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believable!(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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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진심을 담아서 부르기 힘들어?”
두 사람이 머뭇대기만 하고 먼저 불러보겠다고 나서지 않자, 트레이너가 웃음기를 머금은 얼굴을 하고 두 사람을 재촉했다.
“제가 먼저 해 볼게요.”
역시 이럴 때는 나이 어린 사람, 아니 후배가 먼저 해야 미움을 덜 받는 법이었다. 나윤이 먼저 손을 들어 트레이너 앞으로 섰다.
“날 보지 말고, 단유를 보면서 해. 관객이라 생각하고.”
나윤이 얼굴을 붉히면서 머뭇거리자, 트레이너가 다시 말했다.
“앞으로는 수십, 수백 명 앞에서 자연스럽게 노래를 불러야 하는데, 고작 한 사람 앞에서 진심을 담아 노래 부르기를 어려워하면 어떻게 하니?”
“아뇨, 어렵지 않아요. 할 수 있습니다.”
나윤은 그저 낯선 사람 앞에서 부르는 게 경험이 없어 잠시 망설였을 뿐이었다는 등, 과장되게 어깨를 으쓱거려 보이곤 마이크를 잡았다.
“그런데 반주는?”
“그냥 불러. 목소리가 악기라잖아?”
트레이너는 이 상황이 재미있었다. 사실 트레이너가 주로 하는 역할이라는 게 가수의 음정을 잡아주고, 음의 벤딩이나 슬라이드, 그 밖에 디테일한 스킬을 조정해주는 역할이 대부분이었기에, 감정을 담아서 부르라거나 하는 식의 조언은 그다지 할 일이 없었다. 그러나 마침 수련의 연습곡을 들으며 가졌던 생각을 이런 식으로 풀어나갈 수 있게 돼서 흥이 나던 중이었다.
“무반주라도 음정, 박자 잘 지켜야 정말 좋은 가수가 되는 거야. 뭐 부를래?”
나윤은 고심 끝에 박효신 선배의 노래를 부르겠다고 했다. 트레이너도 단유 옆에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서 나윤의 노래를 감상할 준비를 마쳤다.
나윤은 잠시 호흡을 가다듬은 뒤, 살짝 눈을 감고 노래를 시작했다.
“오늘 하루 쉴 숨이, 오늘 하루 쉴 곳이···.”
진지하게 부르기 시작한 나윤의 노래는 읊조리듯 낮은 음역에서 시작되어 점점 감정이 고조되기 시작하더니, 원곡자 특유의 감성과 고음이 묻어나는 클라이막스 부분에서 나윤은 목에 핏줄이 설 정도로 열창했다.
노래가 끝나고, 잠시 숨을 고른 나윤이 감았던 눈을 뜨자, 세 사람이 손뼉을 쳐주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잘하네, 나윤이?”
트레이너의 칭찬에 나윤이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여 보였다.
“고음이 살짝 불안한 느낌이 있지만, 역시 음역대가 넓으니까 대체로 잘 소화한 편이야.”
“고맙습니다.”
트레이너는 단유를 돌아보았다.
“어땠어?”
트레이너는 일부러 나윤의 감성적인 면에 대해서는 멘트를 하지 않고, 대신 단유의 감상을 물었다.
“잘 부르네요.”
“끝이야?”
단유는 나윤의 눈치를 보면서 머뭇대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정말?”
트레이너의 물음에 단유는 잠시 생각을 정리한 뒤 말했다.
“처음 들어보는 노래라서 그럴지도 몰라요. 그런데, 그냥 잘 부른다는 감상 외에는 다른 느낌이 없네요.”
나윤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아, 가사가 잘 들리더라고요. 발음이 좋으신 거 같아요.”
노래 감평을 하랬더니, 발음이 좋다는 이야기나 하고 있다.
“고음 음정이 불안하다고 하셨는데, 저 정도면 꽤 높은 음 아닌가요?”
“높지.”
“그러면 고음도 잘 내시고. 저음에서도 목소리가 잘 들리고. 노래는 잘 부르시는 것 같아요. 그런데, 솔직히 진심까지는 잘 모르겠네요.”
트레이너가 나윤을 바라보았다.
“나윤아, 어떤 마음으로 노래를 불렀어?”
“어, 그냥 노래 가사를 생각하면서 불렀어요. 노래 가사가 마치 제 이야기 같다고 생각하면서요.”
“노래 가사를 어떻게 해석했는데?”
나윤은 지난 몇 년간, 연습이 힘들고 고돼서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마음을 다잡으며 꿈을 포기하지 않으려 했던 하루하루를 떠올리며 불렀다고 설명했다.
“그래. 솔직히 말하면, 난 잘 들었어. 그리고 충분히 다른 사람들도 이 노래를 들었으면 마음에 들어 했을 거로 생각했어. 하지만 단유의 진심을 흔들기에는 부족했네. 단유가 귀가 너무 고급이던지, 아니면 마음에 빗장을 걸어뒀던지 둘 중 하나라고 생각되네?”
마지막은 장난스럽게 농담조로 뱉었는데, 단유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고급 귀는 아닌 것 같고, 오히려 노래를 잘 몰라서 그럴지도 몰라요. 진심을 담아서 부르는 노래라는 게 어떤 것인지 감이 잘 안 와서요.”
트레이너는 빙긋 웃으며 그럴 수 있다고 단유의 어깨를 두드려 준 뒤, 수련을 바라보았다.
“도전?”
“···예, 해볼게요. 그런데 그 전에요.”
수련은 단유를 보며 물었다.
“너 우리 노래 들어본 적 있지?”
“네.”
“그럼 우리 노래 들으면서 한 번도 좋다고 생각해 본 적 없다는 이야기야?”
예전에 노래가 좋다고 칭찬해줬던 단유를 기억하던 수련의 말에 단유가 볼을 긁적이며 말했다.
“좋긴 한데요, 그게 그냥 듣기 불편하지 않은 정도랄까요? 누나한테는 말씀드렸잖아요? 명수랑 상미가 종일 노래를 찾아서 들려주었다고요. 그런데 그중에서 마음에 드는 노래가 하나도 없던 걸 어떡해요. 아까 질문도 그래서 한 거예요. 제 기준이 아니라, 전문가의 기준에서 좋은 노래가 어떤 건지, 좋은 목소리가 어떤 건지 궁금해서 여쭤본 거예요.”
수련은 짧게 한숨을 쉬고, 마이크 앞에 섰다. 이러고 있으니 마치 오디션 프로에 나온 도전자가 된 기분이었다.
“23번 서울에서 온 하수련이라고 합니다.”
트레이너가 웃음을 터뜨렸다.
“어울리네. 뭐 부를 건데?”
수련은 잠시 생각하다가 팝송을 부르겠다고 했다.
“머라이어 캐리의 「My all」이요.”
트레이너는 재밌다고 생각했다. 두 사람 다 자기 목소리, 자기 음색의 장점을 잘 이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각자에게 잘 맞는 곡으로 선택하는 동시에, 나윤은 남자의 곡을, 수련은 팝송을 선택해서 살짝 변주만 줄 뿐이었다.
“I’d give my all to have/Just one more night with you.”
진성과 가성을 자연스럽게 넘나들며, 그리고 원곡 못지않게 자연스러운 그루브감으로 곡을 소화해낸 수련의 노래에 트레이너와 나윤은 박수를 보냈다. 특히 나윤은 수련의 노래 실력에 감동을 받을 정도였다.
“언니, 완전 대박!”
끓어오르는 흥분을 주체하지 못하고 벌떡 일어나 기립박수를 보내는 나윤에게 수련이 고맙다고 미소를 보냈다.
“뭐, 말할 필요도 없네. 역시 수련이야.”
트레이너 역시 두말할 필요 없다는 듯, 찬사를 보냈다. 노래를 듣는 동안 애절함, 절절한 여인의 감정이 물밀 듯이 밀려오는 느낌에 흠뻑 젖었던 트레이너였다. 잠시 감동에 젖었던 트레이너가 깜빡했다는 듯 단유를 보며 감상을 물었다. 수련도 괜히 긴장해서 단유의 감상평을 기다렸다.
“좋네요.”
얼굴이 붉어진 단유가 박수를 쳤다.
“끝이야?”
“···노래 가사가 조금···.”
“노래 가사?”
트레이너는 잠시 가사를 떠올려 본 뒤, 물었다.
“야해?”
“아, 아뇨? 그런 게 아니고, 좀 답답한 느낌이라서요.”
“답답해?”
트레이너와 수련, 나윤의 시선이 단유에게 몰렸다.
“그렇잖아요.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모든 걸 바치겠다는 둥, 그런 맹목적인 감정을 호소하는데, 상대가 그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아무 의미가 없는 거잖아요?”
세 사람은 갑자기 합죽이가 된 것처럼 입을 다물었다.
“상대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직설적으로 혹은 간접적으로 설파하는 모습은 상당히 인상적이긴 해요. 별에게 소원을 비는 화자의 모습도 서정적으로 보일 수도 있겠죠. 하지만 상대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상대에 대한 어떤 정보도 주어지지 않은 채 자신의 감정만 토로하고 있으니 답답하죠.”
“노래를 들으면서, 그런 걸 생각한 거야?”
“네? 아니 그냥, 그렇게 들려서 그런 거뿐인데···.”
나윤은 뭔가 질렸다는 눈으로 단유를 바라보았다.
“그래서 진심을 못 느꼈다는 거야?”
트레이너의 말에 단유가 곰곰이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선생님이 말씀하신 절절한 느낌, 이라는 건 느낄 수 있었어요. 그런데 그게 전혀 공감되질 않으니까 그렇게 와 닿지는 않네요.”
수련은 물론이고 트레이너도 단유를 상상 속의 동물을 바라보는 듯 쳐다보았다. 그 시선을 눈치챈 단유가 황급히 변명을 했다.
“그러니까, 제 말은요. 가수가 인기를 얻으려면, 적어도 그 노래가 사람들에게 계속 듣고 싶다는 충동을 불러일으켜야 하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리고 계속 듣고 싶어지려면, 목소리도 듣기 좋아야 할 거고, 노래 역시 여러 번 들려도 질리지 않는 멜로디가 있어야 할 거고, 뭐 그래야 하지 않을까 하는 거죠.”
“그 말은, 내 노래는 여러 번 듣고 싶지 않다는 뜻이야?”
수련이 허리에 손을 올리고 모처럼 눈썹을 위로 치켜세웠다. 단유는 다시 변명하듯, 미안한 얼굴을 하고 대답했다.
“그게,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제가 좀··· 노래를 잘 몰라서 그런 거죠. 아까 나윤···누나는 누나 노래가 감동적이었다고 박수 치고 그랬잖아요? 제가 좀 특이해서 그런 걸 수도 있으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이런 판을 벌여놓고 신경 쓰지 말라니! 라고 생각했다가 수련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저게 단유지.
“니가 그럼 그렇지.”
“무슨 뜻이야?”
트레이너가 수련에게 물었다.
“단유 쟤요, 조금 특이하거든요. 보는 눈만 특이한 줄 알았더니, 듣는 귀도 특이한가 봐요.”
수련은 비하의 의미가 아니라, 사실 그대로 ‘특이함’을 강조하며 단유와 인터넷 방송을 했던 이야기를 전해 주었다.
“외모를 수학적으로 분석한다고?”
이야기가 이상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어느새 단유는 세 사람에게 둘러싸여서 가장 예쁜 외모란 무엇인가에 대해 질문을 받기 시작했다. 괜히 땀이 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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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데려다줘도 돼요?”
“응, 괜찮아.”
수련은 아무렇지 않게 대답하며 나윤과 함께 숙소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단유 되게 똑똑해. 전교 1등도 하는 애거든.”
“정말요?”
‘전교 1등’이란 단어에 놀라던 나윤은 아까 연습실에서 보던 모습과 연계해서 생각해보았다.
“전교 1등 하는 애랑 이야기를 나눠본 적이 없어서 몰랐는데, 원래 전교 1등 하는 애들은 저래요?”
아무래도 공부만 하다 보니 감성이 무뎌진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며 수련에게 물었다.
“글쎄다. 거기까지는 잘 모르겠고. 나도 아는 애가 단유밖에 없어서 말이야.”
제1회 단유배 오디션(?)이 끝나고 잡담을 하던 와중에 단유가 소리를 파동으로 분석하게 되면 결국 음악도 수학으로 분석할 수가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꺼내 놓았고, 세 사람은 단유를 풀어주기로 마음을 먹었다.
‘애초에 건드릴 상대가 아니었다.’
라는 게 세 사람의 공통된 심정이었고, 단유가 그나마 노래에 관심을 가진 게 갤럭시즈에 대한 애정 때문이라는 것에 고마워하며 집으로 돌려보냈다.
“그런데 뮤직비디오로 볼 때보다 훨씬 잘 생긴 것 같은데, 연예인 아니었어요? 난 우리 회사에서 계약한 줄 알았는데.”
나윤의 말에 수련이 고개를 끄덕였다.
“계약하려고 했지, 태호 오빠가 계속 단유 찾아가서 계약하자고 조르기도 했는데, 단유가 거절했어.”
“왜요?”
“공부해야 한다고.”
“아.”
나윤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확실히 단유가 잘생기긴 했지?”
수련의 말에 나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전 진짜 모델인 줄 알았다니까요. 키도 크고 얼굴도 작고. 아마 길거리 캐스팅도 받을 거 같은데요?”
“그건 어려울 거야.”
“왜요?”
“집 밖에 잘 안 나가.”
“···왜요? 혹시···.”
수련은 나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안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성격 문제가 아니고, 공부한다고 집 밖에 안 나가.”
“네?”
수련이 이해를 못 하겠다는 얼굴로 물었다.
“어떻게 사람이 그럴 수 있어요?”
“왜 못해? 너도 아침에 연습실 들어가서 해질 때까지 연습실 안 나가고 연습하는 애들 봤을 거 아냐.”
나윤은 수련의 명쾌한 비유에 손뼉을 쳤다.
“그렇네요. 저도 그런 적 있어요.”
“그거랑 똑같아. 다만 쟤는 책을 좋아해서 책 읽는 시간에 많이 투자할 뿐인 거고, 우리는 노래 부르는 시간에 투자할 뿐인 거고.”
이해는 되지만, 그래도 책을 읽는 시간이 즐거워서 밖에도 안 나갈 정도라는 건 사실 와 닿지 않았다. 공부를 그렇게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까? 다리에 힘이 빠져서 걷기 힘든 나이가 아니고서야, 한참 혈기왕성한 나이의 남자아이가 책이 좋아서 밖에 안 나간다고?
“그런데 몸은 좋아 보이던데?”
“그 새 몸도 봤어?”
나윤이 얼굴을 붉히자, 수련이 웃음을 터뜨렸다.
“새벽마다 운동한단다. 하루도 안 빠지고 운동을 하니까, 당연히 몸은 좋겠지. 그런데, 너 너무 관심 가진다?”
“네?”
“반했니?”
“아, 아뇨. 그런 거 아니에요.”
4살이나 어린데.
“그런 거 아니면, 왜 그렇게 관심이 많은 것처럼 보일까? 지금도 봐. 너 얼굴 터지겠다야.”
나윤은 언니가 놀려서 그래요, 라는 말은 못하고 입술을 달싹거릴 뿐이었다.
하지만 관심이 전혀 없지는 않았다. 적어도 주위에서 보기 힘든 캐릭터였으니까. 신선하달까? 놀랍달까?
‘알고 지내도 나쁘지 않을 아이.’
정도라고 속으로 생각하는 나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