니라서 오히려 그녀의 접근이 마냥 편하지마는 않은 게 솔직한 나윤의 심정이었지만, 그래도 열심히 웃으려고 노력했다.

반대로 가장 불편한 사람은 같은 방을 쓰는 예영이었다. 나이 차이도 겨우 2살밖에 나지 않는 터라, 가까워지려면 얼마든지 가까워질 수도 있을 멤버지만, 나윤이 숙소를 들어온 첫날부터 지금까지 서로가 나눈 대화가 손에 꼽을 정도였다. 게다가 늘 불만 섞인 얼굴을 하고 있어, 가끔은 그녀의 미모가 아깝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다녀오겠습니다.”

나윤은 방에서 짐을 챙기고 침대에 누워있는 예영에게 인사를 했다. 하지만 예영은 진짜 자는 것인지, 자는 척을 하는 것인지 인사를 받아주지 않았다. 나윤은 조용히 문을 닫고 몸을 돌렸다.

“너 노래 잘한다고 수련이 칭찬하더라?”

갤럭시즈의 기존 멤버들과는 같이 연습을 받지 않았다. 회사에서 일부러 시간을 다르게 배정한 탓이었는데, 나윤은 회사의 배려가 고맙게 여겨질 정도였다.

“아니에요. 수련 언니가 정말 대단하던걸요?”

“수련이야 뭐 다른 회사 사람들도 인정하는 보컬이니까.”

수영은 가방 앞에서 지갑을 꺼내어 손에 들고는 회사 건물의 커피숍으로 들어갔다.

“뭐 마실래?”

“아메리카노요.”

“여기 아메리카노 2잔 주세요.”

나윤이 노력하는 것 중의 또 하나는 바로 커피였다. 사실 나윤은 커피를 잘 마시지 않았다. 그러나 처음 수영과 함께 길을 나섰을 때, 수영이 커피 마시겠냐는 질문에 솔직하게 대답하지 못하고 ‘네’라고 말했던 게 지금까지 이어지면서 하루에 3잔 이상씩 커피를 마시는 중이었다.

그래서 숙소 첫날, 그 힘든 와중에도 잠이 오지 않아서 고생을 많이 했었다.

“고맙습니다.”

나윤은 커피를 손에 들고 수영과 함께 지하로 내려갔다.

“수고해.”

“예. 언니도 수고하세요.”

나윤은 ‘독방’이라 부르는 1인 보컬 연습실로 들어가고, 수영은 명지와 지수가 연습하고 있을 안무 연습실로 향했다.

독방에 들어와 문을 닫고 의자에 앉자, 괜히 온몸이 노곤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아, 힘들다.”

절로 한숨이 나오며 책상에 철퍼덕 엎드리는 나윤이었다.

요즘은 그런 생각을 많이 했다.

‘과연 산다는 게 뭘까?’

자신이 뭘 위해서 살고 있는지, 과연 자신이 목표로 하는 그 지점에 이르기까지 무사히 갈 수 있을지, 그리고 거기에 이르기까지 몸과 마음이 버틸 수 있을지 걱정이 들었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특별히 자신의 진로에 대해 반대하지 않았다.

“네가 하고 싶은 건 해 봐라. 요즘은 그쪽 직업도 나쁘지 않은 것 같으니까.”

성실하게 공부해서 대학가고 좋은 직장에 들어가 좋은 남자 만나서 결혼하는 평범한 인생을 바라지 않는 부모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요즘은 연예인도 예전처럼 나쁘게만 보지는 않아서, 나윤도 부모님의 허락하에서 연습생 생활을 시작했다. 물론 순수하게 딸의 꿈을 지지하는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쟤는 배우 생활해서 번 돈으로 자기 부모님한테 건물을 사줬다네?”

“요즘은 가수도 돈 잘 버나 봐? 역시 세상이 바뀌는 것 같아, 그쵸, 여보?”

“자기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차도 가지고 싶은 대로 다 사고도 몇억씩 번다니까 할 만하지.”

나윤이 회사와 계약한 후, 계약금이 부모님의 통장에 들어왔을 때, 부모님의 얼굴에 떠오른 미소를 잊을 수 없었다. 물론 이후 2년간 연습생 생활을 하면서 쓰는 돈도 만만치 않았지만, 그 정도는 용납해 주겠다는 부모님이셨다.

“하려면 꼭 성공해라. 자기 꿈을 이룬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해냈을 때의 성취감도 클 거다. 그러니 만약 포기하려면 빨리 포기하고, 아니면 끝까지 성공을 향해 노력해라.”

나윤은 그저 자신의 꿈을 반대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감사해 하며 연습생 생활을 시작했고, 마침내 듀엣 데뷔가 결정되었음을 알렸을 때, 부모님들은 소소하게 술잔을 부딪치며 딸의 성공을 기원했다.

“성공이라.”

나윤은 양팔을 포개고 그 위에 턱을 얹은 채, 생각에 빠졌다. 부모님이 바라는 성공과 자신의 성공이 같은 것일까, 스스로에게 물어보면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그러나 요즘은 그 생각이 조금씩 바뀌고 있었다. 갤럭시즈라는 모범적인 예가 있다 보니, 단순히 데뷔만 하면 성공할 수 있다고 자신하지는 않았다. 점점 나윤의 머릿속에는 성공이란 희망찬 미래보다는 ‘버티고 살아남자’라는 현실적인 목표가 자리 잡고 있었다.

****

“그럼 갤럭시즈는 없어지는 거야?”

명수의 물음에 단유는 고개를 저었다.

“아직은 결정된 건 아니래. 그런데 컴백은 무기한 연기라고 하더라.”

“음, 그럼 거의 망삘인데.”

‘망삘’이란 단어의 의미를 듣고 난 뒤에야 단유는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안 좋은 상황이긴 한데, 그래도 누나들이 실력이 떨어지진 않으니까, 아마 기회만 된다면 잘 될 거 같아.”

명수는 바로 대꾸하지 않았다. 잠시 생각을 곱씹는 것 같더니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그 기회라는 게 쉽게 오지 않으니까 그렇지.”

명수의 목소리가 가라앉아 있었다. 단유는 수련이나 나윤의 목소리나 노래에서는 진심을 느끼지 못했지만, 명수의 목소리에서는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떤 마음으로 이런 말을 했는지를 금방 포착할 수 있었다.

“너도 쓸데없는 생각하지 마. 이제 겨우 1학년일 뿐인데 뭐.”

단유는 명수의 등을 토닥인 뒤, 앞으로 시선을 던졌다. 이러저러한 사담을 나누다 보니 어느새 경기장 입구에 다다랐다.

“축구부 애들 보러 갈 거지?”

“그래야지. 넌 미리 가서 자리 잡고 있어. 나 혼자 갔다 올게.”

단유는 알겠다고 대답한 뒤, 먼저 등을 돌렸다. 중학교 추계 축구대회가 열리는 시합날. 명수가 그토록 바라던 주전 출전 경기가 부상으로 빠져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깁스는 풀었지만, 명수는 2주를 더 물리치료를 받으며 안정을 취해야 한다는 진단을 받았고, 결국 추계 대회 출전 자체가 무산되었다. 내년이 있다고 다독거려주는 단유와 축구부 감독님의 위로에도 명수의 굳은 미간은 쉽게 풀리지 못했다.

단유는 경기장 안으로 들어가 관중석을 둘러보았다. 중학교 대회라서 그런지,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볕이 잘 들지 않는, 그래서 경기를 관전하는 데 불편함이 덜 할 자리를 찾아 앉은 단유는 곧 운동장으로 뛰어나오는 아이들을 볼 수 있었다. 가볍게 공을 돌리면서 몸을 푸는 소년들의 얼굴은 상기되어 있었다. 긴장과 기대가 뒤섞인 표정들을 감추지 못하는 어린 소년들의 시합이 곧 시작될 것이다.

“자리 좋네.”

어느새 명수가 단유를 찾아와서 옆에 앉았다.

“인사는 잘했고?”

“응.”

명수는 운동장에 시선을 고정한 채였다. 단유도 아무 말 없이 경기장을 바라보았다. 저곳이 언젠가는 명수의 꿈이 펼쳐질 무대이리라. 하지만 지금은 명수가 존재하지 않는 무대. 각자의 꿈이 격돌할, 치열한 전장이 될 경기장이 단지 명수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단유는 흥미를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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