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멤버 더 네임-279화 (279/956)

Unbelievable!(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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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수는 진지한 얼굴로 미간에 주름이 생길 정도로 모니터에 열중하는 단유가 낯설었다.

“가요 들으면서 그렇게 심각한 얼굴을 하는 건 너밖에 없을 거야.”

단유는 입꼬리를 씰룩이다가 변명하듯 말했다.

“사실 말이야, 이 노래들이 왜 좋은지 모르겠어서.”

단유는 등을 돌려 명수를 바라보았다. 단유가 음악을 들을 때 음악이 좋고 나쁨을 판단하기 전에, 이 음악이 수학적으로 어떻게 분석될 수 있을까를 먼저 생각한다는 말에 명수도 비슷한 표정을 지었다.

“너 되게 심각하구나.”

명수는 단유가 평소에 이어폰도 귀에 꽂지 않고 산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이 정도 중증일 줄은 생각도 못 했다. 명수는 호빵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생각을 정리했다.

“좋아, 오늘은 이걸로 정했다.”

단유가 무슨 말이냐는 듯, 명수의 대답을 기다리니 명수는 단유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단유 대신 컴퓨터를 조작했다.

“내가 이래 봬도 음악에 일가견이 있거든? 그래서 생각한 건데, 이 세상에 좋아하는 음악, 싫어하는 음악은 있을 수 있어도 음악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고 봐. 너도 아직 좋아하는 음악을 못 들어봐서 그렇지, 찾아보면 분명히 있을 거야.”

명수는 어쩐지 신이 난 얼굴이었다.

“괜히 너 바쁜데 시간 뺏는 거 아냐?”

“아냐, 아냐. 전혀 안 바빠. 알잖아?”

명수는 장르별로 음악을 찾아서 틀기 시작했다.

“이건 어때?”

최근의 히트곡부터 시작해서, 2000년대 초반에 유행했던 댄스곡과 90년대의 히트곡, 발라드, 트로트 등 유명한 음악은 다 찾아서 들려주었다. 그런 노력에도 시큰둥한 단유의 반응에 명수는 더욱 오기를 부려 락, 메탈, 재즈, 클래식 등까지 동원했다.

“이건, 너무 단순한데?”

“재밌긴 한데, 딱히···.”

“잘 때 들으면 좋긴 하겠네.”

해골이 관에서 튀어나오는 동안, 거친 그로울링 창법의 보컬이 소리 지르는 뮤직비디오를 보며 자장가로 좋겠다는 단유의 감성에 명수가 혀를 내두를 때, 머리를 뒤로 질끔 묶은 상미가 집에 들어왔다.

“뭐해?”

명수의 설명을 들은 상미가 손뼉을 치며, 말했다.

“내기하자.”

“응?”

“누가 먼저 단유가 좋아하는 음악 찾는가로 내기하자.”

단유는 상미를 한심하다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도대체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데?”

명수도 뒤이어 대꾸했다.

“콜!”

명수에게로 시선이 옮겨질 때, 명수와 상미는 악수를 했다.

“이긴 사람이 호라이즌 하루.”

“콜!”

며칠 전, 둘이서 돈을 모아서 산 게임은 1인용 게임이라서 서로 번갈아가면서 해야만 했다. 둘의 내기는 그 게임을 먼저 플레이할 사람을 고르는 것이었다.

“그게 내기가 되는 거니?”

단유가 두 사람의 정신연령을 살짝 의심하기 시작할 때, 두 사람은 누구보다 진지한 얼굴로 게임(?)을 시작했다. 명수가 컴퓨터로 음악을 찾으려 할 때, 상미가 명수를 제지했다.

“핸드폰으로 찾자. 같은 조건으로 해야지.”

“야, 나는 핸드폰 쓰기 어려운데?”

핸드폰으로 타이핑하는 것이 어렵다는 명수의 말에 상미가 샐쭉한 얼굴로 인정해 주었다.

“내가 한 번 봐줬다.”

두 사람의 꼴을 보던 단유는 방으로 들어가려 했지만, 명수와 상미가 억지로 단유를 붙잡아 의자에 앉혔다.

“널 위해서야.”

핑계도 좋다. 졸지에 두 사람의 놀이감으로 전락한 단유는, 그래도 두 사람의 노력을 인정해 주자는 뜻에서 기다려주었다.

그 날, 저녁을 먹을 때까지, 두 사람은 세상 모든 음악을 다 찾아서 들을 기세로 달려들었고, 단유는 세상 모든 음악을 다 들은 기분이 들어 평소보다 몹시 피곤한 기분이었다.

****

“누구랑 하는 거죠?”

예영의 물음에 태호가 머리를 긁적였다.

“설마 아직 안 정했다는 건 아니죠? 우리들끼리 경쟁시켜서 한 사람을 고르겠다거나 뭐 그런 가혹한 이야기를 하시려는 건 아니죠?”

태호는 고삼차라도 마신 얼굴로 대답했다.

“야, 여기서 무슨 오디션 프로라도 찍기라도 할 줄 알았니? 그런 거 아니야.”

태호는 차마 미안하다는 말은 못하고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일단 위에서 정한 건, 수련이야.”

수련을 제외한 멤버들은 다들 그럴 줄 알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애초에 노래 하나로 뽑힌 수련이었고, 노래 예능에도 출연해서 인정을 받았던 수련이기도 하니, 회사 차원에서야 수련을 뽑을 만했다. 다만 이런 상황이고 보니 다시 무대에 설 기회가 영영 없어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운 마음이 드는 탓에 마음이 불편한 멤버들이었다.

“그렇다고 다른 멤버들이 전혀 할 일이 없는 건 아니야. 솔직히 위에서는 너희들을 너무 빨리 데뷔시켰던 것이 아닌가 판단을 했고, 그래서 재정비 차원에서 좀 더 시간을 들이자는 것뿐이니까 너무 실망하지 말길 바랄게. 이런 경우가 없던 것도 아니고, 또 어떤 그룹은 3년 뒤에 새 앨범을 내고 성공한 사례도 있었으니까, 너희들도 너무 처져 있지 말고 실력을 기르도록 해. 그리고 이건 내 개인적인 소망인데, 부디 다음 갤럭시즈 앨범은 싱글이 아니라 정규 앨범으로 낼 수 있었으면 좋겠어. 너희들도 정규 앨범이 나오면 좋잖아? 그렇지?”

정규 앨범을 내길 원하지 않는 가수는 없을 것이다.

“꼭 정규 앨범 내주실 거예요?”

“···노력할게.”

그러나 그 말이 얼마나 무의미한 공약인지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고작해야 아직 팀장 직함도 얻지 못한 일개 매니저의 다짐일 뿐이니, 3년은 물론이고 1년 뒤의 태호가 어디에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야, 너 왜 그래? 울어?”

고개 숙인 채 있던 수련을 보던 지수가 고개를 기울이니 수련의 얼굴을 타고 흐르는 눈물이 보였다.

“왜 울어? 울지 마.”

하지만 다른 멤버들에게 미안하기만 한 마음에 수련은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니가 잘해서 또 우리 이름 알리면 되잖아, 안 그래?”

명지가 수련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그래, 니가 더 열심히 활동해서 갤럭시즈 이름이 한 번이라도 더 언급되게 해야지. 혹시 알아? 덕분에 역주행이라도 할지?”

지수와 명지의 응원에 수련은 더욱 울컥한 마음이 들어 입을 틀어막았다.

“언니, 미안해요. 언니.”

울음이 섞인 수련의 목소리에 수영을 비롯한 멤버들이 모두 수련을 안아주었다. 솔직한 마음으로, 태연하게 수련을 위로하기에는 각자의 마음도 불편하긴 마찬가지였지만, 그래도 3년 이상 함께 땀 흘리고 고생했던 멤버인지라 그녀의 마음을 또 모르지는 않았다.

“괜찮아, 수련아.”

수영도 눈에 맺힌 눈물을 닦으며 수련을 응원했다.

“꼭 잘해서 너라도 성공했으면 좋겠어.”

“아니야, 나, 우리, 같이 해야지. 같이 성공해야지.”

수련은 울먹이며 말하느라 제대로 문장을 만들지도 못했다. 하지만 그 말을 이해 못 할 정도는 아니어서 다들 먹먹한 마음으로 수련을 위로하고 응원했다.

태호는 그 분위기를 깨기가 미안해서 그들끼리 시간을 가질 수 있게 자리를 피해 주었다.

밖에서 보컬 선생님이 오시기를 기다리다 선생님이 오시자, 그제서야 안에 들어가 분위기를 정리해주고 나중에 다시 보자는 말을 남긴 태호는 이후 사무실로 돌아와 보고를 했다.

“아이들에게 이야기는 다 했습니다.”

박 이사는 서류를 들여다보면서 태호에게 질문을 했다.

“불만은 없고?”

불만이 있을 걸 알면, 직접 가서 사정을 설명해주고 일을 진행시킬 것이지, 이렇게 위에서 일을 벌여놓고 정작 부담스러운 일은 자신한테 다 맡기다니.

“별로 없었습니다.”

박 이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서류 제일 앞장에 서명을 했다.

“하긴, 지금 상황에서 불만이 있으면 도둑놈 심보겠지.”

태호는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수고했어. 일 봐.”

태호는 고개를 숙여 보인 뒤, 등을 돌렸다.

“아, 잠깐만.”

돌아보니 박 이사가 금테 안경을 고쳐 쓰며 태호를 바라보고 있었다.

“혹시 애들 그만둔다고는 안 해?”

분명히 방금 불만이 없다고 이야기했는데도, 저렇게 뭔갈 기대한다는 눈치로 묻는 건 그 의도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마음에 들지 않아도 직장 상사에게 쓴소리할 수는 없는 법. 욱하는 마음을 누르며 차분하게 대답했다.

“열심히 하겠답니다. 3년 뒤에 정규 앨범 낼 수 있도록···.”

거기까지 말했을 때, 박 이사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알았어, 나가봐.”

태호는 문을 닫고 나가면서도 고개를 들지 않았다. 누군가가 지금의 태호 얼굴을 본다면 분명히 한소리를 할 게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너 왜 그래? 무슨 안 좋은 일 있어?”

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지금 표정관리가 되지 않는 태호였다. 비록 입사 3년 차가 되도록 팀장 소리 한 번 못 듣는 매니저이지만, 그리고 그렇게 된 이유가 뜨지 못하는 갤럭시즈의 성과 때문이지만, 그래도 갤럭시즈와 함께 한 3년간 자기 자식처럼 아끼고 돌보며 지냈다. 그런데 그런 자식을 향해 저런 장난스러운 태도를 보이는 박 이사가 곱게 보일 리 없었다.

저 아이들이 얼마나 열심히 연습하는지는 보지 않고, 오직 서류 속의 숫자로만 아이들의 노력을 폄하하고 그 미래를 재단하려 하는가.

‘그래, 그게 이곳의 룰이지.’

성공하면 세상 누구보다 귀하게 대접하지만, 성공하지 못하면 최저시급 받는 알바보다도 못한 취급을 받는 게 이곳, 가요계의 현실이었다.

“젠장.”

태호는 자기 책상으로 돌아가는 대신, 밖으로 나갔다. 담배가 몹시도 땅겼다.

****

“누나? 저예요.”

전날, 명수와 상미에게 시달렸던 단유는 주말을 맞아 먼저 수련에게 연락을 했다.

무슨 일이냐는 수련의 말에 단유는 이틀간 고민한 결과를 알려주었다.

“돕고 싶은데 도울 방법이 생각나질 않아서요.”

―말만으로 고마워.

단유는 핸드폰은 든 채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물었다.

“누나 무슨 일 있어요?”

―응? 아니. 왜?

“목소리가 이상해서요. 감기예요?”

수화기 너머로 목소리가 잠시 끊긴 듯 싶다가 다시 들려왔다.

―아니야, 어제··· 조금 무리해서 그런 가봐.

단유는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목소리가 이상하다는 이유만으로 수련을 추궁할 근거가 부족하기에 원래 하려던 이야기로 화제를 돌렸다.

“아무튼, 누나들을 도울 방법을 찾으려다 보니까 알게 된 건데, 제가 좋아하는 음악이 없더라고요.”

무슨 이야기냐는 수련의 물음에 단유는 어제 있었던 일을 간략하게 설명해주었다. 곧 수화기에서 수련의 웃음소리가 터져 나오더니 한참을 웃는 소리만 들려주는 수련이었다.

―와, 정말 명수는 기가 막히는구나. 그래서 어제 하루 종일 음악을 들었다고?

“네. 그런데 매력적이라고 생각되는 음악이 없더라고요.”

―그럼 그동안 우리 노래도 별로라고 생각했던 거겠네?

“사실은 그렇죠.”

―이야, 이거 실망인데?

수련이 농담조로 뱉은 말에 단유가 사과를 했다.

“그래서 말인데요. 혹시 누나 보컬 레슨 받는 거요, 다시 한 번 들을 수 있을까요?”

단유는 이왕에 시작한 거, 좀 더 학구적으로 파고들고 싶다는 생각을 가졌다.

“보니까, 보컬 선생님이 꽤 체계적으로 설명을 해주시는 것 같던데, 그땐 제가 별로 관심이 없던 터라 주의 깊게 듣지를 못했거든요. 그래서 이번에 만약 다시 레슨을 들을 수 있다면, 음악에 대해서 잘 알 수 있지 않을까 해서요. 너무 제 욕심만 부리는 것 같아 죄송하네요.”

―아냐, 뭘 그런 걸 가지고. 괜찮을 거야. 어차피 지난번처럼 조용히 듣기만 하는 거면 선생님도 별말씀은 안 하실 거야. 조금 있다가 레슨 있는데 한 번 와 볼래?

단유는 흔쾌히 제안을 받아들였고, 통화를 마친 단유는 곧바로 준비해서 집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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