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멤버 더 네임-280화 (280/956)

Unbelievable!(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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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번 와봤다고, 벌써 회사의 근처 지리가 익숙하게 느껴지는 단유였다. 총 5개 층으로 이루어진 건물은 지하 1층과 지상 2층과 3층을 기획사에서 사용하고 있었다. 1층에는 대형 프랜차이즈 커피숍이 자리하고 있으며 4층과 5층도 전혀 다른 업종의 회사들이 사용하는 중이었다.

기획사를 가기 위해서는 커피숍의 입구 쪽이 아닌 건물 오른편에 난 계단으로 들어가야 했다.

“빨리 왔네?”

단유를 마중 나온 것인지, 아니면 바깥에 볼일이 있어서 나왔는지 모르겠지만, 수련이 입구 근처에서 단유를 발견하고 손을 들어 인사했다.

“지하철을 타니까 시간이 딱 맞는 것 같네요.”

“그렇지? 지하철 타는 게 어렵진 않았고?”

“한 번 타봤는데, 어려울 게 뭐 있겠어요? 괜찮았어요.”

사담을 나누며 두 사람은 지하 연습실로 들어갔다. 비밀번호를 누르고 입구를 지나면, 대략 100여 평에 달하는 넓은 공간에 연습생들의 땀과 눈물이 배인 연습실들이 구획에 맞춰 만들어져 있었다. 가장 넓은 연습실은 역시 안무연습실로 총 2개의 연습실이 만들어져 있었고, 더 안쪽으로는 1인 보컬 연습실―연습생들은 ‘독방’이라고 불렀다―이 줄지어 만들어져 있었다.

넓지 않은 공간에 여러 개의 연습실을 만들려다 보니 자연히 복도는 좁은 느낌이었다. 안무연습실로 가려면 자연스럽게 1인실 보컬 연습실을 지나야 하는데, 단유가 돌아보니 이미 방마다 연습생들이 들어가 맹연습 중이었다.

“아직 10분 정도 남았는데, 어떻게 할래?”

“그냥 옆에서 구경할게요.”

단유는 수련이 열어준 문을 통해 안무연습실로 들어갔다. 주 용도는 안무연습실이지만, 보컬 연습실도 겸하는 A 연습실이었다. B 연습실이 안무만 주로 연습하는 공간으로 음악을 재생하는 오디오 외에는 아무런 장비가 없는 곳이지만, A 연습실에는 보컬 레슨도 받을 수 있게 한쪽 구석에 건반과 마이크도 같이 세팅되어 있었다.

단유가 연습실에 들어갔을 때, 가장 먼저 반긴 것은 공기 청정기가 돌아가는 낮은 소음과 볼륨을 낮춘 음악 소리, 그리고 허밍 음이었다.

“달콤한 입술의 향기, 지워지지 않는 그의 기억.”

다른 사람이 있을 거라고 생각 못 했던 단유가 잠시 머뭇거릴 때, 뒤따라 들어온 수련이 등을 돌린 채 연습에 매진하고 있던 여자를 발견하고 이름을 불렀다.

“나윤아.”

하지만 나윤은 귀에 꽂은 이어폰 때문에 그 소리를 듣지 못했는지, 여전히 허밍을 곁들여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누구예요?”

수련은 대답 대신 나윤에게 다가가 어깨를 톡톡 두드려 주의를 일깨웠다. 나윤이 화들짝 놀라며 일어나 수련을 보자마자 90도로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허둥지둥 이어폰을 잡아당겨 챙기는 모습이 군기가 바짝 든 군인의 그것과 다를 바 없었다.

“일찍 왔네?”

“네. 아무래도 첫 연습이라서 그런지, 조금 긴장돼서요.”

그러다가 수련의 뒤에 서 있는 단유에게로 시선이 닿았다. 누구냐는 물음을 눈으로 전하는 나윤에게 단유 역시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김단유라고 합니다.”

“연습생?”

얼마 전까지 연습생들과 종일 함께 했던 나윤이었기에 이 회사에 저런 얼굴의 연습생이 없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지만, 그 외에는 정체를 유추할 만한 단서가 없었기에 연습생이냐고 물었다. 대답은 수련에게서 나왔다.

“그냥 내가, 아니 갤럭시즈 멤버들이랑 개인적으로 친한 아이. 보컬 연습하는 거 보고 싶다고 오라고 했어.”

“아.”

“혹시 본 적 없어? 얘 우리 ‘미챠(meet yah)’ 뮤직비디오에도 나왔었는데.”

“아!”

그제야 손뼉을 치며 단유를 알아보는 나윤이었다.

“저 봤어요! 되게 잘 생긴···. 와, 그러고 보니 실물이 장난 아니네요? 연예인? 모델?”

“아무것도 아니고요, 그냥 학생입니다. 평범한.”

평범하지 않은 얼굴을 하고 ‘평범’하다고 자신을 소개하는 단유를 신기한 동물 바라보듯 하는 나윤에게 수련이 물었다.

“혹시 얘 때문에 연습하는 데 문제 있을 거 같으면 말해. 아무래도 레슨 받는 데 지장이 있으면 안 되니까.”

“아뇨, 그런 거 없어요. 전 괜찮아요.”

있어도 없다고 할 판이었다. 무려 선배님이 데려오신 ‘귀인’을 어찌 어렵다 할 수 있겠는가? 수련도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단유에게 물었다.

“저기 앉아서 기다릴래? 우린 먼저 목 좀 풀고 있을게.”

“근데, 저쪽 분도 소개 좀 해주시죠?”

“아.”

수련이 자신의 이마를 찰싹 때리며 나윤에게 사과했다.

“내가 정신이 없었네. 미안하다. 이쪽은 우리 회사··· 아니, 이제 좀 있으면 데뷔할 정나윤.”

‘연습생’이라고 소개하려다, 이미 듀엣이 결정되었다는 것에 생각이 미쳐, ‘데뷔 준비’로 정정해서 소개했다.

“안녕하세요, 에이바운스(A-Bounce) 연습생 정나윤입니다.”

“···안녕하세요. 김단유라고 합니다.”

나윤의 공손한(?) 인사에 단유도 덩달아 인사를 했다. 그 모습에 수련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니들 뭐하니? 지금 무슨 미팅 하니?”

“네?”

나윤이 무슨 말인지 몰라 어리둥절하자, 수련이 키득거리며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손사래를 쳤다.

“너 말고, 단유 말이야. 왜 또 인사하고 그래?”

“저분이 예를 갖춰서 하시니까, 저도 다시 해야 할 것 같아서요.”

“그럼 나이랑 사는 곳도 이야기를 하지 그러니?”

“14살이고 장계동에 살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진짜 말하니?”

단유가 이렇게 하란 뜻으로 말해준 거 아니냐고 수련을 바라보았다.

“14살? 진짜?”

“더 들어 보여?”

수련이 장난스레 묻자 얼굴을 붉히는 나윤이었다.

“아뇨, 그게 아니라··· 어리게 보이긴 하는데··· 저보다 4살이나 어리네요?”

단유가 키도 크고, 목소리도 살짝 허스키한 느낌이 있어서 중학생이라고는 생각을 못 했다. 못해도 고등학교 1학년 정도라고 생각했기에 살짝 놀랐을 뿐이었다.

“너 설마···?”

“네? 아, 아니에요, 그런 거.”

당황한 나윤의 모습에 수련이 재밌다는 듯이 놀렸다.

“그런 거라니? 그런 게 뭔데?”

나윤은 수련이 자신을 놀린다는 걸 알면서도, 대꾸하지 못했다. 말할수록 자신만 곤란해질 뿐일 테니까. 나윤을 곤경에서 구해준 것은 보컬 트레이너였다.

“일찍 왔네?”

수련은 보컬 트레이너에게 인사를 한 뒤, 단유의 사정을 알렸다. 지난번에도 얌전히 앉아만 있다가 갔던 단유를 기억하고 있었기에 트레이너 역시 별말 하지 않았다.

“목은 못 풀었다고?”

“네.”

“그럼 목 먼저 풀고 시작하자.”

트레이너는 스트레칭부터 시작했다. 목소리는 목에서 나오지만, 노래는 온몸으로 부르는 것이라며, 가슴, 배, 허리, 다리까지 골고루 운동이 되도록 스트레칭을 시켰다. 수련이나 나윤은 어렵지 않게 스트레칭을 소화한 뒤, 본격적으로 목을 푸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정확히 어떤 말을 낸다기보다는 입에서 바람이 빠지는 소리를 내면서 목에 진동을 주고, 입 안쪽 근육을 풀어주는 법이라는 트레이너의 설명이었다.

그 뒤로도 음이 높아졌다, 낮아지는 소리를 내거나, 멈추지 않고 길게 소리를 내는 방식 등으로 목을 푼 두 사람은 거의 20여 분이 지나서야 본격적으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아직 두 사람이 부를 노래가 나오지 않았으니까, 다른 곡으로 연습하고, 노래 나오면 본격적으로 하자. 알았지?”

“네.”

두 사람은 트레이너가 지정한 곡에 맞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수련이 미성에 단단한 목소리를 가졌지만, 나윤은 살짝 허스키하면서 고음과 저음의 레인지가 넓은 목소리였다.

“나윤이는 평소에 연습을 많이 했나 봐? 음감이 좋은데?”

“고맙습니다.”

트레이너의 칭찬에 나윤이 살짝 웃으면서 답례 인사를 했다.

“수련이 넌, 뭐 잘하니까. 목소리가 굳지 않게 만드는 것만 신경 쓰자.”

실은 노래에 감정이 안 실린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데, 최근 갤럭시즈에 닥친 일 때문에 마음고생이 심할 거라 짐작한 트레이너는 괜한 이야기로 수련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다. 지금은 말한 대로 목소리가 뜨거나, 흔들리지만 않게 해주고, 감정이나 그 외에 디테일한 부분은 새 노래가 나와서 본격적으로 연습해야 할 때 잡아주면 될 거라고 판단했다.

그리고 그렇게 레슨을 마무리하려는 때였다.

“선생님.”

그때, 지켜보던 단유가 조심스럽게 트레이너를 불렀다.

“응? 왜?”

“혹시 질문 하나만 해도 될까요?”

어차피 끝낼 시간이라 달리 방해가 될 것도 없다고 생각했기에 트레이너가 고개를 끄덕였다.

“선생님이 생각하시기에, 어떤 목소리가 좋은 목소리라고 생각하세요? 그러니까··· 인기를 얻을 수 있는 가수의 목소리로서 좋다고 판단할 수 있는 목소리가 어떤 건가요?”

“응?”

단유는 며칠간 고민했던 이야기를 꺼내 들었다.

“최근에 관심이 생겨서 이것저것 노래들을 찾아 듣다가 생긴 궁금증인데요, 어떤 글을 읽어보니까 어떤 사람의 목소리는 요즘 노래에 어울리지 않는 목소리라는 이야기가 있더라고요. 어떤 목소리는 꿀이 떨어지는 목소리라고 칭찬하는 글도 있고요. 물론 노래가 좋아야 사람들의 관심을 끌겠지만, 노래를 부르는 가창자의 목소리도 한 몫을 차지하는 것 같더라고요.”

“음, 그렇지. 아무래도 듣기 좋은 목소리로 부르는 노래가 더 좋게 들리긴 하지.”

“그럼 그런 목소리는 인위적으로 가질 수 없는 건가 해서요. 만약 그렇다면, 타고난 목소리가 좋은 사람이 인기를 얻을 수밖에 없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단유의 질문에 나윤과 수련 역시 흥미롭다는 얼굴을 하고 트레이너를 바라보았다. 트레이너는 머리를 긁적이다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사실 나도 예전에 그 문제 때문에 고민했었거든. 그리고 솔직히 고백하자면, 그래서 난 가수를 포기했어.”

갑작스런 고백에 수련과 나윤이 당황하는 차에 트레이너의 고백이 계속되었다.

“단유, 라고 했나? 맞지? 단유 너 말대로 목소리, 보통은 음색이나 톤이라고 표현할 수 있겠는데, 이걸 타고난 사람들이 있어. 사람들의 목소리가 다 비슷하지는 않아도 대중의 귀에 좋게 들리는 음색과 톤이 있는 건 사실이야. 멀리 가지 않아도, 수련이나 나윤이 음색이 그렇지. 수련이의 미성은 누가 들어도 좋아할 만하지. 나윤이의 허스키한 음색은 최근에 주목받는 음색이기도 하고. 반면에 내 목소리는 솔직히 평범한 축에 속하지. 과거에는 목소리가 평범해도 고음을 잘 낸다거나 가창 스킬이 좋다면 가수를 하는 데 무리가 없기도 했었다고 봐. 하지만 요즘은 가요계에 워낙 노래 잘하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 스킬로는 경쟁력이 약하지. 그래서 주목을 받게 된 게 사람의 음색이야. 답만 이야기하자면, 음색은 거의 변하지 않지. 일부러 목을 긁는 창법으로 허스키하게 만들 수 있지만, 타고난 음색 자체가 변하는 일은 드물어.”

트레이너는 잠시 말을 멈추고 단유와 두 학생을 쳐다보았다.

“그런데 최근에는 또 트렌드가 변했어. 목소리만으로 좋은 가수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냐고 한다면, 대답은 노야. 결국, 노래는 감성이야. 얼마나 상대에게 진정성 있게 들려줄 수 있는가, 라는 본질로 돌아가서 봐야 한다고 말들을 하게 되었어. 목소리가 평범하든, 특이하든, 부르는 가수의 진심이, 감정이 오롯이 상대에게 전달되도록 부르는 게 중요해진 거지. 이건 단순히 스킬이나 음색으로 훈련될 수 없는 거야. 가수라는 직업 자체의 기본적인 마인드에 관한 문제가 된 거야. 단순히 돈 벌려고, 인기나 얻으려고 가수가 되려는 이가 과연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노래를 부를 수 있을까? 스튜디오에서 아무리 믹싱을 기가 막히게 한다고 해도, 가수의 진심은 믹싱을 할 수 없으니까.”

두 학생이 고개를 끄덕이는 가운데, 단유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노래에서 그런 게 느껴지나요?”

“그럼, 당연히 느끼지. 넌 한 번도 못 느껴봤어?”

“네.”

단유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트레이너는 잘됐다는 심정으로 두 학생을 바라보았다.

“자, 우리 청강생이 진심이 담긴 노래를 들어본 적이 없다고 하는 말 들었지? 어때, 도전해 볼 사람?”

수련과 나윤은 서로의 눈을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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