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멤버 더 네임-277화 (277/956)

Unbelievable!(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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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유는 허공을 떠다니는 비닐봉지를 보는 기분이 들었다. 갸우뚱거리던 단유가 그 뜻을 물으니, 병수는 다른 표현으로 이해를 도왔다.

“개성이 없어.”

글쎄, 그 말에는 동의하기 어려웠던 단유는 나름대로 자신이 느낀 개성에 대해 설명했다. 각각의 멤버가 특화된 면이 있어 개성이라면 다른 누구 못지않게 강하다고 느끼던 단유였지만, 병수는 단유의 설명에 고개를 내저었다.

“그건 너만 아는 개성이고, 다른 사람들은 그런 개성을 모르잖아. 그리고 그런 건 개성 축에 들지도 않고.”

“그래?”

“그럼. 모름지기 걸그룹이라고 한다면 뭐니 뭐니 해도 컨셉이 중요해. 걸크러쉬라는 말 들어봤어? 예전에는 청순, 섹시, 힙합 정도가 컨셉이었다면, 요즘은 걸크러쉬 혹은 비글미 같은 컨셉이 추가가 되었어. 이게 무슨 뜻이냐고? 대중의 기호가 더욱 다양해졌고, 걸그룹들에게 구체적인 컨셉을 요구한다는 의미야.”

단유는 알 듯 말 듯 했다. 하지만 역시나 평소에 이런 쪽으로 관심을 두지 않았던 탓인지, 병수의 설명을 곧바로 이해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런데 갤럭시즈는 이런 컨셉이 없어. 우리 사이에서는 그냥 밍숭밍숭한 듣보잡 그룹의 하나지.”

“가수가 노래만 잘하면 되는 거 아니야?”

병수가 그 말도 틀린 말은 아니라고 인정하면서도 손가락으로 위를 가리켰다.

“지금 현재 시장에 나와 있는 걸그룹이 얼마나 되는 줄 알아? 공식적으로만 100에 가까운 걸그룹들이 나와서 각축을 벌이고 있다고. 그런데 그저 평범하기만 한 걸그룹들이 과연 성공할 수 있겠어? 실력이 좋아야 뜬다는 말도 옛말이야. 지금은 정말 상향 평준화가 돼서 어지간한 실력으로는 주목받기 힘들거든. 이런 상황이다 보니 다들 다른 그룹들과 차별점을 보이려고 노력하는 거야.”

단유는 물끄러미 병수를 바라보았다. 병수는 단유의 반응에 상관없이 열변을 이어나갔다.

“그런데 단지 컨셉만 잘 잡는다고 성공하느냐? 그런데 그게 또 아니란 말이지. 무려 100이야. 어지간해서는 경쟁력을 돋보이기도 힘들다고. 그래서 필요한 게 뭐냐? 예능감이란 거지. 아이돌이란 게 순수 예술을 지향하는 아티스트랑은 또 다르단 말이야. 계속 방송에 나와서 얼굴을 알리고 이름을 알리고 노래를 소개해야 하는데, 만약 방송에 나와서 재밌지도 않고, 웃기지도 않고, 뭔가 임팩트를 남기기에 부족하다, 그러면 팬들도 관심을 두지 않거든.”

이 부분은 어제도 잠깐 들었던 것 같은데. 단유는 선생님께 질문하는 사람처럼 손바닥을 들어보였다.

“뭐?”

“누나들이 예능감이 좋다고 그러던데? 실제로 이야기해봐도 예영누나나 명지누나는 꽤 재밌게 말을 하는 편이고.”

병수는 손가락을 좌우로 흔들어 보였다.

“예능감이란게 그냥 말만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니야. 예능이란 거 기본적으로 웃음이 있어야 하거든? 그리고 평소에 지금처럼 대화를 나누듯 말하는 게 아니란 말이야. 카메라 앞에서 개인기를 보여주거나, 방송 가운데 툭툭 핵심을 찌르는 멘트가 필요한데, 이게 보통 센스로는 되는 게 아니야. 다른 그룹을 예로 들고 싶지만, 갤럭시즈만 이야기하면, 갤럭시즈는 아직 그런 예능에서 검증이 되지 않았지. 그런데 사실 갤럭시즈의 불행은 여기서 시작이야.”

병수는 어려운 수술을 앞둔 의사의 모습처럼 팔짱을 끼고 진지한 얼굴로 단유를 바라보았다.

“자, 방송에서 갤럭시즈를 출연시켰어. 그런데, 누나들이 나온 방송분이 형편없이 재미없어. 그러면 방송국에서 누나들을 출연시키려고 할까? 안 해. 출연시킬 걸그룹이 수두룩한데 굳이 재미없는 걸그룹을 출연시켜서 무슨 득을 볼까. 게다가 팬도 많지 않은 걸그룹인데? 결국 방송 출연을 못 해. 방송 출연을 못 하니까, 인지도가 계속 떨어져. 인지도가 계속 떨어지니까, 방송국에서도 안 써. 이게 계속 반복되는 거야. 악순환이지. 안되는 걸그룹들은 대부분 이런 테크를 타지. 노래도 마찬가지야. 만약에 어떤 노래를 들었는데, 이게 별로야. 그럼 다음에도 그 가수의 노래를 찾아서 들으려고 할까? 안 들어. 안 들으니까 기억에서도 잊혀져. 그리고 설령 이름을 기억해도 노래가 별로인 그룹으로 기억되니까, 안 찾아 듣는단 말이지. 아까도 말했듯이, 들을 그룹이 수두룩하고, 그중에는 자기가 아끼는 걸그룹들이 굉장히 많단 말이야. 그런데 기억에 남지도 않고, 혹은 기억에 별로라고 저장된 걸그룹의 노래를 찾아 들을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단유는 언뜻 이해가 가는 것 같기도 했다. 자기의 경우로 예를 들면, A라는 출판사에서 나온 수학책의 문제는 꽤 사고력도 요구하고 푸는 재미가 있는 문제들로 구성한다는 느낌이 들어서 좋았다. 반면 B라는 출판사에서 나온 수학문제집은 단순 풀이용 문제들만 수록되어 있어서 푸는 재미가 없었다. 그래서 그 출판사의 문제집들은 잘 찾지 않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문제집을 고르다가도 B출판사의 이름이 적힌 문제집은 건너뛰는 경우가 많은데, 아마 이런 경우와 비슷하지 않을까?

“대충 알겠어. 그럼 말이야, 갤럭시즈가 뜨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병수는 눈을 껌뻑껌뻑하다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무슨 뜻이야?”

“나도 모른다고.”

단유는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전문가라며?”

“응? 누가?”

아, 생각해보니 ‘전문가’라는 타이틀은 지태가 이야기했던 것일 뿐이었다.

“어쨌든, 뜨게 하는 방법이 없을까?”

“뭐, 굳이 생각해보자면 말이야··· 이건 내 경우에 한해서인데, 갤럭시즈는 아까도 말했듯이 컨셉이 분명하지 않아서 다른 걸그룹과의 차별성이 느껴지질 않아. 물론 수련 누나 같은 튀는 멤버가 있긴 한데, 노래 빼고는 별로 주목할 부분은 없고. 외모는 내 개인 취향이지만, 그것만으로는 매력 있다고 말하긴 부족하지.”

어렵다는 듯 말하는 병수의 말이었다.

“사실 반전을 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역시 기본이지.”

“기본?”

“시대에 남을 명곡.”

병수는 눈동자를 위로 치켜들었다가, 배시시 웃었다.

“너무 거창한가? 그런데 결국 기본이 돼야 다른 수도 쓰지. 갤럭시즈를 대표하는 명곡이 나와야 팬들도 노래를 듣고 가수를 찾지, 아니면 답 없어.”

긴 이야기의 끝은 기본이었다. 하지만 그게 가장 중요한 문제긴 했다. 멤버들도 타이틀 곡이 별로라는 이야기를 몇 번이고 했었으니까.

“그런데 말이야.”

“응? 뭐?”

병수가 뭐든 물어보라는 식으로 단유를 바라보았다.

“너 말 되게 잘하는구나. 평소에 워낙 조용히 있어서 이렇게 말 잘하는 줄 몰랐어.”

병수는 쑥스럽다는 듯 얼굴을 붉혔다.

“사실, 내가 좋아하는 분야라서 이렇게라도 말하는 거지. 솔직히 내가 공부를 잘 못 하잖아? 그러니까 공부 이야기는 할 게 없고, 그렇다고 잘 모르는 정치 이야기를 할 수도 없는 거 아니야?”

“그래도 이런 모습 보니까 조금 신기하긴 하네. 우리 거의 6개월간 같이 앉아 있었는데도, 니가 그 ‘덕후’? 뭐 그런 건지도 몰랐고.”

“그야, 니가 늘 책만 읽고 주변에 관심이 없으니까 그렇지.”

단유는 병수의 말에 조금 찔리는 기분이 들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옆자리에 앉은 짝에 대해서도 무관심했다는 사실이 민망했다.

“앞으로도 궁금한 거 있으면 종종 물어볼게. 괜찮지?”

“그럼. 대신, 이쪽 관련해서만. 다른 건 물어도 대답 못 해줘. 그런데 기분 좋다야. 천하의 단유가 나한테 질문도 하고.”

병수는 기분 좋은 웃음을 지으며, 책상 위에 얹어 놓았던 물건들을 조심스럽게 가방 안에 담아 넣었다.

병수와의 대화를 통해, 단유는 걸그룹이란게 노래만 잘 부르고 춤만 잘 춰서 성공할 수만은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동안 명곡이라고 덕후들에게 인정받는 곡을 남기고 사라진 비운의 걸그룹들이 많다는 병수의 말에 갤럭시즈 또한 그 운명을 따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아니야. 운명이라니. 모든 건 인과관계가 존재한다. 다만 시야가 좁은 인간의 한계로 인해 다양한 인과관계를 파악하지 못해서 ‘운명론’을 들먹일 뿐인 것이다.’

단유는 머릿속에서 숫자들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기분이 들어, 재빨리 머리를 저었다. 그리고 다짐했다.

‘이번에는 내 힘으로 알아보자. 약에 취하지 않고도, 알아낼 수 있다면 더는 유혹에 시달리지 않을 거야.’

단순히 갤럭시즈를 돕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 이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기로 결심한 단유였다.

‘아, 그리고 병수랑 이야기할 때는 미리 준비 좀 하고 대화를 해야겠다.’

대화를 하는 동안 전혀 들어보지 못한 단어―예컨대, 덕후, 덕질, 테크 같은 단어들이 수시로 불쑥 튀어나와서 단유의 머리를 어지럽혔기에 나온 결론이었다.

****

“안녕하세요. 정나윤이라고 해요.”

이제 회사에 들어온 지 6개월이 되었다는 18살의 푸릇푸릇한 아이였다.

“반가워.”

아무도 말을 걸지 않는 가운데, 수영이 나서서 나윤을 반겨주었다. 그리고 나윤이 들고 온 두 개의 캐리어 중 하나를 들어주었다.

“어, 괜찮은데.”

“아니야. 가자, 네 방은 저쪽인데 우리 막내랑 같이 쓰기로 했거든. 우리가 마음대로 결정했는데, 괜찮지?”

“아, 당연하죠. 괜찮아요, 전.”

나윤이 당황하며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무려 데뷔 3년 차의 갤럭시즈였다. 이제 갓 연습생이 된 나윤에게는 하늘보다 높은 대선배이기도 했고, 나이로도 한참 언니뻘인 수영이었기에 어렵기만 했다.

“안녕하세요.”

“안녕.”

예영이 다소 쌀쌀맞다 싶게 인사를 받았다.

“너 때문에 그러는 거 아냐. 요즘 안 좋은 일들이 있어서 그런 거니까, 신경 쓰지 마.”

또 수영이 변명 비슷하게 설명하자, 나윤은 괜찮다며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원래 독방을 쓰던 수영은 명지랑 같이 방을 쓰게 되었고, 지수는 수련과, 그리고 막내인 예영이 신입과 같이 방을 쓰기로 되었다.

민주적인 방법―다수결에 의해 결정된 사항인지라, 예영도 별말은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불만이 없나, 하면 사실 신입이나 언니들에게는 불만이 없었다. 오직 이런 식으로 일을 처리하는 회사에 불만이 있을 뿐이었다. 언니들에게 불만이 있다면 차라리 지난번처럼 말을 꺼내서 속을 드러내고, 다투고, 풀면 그만인데 대상이 회사이기에 속으로만 끙끙 앓을 뿐인 예영이었다.

“밥은 먹었니?”

“아, 아니요. 나중에 연습실 가서 친구들이랑 같이 먹으려고요.”

그러다 입을 급히 틀어막는 나윤은 눈치를 보며 물었다.

“혹시 숙소에서 다 같이 밥 먹어야 하는 건가요?”

수영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그런 거 없으니까, 그냥 편하게 지내. 그리고 나중에 저녁때 다 같이 모여서 청소 당번 다시 정할 테니까, 그때 늦지 않게 오면 돼.”

“아, 네.”

“18살이라고?”

“네.”

“그럼 학생?”

“네. 예고 다니고 있어요.”

“그렇구나.”

그렇게 대화는 끝이 났다. 방에 들어가서 나오지 않는 예영 대신 말을 붙여주던 수영은 뻘쭘하게 거실과 주방을 둘러보는 나윤을 보다가 다시 말을 붙였다.

“오늘 스케줄 어떻게 돼?”

“아, 조금 있다가 연습실 가는 것 말고는 없어요.”

“그래? 그럼 같이 가자. 나도 조금 있다가 가려고 했으니까. 짐 정리하고 갈 거야?”

“아니요, 지금 바로 갈 거예요. 괜찮아요.”

지금 바로 간다는 이야기는 아니었는데. 수영은 말을 정정해주는 대신 예영을 향해 물었다.

“예영아, 회사 갈 거지?”

“네.”

“준비해.”

“네.”

“나도 옷 갈아입고 올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

“네, 선배님.”

수영은 호칭을 ‘선배’에서 ‘언니’로 편하게 부르라고 정정해 주려다 말았다. 잠시 멈칫하던 수영이 방으로 들어간 뒤에야, 남몰래 숨을 내쉬는 나윤이었다.

처음 숙소가 배정됐다는 이야기에 살짝 들뜬 마음도 있었는데, 선배들을 직접 보고 나니 괜히 위축되는 느낌도 들고, 환영받지 못하는 외부인이 된 거 같아 조금 서러운 느낌도 있었다. 마치 오랜 시간 정든 친구들을 떠나 전학을 갔을 때, 새 학교 새 학급의 낯선 아이들을 마주하면 이런 기분일까?

“뭐하니?”

얼른 고개를 들어보니, 예영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우와, 진짜 연예인.’

예영은 자신보다 고작 2살 많을 뿐인데도 연예인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너 그러고 나갈 거니?”

“네? 아, 네.”

자기는 딱히 준비할 게 없기도 해서,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 방에서 나온 수영은 푸른색 트레이닝 재킷에 발목이 드러나는 청바지를 입고 나왔다.

“가자.”

수영을 필두로 두 사람이 숙소를 따라 나와 회사로 향했다. 문득 저녁 때 일찍 와서 짐 정리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보는 나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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